이응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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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의집' 풍경...이런저런글 2023. 8. 27. 16:27
. 홍성 중계리 '이응노의집'에서 [즉흥( 卽興)의 미(美)] 전시회가 두어 달 넘게 열렸습니다. 이응노라는 이름도 좋고, 그의 생가터에 이런 미술관도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응노는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의 세계가 더욱더 넓어집니다. 이응노의 세계를 접하면서 사진 공부도 합니다. 큰 나무가 있어서 작은 나무들이 위를 보고 자라납니다. 천북에 살면서 바다가 고맙고, '이응노의집'이 가까워서 고맙습니다. . . . - 2023. 8. 25. 오후 5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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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그리다'이런저런글 2023. 1. 16. 13:16
천북에 살면 좋은 것 하나 '이응노의집'이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시대의 곡절은 지금도 여전하군요 그러므로 그의 그리움과 예술은 날마다 새로워서 출렁거립니다 바람에 몸을 맡긴 대나무에서 깨달음을 얻고, 동백림사건으로 갇혔을 때는 밥과 휴지, 간장 등으로 참담함을 이리저리 뭉쳐 예술로 자유롭게 드러내 보인 마음 지금 전시 중입니다 겨울비에 젖은 전시실 가만히 있어도 그의 마음이 번져옵니다 --------------------------------------------- *전시회 - '이응노, 그리다' *기 간 - 2022. 12. 06.(화) ~ 2023. 03. 05.(일) *장 소 - 홍성 중계리 '이응노의집' . . . - 2023년 1월 14일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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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에게’이런저런글 2022. 10. 10. 09:58
1. 먼저 천상병 시인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천상병 시인의 시를 20대 중반에 접했고, 그의 삶을 알았다. 1987년을 기점으로 20대 후반 내 갈 길의 전환점을 맞으며 마지막 작곡한 노래, 그리고 지금도 가끔 부르는 노래가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다. 그때, 참으로 이 시가 좋았다. 천상병 시인이 1970년에 발표한 시이다. 천상병 시인은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면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전기고문을 당하면서 삶이 망가졌다. 결혼은 했다. 1993년에 세상을 떠났다. 동백림사건은 40여 년이 지난 뒤에야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로부터 당시 고통을 당한 이들에게 정부는 포괄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권고가 나왔다.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는 동베를린(동백림)을 거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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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의 집'이런저런글 2022. 8. 16. 00:13
. . 충남 미술관 중 무척 좋아하는 미술관이 2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홍성 홍북면 중계리에 있는 고암 이응노 생가터에 세운 '이응노의 집'입니다. 815 광복절, 바람이 무척 세차게 부는 날 오후... 중계리에 잠깐 다녀왔습니다. 지금 '이응노의 드로잉'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고암 선생의 이런저런 드로잉을 보면서 민족의 아픔을 예술로 더욱더 승화시킨 그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역사 탐방으로 건국대 학생들이 단체로 온 것을 보면서 돌아왔습니다. . . . . - 2022년 8월 15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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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의집' 풍경이런저런글 2022. 6. 6. 23:39
이응노는 1904년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파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온 삶을 그림으로 채운 화가입니다. 일본 유학을 거쳐 해방 후에는 새로 개설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지냈습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50대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습니다. 이응노는 한국의 전통 서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여 유럽 예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가 남긴 3만 여점의 작품은 전통 서화부터 현대의 추상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고 다양합니다. 이응노는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을 삶 속에서 고스란히 겪었습니다. 1960년대에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러야했고 다시는 그리던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동양의 전통 위에 서양의 새로운 방식을 조화롭게 접목한 독창적인 창작 세계를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체제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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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이런저런글 2021. 7. 3. 21:43
화가 이응노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수덕여관을 드나들던 무렵이었습니다. 그 당시 수덕여관은 숙박 기능이 사라지고 식당으로만 운영되던 때였습니다. 수덕여관은 나에게 많은 끌림을 준 장소였습니다. 자주 가다 보니 밥값을 깎아줄 때도 있었지요. 이젠 예전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참 많이 지났습니다. 그때 암각화를 통해서 이응노의 작품을 처음 봤습니다. 그리고 천상병 시인 등과 어우러진 동백림사건에 연루된 것을 알면서 때때로 아픔이 되었습니다. 동백림사건 이후 이런저런 연유로 프랑스로 귀화합니다. 1989년 작고하기까지 고향에는 올 수 없었습니다. 동백림사건 이후 파리에서 삶은 그곳에서 활동한 건축미술 작가인 심현지 선생을 통해 조금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홍성 홍북읍 중계리 생가터에 세워진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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