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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여름은 서울 거리를 많이 걸었습니다. 그동안 서울을 자주(?) 갔어도 거의 대중교통을 이용했지, 이렇게 많은 곳을 걷지는 못했습니다. 요즘 진지하게 사진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번 여름 사진 공부는 서울의 이곳저곳을 걸으면서 사진에 담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름이 얼마나 더웠습니까? 세상에, 서울에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더위를 먹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농촌에서도 겪지 않은 일인데요. 그래도 땀 흘리며 사진 찍는 일이 즐거웠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골목길을 걸으면서 놀라기도 했고요. 특히 사직동 언덕길 그 골목들…
사진 공부하는 중에 5번 정도 서울 길을 걸었는데, 그중 잊지 못할 길이 경희궁3가길을 따라 사직로6길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일반적인 서울 사람도 아마 가보기가 쉽지 않은 길일 것 같습니다. 경복궁역에서 가까운 성곡미술관 근처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해서 경희궁3가길, 사직로6길, 송월1길, 한양도성순성길, 사직로9길, 필운대로1길, 서촌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까지 걸었습니다.
2. 그동안 사직동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종로구에 속해 있고, 주요 행정기관 등이 있는 서울의 중심부라는 것, 또 조선 시대 중요한 국가시설의 하나인 사직단 등 여러 문화재가 있고, 인왕산이 가까이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최근에는 사직동 딜쿠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 등이 사직동에 대해 그동안 제가 가졌던 관심이었습니다. 딜쿠샤는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1924년에 건축된 지상 2층 규모의 서양식 주택으로 광산사업가이자 AP통신 한국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고종 국장(國葬)과 3.1운동, 독립운동가 재판 등을 취재한 미국인 앨버트 W. 테일러와 영국인 메리 L. 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입니다. 처음 '딜쿠샤(DILKUSHA)'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일본어인 줄 알았는데, 살펴보니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더군요.
아무튼, 경희궁3가길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길을 5분 정도 오르니 이곳이 과연 서울 한복판인지 의아해졌습니다. 상상 밖의 모습이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기와지붕이 무너져 서까래가 드러나고 잡초가 우거진 빈집들과, '낙하물 주의' '출입 금지' 같은 안내문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서울의 중심지라고 하는 종로에 이렇게 쓰러져 가는 빈집들이 많다니! 그 사이사이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눈에 띄었는데, 큰비라도 한 번 내릴라치면 여간 근심이 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사직동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면서 이곳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일대는 '사직2구역' 재개발 지구로 2012년 9월 사업시행 인가를 받고 14동(棟) 456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7년 3월 서울시가 직권으로 재개발 지구 지정을 취소했고, 3년 넘게 방치되면서 슬럼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니까 당초 이 지역은 재개발을 통해 456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뀔 예정이었지만 2017년 서울시가 역사문화유산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직권 해제하면서 사업이 중단됐고, 개발 중단 후 방치되면서 지금, 이 지역은 빈집이 넘쳐나고 장맛비에 지붕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주거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17년은 국가적으로 재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한참 전환하던 때입니다. 검색을 좀 더 해보니 주민들 인터뷰 기사도 나옵니다. “재개발·재건축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이웃 동네를 보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사직2구역 주민 장모(71) 씨는 바로 옆 사직1구역은 10년 전 재개발이 끝나 번듯한 아파트가 됐는데 부럽기만 하다고 했다. 사직1구역은 657가구의 주상복합 '풍림스페이스본'으로 재개발됐고, 인근 돈의문1구역은 30동 2,415가구의 '경희궁 자이'로 변신해 2017년 입주했다.”
4. 사진 공부 중 사직동 골목길 사진을 찍으러 왔다가 뜻밖에도 서울에서 도시 재개발과 도시재생 현장을 맞닥뜨렸습니다. 같이 산책하며 사진 공부를 하는 일행들은 차분히 사진 찍는 일을 수행하면 됐지만, 제게는 여러 생각을 하게 한 공간이어서 사진 찍는 일도 멈칫거렸습니다. 저는 지금 살고 있는 보령시에서 엉겁결에(?) 농촌 마을 만들기 정책에 관여하다가 보령 구도심을 재생하는 도시재생 현장센터 일을 5년째 맡고 있습니다. 사직동 경희궁3가길의 모습 속에 제가 관여하는 보령의 오랜 골목 모습이 중첩돼서 도저히 사진만 찍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대신 5년간 50조 원을 들여 낡은 도심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후반기에 방향 전환도 있었지만, 재개발·재건축 지역이 도시재생 지역으로 바뀌면서 마찰도 생겼습니다. 도시재생은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 측면으로 활성화하는 것을 말하는데, 근본적으로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해 주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재개발·재건축이 무산된 지역 주민들은 “아파트도 못 짓게 하고, 도시재생 한다더니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도시재생 사업은 내용에서 전면 전환이 됐고, 지침도 바뀌었습니다.
도시재생 정책은 문재인 정부 이전인 2007년경부터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진행된 과제였고, 또 어떤 곳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중요한 '도시 기반 시스템 정화'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5. 사직동 경희궁3가길에서 사직로6길, 송월1길에 이르는 언덕길과 골목길을 걷는 시간은 무더위와 맞물려서 땀도 많이 흘렸고 인왕산순성안내쉼터쯤에선 기진맥진하기도 했습니다. 지친 눈으로 무너지는 집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더 축 처지는 것 같았습니다.
2017년 서울시의 '사직2구역' 재개발 지구 지정 취소는 도시 발전과 보존 개념에서 이해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고, 마음을 함께 하는 이들과 제가 사는 지역의 도시재생 현장에 집어넣고자 노력해 왔으니까요. 아무튼, 서울은 그동안 시기적으로 비극적인 사건도 있었고 이후 정책 집행부도 바뀌었기 때문에 사직2구역은 다시 재개발·재건축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내용을 더 찾아보니 대기업 건설회사가 이미 이 지역 재건축 사업을 맡아서 진행한다는 데 두고 봐야겠습니다. 바뀌어야 할 것은 바뀌어야겠지만, 보존해야 할 것은 보존했으면 합니다. 이 지역을 헤아리는 진중한 지혜가 필요하다고 해도 거대한 자본 앞에서 이런 지혜는 별 쓸모가 없겠지요.
사진 산책으로 서울 골목길을 걷는 중에 사직동 길에서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봤고, 더구나 그 모습이 제가 사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한 점도 있어서 사진을 찍는다기보다도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것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종로를 더 걸어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사람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직동은 늦가을쯤 다시 와서 이번 충격(?) 때문에 구경도 못 한 딜쿠샤도 방문하면서 또 다른 골목길 사진 산책을 해야겠습니다.
6. 사직동 길은 상당히 무거웠지만, 계동 길은 즐거웠습니다. 갈수록 소멸한다는 지방에서 살다가 계동에 오니 먼저 길에 다니는 사람 많은 것이 낯설었습니다. ‘오, 이렇게도 사람들이 다니는구나…’ 무더위 속에서도 사람들이 다니고, 또 외국인도 얼마나 많은지… 생동하는 기운이 다가옵니다. 지금 계동 길은 상업적인 길이지만, 그래도 매력적인 구성과 예술의 흔적이 곳곳에 드러나서 저같이 사진 찍으러 서울에 온 사람에게는 흥미진진함이 이어지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밀조밀한 한옥 골목길은 더워도 재미있는 기대감이 계속 생겨나고요.
계동 길에서 본 한옥들은 전통 방식의 집이 아닙니다. 계동4길 호랑이카레 옆에 있는 북촌한옥역사관에서 익선동을 비롯해 가회동 삼청동 일대 북촌에 세워진 1920년~30년대 당시 한옥에 관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북촌한옥역사관은 조선 건축왕이라고 불리는 정세권을 기리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건축을 독학으로 배운 정세권은 당시 경성(서울)에서 엄청난 규모의 인구 증가를 경험하면서 1910년대 후반 도시형 소규모 주택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그가 만든 한옥은 전통 한옥을 상당 부분 변형한 소형 주택입니다. 익선동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느꼈던 궁금증이 이곳에서 풀렸습니다. 당시 집을 지으며 수도·전기도 들어오게 하고, 일조권에까지 신경 썼다니 참 대단합니다. 대청에 유리문을 달고 처마에 잇대어 함석으로 된 챙을 다는 등 요즘으로 말하면 개량 한옥이지요. 특히 그는 집을 분양 후 대금을 일시불이 아닌 입주 후 월 단위 또는 년 단위로 나누어 받는 정책을 써서 식민지 조선 서민들의 주택 구입 부담을 낮추었다고 합니다.
7. 소위 말하는 ‘집 장사꾼’으로 불리면서도 정세권은 조선물산장려회가 발기되자 이에 적극 참여하여 서울지회를 설립하고 회계 및 사업 전반을 관리했으며, 상업에 밝아 물산장려운동을 크게 활성화했고, 1927년 2월 신간회가 창립되자 이에 적극 찬동하여 서울지회에서 활약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정세권은 조선어학회 활동도 적극 지원했는데, 조선어학회가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을 하면서 독립된 사무실이 없어 어려움에 부닥치자, 그가 가진 재력으로 구입한 2층 건물과 부속 대지를 학회회관으로 제공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942년 일제의 조선어학회 탄압사건 당시에는 큰 고초도 겪으며 많은 재산을 빼앗기기도 하고요.
1950년대 말 홀로 고향으로 내려가 자투리땅 단칸방 농가에 거주하다가 1965년 9월 14일 경남 사천시에서 세상을 떠난 정세권은 사후 196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으며,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발을 딛는 계동과 북촌 한옥 골목 사이마다 정세권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직동 사직2구역에서도 보다시피 부동산은 언제나 자본과 욕망에 휘둘리기 마련인데, 부동산으로 엄청난 부를 이루면서도 그 자본에 끌려가기보다 식민지 사회에서 조선 사람임을 자각하며 본인의 의지대로 자본을 사용한 것은 그를 기억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됩니다.
북촌한옥역사관에 적힌 글 중 일부분을 인용합니다. “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거기 사는 사람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재구성한다. 조선집 마을은 단지 기와집 여러 채가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 식민지 체제 아래 조선식 일상생활을 형성시켜 내고 그 동네 사람들을 조선인으로 재(再) 자각시켜 내는 구실을 수행해 냈다. 이 동네에서 한국 문화가 전승, 재창조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북촌 한옥마을은 일제강점기 민족저항문화 유산으로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8. 사진 공부의 한 과정으로 사직동과 계동 길을 걸으면서 뜻하지 않게 부동산과 관련한 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래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모습도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해가겠지요. 도시재생 관점에서 보면, 정세권의 건축 사업은 도시재생 개념과 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대형 한옥을 나누어 여러 개 소형 도시형 한옥을 만든 활동은 시대변화에 맞춰 새로운 도시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원래 살고 있던 조선인들이 서울에서 떠나지 않고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습니다.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도 정착할 기회를 주고요. 공동체라고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역의 활력과 민간 기업의 경제 활동이 협력해서 이루어진 것도 비슷합니다. 그런 점에서 원주민은 거의 떠나버린 사직동 사직2구역의 모습은 그때와는 다른 오늘 차가운 도시의 한 모습입니다.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서울 산책 중 무더위를 피한 사진 출사 현장이었습니다. DDP를 설계한 이라크 출신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5)'에 대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다가 도시와 건축에 대해 배움을 얻었습니다. DDP는 누구라도 사진을 찍으러 간다면 곡선과 면이 어우러지는 특별한 감성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반듯한(?) 서울 속에서 도드라진 비정형 건축물의 역동성이 묘하게 드러납니다. DDP는 마치 스스로 상징이 돼 버린 듯합니다. 시원한 공간을 걷다 보니 피서 온 느낌도 나고,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건축물이 가진 웅대한 힘을 느꼈습니다.
9. 사직동과 계동, 그리고 DDP는 서로 차원이 다른 공간이지만 저마다 모습이 있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번 여름 사진 공부 제목이 '서울 산책'이었는데, 스쳐 가는 산책이 아니라 제 삶의 자리도 돌아보게 만든 산책이었습니다.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할지도 조금 안 것 같습니다. 땀도 제법 흘린 시간이었지만, 다시 걸어야 할 길을 지나왔습니다. 언제라도 그 길에 서면 새롭게 걷겠습니다.- 공동선 2023년 9~10월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