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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내가 사는 농촌 마을에서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 그간 마을 축제를 하면서 작은 수목원을 가꿔왔는데 그곳에서 이른바 농촌 어메니티를 활용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오면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카페가 하나 정도 필요해서 카페를 만드는 일도 하고 있고, 마을의 여성들 가운데 야생화를 잘 키우는 이들도 있어서 다육식물이나 야생화를 전시하고 판매도 하는 식물원도 만들고 있다. 또 젖소 키우는 농부와 함께 치즈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고, 발효효소를 이용한 비누 만들기도 계획하고 있다. 헌 축사를 개조한 전시장과 수목원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숲길 걷기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는데, 하려고 하는 사업을 여기에 열거하자니 너무 많아서(?) 이 정도만 소개해야겠다.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은 아니고, 저마다 쌈짓돈도 모으고 마음도 모아서 즐겁게 살아보자는 취지로 일을 벌여놓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나선 것은 요즘 농촌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지난번 글에 잠깐 썼는데, 요즘 농촌은 6차 산업화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월 12일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농촌의 6차 산업화를 앞당기겠다.”고 말하자 농림수산식품부는 곧바로 농업의 6차 산업화, 글로벌 경쟁력 강화, 행복한 농촌 만들기 등을 3대 핵심 과제로 꼽았다. 6차 산업화란 1차 생산에 2차 가공을 더하고 3차 판매나 서비스를 합하면 6차가 된다는 내용으로, 농촌을 경작에서 제조와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융복합산업단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원대한 계획이다. 중심 내용 가운데는 첨단화와 대규모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런 성장을 통해 행복한 농촌을 만들겠다는 것도 들어있다.
사실 농촌의 현실은 심각하다. 곡물 자급률은 해마다 하락하고 있으며, 농촌의 고령화와 농가소득 정체 등은 우리 농촌의 현실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수입농산물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전체 산업에서 농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정부는 이런 요인을 들어 농촌의 필연적인 변화의 요소로 6차 산업화를 꼽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6차 산업화 핵심으로 경쟁력 있는 농민이 필요한 데, 오늘 농촌은 60~70세 위주 고령 농업인과 가족농·소농 형태라는 것이다. 우리 마을을 보더라도 젊은 후계인력이 없어 10년 후에도 80세 넘은 노인들이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현실이다. 소수의 기업농과 전업농 위주의 산업화 정책으로 행복한 농촌을 만들겠다는 정책은 대다수 농민에게 도대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농업이 지닌 다원적 가치는 배제한 채, 경쟁력 상승과 다양한 시장 논리를 내세운 정책만으로 농업이 충분히 일궈질 수 있다면 농촌의 고민도 오늘 같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정부의 계산은 더하기를 연속해서 6차 산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6차 산업은 더하기 개념이 아니라 곱하기 개념으로 계산해야 한다. 농산물을 생산하는 1차 생산이 흔들리거나 빠지면, 그러니까 1차 생산이 0이 되면 2차 3차 모두가 0이 되고 만다는 것을 모든 계획의 바탕에 둬야 한다. 1차 생산 속에는 농업이 갖는 다원적 기능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농촌을 건강한 공동체로 먼저 만들지 않으면, 6차 산업화의 결과는 늘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의 몸은 경쟁력 있는 농산물의 섭취로만 살아갈 수 없다. 경쟁력 없는 먹을거리도 섭취해야 말 그대로 균형 잡힌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행복도 추구할 수 있다. 경쟁력 있는 농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본래 농업이 가지고 있는 생명 살리기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6차 산업화의 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들이 이미 농민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정책적으로 그 기반을 확실히 하고 있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한다.
2014년 5월에 농협경제연구소가 발표한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농업보조 수준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업보조금은 2012년 기준 OECD 평균 10.2%보다 훨씬 못 미치는 5.3%로 나타났다. 특히 스위스와 EU(27개국)의 경우는 각각 34.4%와 15.2%로서 농업보조의 수준이 높으며, 일본 또한 11.5%로서 우리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실제 농업에 지원되는 금액은 OECD 국가 중 낮은 수준임을 고려, 농업보조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토대로 농업지원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많이 주어서 의존성만 키워 경쟁력이 없다느니 하면서 헐뜯는 경우가 많고, 보조금을 잘 살려고 노력하는 농민에게만 주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말들이다. 그리고 심각한 것은 이런 생각이 실제로 정책에 반영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 우리 농촌의 현실이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버릴 수는 없다. 이왕이면 6차 산업화를 우리 몸으로 부딪쳐보자고 하면서 고령의 농민들과 무엇부터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들이 고생을 사서 하기로 했다. 우리 마을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홍보하고 직거래도 하고 또 여러 사람이 즐겁게 우리 마을을 방문하도록 하기 위해서 서두에 말한 대로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가진 재원이 부족하여서 당장 로컬푸드 매장 같은 장소를 마련할 수는 없지만, 일단 마을에 있는 작은 수목원을 조금씩 다듬어서 그곳을 마을과 외부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로 만들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카페를 만드는 일이다.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이 편하게 머무르면서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차 한 잔 나누면서 마음을 열고 소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예전 같지 않아서 지금은 머무를 장소가 마땅치 않으면 마을을 잠시 둘러보다가 가버린다. 그래서 탁자도 직접 만들고, 주방도 직접 만들고, 수목원 내 식물원도 직접 조성하고 있다. 예전에 가축을 키우던 축사를 고쳐서 전시장 겸 체험장을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하나하나 직접 하다 보니 시간이 걸리면서 일이 더디기는 한다. 더구나 행정적인 허가절차를 밟는 일도 쉽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 손으로 준비하고 만드는 일이니 참 귀하게 느껴진다.
농촌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을 농촌어메니티(Amenity)라고 한다. 어메니티란 인간이 환경과 교감하면서 쾌적함, 편안함, 유쾌함, 즐거움, 아름다움, 건강함 등 긍정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의 속성이나 심미적 상태를 말한다. 농촌어메니티(‘농촌다움’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농촌의 자연환경과 전원풍경, 지역 공동체 문화와 축제, 지역 특유의 생산품, 문화유적 등 다양한 차원에서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쾌적함을 주는 요소를 통틀어 일컫는다.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농촌의 모든 경제 및 생태적 자원이 농촌어메니티이다.
농촌어메니티를 활용하는 것도 농업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농업활동의 전통적 개념은 농산물을 비롯한 축산물과 임산물의 생산 등 재화(product) 생산영역에 초점을 맞추어져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농업활동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농촌 지역의 어메니티 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전통적 농업 못지않게 중요해졌다. 90년대를 전후해 유럽에서는 이런 활동들의 체계가 세워지고 발전함에 따라 농가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을 농업활동으로 간주하는 등 농업에 대한 기존의 법률적 개념을 수정하는 한편(프랑스 1988년 및 1999년 농업기본법), 이를 바탕으로 농업정책을 통한 농촌관광 지원시책을 마련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나름대로 농업의 6차 산업화에 뛰어들고 있다고 해야 할까? 농촌어메니티를 건강한 농업의 기반으로 삼으면서 1차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하려고 하고, 마을의 수목원을 이용해서 이런저런 서비스 활동도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보니 확실히 이런 일이 쉽지 않다. 일하는 것도 서툴고 힘들지만, 무엇보다 농촌의 열악한 조건들 속에서 새로운 동력을 얻기가 어려우니 말이다. 사실 유럽도 농촌의 다양한 활동을 농업활동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이후, 전후 지속적 고도성장의 한계, 고실업률 사회의 도래, 공동농업정책(CAP)의 생산주의적 농업정책의 후퇴 등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농업, 농촌의 정책목표가 부침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럽에서는 고용 측면의 농업의 중요성과 농업부문의 소득향상 필요성이 인정됐기 때문에 다양한 농업 정책이 차츰 자리를 잡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농촌의 필요성과 농촌에 대한 이해에서 정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늘 농업정책은 시행착오가 따르고, 현실은 혼란이 가중되고 있고, 고령의 농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소수의 기업농과 전업농 위주의 산업화 정책에 기대지 않고 우리가 함께 벌이는 농촌 창업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상업적인 측면에서라기보다 공동체의 삶을 지탱해 주는 의미에서 더욱 그렇다. 농촌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작은 일에도 큰 즐거움을 누린다는 것인데, 작은 농사 거리를 모아서 사람들과 만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면 비록 몸은 늙었어도 농업에 대한 새로운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우려도 있다, 경제 행위가 수반되다 보니, 아무리 협동과 상생, 돌봄과 나눔의 가치를 지향한다고 해도 결국 크든 작든 공동체가 창출하는 부를 분배하는 데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작고 큰 갈등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여러 해 절임배추 사업과 직거래 일을 하면서 민주적 토의를 통해 이익을 나눈 경험은 이 일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은 하고 있다.
작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마을의 축제가 가을로 옮겨졌다. 봄꽃의 향기도 좋지만, 가을 색깔의 성숙함도 좋았다. 사실 이렇게 농촌 창업을 준비하게 된 배경에는 축제의 영향이 크다. 몸을 움직이기 힘든 할머니들까지 나와서 축제를 거드는 가운데, 식물원도 다듬고 생산한 농산물 소개도 하고 떡도 만들고 주막도 운영하고 국수도 삶고 어우러져 신명 나게 놀 준비도 한 것이 우리 마을 자연환경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농촌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무척이나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러니까 작은 수목원에서 지금 벌이고자 하는 일은 일 년에 한 번 하는 축제를 날마다 축제를 하기 위한 것으로 전환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날마다 하는 축제는 젊은 사람의 손길도 필요하지만, 나이 든 농민들의 진득한 마음이 더욱 필요하다. 그들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기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페 메뉴를 개발하면서 마을에서 직접 생산한 자색고구마와 마을 목장에서 갓 짜낸 우유로 고구마라떼를 만들어 봤다. 진한 보라색이 이렇게도 아름답고 맛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모두 감탄을 한다. 직접 생산한 농산물에 대한 자부심도 커졌다. 그러자 새로운 생각들이 나온다.
농업의 6차 산업화를 앞당겨서 행복한 마을을 만드는 일은 대규모 사업과 경쟁력 강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농촌의 가치가 회복될 때 그 의미가 드러난다. 그리고 다수를 차지하는 가족농·소농들에게 참여의 기회가 열릴 때 그 기반이 탄탄해진다. 재벌그룹이 국가 경제를 이끄는 식으로 농업의 6차 산업화를 그렇게 내맡기면 안 된다. 농업은 본질에서 생명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농업의 경쟁력을 이야기하려면 농업보조금에 있어서 적어도 OECD의 농업보조금 평균치는 확보가 돼야 한다.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을뿐더러 젊은 농부의 탄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6차 산업화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도 결국은 우리 농촌의 건강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음에 글을 쓸 때쯤이면 농촌 창업이 소박하게나마 제 모습을 드러내 놓고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응원하는 사람이 조금씩 많아진다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나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