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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독일 작가 프리츠 오르트만(1925-1995)의 대표적인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멋진 이상향의 도시 ‘곰스크’로 가는 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곰스크는 남자 주인공이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들어온 꿈의 장소였습니다.
평생에 꼭 한번 가야 할 운명적인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탔다가
기차가 시골마을에 머물렀을 때 근처 산등성이로 잠깐 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기차를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곰스크로 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그 작은 마을에 살게 됩니다.
남자 주인공은 끊임없이 곰스크로 갈 기회를 엿보지만, 작은 마을에 정착하면서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내와의 갈등 끝에 번번이 갈 수 없게 됩니다.
임신한 아내가 출산을 하게 돼 그 마을 학교 교사로 일하게 되고, 그러다가 둘째아이가 태어나
끝내는 곰스크로 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점점 익숙한 곳에서 멀어지고 있어요. 이 여행은 끝이 없을지도 모르죠.
언젠가 들은 남의 얘기 말고 곰스크라는 도시에 대해서 들은 말이 또 있나요?
그곳은 당신이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 들은 그 곰스크와는 다른 도시일지도 모르잖아요.”
얼핏 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 남자는 곰스크로 가고자 하는 인생의 목표를 잃음으로써
결국 실패한 인생을 사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말하는 것은, 목표한 대로
살지 못하더라도 인생은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고, 있는 그대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상상의 도시 곰스크는 누구나 꿈꾸고 원하는 인생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사람이 어떤 형식의 인생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돌아보면 그곳에 가 닿지 못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에둘러 이야기한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어떤 목적을 완성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 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낯선 이름의 도시인 곰스크를 차용해서 인생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우리도 가고 싶은 곳,
살고 싶은 인생이 있을 것입니다. 소설 주인공처럼, 돌아보면 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살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때로 실수와 후회도 있고, 고통과 상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헛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닙니다.
“.....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것이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
서재 앞에 밤나무가 3년 전부터 자라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밤을 많이 맺었습니다.
이 밤나무도 어쩌면 숲 속에서 우람하게 살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새가 물어다 놓았는지
서재 앞 작은 화단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래도 밤나무는 화단에 놓인 그 순간부터 자라기에 열중해서
이제는 제법 튼실한 모습을 뽐냅니다.
볼 때마다 밤나무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쁘고 충분한 가치를 지닌 나무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