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목)에 벌어진 예고 없는 대규모 정전으로 전국이 혼란에 빠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 후유증이 대단히 커서 대통령부터 나서서 책임 소재를 묻겠다 하니 아마도 지식경제부 장관은 물러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정전 사태를 두고, 정부 당국의 전력 수요 예측 실패가 부른 전형적인 인재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상기후의 상황에서는 전력 수요 예측의 불확실성은 점점 더해 갈 것입니다. 누구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탓할 것 없이 인간의 삶의 행태가 점점 더 에너지의 고갈을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지질학자 케네스 드페이스는 화석연료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면서 “지난 2005년 (미국의)추수감사절 즈음에 (세계)석유 생산량은 정점을 찍었다”고 추정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낙관론자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기술 신봉론자들은 곧 “인류의 기술적 천재성”이 새로운 대체 에너지를 찾아낼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사회비평가들은 석유를 대체할만한 에너지를 찾기 어려우며, 또 석유도 이미 고갈되고 있기 때문에 만약 이대로 가다간 상상할 수도 없는 경제적 · 정치적 혼란이 다가온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현재 그 어떤 대체에너지도 지구상에서 석유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원자력, 태양력, 풍력 등도 사실상 석유에너지로 만들어진 핵연료나 전지 등을 사용하는 석유에너지의 연장선입니다.
1850년 이래로 인류는 값싼 석유 덕택에 나름 풍요의 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값싼 석유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이익의 증대가 산업 현장보다 금융업(주식이나 금융투자 등)으로 쏠리고 있는 현상도 이를 말해줍니다. 그리고 자원이 없이 금융 계산으로만 수익을 올리는 구조는 그 바탕이 모래알 같아서 국가마저도 위기로 몰아넣는 상황을 우리는 요즘 자주 겪고 있습니다.
에너지의 비상은 대규모 시스템 경제 위기로 연결됩니다.
이번 정전 사태는 단번에 대량 생산적이고 대량 소비적인 곳에 큰 피해를 안겼습니다. 전기로 표현되는 에너지 공급이 멈추니까 사람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우왕좌왕합니다. 고층 아파트가 고통으로 다가오고, 불꺼진 신호등은 사람의 인지 감각까지 멈추게 합니다.
장관 한 사람이 물러난다고 해서 사태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사람이 에너지에 매달려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에너지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되살리는 데 있습니다. 수천 년 살아 온 인류의 지혜는 값없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의 발전이 미래를 바꿀 수 없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도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에너지를 갖는 건강한 사람과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공동체만이 암울한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