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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적(全人的) 미용이런저런글 2011. 9. 25. 10:12
늦은 오후에 머리를 자르려고 미용실에 갔습니다.
원래 머리를 자르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나는 길에 우연히 본 미용실이
남자 미용실이라고 쓰여 있어서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미용사가 남자인 것은 당연하겠지요.다른 미용실에 비해서 단출한 것이 우선 좋았습니다.
젊은 미용사인데 서울에서 일하다가 지친 마음을
고향에서 여유롭게 풀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산에도 다니는데,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면서요.
처음에는 어색한 점도 있었지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가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대답도 하게 되었습니다.
머리에 대한 손질 요령도 이것저것 알려줘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특히 남자의 맵시는 이마에서 시작해
머리 뒤끝에서 완성된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머리 뒷부분은 안 보여서 그리 신경 쓰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가능하면 머리 뒷부분도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앞만 보지 마시고, 뒷부분도 자주 챙기시기 바랍니다.
머리를 만지는 그의 손길을 따라 귀를 쫑긋하는데,
그중에서도 제 마음에 울림을 주는 이야기는
미용을 단지 상업적으로만 하지 않고
진실로 사람을 대하는 미용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처음엔 이게 무슨 소린가 하다가 가만히 들어보니,
바쁘고 번잡한 곳에서 사람의 머리를 기계적으로 자르기보다는
한적한 곳, 이를테면 산속이라든지 아무튼 사람을 일대일로 대할 수 있는 곳에서
밥도 같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것입니다.
즉 한 사람의 모습을 진실하게 다듬어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어쩌면 지금 여러분 마음속에는 ‘밥 굶기 딱 좋은 소리 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저도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사람을 진솔하게 대하는 모습처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농사도 그렇습니다. 어쨌든 수확을 해서 내다 팔면 그만이라는 농사와,
누군지 모르지만, 이것을 먹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짓는 농사는
그 근본부터 다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근본부터 다름이 무뎌졌습니다.
겉포장은 그럴 듯해도 결국은 수단이 목적이 되고 목적이 수단이 됩니다.갑자기 젊은 미용사의 말이 제게 스승의 말씀처럼 들려왔습니다.
마치 전인적(全人的) 미용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에서
사람들과 함께 산다고 생각한 그동안의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한 사람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느냐는 물음도 생겼습니다.
사람이 수단이 되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이 갈 길을 잃고 헤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서로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살펴서 붙들어 준다면,
전체 속의 한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연결이 전체라는 것을 서로 느낀다면,
그래도 세상은 지금보다 나아질 테지요.제가 만난 미용사는 나름대로 그 길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미용을 통해서 그런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의 꿈 꾸는 일로 인해 오늘 하루도 이곳에서 머리를 자른 사람들은
새 소리 크게 울리는 고즈넉한 곳으로 초대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같이 밥 먹고 서로 이야기하며 머리 한 올 한 올을 다듬었을 것입니다.
뒷머리 끝까지 챙겨 주는 그를 한 번 더 쳐다보고 미용실을 나오는데
어느 틈에 초저녁별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아직 보이지 않는 주변의 별들은 제 마음에서 미리 빛납니다.
이제는 희미한 별 하나도 그냥 보내지 않으리라.
하나하나의 고단한 빛과 스러지는 시간이라도
나와 이어지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기억하리라.
다시 세상이 섞여 돌아가는 길 위에 섭니다.
스승이 일러준 대로 이마에서 뒷머리까지 손질하는 연습을 하면서
단 한 사람을 위해 진솔한 마음을 갖기를 나 자신에게 요청합니다.
밤하늘 별들은 하나 둘 점점 또렷이 다가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