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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 가는 길 위에서이런저런글 2011. 8. 30. 00:34
날씨가 여전히 후덥지근하지만,
시간을 내어서 청양군에 있는 줄무덤 성지를 다녀왔습니다.
갈 때는 높은 습도 때문에 편하지 않은 몸이었지만,
땀 흘려 순교자의 발아래 서니 어디선가 그렇게도 불어오는 바람은
마치 정화수처럼 마음마저 시원하게 만들었습니다.
청양 다락골 줄무덤 성지는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 다락골에 있는 천주교 순교자 묘지입니다.
줄무덤이란 한 무덤에 여러 사람을 함께 묻었다고 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줄무덤으로 발을 옮기는 데, 바로 옆에 있는 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갈하게 고랑을 일구고 씨앗을 뿌린 밭 가운데서 뽑히지 않고 자라는 식물이 신기했습니다.
옆에서 결명자 같다고 말해 줍니다. 아마 씨가 날라와서 뿌리를 내린 것 같은데,
뽑지 않은 농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고, 마치 새 생명을 피우는 순교자의 모습처럼 어른거립니다.
줄무덤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곳에는 대원군에 의한 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한 천주교인들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총 37기가 있으며, 주로 가족 단위로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당시 극심했던 내포지역 박해의 흔적을 역사의 시간과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산 속에서 만난 무명 순교자 상입니다.
무릎 꿇고 두 팔이 묶인 채 땅을 바라보는 그의 앞에는 죽음이라는 글자가 놓여 있습니다.
아래에 사진이 나오지만,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부활을 바라보는 상이 서 있습니다.
깊은 산 속에서 차분한 마음을 채워갑니다.
줄무덤까지 가는 길을 십자가의 길로 꾸몄습니다.
항아리 모양의 조형물에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시는 예수의 모습이
이야기 형식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함 속에서 길이 갈라집니다.
그러나 어느 길이든지 예수를 향한다면 그 길은 천국의 길입니다.
천국의 길은 두려움과 희망이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발톱이 닳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캄캄한 밤 이 길로 황급히 다녔을
그날의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면, 그것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가다가 만난 반가운 물봉선입니다.
군락지를 이룬 물봉선이 이곳저곳에서 톡톡 자기의 몸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물봉선도 그때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까요? 십자가의 길 위에서는 더 빨갛게 피어납니다.
이 묘들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당시 홍주(홍성)의 감옥이나 공주 황새바위에서 순교한 이들이라는 설과
해미나 오천 갈매못에서 순교한 이들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다만, 누구도 거들떠 보지못하도록 산야에 버려질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유해를
목숨을 건 또다른 천주교인들과 가족들이 순교지로부터 야음을 틈타
급히 이곳에 옮겨서 매장하였다는 증언들은 그동안 수집된 자료에 충분히 나옵니다.
이곳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습니다.
감시의 눈을 피해 유해를 몰래 묻기에 좋은 곳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향한 그들의 믿음까지는 묻을 수 없었습니다.
숲 속에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강론을 듣습니다.
그토록 뜨겁고 순수한 믿음의 이야기가 바람따라 숲을 맴돕니다.
잠시 천국을 거닐다가 이제 세상으로 내려갑니다.
가는 길 한 걸음 한 걸음이 진실한 기도로 남아 있기를...
버려야 할 것 버릴 수 있는 용기는 더욱 충만해지기를...
무덤 문을 박차고 하늘을 우러러 부활의 빛을 누리다.
다락골 줄무덤 성지 성당입니다.
이 곳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줄무덤에 갑니다.
여기도 성당인데, 지금은 바로 옆에 큰 건물의 성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 이곳은 12~3년 전에 왔던 곳인데, 그때의 기억은 희미하고 온통 새로운 느낌뿐입니다. 곳곳을 비어있게 설계한 이 건물의 정면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에 있는 십자가 조형물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차분해 집니다.
다락골 줄무덤 성지는
오천 갈매못 순교지와는 또다른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들꽃마당과 가까운 갈매못은 바닷가인데, 다락골은 산 속입니다.
바닷길을 거닐고 산 길을 걸으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생각합니다.
그 절박했던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 속에서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영원한 생명을 움켜쥔 그분들의 모습에
나를 비춥니다.
언젠가 때가 되어 뒤를 돌아볼 때,
나도 그 길을 그토록 걸어왔을까요?
바라기는 부디, 그렇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