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이제 한 달여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살처분 된 가축 수가 22만여 마리를 넘어섰고, 그 피해액은 감당키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결국 정부는 이제 마지막 비상대책이라는 구제역 예방백신 접종을 하기로 결정했다. 구제역 예방백신을 접종하게 되면 접종 가축이 모두 도태되기 이전까지 구제역 청정국으로 인정받지 못해 수출 타격이 불가피하다. 축산은 일반 농업과 달라서 그 파장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연초부터 시작된 구제역의 여파는 봄의 향취를 완전히 흩트려 놓았고, 한해의 마지막 시간도 온통 구제역 예방 소독약으로 세례를 받으면서 마무리하게 되었다. 도대체 하루에 몇 번이나 분무소독제를 뒤집어쓰는지...
또 길거리에 걸려 있는 현수막은 마치 블랙코미디 문구를 보는 것 같다. “모이지도 말고, 만나지도 말고, 해외여행도 하지 맙시다!”
아무튼, 올해 구제역의 직접적인 영향권 속에 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들꽃마당이 있는 천북면은 우리나라 최대의 축산단지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초기에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안동 농장을 방문한 수의사가 하필이면 천북의 한 농장에도 방문했다고 해서 그 농장의 2만 마리가 훨씬 넘는 돼지를 구제역 예방 차원에서 바닷가 국유지에 매몰했다. 농장주의 애타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그것을 공권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켜봐야 하는 마을 주민들의 불안과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올해는 구제역으로 봄이 시작하더니 구제역으로 겨울을 맞으면서 추위만큼이나 힘들고 어수선하다. 구제역의 사전적 의미는 ‘우제류가축의 바이러스성 급성 가축전염병으로 제1종 가축전염병이며,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서도 가장 위험한 가축전염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의미는 농민들의 애타는 마음과 뜨거운 눈물, 끊임없는 긴장, 무너지는 농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원래 구제역은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다. 구제역에 감염된 가축과 예방접종된 가축을 현재 수의학 기술로는 구별해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예방접종은 사실 현실적으로 부작용이 큰 대책인 것이다. 1992년 유럽연합은 가축 전염병에 예방접종 대신 ‘소각(매몰)전략’을 채택하면서 발병시 ‘도살’을 통해 바이러스를 ‘소멸’할 것을 그 대체해법으로 내놓았다. 이는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주변 가축을 모두 몰살함으로써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산업적 타격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구제역이 한번 휩쓸고 가면 고기와 우유 생산량이 15~20% 감소한다. 구제역 발병은 국가의 청정 이미지 하락과 함께 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크기 때문에, 축산제품 거래에 제약이 생기지 않도록 구제역 확진 뒤에는 빠르게 가차 없이 ‘살처분’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는 것이 이제는 유일한 길이 됐다.
지난 2001년 영국에서 일어난 비극은 끔찍했다. 2001년 2월 북잉글랜드 헤돈온더월의 번사이드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뒤 1만여 개 농장에서 살상하고 태워 죽인 동물은 1천만 마리에 달했다. 무지막지한 살처분으로 농촌 생활은 피폐해졌고 자살한 농부가 60명에 달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봄 강화도 구제역 발병 때, 한우를 잃은 여성농민의 자살을 목격한 일이 있다.
사실 구제역은 치사율이 그리 높은 전염병은 아니다. 그러나 축산이 산업화가 되면서 경제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구제역 대처 방법이 오직 대량살상만 존재하는 것이 큰 문제이다.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1934년 처음 발생했으며, 이후 66년 만인 2000년 경기도 파주 지역에서 발생했다. 파주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바로 들꽃마당이 있는 보령과 인접한 홍성까지 전파돼서 지금도 구제역 때문에 놀라고 계엄령 같은 그 분위기에 놀란 일이 기억 속에 선하다.
그런데 2000년이란 시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족축산이 완전히 쇠퇴하고 대규모 축산만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시기다. 90년대는 특히 가족농의 몰락이 심했는데, 축산은 대규모의 자금이 필요한 영농이라서 가족축산 형태의 몰락은 일순간에 이뤄졌다. 원래부터 농촌에서 축산업은 부(富)를 이루는 가장 빠른 수단이었지만, 대규모 축산농의 경제적인 성장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생활의 변화와 함께 선진축산 기법을 배우기 위한 해외연수도 빈번해지고, 개인적인 해외여행도 빈번해졌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구제역 예방에 대한 지침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보면 구제역 통로 역할을 스스로 한 셈이 됐다. 또한 몇 년 전부터 동남아나 중국에서 온 산업체근로자들이 축산농장에 자리 잡는 것이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모습이 됐다. 정부의 진단대로 말한다면 구제역 발생국 사람들이 축산 현장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이다. 그리고 백만이 훌쩍 넘어버린 다문화 사회의 현장이기도 하다. 결국 이제는 구제역이 토착화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하고, 고기가 없으면 어디 가서 놀지도 못하는 국민 생활의 변화로 인해서 축산은 농업의 모습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마치 서비스 산업이 된 것 같다. 고기 불판은 비상시에도 확실히 챙겨둬야 할 필수품이 되었다.
축산의 대량생산은 축산 환경도 바꿔놓았다. 축산은 질병(전염병)과의 싸움이다. 가축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소독약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대량생산은 대량 화학소독의 결과이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자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착한 미생물들의 씨가 말라버렸다. 화학소독은 나쁜 미생물뿐만 아니라, 좋은 미생물들까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한다. 사실 건강한 미생물들의 힘은 대단히 크다. 그러나 이제는 무균상태에서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하나만 들어와도 번식을 막을 수 없고,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고기를 먹고자 하는 사람들 스스로 이런 환경을 만들어 버렸다.
상당수 가축들은 구제역에 걸려도 스스로 구제역을 이겨낼 수 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시간이 돈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살처분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건강한 가축들도 덩달아 살처분된다. 과연 이렇게 수십만 마리를 땅에 묻고 불태울 수 있는 권한이 사람에게 있는가? 그리고 살처분해서 건강한 경제,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지는가? 혹시라도 구제역에 대한 걱정이 있다면 한 번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 구제역 후유증으로 인한 경제 살리기 방법 중 가장 일 순위가 고기를 먹는 일이 되었다. 각 지자체마다, 농협마다 커다란 현수막에 쇠고기 세일을 내걸고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구제역은 사람에게 아무런 해가 없으므로 고기를 먹는 일이 농가를 살리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일이라고... 고기 때문에 당한(?) 일, 고기로 이겨내자 인가?
불과 십년 사이에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람들에게 무척 친근감(?)있게 다가왔다. 대포로도 전투기로도 미사일로도 막지 못하는 이놈들을 어떻게 하면 달랠 수 있을까? 정말 옆에서 지켜보기에 불쌍한 농민과 본업을 제쳐놓은 공무원들만 희생양으로 삼아야 할까?
결국 해답은 예방백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있다.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구제역과의 전쟁은 언제든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축산농가들의 해외여행을 강제로 막고, 동남아 산업체 근로자들의 입국을 막아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건강한 환경, 건강한 삶에 좀 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설령 구제역이 진정되더라도 새로운 바이러스나 미생물의 도전 앞에서 우리는 떨어야 한다. 농촌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도 필요하다. 우리가 공장에서 자동으로 생산되는 밥을 먹고 살지 않는다면, ‘튼튼한 농촌이 건강한 생명의 시작’이라는 것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