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배추도 정직했다 ··· 한 포기 1500원’
최근 들꽃마당공동체와 그 구성원의 배추밭을 취재한 중앙의 한 일간지 기사 제목입니다.
상당히 자극적인(?) 제목 덕분에 며칠간 전화를 엄청 많이 받았습니다. 배추와 절임배추 주문도 상당했고요.
지금 나라가 온통 배추 때문에 들썩 거립니다.
이 글이 읽힐 때쯤이면 얼마나 배추 값이 진정될지 모르지만,
올 가을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배추 가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애간장이 다 타버린 것 같습니다.
일간지와 인터뷰하면서 들꽃마당공동체 김기수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배추가 만원인가 하는 거는 누군가 농간이지. 배추가 금이여? 금이 아니지. 농민은 한 포기 천 원 들어오면 무지하게 들어오는 거유.”
그렇습니다. 배추는 금이 아닙니다. 그런데 배추가 금배추 대접을 받습니다. 도대체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요. 기후 변화로 인한 여름배추 작황 불량, 중간상인들의 투기적인 선점, 정부기관의 예측 오보 등등. 그리고 설전이 난무하고 있지만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채소 재배 면적이 줄어서 그렇다는 말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요.
사실 4대강 사업으로 강 유역의 채소 재배 면적이 줄어든 그 체감을 농민들은 이미 봄부터 느끼고 있었습니다. 올해 봄배추 값도 유례없이 비쌌거든요. 그리고 4대강 사업 여파로 여름 이후 배추도 비쌀 것이라는 말은 이미 농민들에겐 상식적이었습니다. 다만 이렇게까지 가격이 치솟을 줄은 몰랐죠.
농민들도 이미 예측하고 있었던 가을배추 가격을 정부기관은 그것도 농정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 오판했다는 것은 확실히 난센스입니다. 농사는 책상 위에서 짓는 것이 아니죠.
아무튼 만 원이 넘어갔던 배추 가격은 분명히 비정상적입니다. 농민들은 올 해처럼 좋은 시기에도 봄이나 가을이나 밭에서는 한 포기에 1,000원씩도 받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했습니다. 그런데 평년보다 예닐곱 배나 오른 시장가격은 농민들의 마음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모습입니다. 곳곳에서 저마다 그 이유를 말하고 있으니 아마 듣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또 한 명의 고참 농부인 유태종 씨는 혼인식 때문에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농사는 사람이 하느님하고 짓는 거여. 하늘을 바라봐야지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되여.”
간단하면서 상식적인 말이지만, 그 순간 많은 생각이 오고 갔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하느님과 소통하며 사는 이 땅의 몇 안 되는 사람인가 봅니다.
하느님과 소통을 막으면 먹고 사는 일이 잘될 리가 없습니다. 정부라고 하느님의 일을 대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뒤늦게나마 “배추값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했던 여당 인사들의 말은 차라리 정직합니다.
그럴진대 애꿎게 농업관측센터장을 교체하고 연구위원을 보강한다고 해서 어느 한 기관이 농업의 나침반이나 신호등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어떻게 하면 하느님과 소통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게 더 좋은 일일지 모릅니다.
농업을 농민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흥정을 위한 소품으로도 여기지 말며,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책상 위에서 이리저리 묶어두지도 말고,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기업농으로 집어넣어 막상 위기 앞에서는 해결방안도 찾지 못해 당황하지 말고, 좀 우습게 보이더라도 소농이 숨 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똑똑한 한 사람이 백 명을 먹여 살리게 하지 말고, 평범한 백 명이 땀 흘려 백 명이 같이 먹고 살게 해야 합니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농민들이 맘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농사는 기업이 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이 하는 것입니다. 배추 수십만 수백만 포기를 기업농이 심고 가꾸는 것이 아니라, 손톱에 들어간 흙이 그대로 물들은 농민들이 포기마다 어루만지며 키워야 합니다. 농민더러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하면서 건강한 먹을거리를 어떻게 바랄 수 있을까요?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이익만을 추구하는 몰아주기 농업은 국민을 볼모로 삼는 것일 뿐입니다. 배추가 금배추가 돼서 웃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소비자는 아예 울상이지만 그렇다고 농민이 웃을 수 있는 현실입니까? 중간상인 탓도 하지만, 사실 지금 이런 구조 아래서는 중간상인이 없으면 농민들은 더 힘이 들 뿐입니다.
누가 배추값을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어렵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농업 홀대와 탁상공론의 농정이 배추를 금배추로 만들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 남는 것은 앞으로 김장철이 되면 중국산 배추가 자연스럽게 이 땅에 들어오게 됐다는 것입니다. 배추는 불신과 혼란의 과정을 거쳐서 소비자에게 갈지 모릅니다. 진실한 땅에서 건강한 삶을 캐지 못한다면 국민소득 3만불 시대 예고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각설하고...
여전한 가을은 푸른 하늘 아래 색색이 물들어 가고, 배추는 사람들에게 속앓이는 맡겨둔 채 든든히 속을 채워 갑니다. 싸든 비싸든 김장철이 되면 맛있는 김치가 되겠죠. 맛있는 김치가 되면 유산균도 많이 키워서 배추값 때문에 속이 더부룩해진 사람들의 속을 부드럽게 달래주기를 바랍니다. 아마 배추 들고 만세라도 부른 사람들은 김치만 보고 있어도 배부르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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