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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한다는 것이런저런글 2022. 4. 10. 23:00
1. 모처럼 대천해수욕장에 갔습니다. 올봄은 혼자 느끼기에 그럴 수 있지만, 중간중간 포근한 날이 있긴 해도 다른 해 보다는 좀 추웠던 것 같습니다. 선뜻 바다 구경 가기가 망설여졌으니까요. 아무튼, 대천해수욕장에 가보니 하늘과 어우러지는 바다 풍경하며, 모래사장을 거니는 연인들 모습과 나들이 나온 가족들 모습이 이젠 정말 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여름에는 대천해수욕장에서 보령해양머드박람회도 열릴 예정이니까 코로나19로 인한 거리 두기가 좀 풀리면 바람도 쐴 겸 대천해수욕장에 한 번 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찬찬히 보면 서해의 좋은 모습이 눈에 크게 들어옵니다.
대천해수욕장에 간 목적이 있었습니다. 최근 보령해저터널도 뚫리고 따뜻한 기온 따라 주말에는 제법 사람이 대천 바다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이 소식을 알려준 레스토랑에서 차도 마실 겸, 또 보령 전통주인 만세보령주를 납품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할머니 두 분과 할아버지 한 분을 모시고요. 저는 전통주 양조장과 판매처에 다리를 놔주기 위해 동행했습니다. 제가 동행한 분들은 보령 전통주 양조장 나이 많은 이사님들입니다. 한 달 전쯤 전통주 양조장을 방문했습니다. 방문하게 된 동기는 스치듯 지나가는 한 마디를 건너 들었기 때문입니다.
2. 보령의 중심지를 대천 시내라고 하는데, 그곳에 푸른화원이라는 꽃집이 있습니다. 가족이 경영하는 꽃집인데, 그 집 어른이 저와 같이 보령시로부터 마을만들기지원센터를 수탁 받아서 운영하는 법인 이사 중 한 분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법인 이사장을 했습니다. 꽃집에 갔다가 부인인 주영애 양조장 이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게 오늘까지 이어지는 시초입니다.
전통주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통주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들려주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본래 보령에는 명맥을 이어온 전통주가 없었습니다. 물론 마을에는 알게 모르게 담근 술도 있고, 술에 대해 문화적인 접근을 하는 분들도 있긴 하지요. 그러나 보령이라는 이름으로 이것이 보령에서 나는 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10여 년 전에 의기투합한 분들이 모여 보령시에서 지원하는 술 빚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통 방식으로 보령을 대표하는 만세보령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술 빚는 재능이 있고, 열정이 있는 분들이어서 각자의 방식을 하나로 모으고 보령의 물과 쌀로 술을 빚었습니다. 2016년 영농조합법인 '보령전통주'를 설립하고, 많은 연구를 통해 2019년과 2020년 2년 연속 충남 술 탑텐(Top 10)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또 제7회 전국 가양주 주인(酒人) 선발대회 대상을 수상하면서 보령 전통주를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3. 성주산 자락 맑은 물과 남포 평야 삼광 쌀로 세 번 빚어 120여 일간 저온 발효 과정을 거쳐 나오는 만세보령주는 보기에도 정감 어린 색을 띠고 있습니다. 기분 좋은 향은 보령의 맛과 멋을 잘 담아내고 있고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술을 빚는 이들이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입니다. 해맑은 얼굴에 눈빛은 초롱하고, 손놀림은 여전히 빠르고 정확하지만, 그래도 세월의 흔적은 지울 수 없는지라 주름은 갈수록 깊게 보이고 어깨 품은 작아집니다. 그동안은 술을 연구하고 빚는데 몰두하느라고 판매는 그렇게 성과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게 참 신기했습니다. 술 빚는 회사를 만드느라고 각자 투자도 하고 또 열심히 일을 하는데, 수익 발생을 보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도저히 이 일에 참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침 양조장 근황을 물었던 거지요. 만세보령주 판매는 잘 되고 있냐고…. 이번에 들어보니 영농조합법인을 만들면서 참여한 각 개인(당연직 이사들입니다)이 지금까지 출자한 금액은 생각 이상으로(?) 많았습니다. 액수로 보면 다른 일을 해도 되지 않았을까 여겨질 정도로요. 마음속으로 놀라기도 했는데, 마찬가지로 전통주 영농조합법인 주영애 이사의 남편도 그게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작년에 배당금을 처음 받아서 왔는데, 이백만 원이 조금 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듯이 “어유, 이거 벌려고 그동안 고생하고, 투자하고 그랬는가.” 했다네요. 그러자 바로 들려온 말이 “아, 그래도 즐겁잖아. 기다려 봐요~”4. 이 말을 건너들은 것이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될까 판매와 마케팅에 함께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은 시작입니다. 대천해수욕장 레스토랑에 납품하기 위해 간 이유이고요. 사실 보령 전통주 만들기에 참여한 이들에게 만세보령주 판매는 생업 아닌 생업입니다. 온전히 이 일만 생업으로 삼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다들 70대에 접어들어 나이가 벅찹니다. 대체로 농촌에서 닭을 키우거나 포도농사를 하는 등 농업이 본업입니다.
다만 술 만들기를 좋아해서 전통주도 직접 만들어 보고 보령에도 그 맥을 이어보자는 열정이 넘친, 할머니 할아버지입니다.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질 수 없습니다. 인터뷰를 조금 했는데요. 여기에 다 옮길 수는 없지만, 말 한마디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고 그 일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애틋함이 다가왔습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하고 싶은 일에 물질을 투자도 하고, 땀 흘리며 몸으로 부딪치는 노동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무엇인가 한다는 것, 그것에 대한 집중은 새로운 도전이면서 예술 작품 활동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만세보령주 한 병을 손에 쥐고 가만히 보면 멋진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전통주를 만드는 일뿐이겠습니까. 무엇인가 한다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새삼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또 다른 이가 대천해수욕장에 있는 보보스레스트랑 주인 부부입니다. 제가 찍은 전통주 사진을 사연과 함께 전해줬더니, 간절한 마음으로 만든 맛있는 술을 손님에게 잘 전달하며 팔아보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렇게 좋은 술을 그냥 내놓기보다 적극 알리겠다는 것이지요. 요즘 다들 알다시피 코로나19 거리 두기로 직격탄을 맞은 게 자영업자입니다. 보보스레스토랑도 거리 두기와 영업시간제한에 묶여 그간 악전고투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웃과 함께 하는 마음은 늘 견고하고, 보령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은 앞장서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제 마음이 끌린 것은 보보스레스토랑 부부처럼 무엇인가 하는 일에 의미를 두는 것이 결국 내가 연관된 우리 모두의 행복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직접 수익과 관련이 되지 않아도 함께해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웃으면서 결과물을 내놓는 모습은 쉽지 않아도 언제나 배우고 함께 해야 하는 일입니다.
5. ‘무엇인가 한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아, 그래도 즐겁잖아. 기다려 봐요~” 이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습니다. 농촌에서 생업이 아닌 일에 몇 천만 원을 투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물론 잘 되기를 바라고 좋아하는 일에 투자하는 것이지만, 저 같은 좀생이에게는 참 부럽고 멋진 모습입니다. 즐거운 결과가 나오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좋은 전통주를 팔아야 하는데, 만드는 일은 전념할 수 있어도 파는 일은 어색한 분들이어서 주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일을 돕는 것도 무엇인가 한다는 것에 속한다고 봅니다. 어떠신가요. 무엇인가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천북농협 하나로마트에도 소개했습니다. 천북농협 조합장으로부터 마트에서 판매는 당연히 하지만, 앞으로 조합원들에게도 보령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만세보령주를 잘 홍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사님들이 힘이 나는 소식입니다.
세상은 이렇게도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하릴없이 보이는 것 같아도 무엇인가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한 축을 이룹니다. 지난 글에서 농촌 기본소득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내용도 썼습니다. ‘늙은 농민의 등골이 휘어지지 않으면서 농촌의 공익적 가치가 지속하기 위해, 젊은 농민과 농촌 생태계를 지탱하는 여러 사람이 농촌에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젊은 농민이 농사짓는 소명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며 음악도 듣고 그림도 감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사는 마음 나눔이 절실합니다. 농촌 기본소득은 농촌만이 아닌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아나는 마중물입니다.’
6. 사실 기본소득이라는 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척 생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끔씩이라도 들어보는 말이 됐을 겁니다. 그것은 기본소득에 대해 무엇인가라도 해보려는 사람, 노력, 반응, 그런 것이 모아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30여 년간 농촌에 살면서 소멸이라는 안타까운 이름을 달고 있는 농촌 현실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에 농촌 기본소득이 실현되기 위해 무엇인가라도 해보려고 계속 노력합니다. 작은 돈이지만 기부를 하고, 모임에 참석하고, 의견을 피력하고, 사람들에게 이 일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아직 큰 반응이 오지는 않지만, 이런 것이 거대담론에 속하기보다 우리 생활의 바탕이 된다는 것에 동의를 하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 농촌 기본소득에 대한 이런저런 기대를 했던 만큼 앞으로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농촌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를 알리는 데 지치지 않는 무엇인가를 할 생각입니다.
마을에서 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돌아보니 무엇인가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집집마다 화분에 담긴 예쁜 꽃을 보면서 이것을 한군데 모아 같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일치를 이룬 것도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꽃 이름을 알아야겠다는 열망(?)이 솟구치고, 아무런 생각 없이 찍던 사진도 진중하게 꽃과 나무에 집중하면서 주변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쁘게 생긴 것만이 예쁜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것 같으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들이 곱게 보이고, 무심하게 피었다가 지는 것 같은 들풀도 다 자기 나름대로 무엇인가 해놓고 떠난 것을 보았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스물넉 자밖에 되지 않는 글이 새로운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올봄에도 목련이 활짝 피고 벚꽃 자태도 화사하지만, 주변을 찬찬히 볼수록 더욱더 고운 꽃들은 어느 눈길 하나 아랑곳하지 않고도 따사로운 햇살을 고루 나누고 있습니다.
7. 얼마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요즘 경북 지역에 있는 어느 신학대학교 부설 생명공동체학교라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여는 이들을 위해 온라인 강의를 할 때가 있는데, 중앙아메리카에 속하는 자메이카의 자메이카신학대학(Jamaica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자 교육을 위해 온라인 강좌에 참여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물론 혼자서 하는 강의가 아니기 때문에 전체 강사진 의견이 필요하지만, 자메이카에서 이런 제안이 왔다는 것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자메이카에서도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무엇인가 해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 대한 생각입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닙니다.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에 있는 복음교단이라고 하는 곳은 코로나19 확산 전에 제가 사는 보령을 몇 년째 직접 방문해서 마을과 공동체 공부를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목회자도 협동조합 고민을 안고 다녀갔습니다. 필리핀 루손 섬 산족 청년들과 만나기도 했습니다.
모두 무엇인가 한다는 것을 미루지 않고 실천에 옮긴이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는데 몇 년째 만나다 보니 친근감은 말할 것도 없고, 젊고 유쾌한 모습에서 나오는 생동감은 제가 배워야 할 값진 것이 되었습니다. 한국에 다녀간다고 당장 어떤 문제가 해결되거나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도 한국에 오기 위해 일 년 여간 경비를 모으고 마음을 모으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적극적이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은 그들의 미래가 밝게 보였습니다. 코로나19가 가라앉으면 저도 그들이 그토록 부르는 곳에 가서 그들과 무엇인가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8. 우선 이번 봄에는 보령 전통주를 만드는 이들을 위해 틈틈이 무엇인가 하고 싶습니다. 아마 마케팅(?)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든 판매를 돕는 것이 먼저일 테지요. 올여름에는 대천해수욕장에서 보령해양머드박람회가 열릴 때 전통주 홍보 및 판매 부스를 얻어서 만세보령주 이야기를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들려줘야겠습니다. 이야기를 눈으로 보여줄 사진도 찍고 있습니다.
아마 누구든지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일이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일이 명확한 이도 있을 테고, 명확하지는 않아도 대충 이런저런 생각을 품고 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납니다. 그러면 그런 마음이 희미해질지 모릅니다. 다행히 전통주를 만들겠다고 나선 영농조합 이사님들처럼 나이와 상관없이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이 글을 쓰다가 아내와 광천읍 오서산 벚꽃길 구경을 하고 왔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벚꽃나무 아래에서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는 이들도 봤고, 꽃잎의 향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가슴에 담는 이들도 봤습니다. 운동하듯 거니는 이들도 꽤 있더군요. 저도 그렇고 벚꽃길에 선 사람들은 나름대로 무엇인가 하려고 나온 이들입니다. 이렇게 주변에서 작은 것도 해보고, 마음이 커지면 지난 세월 동안 마음에 담았던 것 끄집어내서 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만세보령주를 만드는 ‘영농조합법인 보령전통주’ 나이 많은 이사님들을 통해 배운 생각입니다. “아, 그래도 즐겁잖아. 기다려 봐요~” 즐거운 일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