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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기억하는 것’농촌이야기 2021. 8. 11. 15:01
1. 인터넷에서 사진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일간신문 사진기자였던 사진가 강재훈의 전시회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시회 이름은 ‘들꽃 피는 학교, 분교’로, 30여 년 동안 기록한 이 땅의 작은 학교인 분교들을 촬영한 사진전이었습니다. 전시회는 작년 2020년 6월 9일(화)부터 7월 19일(일)까지 갤러리 류가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강재훈 사진가는 33년간 신문사의 사진기자였으며, 사라져가는 분교를 틈틈이 30여 년간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 전시회 외에도 여러 사진 전시회와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사실 사진기자 강재훈이라는 이름은 신문을 통해 알았지만, 사진가로서 그의 사진을 깊이 있게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들꽃 피는 학교, 분교’ 전시회 사진 몇 장을 보니, 90년대 초부터 30년 동안 기록한 이 땅 분교들의 그리운 시절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경남 밀양 사자평의 작은 ‘고사리학교’부터 최남단에 자리한 마라도의 ‘마라분교’ 모습까지. 그리고 지금은 추억으로 남은 등굣길부터 다정다감하게 공부하는 교실, 자연 친화적인 운동장,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더 흥겨웠을 것 같은 가을 운동회 등 가슴 시린 모습들입니다. 직접 전시회를 가지 못하고 인터넷으로 본 사진들이지만, 울림이 컸습니다. 사진들을 보면서 든 생각, 제가 따로 전시회 제목을 정한다면 이렇게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모두의 문제를 기억하다.’2. 저도 농촌에서 30여 년 가까이 마을 학교를 지켜보는 중이어서 강재훈 사진가의 전시회가 다시 열린다면 꼭 가서 직접 사진을 한 장 한 장 보고 싶습니다. 이런저런 분교 모습이 애틋함으로 다가옵니다. 분교가 폐교되기까지 마을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요? 마을에서 학교는 공동체의 중심입니다. 학교가 소멸한다는 것은 마을 소멸로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교육 당국의 자료를 보면, 지난 1982년부터 2015년까지 통폐합한 학교는 약 5,400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통폐합은 주로 인구 급감으로 타격을 입은 농어촌의 소규모 학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는 학교 통폐합 목표치를 할당해 이를 이루지 못하면 페널티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부터 초등학교는 면·도서벽지 학생 60명 이하, 읍 지역은 120명, 도시는 240명 이하일 경우 통폐합 대상으로 분류해 성과보수를 주고 유도하는 정책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2019년도부터 이런 정책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고, 교육전문가들도 학교 통폐합이 더는 최선의 해법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전남과 강원, 경북, 전북 등은 통폐합 대상인 60명 이하의 소규모 초등학교가 40% 이상이며, 전남과 강원, 경북은 소규모 중학교도 40%가 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 학교를 더 줄이다가는 통학할 수 없어지고 마을은 젊은 가족이 더 거주할 수 없는 상황만 가속화된다고 우려했습니다.3. 2017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향후 30년 안에 전국에서 84개 시·군과 1천383개의 읍면동이 소멸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가겠냐고 생각도 들지만, 막상 현재 마을 구성원들을 보면 특단의 대책을 세워서 마을 구하기를 하지 않는 한 예측대로 갈 수밖에 없겠다고 여겨집니다.
지난 7월에 제가 사는 충남과 보령의 마을 소멸 실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충남 행정리 마을의 지방소멸지수와 마을차원의 대응전략”을 담은 자료집이 충남연구원에서 나왔습니다. 충청남도 15개 시군의 지방소멸지수를 통해 마을 소멸 위험의 실태를 알아보고, 마을 차원의 대응 전략을 제시한다는 내용입니다.
자료집에 따르면, 충남지역 행정리 마을의 지방소멸지수가 2015년 51.2%(전체 4,317개소 중 2,211개소)에서 2020년 71.1%(전체 4,392개소 중 3,123개소)로 약 20%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2020년 기준 소멸 고위험 행정리는 서천군이 88.6%로 전체 315개소 중 279개소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다음으로 부여군 84.2%(전체 436개소 중 367개소), 보령시 81.3%(전체 235개소 중 191개소) 등의 순입니다. 이런 상황이 충남뿐이 아닙니다. 이런 추세를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학교가 그 지표입니다.4. 돌아보면 이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농촌의 문제는 단순히 농촌에 머물지 않고 도시로 쏠림 현상, 먹고 사는 것을 떠나서 자신의 이익에 몰두하는 형태, 농업을 자본에 귀속되도록 만들어 버린 경제 시스템 등, 복합적이고 탐욕적이지요.
지금 우리 사회는 농촌에 학교 하나가 없어져도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통증을 느낄 필요조차 없습니다. 먹기 위해 굳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돈을 주고 먹을 것을 사면된다면 생각, 어디서 사야 할지 고민도 하지 않는, 이렇게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무척 중증 상태인데 도요. 지구의 이상기후 변화에 대한 경고에 불안해하면서도 마치 내일은 오늘처럼 여전히 괜찮을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농촌 소멸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독일을 포함해 서유럽에서 발생한 폭우와 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200명에 육박했습니다. 북미와 시베리아의 이상고온 현상에 이어 서유럽 폭우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재난이 선진 부국에도 ‘준비되지 않은 재앙’을 가져다주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기상학자들은 연중 가볍고 골고루 비가 내리는 서안해양성 기후인 서유럽에서 이번처럼 많은 폭우가 내린 것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재난이라고 지적합니다. 이제 기후변화 피해는 사회기반시설이 취약한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선진국 사회기반시설로도 감당이 힘들 정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뉴욕 타임스도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극단적 기후가 부유한 세계도 강타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을 정도입니다.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5. 농촌에 대한 문제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습니다. 다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7월 22일 자 한겨레신문에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지리학과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그는 “더 많은 돈을 지구 문제를 푸는 데 퍼부어야 해요. 기후변화, 자원 고갈을 해결하고, 사람들이 좀 더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요. 또 지구적 불평등을 해결해야 합니다. 수많은 질병에 대응하도록 지원해야 하죠. 지금까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막아내고자 애썼듯이 다른 질병을 막아내는 데도 투자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 연결돼 있는데, 어느 한쪽의 무너짐을 방관하면서 나는 괜찮으리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그렇잖아요. 코로나 19가, 기상재난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서구와 달리 동아시아에서 지금까지 나름대로 코로나 19 방역에 성공한 원인에 대해서 그는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농업의 역사일 거라고 말했습니다. 공동체 농사인 벼농사를 통해 공동체 중심 문화를 형성한 것이 개인 방역이 아닌 공동체 방역을 통해 코로나 19에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성과(?)의 추이를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농촌의 존재 이유와 농촌 소멸의 위험성이 드러나는 말입니다.6. 인터넷에서 만난 강재훈 사진가의 사진이 애잔하게 다가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농촌 분교가 단순히 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땅에서 소멸의 영향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농촌 소멸은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위에서 언급한 인터뷰에서 가난한 미국인들이 안전할 때까지 부자 미국인들은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이어가며, 도시의 안전은 농촌의 안전에서 이어지는 것이라고 해석해도 될 만한 여러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풍요로운 것 같은 무엇인가를 얻었다지만, 그 이상 잃어버린 것, 잃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기억입니다. 농촌의 소멸은 기억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기억이 힘을 잃은 곳에서 우리 삶도 힘을 잃습니다. 기억을 잃으면 오늘의 근거가 사라집니다. 마치 오늘밖에 없는 것처럼 살 게 됩니다. 도시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 마냥, 삶을 풍요하게 해주는 것이 원래 이런 모습이었다고 여기는 것 마냥,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소멸을 당연시하고 기후의 변화를 그럴 수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한 번 무너지면, 무너지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는 그것 또한 우리 현실입니다. 기억을 잃어버리면 지금 겪는 것처럼 코로나 19 앞에서, 기후변화의 재난 앞에서 무척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7. 애잔한 사진 한 장이 기억을 통해 과거를 가져오고 미래를 비춥니다. 사진에 남은 기억은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그리움을 상기하고, 현재를 있게 해준 근원에 대한 인정입니다. 앞으로의 삶을 희구하게 해주는 동력입니다. 기억을 통해 어제와 오늘은 연결돼 있고 함께 가야 할 길에 늘 서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억이 살아있는 사람의 삶은 한 곳에 고이지 않습니다. 기억이 날마다 사람을 어디론가 데려가 거기서부터 다시 흐르게 만듭니다. 오랜 사진이 그것을 알려줍니다. 사진가 강재훈의 ‘들꽃 피는 학교, 분교’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사진은 찍는 순간, 이 모습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사진 한 장을 통해 감정이 출렁거리고 오늘과 잇대어서 생각할 수 있다면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 모습을 다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분교가 농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곳곳에서 소멸의 위협을 받는 일상의 분교들을 보게 된다면 통증을 느낄 것입니다. 사진을 통해, 기억을 통해 아픔을 보듬어 안을 것입니다. 앞으로 부닥치게 될 모든 문제가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면 ‘사진으로 기억하는 것’은 계속돼야 할 일입니다.
8. 농촌 마을과 학교에 대한 통계는 앞으로 전문가의 분석보다 더 비관적으로 나타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마음으로 통계를 읽을 수 있다면 비관을 덤덤히 달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어제 살았던 일이 오늘을 사는 디딤이 되고, 내일도 기억이 함께한다면 향후 30년 안의 소멸에 대한 통계 수치를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사진 한 장을 다시 보는 이유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사상가 이반 일리치의 말입니다. “좋은 삶이란 거창한 구조물을 건축하거나 뛰어난 문화재를 남기거나 하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의 이웃과 함께 일하고, 서로 돕고 보살피는 가운데서 생을 즐기는 데 있다.”9. 이따금 사진 한 장을 봅니다. 낙동초등학교 2학년 1반이었던 수빈이를 마지막 보내는 모습입니다. 수빈이는 2009년 6월 15일 오후 늦게, 건너 밭에서 일하던 엄마에게 가다가 내리막길 급가속 차량에 치이었습니다. 학생 수 급감으로 폐교 위기에 처해 있던 낙동초등학교는 어린 수빈이가 입학할 때 온통 즐거웠습니다. 학교 근처에 집이 있었던 수빈이는 걸어서 공부하러 왔고, 멀리 바닷가에서 사는 동준이, 한결이, 성진이, 영제는 제가 날마다 승합차에 태워서 데려왔습니다. 6학년을 마치고 졸업식까지 즐겁게 수빈이를 볼 줄 알았습니다.
먹먹하게 교장 선생님이 인사를 하고, 아이들도 잘 가라고 인사를 합니다. 아이들이 졸업하고서도 여전히 바닷가에서 중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오는 봄날, 양지바른 그 자리는 무성한 노란 괭이밥이 여전했습니다. 수빈이를 보내고 블로그에 추모 글을 쓰면서 용재오닐이 비올라로 연주한 ‘섬 집 아기’를 연결했는데, 두 달 후에 정말 용재오닐이 비올라를 들고 낙동초등학교에 왔습니다. 합창단이 된 낙동학교 아이들. 동준이, 한결이, 성진이, 영제도 합창단원이 돼서 용재오닐과 함께 섬 집 아기를 불렀습니다.
연주회 초청장에 ‘하늘까지 닿는 꿈’이라는 제목으로 수빈이와 함께 한 기억을 연대하며, 농촌학교의 소멸이 아니라 오히려 농민들의 삶 위에 자리 잡은 사랑과 희망의 학교를 노래한다고 썼습니다. 기억이 이어진다면 그리움은 상기되고 다시 걸어야 할 길 위에서 함께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분교에 들꽃이 피어나는 일을 우리가 모두 지켜보는 것, 다시 ‘사진으로 기억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