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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가을은 사진에 묻힌 기억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한참 동안 했습니다. 사진의 기억을 들춰내는 일이 노동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감정의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여름쯤 해서 들었던 소식은, 가을 지나기 전에 제가 사는 보령 천북면에서 ‘천북면 100년 사진전’을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진전을 한다니 반가웠습니다. 처음에는 마을 이곳저곳에서 사진이 모이면, 면사무소에서 잘 분류를 하고 그렇게 사진전을 할 줄 알았습니다. 2007년에 마을 학교인 낙동초등학교 폐교를 막고자 멀리 있는 아이들을 데려오는 스쿨버스(?) 운전을 자원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2014년에는 그때까지 아이들과 함께한 7년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전을 이번에 사진전을 하는 장소인 천북면사무소 회의실에서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천북면 이야기를 담은 사진전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천북면 여행 지도(旅行地圖) 만드는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면사무소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천북면 사진전에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요. 애초에 사진전 준비에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즐겁게 승낙했습니다. 그런데 사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과 사진 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사진을 모으기도 쉽지 않고, 사진 편집에 관해 설명하는 것도 시간이 걸려서 300여 장이 넘는 사진을 거의 혼자서 손보기 시작했습니다.
2. 오래된 사진들은 사진전을 하기에 무척 작기도 해서 사진을 제대로 확대하는 것부터 일이었습니다. 마땅한 사진용 스캐너도 없어서 카메라를 가지고 옛 사진을 다시 찍었습니다. 크기도 작았지만, 사진에 시간의 흔적이 많이 쌓여 있어서 흔적을 살살 달래며 지우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처음에는 막막하게 보인 사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모습을 다시 갖추기 시작했고 그렇게 300여 장이 넘는 사진을 만들었습니다. 농촌에 살면서 주변 꽃 이름을 알기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제법 사진을 이해하고 만질 수 있게 되고 봉사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진 보정이라는 비슷한 작업을 수백 번 반복하는 일은 누구도 쉽지 않고 싫증도 날 만한 일이긴 합니다. 처음에 몇 장을 보정할 때는 그런 마음 때문에 막막하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집중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90여 년 전 아이들(사실 어르신들인데 사진 모습으로 보고 아이들이라고 합니다)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무엇인가 결기가 있는 듯한 모습이 마음에 와닿았고, 특히 3년 전 9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최윤환 어른의 모습도 사진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최윤환 어른은 살아생전에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애정이 담긴 이야기 중 하나가 1950년대에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한 이야기였습니다.
6·25전쟁 무렵 낙동초등학교는 천북초등학교에서 분리되었습니다. 최윤환 어른도 낙동초등학교로 발령을 받고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이기도 하고, 농촌의 열악한 현실에서 따로 세워진 학교의 모습은 겨우 교실만 갖춘 상태였습니다. 오전 수업 후에는 선생님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두 망태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운동장 돌을 골라 옮기고, 흙을 가져다가 채우는 일이 학교에서 하는 공부(?)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학교가 자리를 잡고 아이들은 졸업하면서 70년 시간이 지났습니다. 최윤환 어른도 주어진 삶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이 땅을 떠나셨고요. 사진은 시간과 상관없이 그런 모습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3. 오래된 사진을 보면, 지금은 없어진 모습들이 그리운 기억으로 다가오고, 사진을 통해 그 모습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애틋함과 더불어 아릿함이 마음에 파고듭니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면서 비평가이기도 했던 롤랑 바르트는, 사진을 보며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보는 이의 경험에 비추어 사진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는 푼크툼을 말했습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의 의도대로만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이해방식이 아닌 개인의 취향이나 경험, 무의식 등과 연결해서 사진의 의미를 스스로 규정하고 결정할 때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강렬한 자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이미 그 자체가 숙명적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사진의 숙명과는 상관없이 시간에 흔들리고 미묘한 감정에 흔들립니다. 때로는 그리움과 더불어 아픔으로 다가오고, 내 마음의 생채기에 위로가 되어 덮이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함께 웃던 시간이 지금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새로운 시간으로 다가오고, 그러다가 눈가에 눈물지으며 안녕을 고하게 합니다. 사진의 힘은 숙명 앞에 순응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던 것을 지금 내 시간 속으로 끌어당겨 새로움을 불러일으킵니다.
바르트는 사진을 보는 사람이 사진에 재현된 모습에 사랑하는 감정을 지닌다면 사진의 모습이 세상에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도 사진을 보는 사람은 사진에서 느끼는 감정이 극대화된다고 했습니다. 사진은 기록합니다. 기록된 사진은 그 순간에 사진의 모습이 더는 존재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진에 재현된 모습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면 사진의 힘은 기록을 넘어섭니다. 천북면 100년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오래된 사진 하나하나 매만질 때, 전혀 낯선 분들이지만 조금도 낯설지 않게 느껴지고, 더구나 얼마 전까지 사랑한 분들의 모습도 바라보면서 사진의 힘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4. 누가 사진을 찍었을까요? 아마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열정보다는 직업으로서 의무감으로 찍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순간을 놓치면 영원히 놓쳐버리고 만다는 것을 본인은 몰랐을지라도 운명의 시간은 그에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했겠지요. 사실 사진 속 장면은 당시엔 전혀 특별하지 않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일상의 모습이었고 절차상 기록으로 남겨야 할 시간이었으니까 사진기 앞에서 의례적인 자세를 취했을 테지요. 다만 사진가가 그 장면을 포착하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특별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시 찍을 수 없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매 순간이 특별하고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입니다. 우리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는 마음으로 조금 더 소중히 여기며 산다면 후회할 일도 역시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사진을 만지면서 놀라운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가장 오랜 사진이 만주사변이 발발하던 해로 거의 90여 년이 되는데, 그때는 전쟁의 기운이 잔뜩 드리운 시기였습니다. 사회적 분위기는 당연히 스산한 전쟁 소식과 함께 위축된 모습이었을 텐데, 사진에 나온 모습은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무엇인가 기품이 있으면서 요즘 보기에도 잘생긴 모습입니다. 멋진 얼굴을 보고 또 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릴 때와 겹쳐지는 모습입니다만, 일제 강점기 여파인지 군사독재 시절 여파인지 초등학교 운동회 모습이나 농번기 때 자원봉사 모습은 군사훈련처럼 경직되고 육체적으로도 힘들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근대화의 아픔이 학교 교육에서도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지만, 운동회에서 초등학생들이 군인처럼 행진하고, 서커스단 묘기 같은 4층 탑 쌓기나 육탄전 같은 기마전, 특공무술 같은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모습 등은 대견하다기보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진은 그런 순간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5.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나이 많으신 몇 분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때는 물론 먹고 살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행복할 때가 있고, 이웃의 일을 내 일처럼 돌봐주면서 함께 어울려 사는 공동체의 즐거움이 풍성했던 시절이었다고 들려주었습니다. 물론 운동회에서 과격한 행동을 하다가 떨어져서 팔이 부러지기도 했지만, 그때 그 시절은 학교에서 몸을 다치면 당연히 집에서 치료하는 줄 알았기에 그 또한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어렵고 힘들게 보이는 시절이었지만 함께 사는 즐거움을 만들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던 모습은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져서 언제나 간직하고 싶고 힘들 때는 가끔 꺼내 보고 싶다고 합니다. 한 세기 남짓한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나고, 삶의 모습이 무척 달라졌습니다.
사진에 나타난 농촌의 아련한 모습을 보면서 라다크 마을이 떠올랐습니다. 스웨덴 출신 언어학자이자 생태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1975년 인도 카슈미르 동부지역의 라다크를 방문한 이후 그곳에서 16년간 생활하면서 깨닫게 된 현대 사회의 사회적, 생태적 위기의 본질과 그 대안을 모색하면서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썼습니다.
대부분이 티베트계인 라다크 사람들은 전형적인 고지대에서 살며 모든 생활방식이 농사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모두 자기 능력에 맞게 농사를 지으면서 더 많이 가지려고 애를 쓰지도 않고, 자기 식구들이 먹고살 만큼만 소유했습니다. 서로가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고, 이웃과 문제가 생겼을 때는 제삼자의 그 중재를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라다크가 외국 관광객에게 개방되면서 서구 물질문명 앞에 공동체는 느슨해지고 경쟁이 일상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라다크 모습을 보면 물질문명으로 황폐해진 모습이 더욱 드러납니다. 행복에 대한 생각들도 달라지면서 라다크의 사회는 붕괴하기 시작했고, 서로를 돌보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면서 망가지는 전통 사회는 복원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6. 우리 농촌의 변화와 라다크의 변화는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최근 인도와 중국이 대립하면서 위기감이 커진 라다크 지역인데, 우리도 지난 역사를 보면 어려움이 계속 밀려왔습니다. 그럼에도 공동체 문화에 뿌리내린 친밀한 유대관계는 든든한 힘이었습니다. 여전히 이웃이 필요한 사회에서 삶의 지혜가 빛을 발합니다. 삶의 지혜는 물적 가치보다 삶의 가치를 통해 건강한 공동체를 드러나게 합니다. 라다크도 그렇지만 우리 농촌도 그동안 산업화의 영향으로 함께 살면서 만족을 누렸던 삶에 대한 충만감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진국에 걸맞은 물질적 혜택은 많아졌지만, 그 대신 마을과 공동체를 지탱해온 문화와 전통은 쪼그라들었습니다.
확실히 예전으로 돌아가 살 수는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생태적 균형을 희생하지 않고도 생활 수준을 높일 수 있지 않느냐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물음은 지금도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입니다. 오래된 기초를 무너뜨리는 개발 방식만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기초 위에다 지속 가능한 건설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한 가지 방식만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서 시행하는 마을 만들기나 도시 재생의 목적도 그런 기반 위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100년 사진전’을 여는 천북면의 마음도 그럴 것입니다. 단순히 옛 모습을 다시 보기 위해서 사진전을 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보다 잘 살지는 못했어도 더 큰 행복의 본질을 간직했다고 믿는 그 시절을 통해서 우리 삶의 길을 점검하고, 이 땅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이 친밀한 유대관계를 가질 때 건강한 즐거움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7. ‘천북면 100년 사진전’은 2021년 11월 25일(목) 시작했는데, 12월 중순쯤이면 사진전을 마무리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볼 때쯤은 사진전이 끝났겠지요. 천북면은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으로 면 소재지에 커뮤니티센터를 지었습니다. 12월 초에 준공식도 하고 새롭게 문을 열었는데, 공간이 정해지면 커뮤니티센터에서 사진전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사진전을 통해서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요.
사진에 담긴 기록을 볼 때, 기억에 대한 질문이 다가옵니다. 사진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습니다. 우리는 대답을 충분히 안 할 수 있고,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의 기록 속에 무엇인가 대답해야 할 것이 있다고 느낀다면 잃어버린 것에 대한 경험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을 현실에서 확인할 것입니다.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오늘이 옛 모습으로 담긴 사진을 볼 수 있을지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때는 어떤 질문이 사진에 담겨 있을까요. 100년 사진 속에 당시 만주사변 등 전쟁이 스멀스멀 퍼지는 기운에도 기개를 잃지 않던 그 모습처럼, 오늘 전쟁과 같은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우리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흐트러진 길을 바로잡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행복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결국 코로나를 불러온 것이 우리 욕심 때문이었다고 자성하는 모습이 어느 사진 한 장에라도 담겨있을까요.
사진의 기능과 역할은 앞으로 많이 변하겠지요. 기록이 꼭 진실을 의미하지 않다는 것도 사진을 통해서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에 대한 생각을 일러주는 사진이라면 그 역할 하나로도 사진전은 이어질 것입니다. 천북면에서 자수성가한 한 분이 사진전에 왔다가 자신도 모르는 어렸을 때 모습이 나온 사진 앞에서 온몸의 힘을 빼고 한참이나 바라보고 또 가다가 다시 와서 바라보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보니 사진전은 때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감정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