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보령에 살면서 가장 많이 본 길 중 하나가 장항선 길이고, 서울 갈 때 심심치 않게 타고 다니는 것이 장항선 기차입니다. 지금은 없어진 완행기차 비둘기호도 타봤고, 이제는 무궁화호 새마을호를 번갈아 탑니다. 사실 장항선에서 무궁화호와 새마을호에 대한 선택권은 그리 의미가 없습니다. 여유가 있으면 모를까 시간에 맞춰서 기차를 타려면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다니기 때문에 어느 것이든 타야 합니다. 새마을호도 무궁화호를 개량한 기차라서 차이가 크게 나진 않습니다. 쉽게 이동하는 승용차가 편하긴 해도 서울을 가려면 가는 길에 차량이 밀리기도 하고, 서울 시내에서는 주차하면서 다니기 어려워 보통 기차를 탑니다.
요즘 우리나라 기차는 KTX가 말해주듯이 쭉쭉 뻗은 철로로 빨리 다니지만, 아직 예외가 있다면 장항선 기차입니다. 특히 제가 사는 보령 마을은 장항선 철로 중 선로 개량 사업이 되지 않은 구간이어서 곡선 길이 여전히 유려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서해에 살아서 아직 KTX를 타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타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렇게 애석하지는 않습니다. 산모퉁이 따라 곡선 길을 돌아 나오는 장항선 기차는 늘 봐도 KTX보다 멋지기 때문입니다. 장항선은 정차역이 거의 읍면 단위 역이고 정차역도 제법 많지만, 그에 따른 구불구불 단선 철도는 오히려 묘미가 있습니다.
2. 장항선은 2008년 군산선과 이어지면서 지금은 용산에서 전북 익산까지 이어지는 철도 노선이 되었지만, 본래는 천안에서 금강 하구의 장항 사이를 연결하는 노선이었습니다. 1931년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가 전 구간을 개통시킬 때 명칭은 충남선이었습니다. 장항선은 서해 정취가 물씬거리는 아름답고 정이 솟는 길입니다. 특히 보령 길은 애틋함을 품고 구부러진 산길 논길 바닷길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선로 개량화 사업으로 그동안 장항선 역 중 14개가 폐쇄되었다는데, 보령도 여러 역이 희미한 흔적 위로 이름만 남기고 있습니다. 그래도 장항선 보령 길은 가장 아름다운 구간에 속합니다. 특히 멋진 길은 보령 청소면 죽림리 원죽역에서 청소역 사잇길입니다. 걷기에도 참 좋은 길입니다.
원래 서울에서 보령으로 내려오면 첫 번째 역은 마치 시골 버스 승하차창 같은 원죽역이었습니다. 역이 있는 원죽마을의 원죽은 죽림리의 원마을이란 의미라고 합니다. 원죽역을 지나면 청소역입니다. 청소역이 있는 청소면 소재지는 예스러운 모습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가 자주 되곤 했는데 몇 년 전에 ‘택시운전사’란 영화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원죽역에 대한 자료를 보면, 1929년에 죽림역이라는 이름으로 간이정차장 역할을 했고, 1967년에는 무배치간이역이 되었고 2007년에 여객 취급을 중지했다고 나옵니다. 2015년엔 승차장 지붕도 철거했고요. 원죽역 역명판은 현재 철도박물관 구석에 있습니다.3. 원죽마을은 조용한 농촌이지만 주변엔 역사의 자취가 또렷합니다. 바로 곁에는 독립운동가인 백야 김좌진(1889년~1930년) 장군의 묘소(청소면 재정리)가 있습니다. 홍성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난 장군은 15세 때 집안의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노복 30여 명에게 논밭을 나누어 주었고, 1918년 만주로 건너간 후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이 되어 독립군 편성에 주력하다가 1920년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승리를 거뒀습니다. 1930년 암살당한 직후 만주 땅에 묻혔다가 1940년 유해가 비밀리에 홍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1957년 보령 청소면 현 위치로 옮겼습니다.
원죽마을은 보부상의 역사와도 밀접합니다. 보부상 하면 봇짐이나 등짐을 메고 전국의 오일장을 다니던 장돌뱅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부상이란 봇짐을 싸서 장사하는 보상과 지게에 짊어지고 등짐으로 장사하는 부상을 통칭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보부상은 지역별로 연합하여 상단을 만들고 곳곳에 있는 연락처를 통해 소식이나 물자를 빠르게 주고받았습니다. 원죽마을에는 우리나라에서 드문 보부상 유적지가 있어서 역사적으로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습니다. 원죽마을에서 장항선 철길을 따라 300m 정도 걸어가면 보부상 유적지를 볼 수 있습니다.
보부상단은 조선 초에 조직되어 결속한 것으로 추론하며 그 뒤로 조정의 인가를 받아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고 합니다. 국가의 위기 앞에 결속된 힘으로 국난 극복의 힘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조정과 연결돼 있다 보니 자주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당하기도 했고, 또 그렇게 세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원죽마을에는 충남 서남부 지역에서 활동한 보부상의 이야기가 잘 남아 있어서 어느 때라도 보부상 길을 걸어볼 수 있습니다.4. 보령의 장항선은 이런저런 역사 이야기와 더불어 7, 80년대 대천해수욕장의 추억이 서려 있습니다. 또 농촌의 많은 청년을 서울과 수도권으로 데리고 간 철길이기도 합니다. 장항선을 따라서 올라간 청년들의 빈자리는 쉽게 메워지지 않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위에서 제가 사는 보령 마을 구간이 현재 장항선 선로 개량화 사업 중 직선화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만, 아마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이 구간도 개량화 사업이 이루어져 곡선 선로는 사라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굽이굽이 돌던 기찻길이 바르게 펴진다는 것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지금보다 기차는 더 빠르게 달릴 테지요. 그리고 빠른 바람에 주변 마을은 가만히 있어도 휘청거릴 것 같습니다.
장항선의 굴곡을 보면 충남 서남부 지역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묻어나옵니다. 그동안 원죽역을 비롯한 14개 역이 장항선에서 사라진 것은 철도 사업의 경제적인 수요가 미치지 못했다는 방증입니다. 철도청의 장항선 이용 승객 통계를 보면 이용률이 계속 줄어드는 것으로 나옵니다. 사람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없어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장항선뿐이겠습니까 만은 유달리 단선 철도에 곡선을 돌아서 달리다가 잠시 머무르는 농촌의 고즈넉한 풍경을 대하다 보니 이런저런 상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장항선 이용 승객이 계속 줄어드는 통계를 보면서 지방 도시 쇠퇴에 관한 뉴스나 글도 읽어보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시대에 서울과 수도권에서 확진자가 끊이지 않고 많이 나와도 수도권 인구 분산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물론 코로나 19 사태가 곧 멈출 때가 온다고 보는 듯합니다만(당연히 빨리 와야겠고요.) 아무튼, 수도권으로 계속 인구가 몰리는 상황을 어떤 방법으로도 멈춰 세우지 못한다면 지방의 쇠퇴는 막을 수 없는 현실이겠지요. 지방 도시 쇠퇴는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고, 향후 20년간 지방 도시들은 지난 10년간 그랬던 것보다도 더욱 더 심하게 쇠퇴할 것으로 본다는데 마을 공동체가 흔들리는 현장에서는 안타까움이 큽니다.5.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방 도시 소멸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만이 아니라 국가 경제 기반이 붕괴하는 첩경이라고 합니다. 바로 지방 도시 쇠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인구가 빠져나가 쇠퇴한 도시는 재정투자의 비효율이 급속도로 높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현명한 대처가 이루어지지 않은 한, 이는 모든 국민이 짊어져야 할 부담을 가중할 것이라고 합니다. 쇠퇴는 예측의 영역이 아닙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2000년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7%이상)에 들어선 우리나라는 이제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14%이상)를 지나서 조만간 초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이상)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농촌 마을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낍니다. 전문가들은 2040년 즈음이면 전국 지자체 중 30%는 1995년 대비 인구가 절반으로 떨어져 사실상 기능상실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측합니다. 과연 그렇게 될지 지켜봐야겠지만, 어쨌든 그중 절대다수(96%)가 지방 중소도시입니다. 초고령 지역도 38%에 달할 거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흔적마저 찾기 어려운 원죽역 탐사를 하다가 너무도 고요한 마을 풍경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마을 기찻길 옆에는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많았다고 했지만, 지금은 노인분도 뵙기 어렵습니다. 김좌진 장군 묘역도 조용하고 보부상 길도 한적합니다. 지난 호 이야기에서 마을을 팔고 싶다고 했습니다. 마을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이고,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생명의 근원이 마을에 있기 때문에 지친 누군가에게 회복의 기반으로 다가서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상당수 마을은 이런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찻길처럼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통계에서 나타난 수치가 금방 다가올 것입니다.6.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코로나 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상식입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방식, 일하던 방식을 바꿔야 하는 상황입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어떤 사고방식과 생활 태도를 갖춰야 코로나 이후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코로나 19 이후 시대에도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계속 연결되고, 소통하며,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공동체적 연대'가 필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 19는 오히려 공동체 의식과 결속력, 그리고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 전염병 전파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직접적인 접촉과 불특정 다수와의 만남은 줄었지만 건강한 사회, 안전한 사회에 대한 가치는 높아지고 있습니다. 공동체 구성원의 삶이 밀폐된 공간에서 신음하지 않도록 개방된 공간을 확대하는 일에 관심을 두는 등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돌아보게 한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중앙 집중과 밀집을 추구하기보다 분산과 소규모 자율적 공동체의 연대로 전환하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수도권 팽창과 지방 소멸 앞에서 찾던 답이 코로나 19의 어려움을 지내면서 조금씩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는 지방을 건강한 생태계로 재구성하는 효과와 더불어 지역 공동체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경제 정책과 정치적 결단도 필요하고 사회 시스템 도입도 어려운 일이고요. 그렇지만 이런 공론화는 무척 필요합니다. 국민기본소득의 공론화처럼 이 또한,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이기 때문입니다.7. 제가 사는 보령은 충남에서 대표적인 소멸도시에 속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글로벌 보령’ ‘서해안의 경제중심지’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보령뿐 아니라 소멸도시에 속하는 모든 도시가 이런 장밋빛 계획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계획의 기반은 인구 예측치를 바탕으로 하는데 인구 예측치가 갈수록 공허하다는 것은 정책 담당자들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불가능에 붙잡혀 있지 말고 이제는 지방 도시도 코로나 이후 시대를 사는 새로운 방향을 봐야 합니다. 지방 도시의 지속가능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건강한 공동체,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정책을 고민해야 합니다. 마을 기찻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이유입니다.
장항선 역이 더 없어지기 전에 마을 기찻길이 공동체적 연대 길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곡선 길이 불편하다면 당연히 고쳐야겠지만, 그렇게 고쳐진 길이 빨리 가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코로나 이후 가보지 않은 미래를 함께 가는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볍게 생각했던 지방 도시, 또 농촌의 가치를 바로 봐야 합니다. 최근 코로나 19 장기화로 과일, 채소, 달걀, 고기 등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부족 현상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는 뉴스는 우리에게 닥친 현실입니다. 그동안 누렸던 세계 여행이 가까운 지방으로 잠시 다녀오는 것으로 바뀌는 것도 현실이 될 것입니다. 농촌 마을의 가치가 살아나야 합니다. 이는 건강한 삶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허물어진 공공성이 바르게 서면서 한쪽으로 내몰린 약자들, 소멸 지역이라고 여겼던 지방과 농촌이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근간이라는 인식이 새겨져야 합니다.
우리 마을 기찻길은 기차를 타고 누구나 다닐 수 있는 길입니다. 용산에서 익산까지(또는 익산에서 용산까지) 갈 수 있는 것은 비록 작은 구간이지만 우리 마을 기찻길이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전혀 우리 마을을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한 번 지나면 우리 마을을 거쳐 간 인연이 됩니다. 이런 인연이 서로를 격려하고 연대하고 함께 사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 시간이 나시면 우리 마을 기찻길 옆 작지만 정겹게 구부러진 길을 한 번 천천히 걸어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