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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13. 00:04

1. 오서산 기슭을 넘어오다가 산 아랫마을 입구에 걸린 현수막을 봤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현수막이었습니다. 현수막 문구는 ‘몸은 멀게, 마음은 가깝게’였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현수막이었고, 문구 또한 실천 의지를 다잡고 있는 터라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현수막 문구가 계속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의 시기가 끝나면 세상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긴 합니다. 코로나19 사태는 20세기의 대공황과 세계대전과 비견되는 세기적 사건으로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문명사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도 계속 나오고 있고요. 

현수막 문구는 그동안 길든 사회 구조가 전혀 새롭게 전환된다는 내용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뜻밖에도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문구가 앞으로 코로나 이후의 현실을 직시합니다. 사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기 마련인데, 마음까지 멀어져 버리면 우리 삶이 더 힘들겠지요. 그래서 어쨌든지 마음은 가까워야 합니다. 아무튼,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절이 꽤 있었습니다. 그 후유증은 역사의 전환을 불러왔습니다. 역사의 전환은 인간의 고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 사태를 보면, 확실히 앞으로 몸으로 통칭하는 것들은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경제를 비롯한 교육이나 문화, 그리고 종교 활동에 이르기까지 만만치 않은 적응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2. 우선 코로나19 사태 끝이 보여야 하는데, 지구촌 상황을 보면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가야 할지 아무도 모르니 답답하긴 합니다. 그래도 코로나19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료진과 정부의 질병 관리 담당자들, 행동을 모으는 국민을 보면 고마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코로나바이러스를 완전히 퇴치할 수는 없고, 일상 속에 어느 정도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코로나19 최종적인 대책은 집단 면역이란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 집단 면역이란 단어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외신을 보면, 스웨덴의 경우 일상생활이 가능한 ‘집단 면역’ 카드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BBC에 따르면 전염병학자인 안데르스 텡넬 스웨덴 공공보건청장은 “ 한국처럼 간신히 노력해 바이러스를 없애는 데 성공하더라도 한국 (당국)조차도 유행이 다시 돌아올 것을 예상한다.”며 “이 병이 그냥 없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그저 유행이 서서히 진행되게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정부가 1,000만 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미친 실험을 시작했다며 총리는 스웨덴 국민으로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뉴스도 나옵니다. 이런 방식으로 무책임하게 대응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치명적이고 참혹하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스웨덴 교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무조건 집단 면역 방향도 아닌 것 같아서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3. 하지만 각국의 감염 전문가들은 최종적으로 집단 면역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단 면역이 오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안전 관리’라는 말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결과적으로는 집단 면역(안전 관리)으로 간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스웨덴 방식과 다르게 감염 초기에 최대한 차단하고, 적극적인 방역으로 감염을 최대한 늦추고, 확진자 수를 시스템 내에 수용 가능한 인원 이내로 유지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치료 약은 개발에 들어갔지만 이른 시일 안에 완벽한 치료제는 나오지 못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게 가능하다면 그동안 감기나 독감도 막아냈겠지요. 설령 백신을 개발한다 해도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성상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만들지는 못할 거라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케이스에 적용되는 치료 약이 개발되면, 감염을 100% 막지는 못해도 많은 국민을 치료할 수 있게 되어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전체적으로 면역을 갖추면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훨씬 수그러들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4. 통계를 보면, 1951년 이후 신종 전염병은 거의 한 해 또는 서너 해 걸러 등장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와 세균이 인간 이상으로 창조적이라고 봅니다. 막아서면 더 강한 독성과 더 강한 내성으로 진화해 새롭게 나타납니다. 요즘 코로나19 사태 후 부쩍 많이 인용된 <전염병의 문화사> 저자인 아노 카렌은 전염병을 피할 ‘마법의 도시는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어떻게 대응하느냐입니다. 1918년 발병해서 엄청난 사망자를 낳으며 인류에게 큰 상처를 남긴 스페인 독감은 유럽에서 우리 땅에 오기까지는 시베리아 행 열차로 한 달이 걸렸습니다. 요즘 바이러스는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 안에 세계 곳곳으로 퍼집니다. 글로벌 무역과 자유로운 이동을 기반으로 하는 시대에서 속도는 더 빨라질 겁니다.

다행스러운 건 바이러스 못지않게 의료와 방역체계 등 우리의 대응력 또한 발전해왔다는 점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특유(?)의 위기에 맞서는 헌신적인 봉사의 모습이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고 있어서 서로 격려하며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큰 힘이 됩니다. 집단 면역의 모습은 단지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식이 아니라 때로는 바이러스와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서로 돌보는 방식입니다. 집단 면역을 뒷받침하는 삶의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번에 우리는 팬데믹(세계적 유행)을 겪으면서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고 있다는 걸 구체적 실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얻은 생생한 공생의 관점을 갖게 된 것이지요. 

 

5.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발생했을 때 우리는 타자의 시선으로 우한을 바라보았습니다. ‘중국에 큰일이 일어났구나. 바이러스가 중국을 벗어나서 우리에게 오면 안 될 텐데.’ 그렇게 중국인들의 고통이 몸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아마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서 급속히 번져나갈 때 이웃인 일본도 우리를 그렇게 봤겠지요. 지금은 일본 자신들의 큰일이 되었지만….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코로나19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을 고통스럽게 휩쓸고 있는 지금은 타자의 시선이 아니라, 놀랍고 두려운 ‘나’ 혹은 ‘우리’의 시선으로 코로나19를 보고 있습니다. 국경이 너와 나를 가를 수 없고, 거리가 너와 나를 가를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습니다. 위기에 맞서는 것도 가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식도 점차 드러납니다. 방역체계의 확립과 의료진의 맹활약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에 익숙한 삶의 방식도 전환돼야 한다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집단 면역은 삶의 방식과 연관이 있습니다. 아노 카렌은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행태가 ‘무지와 탐욕과 좁은 시야’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공동체에 막대한 피해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서는 너와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함께 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는 중입니다. 이렇게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도 배운 만큼 살지 못하면 우리 자신이 스스로 비극을 만드는 주범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깨달음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제는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될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든다 해도 겨울은 다시 올 것이고, 코로나19는 20, 21, 숫자를 더해가며 다시 우리를 찾아올 것을 우려의 목소리도 커집니다.

6. 그러면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요? 가능한 방법을 하나씩 찾아야 합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이러스는 우리 몸과 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을 먼저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에 휘둘리는 여러 나라를 통해 우리는 질병이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는 현실을 똑똑히 목격 중입니다. 아무도 기억 못 했던 청도대남병원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사망자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사람들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염병 감염이 장기화하면서 취약계층의 타격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난기본소득 논의가 촉발되었습니다. 2020년 3월 13일 전북 전주시를 시작으로 강원도, 서울특별시, 경상남도, 경기도 등의 지자체가 재난기본소득 시행 방침을 밝혔습니다.

정부는 3월 30일 대통령 주재로 제3차 비상경제회의를 열고 사회보험료·전기요금 부담 완화와 긴급재난지원금 도입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피해가 확산하고 있어서 국민이 버티고 일어설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한다는 차원입니다. 또 나아가서 1400만여 가구에 최대 100만 원씩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4월 15일 총선 이후 국회에 제출한다는 뉴스도 나왔습니다. 코로나19 사태라는 비상상황을 맞아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촉발된 국민기본소득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기본소득제라는 말은 얼마 전만 해도 무척 공허한 소리로 취급받았지만, 이제는 미래 세대와 맞물려 현실적인 의제가 되었습니다.

7. 경제학자인 강남훈 교수에 의하면 덴마크, 핀란드 등 복지 선진국의 총 조세부담률은 GDP 대비 50%지만 우리나라는 2014년 기준 약 25%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OECD 평균 총 조세부담률인 약 35%를 목표로 지금보다 10%만 부담률을 늘리고, 약 20조 원 정도는 연간 예산에서 절감하면 전 국민(약 5,000만 명)에게 매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대상자를 전 국민 하위 소득 70%의 대상자로 한정하면 매월 약 43만원의 기본소득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70% 대상자 선정은 행정력 낭비도 크고, 공정성에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서 대상자를 폭넓게 넓혀야 할 이유를 살펴봐야 합니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지만, 재난지원금으로 시작해서 기본소득제 쪽으로 한발 나아간 것은 의미가 큽니다. 세계적으로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난지원금에서 기본소득제로 나가야 할 논의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자영업자나 취약계층의 실상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재난지원금 지급과 더불어 기본소득제 실현은 국가의 경제와 복지 시스템을 굳건히 하는 출발점입니다. 집단 면역을 키우는 힘입니다.
집단 면역은 견디는 힘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함께 견디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몸은 조금 멀어지더라도 마음은 가까워지는 것이 집단 면역의 기반입니다. 바이러스와 공존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사회입니다. 여기에다가 4차산업 시대니, 인공지능 시대니 하면서 새로운 세상의 출현을 알리는 소리가 높아집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가 변하고 있습니다. 위기와 변화 앞에 견딜 힘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동안 우리가 벌여 놓은 문제를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8. 그동안 기본소득제로 가기 위해 먼저 한 걸음 뗀 것은 농어민수당입니다. 충남도가 이르면 5월부터 농어민수당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농어민수당은 농어촌기본소득제로 나가는 첫걸음입니다. 2018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농어촌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떠오른 농어민수당이 더욱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농어촌 관련해 다양한 사업, 즉 무슨 마을 개발이며 권역 사업, 도농 교류 등 온갖 명목으로 사업을 만들었지만, 농어민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중간 업자들 배만 불려준 격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농어민에게 이익이 간다고 해도 소수에게 집중됐습니다. 
농어민들은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미래를 위한 논의를 했습니다. 이번 충청남도 농어민수당 지원조례의 경우 주민청구 조례에 해당하는데, 충남 농어민들을 중심으로 3만5천여 명 이상이 서명을 받아 충남도에 조례제정을 요구하고 도의회에서 심의했습니다. 주민들이 필요한 자치법규를 만들기 위해 수만 명의 서명을 받아 입법 청구를 한 것이지요.

앞으로 농어민수당은 농촌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지급하는 ‘농촌기본소득’으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농어촌 공동체 유지는 농어촌기본소득으로 가야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 곳곳의 약한 문제를 불쑥 드러냈습니다. 계속 모습을 바꿔가면서 우리에게 주기적으로 찾아올 전염병 사태에 맞설 우리 사회의 면역은 방역체계 확립과 더불어 사회 기반이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건강하게 돌아갈 때 튼튼해집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전체 구성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합니다. 댐이 무너지는 것은 작은 구멍에 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을 가깝게 만들어야 합니다. 기본소득제 외에도 또 다른 실천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9.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인도 정부가 전 국민에게 자가 격리를 지시한 지 15일이 지나면서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산맥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CNN에 따르면 히말라야 설산을 맨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인도 주민들 사이에서도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군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인도 정부의 엄격한 지침에 모든 공장이 멈췄고 또 다른 주요한 대기오염 요인인 자동차 운행마저 중단되면서 공기가 현저히 깨끗해졌습니다. CNN에 따르면 자가 격리 시행 첫날 뉴델리의 대기오염은 44% 줄어들었고 인도 전역의 대기 질이 80% 이상 좋아졌습니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대기오염 수치가 ‘좋음’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뜻밖의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례를 해외 뉴스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볼 이유가 이곳저곳에서 생겨납니다. 건강한 면역의 기반이 되는 너와 나의 거리도 생각합니다. 미생물학자의 ‘나쁜 바이러스는 없다’라는 말도 떠오릅니다. 결국, 우리 안에 문제가 있고 답이 있습니다. 바이러스를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 속히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기를 바라며, 코로나 이후 시대는 행복한 면역의 시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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