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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11. 23:57

1.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고 몸도 으스스해서 가까운 읍내에 있는 목욕탕에 갔습니다. 열탕 온도가 생각보다 높긴 했지만, 참고 몸을 담그니 세상에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가 몇 번 반복 하니 몸이 풀리고 마음도 많이 이완됐습니다. 잠깐 씻고 나오려는데 갑자기 한 분이 다가와서 등을 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어색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서 괜찮다고 하는데 어느새 등 뒤로 돌아가서 등을 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목욕탕에 와서 등을 밀지 않고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상당히 쾌활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습니다.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까 저도 상쾌해져서 그분 등도 시원하게(?) 밀어드렸습니다. 처음엔 전혀 모르는 남이어서 무뚝뚝했는데, 서로 등을 밀어주다 보니 아까보다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고 친밀감도 들었습니다.

 

2. 오래전 상황이 생각났습니다. 학교에 다니던 1979년이니까 40년 전이기도 하고, 당시 박정희 정권의 비상조치 9호 상황이어서 상당히 암울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에 부딪히는 시기였고, 학내 문제도 제법 시끄러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집회에 참여하는 일이 몇 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느 날, 아마 늦봄쯤으로 기억하는데 이날도 집회 참석 후 좀 더운 날씨에 땀도 흘렸겠다 싶어 동네 목욕탕에 갔습니다. 간단히 씻고 일어서려는데 그때도 한 분이 불쑥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등 뒤로 돌아가서 제 등을 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당혹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더 기억나는 것은 그분 말이었습니다. “괜찮아요. 가만히 등을 맡기고 있으면 돼요. 나도 이런 시간이 있었으면 해서요.” 무슨 말인가 싶어 더 들었습니다. “사실 나는 여기 목욕탕에서 손님 때를 밀어주는 사람인데, 정작 내 등은 나도 어떻게 못 하겠어요. 내가 등을 밀어줄 테니 내 등도 좀 밀어줘요.” 대충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그때는 어린 나이이기도 해서 쑥스러움에 얼른 그분 등을 밀어드리고 황급히 목욕탕을 나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때 일이 머리에 남았습니다.

 

농촌에서 오래 살다 보니 남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주로 가르치려 들고, 선생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니, 어릴 때 겪었던 목욕탕 일이 가끔 생각이 납니다. 내 등을 어찌할 줄 모르면서 남의 등을 보고 이래라저래라하는 꼴이 때론 스스로 우스울 때가 있어서입니다. 사실 우리는 내 등을 보지 못하고 사는 부족함이 뚜렷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삽니다. 내 앞에 다른 사람의 등이 있듯이 다른 사람도 내 등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요. 서로 내 등을 맡길 수 있다면 참 좋은 사이일 것입니다. 나도 시원하고 이웃도 시원하게 살 수 있으니까요. 혼자 붙잡고 부대끼기보다 같이 붙들어주면서 마음을 통하고 서로 응원하면 한결 수월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돌아보면 함께 즐겁게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통하지 않아서, 혹은 오해해서, 아니면 내 욕심을 더 내세우다가 서로 어려운 길을 돌아서 가는 경우가 그동안 있지는 않았을까요. 등을 절대 보여주지 않으려 하다가는 서로 꽉 막힌 상태에서 시원함이라고는 도무지 모른 채 살아가겠지요.

 

3. 목욕탕에서 사건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옷을 입기 위해 옷장 문을 열고 먼저 보습제를 꺼내서 몸에 발랐습니다. 그리고 연락 온 것이 있나 보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려고 옷장 문으로 돌아서는데 순식간에 옷장 문은 닫혀 있고, 열쇠는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순간 무척 당황해서 내가 옷장 열쇠를 다른 곳에 뒀나 싶어 이곳저곳을 찾았습니다. 이런 순간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아무리 찾아도 열쇠는 나타나지 않아서 목욕탕 주인을 부르고, 옷장 관리 열쇠를 사용해서 간신히 문을 열었습니다. 다행히 제 옷과 소지품을 그대로 있어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 것이 아닌 옷이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 그 옷을 들고 목욕탕 안에 들어가서 옷 임자를 찾으니 나이 많으신 한 분이 황급히 나왔습니다. 제 옷장 바로 옆의 본인 옷장을 열어놓고 무슨 생각인지 정작 자신의 마지막 옷은 제 옷장에 넣고 그대로 문을 잠그고 제 열쇠를 가지고 목욕탕으로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웃을 수도 없고 황당해서 보고 있으려니 그분도 참 정신이 없었던 가 봅니다.

 

4.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을 목욕탕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는데요. 제가 그날 당황한 것은 누구에게도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고, 또 도움을 받기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목욕탕 안에 들어가서 자기 열쇠가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는데 분위기는 공허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일이 빈번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뉴스를 조금만 자세히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때로 극단적으로 자기를 포기하는 몸짓을 해도 막상 실제로 일이 벌어지기까지는 무심(?)합니다. 다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아서 다른 이의 움직임을 눈여겨보기가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내가 어려움을 당하는 상황은 목욕탕 에피소드처럼 꼭 그렇게 특별한 상황만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은 늘 주변에 있습니다. 내가 나의 모든 것을 보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의 도움도 필요하고, 서로 조금만 도우면 남이 아닌 내가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커피집 앞을 지나다가 누군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 속에 뜻하지 않게 맡게 되는 커피 향이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고, 커피 한 잔 나누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돕는 일은 구체적이 아니더라도 늘 내 곁에 있습니다. 커피를 내릴 때 커피 향이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을 아깝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겠지요.

 

5. 최근 충남 행복교육지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제가 사는 보령시 마을학교 운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을과 학교가 연계해서 마을학교를 만들고 마을 주민이 주도적으로 교육과정에 참여해서 학교와 마을이 함께 교육 연대를 하는 것이 마을학교의 모습입니다. 보령시의 지역적 특성과 마을 주민의 역량을 토대로 11개의 마을학교를 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충남 지자체마다 앞으로 5년간 진행될 계획입니다.

제가 사는 마을은 주민들이 결성한 천북들꽃오케스트라의 지원을 받아서 천북초등학교 내에 천북마을음악학교를 열었습니다. 음악학교에는 들꽃오케스트라에서 음악을 지도하는 분들과 수강생 중에 서툴기는 하지만 열정이 있는 분들이 음악학교 선생님으로 나섰습니다. 올해 처음 시작하는 마을학교라서 서툴기도 하고 약간의 문제도 있었지만, 곧 적응하면서 순조롭게 운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음악학교 개설을 위해 처음 초등학교에 가서 깜짝 놀란 일은 학교 내에 있는 피아노 3대가 모두 작동 불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피아노가 이렇게까지 작동하지 않은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습니다. 원래는 피아노 상태가 좋았겠지요. 놀라서 피아노 수리하시는 분을 불러 피아노를 맡겼는데, 3대 피아노 수리 비용이 중고 피아노 한 대 값 정도 나왔습니다. 여기에 더 놀랐습니다. 그런데 면 소재지 초등학교 피아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농촌에서 음악교육, 아니 예술교육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6. 예전에 면 소재지에 피아노학원이 있었습니다. 허름한 건물이지만, 그래도 피아노 소리와 더불어 바이올린 소리도 들려서 일부러 그 곁을 지나쳐 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농촌에 음악을 배울 수 있는 학원이 있다는 것은 바라만 봐도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피아노학원이 문을 닫았습니다. 피아노학원에 등록하는 아이들 수가 급속도로 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농촌 경제 사정 문제가 아니라 그 당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시험을 대비해야 하는 농촌학교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시험은 교육부가 초중고생들의 학업수준을 확인하고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2008년부터 시행했던 시험입니다. 애초 시험의 취지와 달리 당시 각 지자체 간의 학력 비교 시험으로 변질(?)하면서 모든 학교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농촌학교도 아이들을 채근하는 가운데 시험 대비를 했고, 농촌에서 음악을 배우는 일쯤이야 당연히 무시해도 될 만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음악학원의 문을 닫도록 만든 것이지요. 성과주의에 무너지는 교육의 모습도 그렇고, 문화의 힘이 약해지면서 스스로 도태되는 농촌의 모습은 지금도 안타깝습니다.

 

일련의 사태들, 즉 학업성취평가시험과 학교 시스템 고착화, 그 여파로 피아노학원에 다니던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만 머물게 되고, 결국 피아노학원이 문을 닫으면서 음악 교육 자체가 농촌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학교도 음악에 전문성을 가진 교사들이 없다 보니 디지털 자료를 활용한 예술교육으로 대체했고, 결국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들은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면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기능들이 퇴화하게 되면서 사용하지 못하는 악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악 교육에 갈망을 가진 분들이 있더라도 농촌에서 이러한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불통한 일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 교육에 대한 젊은 주민들이 요청도 있어서 이번에 마을학교 공모를 하면서 농촌형 음악학교를 열게 된 것입니다.

 

7. 교육이 한쪽으로만 진행되다 보니 농촌 주민들도 무엇인가 막혀있다는 생각합니다. 교육이란 한 인간의 성장을 돕는 것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의 소통을 도모하여 서로의 행복을 키우는 역량을 갖도록 만듭니다. 교육의 힘은 사회에서 소통하는 능력을 키워줄 때 그 모습이 제대로 드러납니다. 목욕탕 에피소드를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서로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보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무엇보다 필요한 일입니다. 서로의 등을 헤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마을과 학교가 만나서 마을학교가 되는 일은, 서로 공동체라는 인식과 더불어 마을이 볼 수 없는 곳을 학교가 보도록 돕고, 학교가 볼 수 없는 곳을 마을이 보도록 돕는 것입니다. 학교는 학교의 일만 바라보고, 마을은 마을의 생각만 하고 있으면 피아노는 먼지투성이가 되고, 건반 줄은 끊어진 채 방치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을과 학교만의 일이겠습니까?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소통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 생각에만 매몰돼 있으면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해결할 방법은 요원합니다. 제가 사는 보령에는 커피에 관한 이야기가 제법 있습니다. 서해 아름다운 환경을 기반으로 커피를 통해 소통하려는 이들이 여럿 있습니다. 말통커피는 보령에서 출발한 프랜차이즈 카페입니다. 처음에는 커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커피공방으로 출발했다가 더 많은 분과 소통을 하기 위해 카페를 열었습니다. 카페 이름이 말통커피입니다. 말통커피는 자체 커피로스팅공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커피를 넉넉하게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통, 말을 통하게 하다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커피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커피가 필요한 마을마다 커피 나눠주는 일을 즐기고, 커피를 통해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바라보는 일을 응원합니다. 마음을 열고 말이 통하는 사회는 함께 사는 일이 즐겁습니다. 작은 커피 한 잔으로 작은 즐거움을 만들고 있습니다.

 

8. 목욕탕에서 등을 먼저 밀어주겠다고 하는 것처럼 먼저 커피 한 잔을 권하고 그 향기를 함께 나누는 일은 소소한 행복을 만듭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큰일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작은 행복을 곳곳에서 나누는 일도 무척 필요합니다. 마을학교는 제 길만 가던 마을과 학교가 함께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의기투합입니다. 도시에서도 가능하고 농촌에서는 더욱 필요한 학교입니다. 나의 등을 절대 보여주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세상은 힘에 부쳐 허덕이게 만듭니다. 모두가 경쟁자로 보이고,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지금 전국 곳곳에서 마을 만들기와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저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 회복입니다. 회복이라는 말은 활력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서로 통하는 세상, 필요하면 서로의 등을 밀어주겠다는 마음가짐이 없이는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마을 만들기이고, 도시재생입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진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기만 알고,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 세상이라고도 합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 느끼는 것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우리가 시원한 세상을, 함께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우리 스스로가 막힌 세상을 만들고 있지 않은지 우리를 다시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서로 통하는 길이 있습니다. 새해 들어 겨울이 길다고 느껴지면 동네 목욕탕에 한 번 가보시지요. 내 등을 맡길 사람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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