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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1 22:35

1. 마을학교 연수회에 참석했는데 교육부에서 온, 장학사 출신으로 혁신교육 업무를 담당하는 유쾌한 강사가 두 아들에 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큰아들은 공부를 잘해서 수능 성적이 무척 우수하게 나오고 대학도 무난히 들어갔으나 둘째 아들은 변함없이 눈을 의심할 정도의 성적을 받아왔기 때문에 아예 대학 갈 생각을 포기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귀를 더욱 쫑긋하며 들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오직 공부만 잘하는 아이였고, 둘째 아들은 오직 공부만 못하는 아이였다니 듣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오고 흥미진진해졌습니다.

한 번은 아이들과 해외여행을 갔는데, 출국장에서 큰 아이가 나간 후 둘째가 자기 나이를 영어로 쓰지 못해서 당황했다는 이야기와, 출국장 밖에 나와서는 큰아이가 목이 말라 물을 찾으면서도 물 한 병 살 엄두를 못 내는데, 오히려 둘째 아이가 당당하게 외국 사람과 되지도 않는 말 해가며 물을 사 와서 형에게 주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여러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아이를 대하고 키우는 방식이 듣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고,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나름대로 과정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혁신학교 업무를 비롯해서 마을과 학교를 이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한 강사의 생생한 이야기는 마을교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길라잡이였습니다. 그 둘째 아이는 이제 시흥에서 마을 만들기를 직업으로 가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2. 요즘 전국 곳곳에서 혁신교육, 마을교육공동체, 마을학교 등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현 정권에서 국정과제로 삼은 중요한 교육정책이기도 합니다. 마을에서는 마을 만들기, 도시에서는 도시 재생 등이 중요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는 어찌 된 일인지 작은 지역에서 이 모든 일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의 주체가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로 나뉘어 있어 아직 효율성에 의문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래전부터 필요한 일이라고 고민했습니다.

제가 마을과 학교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여기에도 여러 번 글을 썼지만, 농촌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많은 문제를 지켜본 까닭입니다. 제가 사는 마을의 초등학교 학생 수는 지금 25명이 채 안 됩니다.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는 그때도 아이들이 줄긴 했지만 180명 정도 되었습니다. 사실 현재 아이들 25명이란 숫자도 폐교될 상황에 부닥친 학교를 보고 지난 십여 년간 마을 사람들이 모든 노력을 한 결과입니다. 아이들이 없어서 학교가 문을 닫을 땐 닫더라도 지금은 마을 아이들이 마을 학교에 다니게 하자는 마음이 모인 것입니다. 읍내로 나가던 아이도 돌아오고, 마을을 떠날 아이도 다시 정착하면서 학교가 오늘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보니까 공동선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일 때문이었습니다.

3. 본래 교육은 학교를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예전에 힐러리 클린턴 연설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던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 말이 아프리카에서 온 건지 인디언 부족의 전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이를 가르치고 돌보는 일은 부모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지역사회 등 많은 사람의 협력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아이를 교육하는 일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을의 문제이고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공교육 체제가 강화되면서 마을과 상관없이 학교가 교육의 상징이 되었고, 교육은 학교에서 적령기 아이들이 받는 것으로 고정관념이 굳어졌습니다.

4.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은 이제 교육이 학교만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리고 있습니다. 고정관념은 모든 부분에서 단절이라는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학교와 마을도 갈수록 더 단절되고 있고, 사회는 단절된 교육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적응하기에 쉽지 않은 곳이 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소속돼 있을까요, 마을에 소속돼 있을까요? 학교는 아이들을 소속개념으로 통제하고 있고, 마을은 아이들에 대해 능동적인 행위는 뺏긴 채 그런가 보다 하고 무관심합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돌아올 곳은 마을이 아니라 다른 곳이 되고 있습니다. 마을과 상관없이 학교를 통해서 길을 찾고 직장을 따라 다른 곳으로 갑니다. 애써 자란 마을은 그저 거쳐 가는 곳에 불과합니다. 제가 사는 곳은 보령시입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이들이 앞으로 살 수 있는 터전으로 마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구촌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일까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고민됩니다.

요즘 두드러진 말 가운데, 지역생활생태계와 지방자치분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생활생태계와 지방자치분권의 가장 중심이 되는 기반이 교육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면서 마을교육공동체란 용어도 사용합니다. 마을교육공동체를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을에 대한 규정도 명확하지 않으니까요. 서두에서 말한 마을학교 연수회 강사는 연세대학교 조한혜정 교수의 이야기를 빌어 마을의 개념이 서로의 말이 닿는 곳이라고 들려줬습니다. 관계가 이어지는 곳이 마을이란 뜻도 있겠지요. 그런데 마을은 구체적인 실천이 이뤄지는 곳이기도 해서, 말도 닿고 구체적인 실천도 이뤄지려면 아무래도 전통적인 마을 개념을 포함해서 함께 살아야 할 곳일 겁니다. 지역생활생태계가 건강해지려면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새로운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떠나는 지역생활생태계는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마을과 학교,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발상이 필요합니다. 

5. 마을과 학교가 상호 작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무척 중요합니다. 학교의 울타리와 지역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아이들이 배움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천북면 낙동초등학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는 학교 그 자체로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2007년 학생 수 감소로 통폐합의 갈림길에 섰을 때 학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드러났습니다. 인건비와 운영비 외에 지원이 일절 끊긴 학교는 주어진 일정대로 학교의 앞날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기를 느낀 것은 마을 주민이었습니다. 학교 학생이면서 내 자녀인 아이들의 앞날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서로 생각을 나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함께 모여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가까운 읍내 학교로 아이들을 옮길 것인지, 아니면 아이들 학교인 마을 학교를 위해 힘을 모을 것인지 오랫동안 논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있는 동안은 마을 학교를 위해 다 같이 노력하자고 결정했습니다. 마을과 학교의 상호작용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래서 자체적으로 마을 교회 차량을 이용해서 스쿨버스도 운영하고, 교회를 비롯한 마을주민들이 방과후학교의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때로는 교육청과 격렬한 논쟁도 하면서 학교와 아이들에 관련된 일은 사진에 담으며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7년째 되든 해는 천북면사무소 회의실에서 그간의 기록을 담은 사진전을 열어 지나오는 과정을 함께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마을의 학교가 무엇을 필요로 한지 살피기 시작했고, 마을 주민인 학교 동문회에서는 최선을 다해 학교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입학하는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선물하고, 합창단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하고,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십 년도 넘게 학교가 존속하고 오늘은 비록 25명 정도 아이들이지만 즐겁게 우리 마을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6. 보령시의 마을 만들기 일에 관여하면서 더욱 관심을 가진 것은 마을과 학교였습니다. 나름대로 기반을 가진 도시와 농촌을 끼고 있는 지방 소도시의 마을과 학교에 대한 관점은 다를 것입니다. 소도시는 인구 소멸 지역이기도 합니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숫자는 빠른 속도로 축소됩니다. 그나마 축소되는 아이들도 현실 지향적인 교육관 때문에 도심에 신설되는 학교 쪽으로 몰리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아마 나름대로 내 아이를 위한 엄마들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은 마을을 한쪽으로 기울게 하고 결국 지역생활생태계에 위기를 불러옵니다. 생태계 악순환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국가적으로 전체 시스템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하고, 지금 전국적으로 추진 중인 도시재생과 마을 만들기에도 마을과 학교에 대한 고민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는 마을과 학교 연결은 아이들이 있는 지역, 농촌 지역이라도 면 소재지 정도에 국한될 우려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농촌 마을에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제가 사는 보령만 하더라도 농촌 마을은 이미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주민들 가운데는 손자도 초등학교나 중등학교 이상을 졸업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도 없을뿐더러 학교가 이미 주민들의 일상 밖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 학교를 위해 그렇게 애를 쓰고 열심히 마을 주민을 만나도 무덤덤한 반응 앞에 의욕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학교만을 중심으로 마을을 보기 때문입니다. 마을 학교의 모토인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외면하면 이런 소통의 노력은 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마을 자체가 전인적인 교육 장소라는 공감이 필요합니다. 보령은 청파초등학교호도분교녹도학습장을 통하여 선례를 만들고 있습니다. 2017년 모든 학교 교육 근거가 사라진 섬 녹도에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이 생기자 충남 교육청은 신입생 한 명을 위해 아이가 사는 섬에 학교 문을 열었습니다. 아이를 호도분교로 보낼 수 있었지만, 마을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습장 형태로라도 학교 문을 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교육 장소는 학습장이지만, 신입생 아이가 자라고 있는 섬마을이 전인적인 교육의 기반이지요.

7. 일본의 농촌도 우리처럼 고령화된 마을이 많은데 나이 많은 주민들이 마을 만들기를 할 때, 비록 마을에 아이들이 없어도 앞으로 아이들이 언제라도 같이 살 것을 생각하고 마을을 설계한다는 이야기를 충남 마을 만들기 세미나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여기서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농촌 마을은 마을교육공동체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소멸하는 마을이 회복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마을 내에 교육의 공감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농촌 마을에서 아이들이 없어서 근근이 버티는(?) 학교는 생산성이 낮은 대표적인 분야가 될 수 있습니다. 1997년 국가 부도 위기 이후 더욱더 모든 것이 경제적 판단으로 결정되는 상황에서 학교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제적 판단은 우리가 느끼는 빈부격차, 사회적 양극화 등 후유증을 계속 남기고 있습니다. 행복한 삶의 토대를 없애고 있습니다.

마을공동체의 일환으로 마을교육공동체가 이루어지고 마을과 학교를 고민한다면 학교 안에서도 마을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고, 마을도 마을과 연관해서 학교를 바라보는 공부도 필요합니다. 마을에 있는 학교 교육의 우선은 아이들이 마을의 가치를 깨닫도록 이끌어야 하고, 지구촌 시대에 있어서 내가 사는 마을이 지구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당위성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비록 성인이 돼서 직업으로 인해 다른 곳에 살 수 있어도 언제라도 내가 자랐던 마을에서 사는 것은 아주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이럴 때 마을과 학교의 소통이 빛날 것이고 마을교육공동체의 의미가 뚜렷해질 것입니다.

8. 지난 8월 9일(금) 보령행복교육지구사업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인 마을학교 출범식이 있었습니다. 마을과 학교에 관해 설명하고, 실제로 마을에서 이루어질 마을학교에 대한 소개, 그리고 마을학교를 운영할 마을교사의 사전 워크숍이 진행됐습니다. 여기에 교육청과 지자체, 마을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해서 앞으로 5년여에 걸쳐 이루어질 보령의 마을학교 운영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모았습니다. 보령에서는 11개 마을학교가 활동을 시작하는데 각 마을학교별로 특성이 있습니다.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마을작가학교, 마을공동체 라디오를 운영하는 미디어학교, 요리를 배우는 요리학교, 마을 오케스트라와 연대를 위한 음악학교, 전래놀이학교, 도자기학교, 마을 생태를 탐험하는 생태학교, 마을의 일상을 영상으로 담는 영상학교, 그리고 이 외에 몇 가지 특색 있는 마을학교가 더 있습니다.

마을학교가 기술과 방법만 가르친다면 학원이나 방과후학교와 다를 바가 없을 겁니다. 마을공동체를 염두에 두면서 아이들과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주고받기도 해야겠지요. 악기를 배운다면 할아버지 할머니도 참여하는 마을 오케스트라에 기웃거리기도 하고, 함께 협연한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야겠습니다. 마을과 학교의 공감을 살려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요. 한 사람의 몸에는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지체가 모여 있는 것처럼 마을에도 여러 기능과 협력이 필요합니다. 어느 하나만 잘한다고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부분을 보살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든든한 기반이 될 수 있는 마을교육공동체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쉬운 일은 결코 아니지만, 지속적인 노력으로 우리가 사는 마을의 가치를 드러내고 언제라도 아이들이 자라고 교육받을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드는 일을 함께해야 합니다. 세상은 놀라울 만큼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 중심은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우리 삶이 연결되고 앞날을 향해 희망을 품는 것입니다. 마을과 학교가 잘 연결되고 하나가 되도록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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