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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니까 꼭 10년 전입니다. 꽃 한 송이로 시작한 마을 축제가 어느덧 5년째 접어들고 사람들 왕래가 잦아지면서 마을 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마을에 오시는 분들과 마을의 오래된 맛을 나누고 싶었는데 제대로 만든 술이 으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몇 분과 술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술 담그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담근 술은 제가 생각한 맛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술 만드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니 충분한 발효과정과 숙성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빨리 술을 만들기 위해 도수 높은 소주를 첨가해서 술맛을 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마을에서 술을 만드는 일반적인(?) 방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1964년 이후 막걸리에 쌀의 사용이 금지되면서 술의 질이 떨어지자 억지로 소주가 첨가물(?)이 된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술을 만드는 금기사항도 사라졌지만, 손에 익은 것이니 그대로 전해왔겠지요. 그래서 차라리 마을 양조장에 부탁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막걸리 도수를 7도 이상으로 올려 달라고 했고, 축제장에서 술을 나누니 생각 이상으로 모두 좋아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제가 사는 보령시 천북면에 양조장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습니다. 그 이름이 이후로 계속 정겨웠고요.
2. 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술에 관한 자료도 찾아봤습니다. 마을의 술인 막걸리는 우리 전통주로 탁주(濁酒), 농주(農酒)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보통 찹쌀, 멥쌀, 보리, 밀가루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켜 만듭니다. 좋은 막걸리는 단맛, 신맛, 쓴맛, 떫은맛이 잘 어울리고 감칠맛과 시원한 맛이 있어서, 땀 흘리고 일한 농부의 갈증을 덜어주는 농주로써 애용되었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막걸리를 내리고 남은 술지게미를 얻어다가 당원을 타서 먹고 취하기도 한 그 시절도 있었고, 할아버지 막걸리 심부름에 한 모금 홀짝거리기도 한 추억(?)도 아른거릴 겁니다.
막걸리 이야기를 한 김에 조금 더 붙이자면, 막걸리에는 다른 식이 음료들보다 1000배 이상의 식이섬유소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막걸리에는 단백질이 1.9%나 들어 있다는데, 우유 함유 단백질 3%와 비교하면 막걸리의 단백질은 적지 않은 양입니다. 이 외에도 막걸리에는 비타민B 복합체 및 유기산 등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영양소가 풍부하다고 하니 제대로 만든 좋은 막걸리들이 주변에 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시(詩) <막걸리>입니다.
‘나는 술을 좋아하되 /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 막걸리는 / 아침에 한 병(한 되) 사면 / 한 홉짜리 적은 잔으로 / 생각날 때만 마시니 /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중략) //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 밥이나 마찬가지다 / 밥일 뿐만 아니라 / 즐거움을 더해주는 /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3. 아무튼, 좋은 막걸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양조장도 새삼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양조(釀造)는 주로 곡물에서 얻은 녹말을 물에 담근 뒤, 효모로 발효시켜 술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양조하는 곳이 양조장인데,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양조장은 주로 막걸리를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자료를 보면 양조는 기원전 6천 년 경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지구 자체가 천연 양조장 구실을 하는 곳이라서 술을 만들기 시작한 시기가 그렇게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보령시 천북면에 있는 양조장은 80여 년 세월이 흐른 곳입니다. 10여 년 전 막걸리 생산이 더는 여의치 않아 문을 닫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양조장에서 일했던 고(故) 황무일 씨가 눈에 선합니다. 그의 마음 온도는 늘 일정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빚은 막걸리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 온도는 누구든지 가까이 갈 수 있는 따뜻함이었습니다. 빚을 진 사람이 돈을 갚지 못하자 빚진 금액만큼 양조장 옆 마을 교회 새벽기도회에 나가는 것으로 탕감하기도 했습니다. 물어보니 빚진 사람도 얼마나 마음이 힘들겠냐고. 하나님 앞에서 힘든 마음 내려놓고 위로를 받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따뜻함 때문에 그는 때로 힘겨운 고통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양조장 문이 닫히고 얼마 후 그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활짝 웃으며 축제장에 막걸리를 나르던 모습은 여전히 그립습니다.
발걸음이 멈춘 천북양조장 지금 모습은 황량하지만, 붉은 벽돌 건물과 우뚝 솟은 굴뚝은 보기에도 흘러간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물씬 풍깁니다. 앞에는 넓은 논이 있어서 양조장 모습은 사계절 달라집니다. 봄에는 모를 심은 논과 함께 파릇하고, 여름에는 하늘거리는 벼 이삭 사이에서 편안하게 늘어지고, 가을에는 추수 끝낸 논 위에 우뚝 서서 파란 하늘과 더불어 한 해를 정리하고 겨울을 받아들입니다. 바라보면 술 익는 냄새가 절로 나는 것 같아 그 곁을 지나가면 눈길을 떼지 못합니다.
4. 그동안 여러 사람이 문을 닫은 천북양조장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저마다 그 터전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양조장 건물이 가진 가치 평가보다, 그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세울 생각이 더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택을 지을 생각도 했고, 양조장이 있는 마을 주민들은 그 자리에 마을회관을 지을 계획도 세웠습니다. 간혹 게스트하우스 용도로 사용하면 어떨까 생각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양조장으로선 위기의 순간이었다고 할까요?
요즘 농촌에는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이 많지 않습니다. 있다고 해도 폐가 수준에 이를 정도고, 그나마 특별하게 여겨서 지자체에서 활용하는 건물은 모양의 변형이 심합니다. 무엇보다 농촌에서 오래 사신 분들은 예전 모습이 탐탁지 않습니다. 어려서 고생한 흔적을 얼른 지우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도 이렇게 번듯하다는 것을 내세우고 싶어 합니다.
얼마 전에 청양읍엘 갔습니다. 읍내에는 버스터미널이 있는데, 그 너머에 이전 버스터미널 건물이 있습니다. 7~80년대까지 사용한 건물인데 크기도 무척 작거니와 건물이 오래돼서 보존하자니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지금은 결론이 났지만, 예전 버스터미널 건물을 보존하느냐, 철거하고 새로운 용도로 짓느냐 논쟁이 제법 있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청양 사람들의 애환이 깃든 건물을 거기에 맞게 보존해서 새로운 문화의 구심점으로 삼자는 이들과 낡고 추해서 빨리 철거하고 새롭게 짓자는 이들의 의견이 맞섰습니다. 요즘 한창 물오르고 있는 도시재생 측면에서 충분히 보완하고 건물을 멋지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무색해졌고, 결국 헐고 새롭게 짓는 쪽으로 결정됐습니다. 누구나 그 건물을 보면 낡고 허름해도 많은 이야기를 계속 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새로 짓는 건물보다 오히려 이 낡은 건물의 가치가 더 뛰어날 거라고 저도 믿었고요.
어쨌든 예전 버스터미널은 흘러간 시간과 함께 사라지기로 했습니다. 청양읍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바람이었기 때문입니다.
5. 천북양조장도 그런 운명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목포에서 일어난 근대역사문화공간 일련의 일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오래된 것을 지키거나 재활용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부동산 투기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지역 개발을 이용하는 것을 간단히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생각한 것이지만, 현실은 그런 영향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래도 천북양조장 건물이 살아남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철거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마음으로 그 가치를 알고 낡고 오래된 건물을 기꺼이 껴안은 사람이 있었기에 오늘 이 글도 쓸 수 있습니다.
천북양조장 건물은 크게 양조 시설 건물과 양조장을 관리하는 주택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시설 건물과 주택은 ㄷ자 형태로 돼 있고, 사이에 마당이 시원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당에서 보면 모든 건물이 마당과 편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 사용 방법을 다양하게 할 수도 있고, 건물을 중심으로 마당을 연결고리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방치한 건물이라서 각종 잡동사니며 부식돼서 사용할 수 없는 기물이 많았는데, 건물 원형 보존을 절대 기준으로 삼고 굳이 없어도 될 것들은 철거한 상태입니다.
천북양조장 건물을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뉴트로(Newtro) 형식이 아니더라도 양조장이 걸어온 시간이 가능한 존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페이스북에 양조장 건물 활용에 대해 의견을 물었더니 여러 의견이 올라왔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현재 천북면의 지역 학생 현황을 잘 모르지만, 제 생각엔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작은 도서관, 독서실(공부방), 컴퓨터 멀티미디어실, 작은 카페(대화 공간) 등을 두루 갖춘 종합 공간은 어떠신가요?”
“책방 하면 좋겠어요.”
“보령 갈 때 꼭 방문할 테니 친근하게 국숫집 어때요, 차도 마시고…”
“많은 추억이 숨어있는 시골 막걸리 양조장은 일단 술과 관련한 공간이 적격입니다. 수제 맥주 양조장도 좋고요. 바다와 가까우니 해산물 먹거리를 첨가해서 음악 카페도 곁들이면 좋겠습니다.”
“양조 박물관, 전통주 갤러리, 전통주 체험 등 술 관련 아이템이 적당한 듯합니다.”
“양조장이 막걸리 만드는 곳이라는 역사성을 살려내야 한다고 봅니다.”
“체험 사전답사의 한 코스로 박물관(?) 체험 카페, 그리고 요즘 트렌드인 주막 제현도 좋은 명소로 자리 잡아가게 할 거예요.”
“농촌 체험 공간 하면 좋겠네요. 꼭 한 장르만 말고 사계절 내내 다양한 장르를 만들어서요.”
“막걸리 양조 체험 및 농사체험을 연계하고, 천북면의 질 좋은 고기를 이용하면 다양한 생각이 계속 나올 듯합니다.”
이 외에도 여러 의견이 올라왔지만, 대략 이런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견은 모두 천북양조장을 살리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6. 오래전, 양조장은 마을의 삶의 터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땐 막걸리 한 잔에도 농부는 온갖 시름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사적인 자리가 마치 중요한 마을 자산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마을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공유했던 자산은 떠난 자리의 기념물처럼 남겨졌습니다. 양조장뿐만 아니라 마을 학교도 기념 공간이 되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그것을 바꿀 때입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사람이 돌아와야 합니다. 예전과 다른 모습이겠지만 공간이 살아서 숨을 쉬도록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천북양조장도 혼자 힘으로 서지 못합니다. 마을 안에서 연대의 폭을 넓히고, 다른 곳도 함께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요.
가까운 시일 내에 천북양조장은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의연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시 다가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카페가 될 수도 있고, 국숫집이 될 수도 있고, 양조장 전통을 이어갈 수도 있고, 책방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갤러리 역할도 할 수 있겠지요.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따뜻한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10년 전 마을 축제장에서 천북양조장 막걸리는 누구나 편하게 나누는 행복이었습니다. 마을 축제는 10년이 지나도 그 행복을 나누기 위해 여전히 축제의 마당을 펴고 있습니다. 천북양조장 자리도 늘 있습니다. 천북양조장이 다시 생기를 찾는다면 막걸리만큼이나 나눠줄 행복이 커질 것입니다. 천상병 시인의 시(詩)처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 은총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