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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웃이 필요하다이런저런글 2017. 12. 10. 21:44
1. 마을여행을 온 이들이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중년 여성 한 사람이 자기 경험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도 몸이 좋진 않지만, 얼마 전에는 혼자 집에 있는데 갑자기 온몸에 마비가 와서 겁이 덜컥 났습니다. 직감적으로 곧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느꼈고 마지막 힘을 내서 SNS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렸습니다. ‘힘들어요. 누구라도 나를 병원으로 옮겨주세요.’ 그리고는 쓰러지다시피 누워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잠시 후 여러 곳에서 네 사람이 달려왔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오면서 병원 응급실에 환자가 도착하는 대로 조치를 해주도록 요청까지 했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이 났을 텐데 이웃의 도움으로 지금은 이렇게 마을여행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식사도 잘했습니다."
그러자 듣고 있던 한 사람이 우리도 한 번 SNS에 나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올려보면 어떠냐고 농담 겸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 저 사람 다들 꿈이 크다면서 우리는 기어서라도 스스로 병원으로 가야 할 거라며 깔깔거렸습니다.
해석의 문제는 둘째 치고 신약성경 마가복음 2장이 생각났습니다. “며칠 뒤에 예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내려 보냈다.”
2. 보령시에 전통 술을 빚는 배정숙 씨가 있습니다. 역시 중년 여성입니다. 키는 작지만, 제가 보기에 나름 쾌활하고 적극적입니다. 제가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마을만들기 충남대회’에서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보령에서 만든 술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첫날 저녁에 교류마당이 있어서 참석한 이들이 서로 마을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허심탄회하게 술 한 잔을 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배정숙 씨에게 부탁했더니 조건이 조금 있었지만,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과연 맛있는 술을 담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술맛을 본 많은 사람이 무척 좋아했습니다. 술 속에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가득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배정숙 씨 술맛을 보령 남포면 제석리 마을 축제 때 알았습니다. 그때 든 느낌은 이렇게 다정한 마음으로 빚는 술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술 빚는 과정을 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에 몸과 마음이 다가가 어울렸습니다. 돈을 받고 판다고 해도 저런 정성이 들어가기 어려울 텐데, 이렇게 나눔을 하는데 온갖 정성을 기울였으니 참 대단하다고 여겼습니다. 좋은 이웃이 있어서 행복한 마을만들기 대회를 잘 치렀습니다.
3. 요즘 농사는 기계가 다 짓는다고 말하지만, 농사의 모습을 지켜보면, 여전히 농사는 하늘에 달린 일이고 서로 돕는 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농촌에 살면서, 또 농사의 현장을 보면서 이웃의 존재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느끼는 이웃과는 여러 부분에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에서 이웃은 집단화된 아파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 도시민의 70%가 거주하는 가장 보편적인 주거방식이 아파트입니다. 아파트는 삶의 터전이지만, 그보다 가치가 떨어져서는 안 되는 소유물입니다. 아파트 물적 가치가 우선되면서 조건에 따라 공동체의 성격이 결정됩니다. 농촌은 삶의 터전에서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 농촌에서는 여전히 품앗이합니다. 품앗이는 일을 서로 거들어 주어 품을 지고 갚는 교환노동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단순한 노동의 교환형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서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내가 부족할 때 도와주었다는 고마움이 품앗이 기본 정신입니다. 농촌에서 이웃은 도움을 주며 함께 사는 공동체입니다.
예전에 한창 절임배추 판매를 도울 때입니다. 인터넷 주문이 무척 많이 들어와서 주문량을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절임배추는 그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밭에서 배추를 수확해야 하고, 절임배추 현장까지 운반해야 하며, 배추를 다듬고 자르고 씻고 소금으로 절이기까지 만만치 않습니다. 절인 배추를 끄집어내서 물기를 빼고, 정해진 양을 상자에 담는 일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젊은이들도 아니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절임배추 판매를 오래도록 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웃의 돕는 손길 때문이었습니다. 아침에 와 보면, 부엌칼 하나씩 들고 미리 와 있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힘든 현장을 보다가 작은 힘이라도 돕겠다고 나온 것입니다. 배추 꼭지도 따주고, 채반에 배추절임 물도 걸러주고, 무엇보다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노동 강도를 희석해 주었습니다. 힘든 노동도 내 일처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웃하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4. 성경에서 ‘이웃’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은 누가복음 10장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몹시 경멸했습니다. 예수는 ‘이웃 됨’에 있어서 정통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정통성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랍비가 예수에게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고 묻자, 예수는 ‘누가 너에게 이웃이 되느냐?’라며 되묻습니다. 이웃의 범위를 우리가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이웃이 되는 것이 “이웃 됨”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범위는 없으며, 우리가 이웃이 되라는 예수의 말씀은 우리에게 늘 새로운 길입니다. 따로 떨어진 개인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서로 이웃입니다.
이제 세상 떠난 지 2년이 된 신영복 선생의 고암 이응노 화백에 관한 글이 떠오릅니다. 선생이 대전교도소에서 복역할 때 서로 엇갈려서 이응노 화백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글을 보면 아쉬운 마음에 이응노 화백과 함께 지냈던 분을 대전교도소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서 이응노 화백은, 사람을 수번(숫자)으로 불러야 할 교도소 내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름이 뭐냐고 묻고 수번 대신 그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람을 가리켜서 어떻게 관계도 없는 번호로 부르냐는 것이 이응노 화백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름 속에서 따로 떨어진 개인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연결된 누구의 자식. 누구의 형제, 누구의 친구이냐는 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연결할 고리가 없다면 이웃은 요원합니다. 그러나 연결할 고리가 있다면 그가 누구든지, 처음 봤던지,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5. 제가 사는 보령시 천북면에 유기농우유목장인 개화목장이 있습니다. 대표는 얼추 저와 나이가 비슷한 이수호 씨입니다. 당진에서 보령으로 혈혈단신 건너와서 젖소목장을 일구었습니다. 그 와중에 실패도 겪었지만 실망하지 않고 좋은 우유를 만드는 일에 정진했습니다. 우유를 먹는 사람 입장에서 유기농 축산에 대한 깨달음을 공부로 연결하고 그렇게 만든 유기농우유를 아낌없이 나누었습니다. 이번에 정부의 지원 외에 자부담을 더 추가하여 ‘보령우유’라는 새로운 우유 공장을 세웠습니다. 대표 우유와 요거트는 ‘바른우유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생산을 합니다. 이름부터 그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유기농치즈체험장도 세워서 아이들이 직접 유기농우유와 치즈를 경험할 수 있게 했습니다.
사실, 제가 사는 천북면에는 젖소목장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수호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를 마음에 새긴 것은 단순히 우유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축산을 하면서 이웃과 함께 사는 길이 어떤 길인지 고민하면서 그 결론으로 유기농우유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소가 건강한 풀을 먹고 생산하는 우유와 분유는 당연히 변형된 옥수수 사료를 먹은 소에서 생산한 우유, 분유와 다릅니다. 야생초를 먹고 자란 소에게 짠 우유와 분유 등은 건강한 필수지방산을 섭취할 수 있도록 돕고, 건강한 필수지방산은 사람의 신체, 정신 건강에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문제는 GMO도 그렇고, 현재 소가 어디서 어떤 사료를 먹고 자랐는지 소비자는 알 길이 없습니다. 소가 어떤 사료를 먹고 자랐는지 완전표시제가 도입돼 전 제품의 이력이 공개돼야 하는 게 맞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결단한 것이 모든 과정을 공개하는 유기농목장으로 전환이었습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이웃과 함께 사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이런 이웃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6. 저는 요즘 보령 오서산 산속 마을인 은고개 마을(청라면 음현리)에서 일주일에 한 번 커피 교육을 합니다. 귀촌하는 가정도 조금씩 늘지만, 요즘 농촌이 그렇듯이 은고개 마을도 주민들 나이가 많습니다. 그동안 마을 만들기 프로그램을 우수하게 진행해서 좋은 마을로 알려졌고, 곧 마을회관도 새로운 건물로 신축을 합니다. 새 건물에 작은 카페를 만들어서 마을을 방문한 이들에게 직접 커피를 대접하고 싶은 것이 은고개 마을 주민들의 바람입니다. 몇 달 동안 어떻게 커피를 배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보령커피의 지원을 받아서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커피 교육은 참 화기애애합니다. 조금 우려도 있었지만, 나이와는 상관없이 열심히 배우는 모습은 오히려 저에게 선생님으로 다가옵니다. 재미있는 것은 커피를 내리는 기술을 배우면서 꼭 옆에 있는 분을 배려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끝까지 잘 할 수 있는 것도 어느 정도 하다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양보합니다. 그리고 옆 사람이 끝까지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커피 교육은 제가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을 제가 배웁니다. 차분하게 배려하면서 이웃이 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안타까워도 하고 응원도 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핸드드립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합니다. 배운지 얼마 안 됐지만 물을 내리는 자세가 안정되고 커피 맛을 잘 분별합니다. 금방 밭에서 일하다가 온 모습이지만 커피에 대한 이해가 높습니다. 지켜보던 사람 모두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기뻐합니다. 엊그제 마을에 귀촌한 분도 덩달아 나왔는데 조금 더 배운 분이 꼼꼼히 가르쳐 줍니다. 그러다 보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커피 활용법이 나오고, 커피를 통해서 마을이 더욱 따뜻한 공동체가 되는 길을 찾기 시작합니다. 은고개 마을에서 이웃 잘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낍니다. 커피를 통해 제가 마을 공부를 하고, 이웃 공부를 합니다. 이웃의 힘을 배웁니다.
7. 최근 수년 사이 혼자 밥상, 술상 앞에 앉는 이른바 ‘혼밥족’, ‘혼술족’ 등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했던 일들을 최근 들어서 혼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할 확률은 높습니다. 이게 꼭 좋지 않다고 보지는 않지만, 오늘 우리 사회에서 이웃과 단절되고 있는 것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아 보입니다. 오래된 미래, 라다크를 생각합니다.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히말라야산맥의 라다크 지역은 이웃과 문제가 생겼을 때 제삼자는 누구라도 중재를 할 수 있고, 또 그 중재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곳이었습니다. 소규모 공동체를 중시하고 모두 가족 같은 이웃이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관광객들에게 본격적으로 개방된 라다크는 서구 물질문명 앞에서 공동체는 느슨해지면서 경쟁이 일상화되었습니다. 최근의 모습을 보면 라다크 곳곳에 서구 물질문명의 황폐해진 모습이 더욱 드러납니다. 서로를 돌보기보다 자신을 성장시키는데 급급한 라다크. 이제 산업화로 잃어버린 전통 사회를 복원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도 걸어왔던 길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가야 할 길은 명확합니다. 라다크도 그렇고, 우리 전통 사회를 지탱해 온 힘은 공동체 문화에 뿌리내린 친밀한 유대관계였습니다. 여전히 이웃이 필요한 사회에서 삶의 지혜가 빛을 발합니다. 삶의 지혜는 공동체의 물적 가치보다 삶의 가치를 더 드러내게 만듭니다. 앞으로 혼밥족 혼술족이 더 늘어나더라도 소외가 아닌 즐거운 선택이기를 바랍니다.
아, 스님 한 분 이야기를 하고 마칩니다. 제가 지난번 ‘제4회 마을만들기 충남대회’ 조직위원장을 하면서 고민한 것 중 하나가 대회에 참석한 분들의 식사 문제였습니다. 리조트에서 대회를 하다 보니까 식사비가 싸지 않았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장소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야외마당에 이동식 식당을 만들기로 했는데, 그때 생각난 분이 남원의 어느 사찰 스님이었습니다. 저는 스님 법명도 사찰 장소도 모릅니다. 다만 연락을 하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몇백 명분의 짜장면 재료를 가지고 나타나서 맛있게 요리를 해주고 사라지는(?) 모습만 기억할 뿐입니다. 대회 장소에 400명 정도 식사를 부탁하고 약간의 재료비만 드렸을 뿐인데 어김없이 오셔서 즐겁게 짜장면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지요. 유쾌하면서 맛있는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모두 짜장면 한 그릇을 통해 친밀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저도 짜장면을 먹으면서 여전히 이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