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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시기적으로 일교차가 크다 보니까 아침에 안개가 자욱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앞을 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요즘은 이상기온과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한 날씨가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등교하는 아이들을 태우기 위해 길을 나서면 안개 때문에 답답합니다.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은 조급해지고요.
신호등도 안개 때문에 보이질 않습니다. 길을 가로지를 때는 무척 위험해서 눈을 부릅뜨고 핸들 잡은 손에 힘을 주면 머리도 아픕니다.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는데 그 길을 가기가 이렇게 힘 든다니. 그러나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 힘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데···. 날마다 이렇게 안개가 자욱하다면 도대체 운전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안개 낀 모습은 농촌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날마다 안개 낀 농촌의 길을 헤매다보면 안개보다 더 암울하게 길을 잃어버린 농촌의 모습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잠시 안개가 갠 거리에서는 희망을 품다가도 다시 갇혀버리면 멈춰 서서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도 태양이 떠오르고 살랑 바람이 불어 안개가 걷히는 해피엔딩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야 할 길도 분명히 보이고, 신호등도 확실하게 표시를 해주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렇게 희망을 품고 있으면 농촌도 밝아질까요?
아무튼, 안개 속에서도 학교는 그 자리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줄어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아이들 발걸음 소리는 안개의 답답함을 물리치는 힘이 있습니다. 마을에는 있어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 학교는 말할 나위가 없죠. 학교가 있다는 것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고, 아이들은 우리 모두 계속 길을 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충남 보령시 천북면 낙동리에 있는 낙동초등학교.
위태하면서도 여전히 희망의 학교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뛰놀다 보니, 어여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학교에 한 번도 와보지는 않았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에게 사랑의 샌드위치를 전달한 손길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샌드위치 빵을 펼쳐놓고 잔치를 열었습니다. 즐거워하는 아이들 모습에서 빵은 위대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 가운데 예수님이 보리떡(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셨다는 이야기는 늘 재미있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저 자신도 포만감에 쌓였으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농촌에서 살아보니 예수님이 하신 일들 가운데 먹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참 마음 뿌듯합니다. 사람의 생활에서 중요한 요소들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래도 먹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는 생각은 다들 비슷하겠지요. 하나 마나 한 말을 덧붙이자면 이렇습니다. 먹지 않으면 죽으니까….
아무튼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은 이야기를 좀 찬찬히 되짚어보면, 오병이어 사건은 거룩한 사건이라는 것을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 오병이어의 사건 아래서도 오늘 많은 사람이 여전히 먹을 것을 확보하지 못해 힘들어하거나 굶주리는 이유가 무엇일까도 생각해 봅니다. 사실 오병이어의 출발점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애달픈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날이 저물도록 열심히 이야기하시는 예수님께 제자들이 건의합니다. “밥 먹고 합시다!” 어쩌면 이 말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서 나온 말이기도 하겠지요.
배고파서 밥 먹고 하자는 데는 다른 말이 필요 없지요. 장중한 회의도 밥 먹을 시간이 되면 흐지부지되는데, 하물며 여러 사람이 모인 빈 들에서는 말할 것이 없겠지요. 예수님도 시장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씀에 사실 제자들이 당황합니다. 뻔히 아는 상황인데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니 답답하기도 하고, 또 얼핏 계산해도 많은 돈이 있어야 하는데 엄두도 나지 않고요.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엄두가 나지 않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말합니다. “그러면 너희가 가진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아니, 오늘 우리에게는 이렇게 물으시겠지요.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이냐?”
빈 들. 농촌은 황량한 빈 들입니다. 그 빈 들의 시들시들한 배추밭 고랑 사이를 거닐다 보면 아무래도 ‘밥 먹고 합시다!’라는 말이 농민들이 외치는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밥 먹고 하자’고 외치는 이들이 여럿 있습니다. 간절하고 절박하지만, 그중에서 농민들의 목소리는 절실하면서도 아이러니합니다. 밥을 만들어 내는 농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밥 좀 먹어보자’고 외치는 형상이라니. 그렇지 않나요? 농민들이 밥 먹고 살 수 없다면 누가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농촌의 형편은 마치 날이 저문 빈 들에서 배고파하는 무리와 같습니다. “밥 좀 먹읍시다!”라는 소리가 점차 커지는데 도대체 어디에다 구원의 손길을 요청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한 형편입니다.
황량한 빈 들에서 힘을 잃어가는 동안, 지금 세계적으로 농업도 철저하게 투자나 지원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시스템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게 산업으로서 경쟁력을 요구받고 있는 농업의 모습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농업의 주도권 또한 철저하게 농민들의 손에서 떠난 상황입니다. 농민들 스스로 농업에 대한 힘을 가질 수 없습니다. 모르죠. 어떤 변화의 전환점이 생겨서 철저하게 소규모 지역순환 경제 속에서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이 이루어진다면 농민들도 식량 공급의 주역으로서 당당함을 가질 수 있을는지요. 실제로 그런 소규모의 자급자족 공동체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담은 영상을 가끔 볼 때도 있긴 합니다만, 그러나 현실의 농촌의 모습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더더구나 우리 사회처럼 농업 부문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은 그저 황량한 빈 들의 크기를 더 늘려줄 뿐입니다.
지금 지구 상의 모든 선진국은 농업 부문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를 통해 자기 나라의 농업 기조를 유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선진국들만 곡물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고, 제삼 세계 국가들이나 그 외 나라들은 곡물을 수입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많은 나라는 자기 나라를 지탱하는 농업을 잃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계 곡물 시장 시스템이 다국적기업에 의해서 철저한 영리 목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들이 설사 자국 내 농업에 대한 저변 확대를 꾀하려고 해도 거의 실효를 거두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농업도 수익에 따라 퇴출 여부를 평가받는 현실이고, 돈도 안 되는 쌀을 붙잡고 있지 말자는 이야기도 자주 나옵니다. 전경련이 개최했던 한 세미나에서는 우리나라의 농토를 현재의 2% 수준으로 축소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윤이 많은 산업 분야를 위해 상대적으로 이윤이 떨어지는 농업을 축소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지요.
그러나 한정된 지구 위에서 지속 가능해야 하는 일을 자본이 감당할 수 있을까요? 지속 가능한 일이란 대체로 수익을 올리기보다 함께 누리고 나누는 일이 많을 텐데, 그것은 자본의 입장에서 어려울 것입니다. 먹는 일은 지속 가능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그 일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돈줄에 사로잡힌 식량 위기는 핵폭탄보다 인간의 존재를 더 비참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농촌이 회복의 길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우리 농촌이 여전히 배고프다면 여러 이름으로 종말은 다가올 것입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제자들처럼 예수님 앞으로 나가야겠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예수님 앞에 선다면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어떤 것일까요? 아니, 그보다 더 작고 작은 것이라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솔직히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이냐?”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이런저런 몸짓을 해보지만 당황하는 제자의 모습이 바로 제 모습인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빈 들을 헤매면서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숨소리밖에 없군요. ‘밥 먹고 합시다!’ 힘없이 소리치는 그들 옆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것. 그것만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힘이 없는 저는 안개 속에서도 함께 숨 쉬고 싶습니다. 심한 안개로 신호등마저 흔들리는 길 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양옆, 일 미터 낭떠러지 논길을 더듬더듬 다녀왔습니다. 아직 이른 날씨인데도 땀에 옷이 후줄근합니다.
안개가 심한 날이 늘어가지만, 그래도 저렇게 샌드위치를 생명의 빵인 양 집중하는 아이들 모습에서 희망을 건져 올립니다. 아이들에게 사랑의 샌드위치를 전달한 손이 저 아이들의 손에서 손으로 더 커지기를 소원합니다. 아이들 품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밖으로 나와서 우리 모두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빈 들에서 누구라도 맛있게 먹으면 좋겠습니다. 맛있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