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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과 의사 울프는 한 지역에서 일하는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이곳 지역 사람들은 심장병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울프는 흥미로움을 갖고 그 마을을 찾아갔고, 그 마을과 이웃 마을의 7년간의 사망통계를 비교분석 했습니다.
두 지역의 사람들 55세~64세 사이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두 지역은 확연하게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웃 마을의 심장병 사망은 미국의 평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로세토 마을 주민들의 심장병 발병률은 미국 전체 평균의 절반 이하로 나타났습니다. 건강을 다루는 사회학자나 심장병학자들이 큰 관심을 갖게 된 이유입니다.
더구나 그 마을은 이탈리아 이주민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65세 이상의 노인들의 심장병 사망률도 다른 지역에 비하여 3분의 1이나 낮았습니다. 울프의 연구 결과는 전국적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마을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동부지역의 로세토(Roseto)입니다. 로세토는 1880년대 이탈리아 남동부의 ‘Roseto Valfortore’라는 마을에서 이민 온 이들로 구성됐습니다.
그런데 울프의 조사를 보면, 로세토 사람들의 생활습관은 오히려 심장병에 걸리기에 딱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먹는 음식이나 흡연, 술 등은 미국 내 다른 마을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소시지와 미트볼 등 혈관질환의 원인이 되는 음식을 과도하게 섭취하며 주민 상당수가 음주를 즐기는 걸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이유로 심장병 발생이 적었을까요?
울프가 보기에는 수수께끼와 같은 일이었습니다. 연구의 결론은 먹는 음식이나 생활습관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가 해답이었습니다. 소득·주거환경·의료시설·음식 등 통상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이웃마을과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로세토 마을의 유독 높은 이웃 간 유대감과 강한 응집력이었습니다.
이 마을의 특별한 점은 니스코 신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건강한 공동체 문화였습니다. 니스코 신부는 극도로 적은 임금을 받는 채석장 근로자들을 모아 노조를 만들고 스스로 노조위원장이 돼서 파업을 이끌기도 한 열정적 인물이었습니다.
이 마을에선 누군가가 죽으면 모든 주민이 애도하며 남겨진 자녀들을 함께 돌보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돈을 쓰고 공동체에 관심 없는 이들은 무시했습니다. 삶의 조건이 열악했지만 상호존중과 협동을 기초로 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건강하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울프는 이것을 ‘로세토 효과’라고 했습니다.
로세토 효과는 건강한 삶이 유대감과 응집력에 기초한다는 윌킨슨의 연구에서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윌킨슨에 따르면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로세토 마을은 행동이나 옷차림에서 부자나 가난한 사람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했습니다. 지위가 높거나 부자라고 해서 이웃을 무시하지 않았고 서로 배려하는 유대감이 높았습니다.
이런 마을 분위기는 삶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심장병이나 돌연사에 따른 사망률이 다른 마을과 비교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로세토 효과는 건강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7년간 연구가 진행되던 시기에 이 지역의 범죄율은 '0'이었고, 공공 부조를 신청한 사람도 전무했습니다.
그러나 60년대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로세토 마을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습니다. 60년대를 기점으로 점점 자본주의 이념이 마을에 들어오고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심장병 사망률은 결국 이웃 마을과 비슷해집니다.
로세토 마을 이야기는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중요한지 질문을 던집니다.
행복한 마을의 힘은 마을 내에 있습니다.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상호존중과 배려만으로도 마을은 놀라울만큼 행복해집니다. 마을만들기의 핵심은 행복한 마을입니다. 마을만들기가 억지로가 아닌, 스스로 행복해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길로 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