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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십 년째 충남 보령시 천북면에 있는 낙동초등학교 스쿨버스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낙동초등학교에 관하여는 가끔 글을 썼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잠깐 설명을 한다면 농촌에 있는 통폐합 대상 학교였다가 지금은 잠시 그 통폐합 대상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낙동초등학교라고 하니까 많은 분이 낙동강 변에 있는 학교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 보령은 낙동강과는 거리가 아주 먼 서해 지역입니다.
왜 낙동초등학교 이야기를 하느냐면, 요즘 제가 농촌여행(마을여행)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지난 가을부터 실제로 농촌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촌여행과 농촌 초등학교? 그렇습니다. 농촌 초등학교도 농촌의 당당한 여행자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농촌여행은 지역의 모든 환경이 볼거리라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특히 작고 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사실은 더 농촌을 빛내고 있고, 나아가서 감동을 이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늘 곁에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농촌학교인 낙동초등학교는 특히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2006년 겨울에 통폐합 대상 학교가 되면서 지역 주민과 학부모들이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잘 무마하면서 아이들 중심으로 학교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멀리서도 학교에 올 수 있도록 자원해서 등하교 차량 운전을 했습니다. 아침에 한 시간, 오후에는 가끔 바다에서 아이들과 놀다 가느라고 한 시간 반이 걸릴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KBS에서 다큐멘터리 ‘천상의 수업’ 1부와 2부를 만들었고, 여러 방송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취재했습니다. 학교에 전교생 합창단이 만들어졌고, 입학 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과정이 만들어진 것은 지금도 기쁨입니다. 저는 여전히 스쿨버스 기사지만, 아이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난 십 년 속에는 저와 함께 운전했던 낙동초등학교 총동문회장인 (고)이종철 님이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아주 슬픈 일도 있었고, 슬픔 속에서도 3년 전에는 통폐합 대상 학교에서 벗어나는 보람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물론 농촌의 현실에서 학교 통폐합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게 깔렸긴 합니다.
언제부턴가 낙동초등학교는 저를 통해서 천북면에 오는 사람들이 한 번씩 들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운동장에 푸른 잔디가 깔렸고, 한쪽에 소나무가 모여서 그늘을 만들어주는 학교 모습은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의 시작입니다. 1학년 교실부터 둘러봅니다. 아이들이 자리를 비울 때는 의자에도 앉아보면서 옛날로 돌아갑니다. 바이올린 연습실도 가보고, 피아노 연습실도 가보고, 작은 도서관도 가보고, 유치원도 바라보면서 이렇게 좋은 학교가 아이들이 있는 동안 잘 존속되기를 소망합니다.
농촌여행자들은 학교를 나오면서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어디서 학교를 오는지?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고 학교를 지역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등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학교를 중심으로 한 농촌공동체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농촌의 생명력은 공동체에 있습니다. 농촌도 요즘엔 눈에 보이게 공동체가 무너져가고 있지만, 그래도 이만큼 버티고 있는 것은 여전히 공동체를 기반으로 농촌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역에서 잘 모를 것 같은 사람들도 서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천북면은 행정 통계로 인구가 약 3,800명 정도입니다. 조금 지난 통계니까 요즘엔 변동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어느 지역 누군가가 궁금해서 물어보면 대번에 그이의 팔촌까지 이야기가 술술 나옵니다. 함께 살아온 시간이 허투루 지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각인돼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낙동초등학교 유지를 위해 그동안 많은 사람이 수고를 한 것은 지역공동체를 위해 학교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농촌에서 학교는, 졸업하고 그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렀다고 해고 결국 다시 모이는 장소입니다. 지난 10월 3일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낙동초등학교 모든 동문이 모이는 날이었습니다. 예전에 학교에 다닐 때의 모습으로, 또 지금은 무척 연로해지셨지만 학부모 모습 그대로 부모님들도 같이 모였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함께 살아가는 것이, 그리고 농촌에서 왜 공동체가 중요한가를 저절로 알게 됩니다.
지금 농촌은 모든 것이 해체당하고 있습니다. 60년대 말부터 시작된 농촌 공동체 붕괴가 산업화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면, 지금의 농촌 공동체 붕괴는 농업정책에 따른 영향이 큽니다. 현재 농업정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규모를 극대화해 소득증대를 이루는 기업형 농가이지, 생산성이 낮게 취급되는 소농이나 마을공동체가 아닙니다. 결국, 생산성과 경쟁력 중심의 농촌이 우선 고려 대상이 되면서 그렇지 못한 다른 것은 부차적이게끔 만들었습니다. 농업이 산업화의 길로 가면서 지속 가능한 농촌이나 마을공동체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전환의 시대에 서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불안한 삶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농촌이야말로 지속 가능하며 참된 인간성 회복의 대안공간이고 참된 삶의 뿌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공동체는 그런 터전의 근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농촌 공동체를 유지해 갈 수 있을까요? 그 첫 번째 노력을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학교의 회복에 쏟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농촌 지역에서 학교는 문을 닫았고, 운동장은 옛 모습도 없이 풀만 무성합니다. 그래도 아직 아이들이 있고, 학교가 있는 농촌은 작은 희망에 온 힘을 모아 매달려야 합니다. 학교가 없어지면 돌아올 사람이 없습니다. 특정하거나 소수의 사람에 편중된 농촌은 욕망의 덩어리로 남을 뿐입니다. 농촌에서 학교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모여서 같이 먹고, 뜀박질도 하고, 웃기도 하고, 남을 헤아릴 줄도 압니다. 삶의 충만함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초고령화에 속해 있으면서도 자잘한 아이들을 통해 사랑을 내보이고 용기를 키울 수 있습니다.
이런 학교를 보여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있는 천북면에 사람들이 오면, 수목원의 자연 속에서 커피 한 잔 나누고 학교로 갑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모두 마음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낙동초등학교는 농촌여행의 첫 번째 장소입니다. 학교에서 나오면 다음 장소는 이미 즐거운 마음으로 향합니다. 농촌여행은 보고 즐기기도 하지만, 감동을 몸으로 누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학교는 농촌여행의 첫 번째 장소로 정말 좋은 곳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방문하는 사람들을 통해 농촌의 좋은 학교가 곳곳에 전파되기를 바라며, 농촌 학교도 스스로 공동체 터전으로 자부심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2년 전에 전라북도 임실에 있는 마암초등학교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마암초등학교는 섬진강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용택 선생이 1997년부터 2002년까지 교사로 근무했던 곳입니다. 그때는 마암초등학교가 아니라 마암분교였는데, 김용택 선생이 아이들과 즐겁게 놀면서 함께 쓴 시(詩)가 책으로 나오고, 또 KBS 인간극장에 방영되면서 널리 알려진 학교이기도 합니다. 16명을 오가던 분교가 그 후 2005년에 학생 수 증가로 초등학교로 승격되었고, 지금은 전교생이 75명인 학교가 되었습니다. 주변에는 경관이 아름다운 옥정호가 있고,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전교생의 삼 분의 이 정도 학생이 인근 전주시에서 옵니다. 꼭 풍경 때문에 아이들이 늘어난 것은 아니겠지요. 농촌의 학교가 갖는 자연 친화적인 모습과 인성과 감성이 풍부한 교육 때문에 부모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아이들을 이 학교로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만 졸업하면, 이런 교육 분위기를 이어갈 상급학교가 없어서 다시 도시의 상급학교로 아이들이 간다는 이야기는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학교가 내적으로만 움직인다면 지역과 공동체 기반을 만드는 연결성이 없어지니까요.
제가 있는 천북면은 주위에 대도시가 없기도 하지만 스스로 길을 가야 합니다. 결국 학교란 그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공동체를 든든한 후원자로 삼고 가야 합니다. 현재 천북면 천북중학교 교장선생님은 이런 점에서 대단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어우러져서 조금이라도 더 농촌 공동체 존속의 밑바탕이 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농촌공동체는 곧 건강한 생명의 디딤돌입니다. 기업형 농가는 이윤이 되는 먹을거리 위주의 생산에 중점을 두지만, 건강한 농촌공동체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합니다. 김장철이 다가옵니다. 여러분들이 먹는 배추 한 포기마다 농민들의 땀, 그리고 간절한 마음이 배어 있습니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듯이 배추를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것 또한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장주의자들에게 농산물은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농산물을 오직 상품가치로만 보면 농업이 지닌 다원적 가치는 철저하게 가려집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쌀이 자유롭게 수입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은데, 쌀을 수입하면서 논의 다원적 기능을 함께 수입할 수는 없습니다. 논의 다원적 기능이란 상품화되지 않는 생태보전, 산소공급, 홍수조절기능 등을 말합니다. 농촌 마을의 진정한 가치는 이런저런 다양한 형태의 다원적 기능이 함께 공존하는 데서 나옵니다. 농촌공동체가 유지될수록 농촌 마을의 순기능(順機能)은 그 힘을 잘 발휘합니다.
농촌에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여러 가지가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학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농촌 학교의 통폐합이나 폐교 문제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공동체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엔 생태적 접근도 들어있고,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도 들어 있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이런 모습을 멋진 여행 상품(?)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하늘과 바다와 산과 논과 밭이, 아이들 소리와 어울리고 주름이 파인 농부의 미소와도 어울리는 이런 모습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숲 속엔 커피도 있고, 고구마라떼도 있고, 국화 차도 있고, 쑥개떡도 있고, 그렇게 어울리다가 방금 막 농부의 손으로 만진 서리태 콩도 사고, 황토에서 끄집어낸 고구마도 사고, 벌꿀도 한 통 집어 들면서 늦은 오후 빨갛게 물드는 일몰의 풍경을 가슴에 새긴다면 정말 잊지 못할 여행이 될 것입니다.
분명히 지금 농촌은 절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저 자신도 언제까지 이렇게 아이들을 태우고 다닐 수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고맙고, 또 이런 일이 조그만 씨앗이라도 되어 서로 힘을 모으는 공동체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농촌이 단지 힘든 곳이 아니라 놀라운 기쁨이 솟아나는 곳, 그래서 언제라도 가보고 싶은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듯이 농촌 구석구석을 누비며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보물을 한 아름 안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불안한 사회 속에서 무엇인가 대안이 되는 삶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 스스로가 가지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삶은 농촌이든지 도시든지 상관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알려줍니다. 그래서 도시에서도 협동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마을을 이야기합니다. 농촌공동체는 정책에 의해서 유지되지 않습니다. 망가뜨리는 것은 정책이 할 수 있어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몫입니다. 마른 땅에서도 작은 꽃이 피어나듯이, 아이들 웃음소리를 소중하게 보듬고 농업의 다양한 가치를 살려내다보면 어느새 튼실한 희망이 곁에서 함께 할 것입니다.
*(추가) 현재 실시되고 있는 농촌여행 프로그램 안내
① 천북면 도착 – 신죽리수목원에서 커피 한 잔 나눔
② 점심 – 마을식당에서 ‘시골밥상’
③ 여행(1) – 낙동초등학교 방문
④ 체험(1) – 천북 전통옹기 체험
⑤ 여행(2) - 천북면 학성리 공룡의 섬
⑥ 여행(3) - 1866년 병인박해 현장
⑦ 여행(4) - 충청 수영성 성곽 길 산책
⑧ 여행(5) - 천수만 일몰 따라서 해변 드라이브
⑨ 저녁식사 – 바닷가에서 어부의 만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