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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마음의 기적이런저런글 2015. 1. 11. 00:55
제가 고정으로 글쓰기 하는 곳 중, ‘공동선’이라는 격월간지가 있습니다. 공동선에는 여러 좋은 글들이 실리는데, 그중 서영남 선생이 인천에서 운영하는 ‘민들레국수집’ 이야기는 늘 감동을 줍니다.
민들레국수집은 2003년 서영남 선생이 수도자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운영하는 무료식당입니다. 정부지원도 받지 않고, 생색내면서 주는 돈은 더욱 받지 않고, 어떤 조직도 만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기대면서 배고픈 사람들이 눈치 보지 않고 공짜로 맘껏 밥 먹을 수 있게 하는 아주 조그마한 식당입니다.
민들레국수집도 가진 것이 없으므로 자원봉사하는 분들의 손길이 무척 필요한 곳입니다. 처음에는 여섯 명이 앉으면 꽉 차는 식탁 하나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스무 명이 넘게 식사할 수 있는 식탁을 가진 장소를 두 군데로 늘렸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식사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줄을 서지 않습니다. 노숙인이나 배고픈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줄에서 가장 끝에 있는 꼴찌들입니다. 줄서기 경쟁에서 밀려 뒤로 처진 이들을 또다시 줄을 세워 선착순으로 순서를 정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님이 많아서 기다려야 할 때의 식사 순서는 무조건 제일 많이 굶어 제일 배고픈 사람입니다. 꼴찌를 배려해서 먼저 밥을 들게 하면, 먼저 식사하는 사람은 뒷사람을 배려해서 가능한 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배부르게 됩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이런 모습에서 아주 조금만 도와주면 살아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봤습니다. 그래서 ‘민들레 집’을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돈을 모아 보증금 백만 원에 월세 십만 원 정도의 단칸방 하나 얻을 수 있는 돈이 마련되면, 노숙인 한 분에게 방 하나씩 얻어주고 개개인이 따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다려줍니다. 서서히 변화되는 것을 서서히 기다려 줍니다. 지금은 어느새 서른 명이 넘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가난하거나 고아로 버림받고 자라서, 아니면 경쟁사회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짓밟힘을 당하고 결국에는 가족마저 떠나서 노숙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를 귀하게 여겨주는 남을 만나면 변합니다. 그때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5주년을 기념해서 2008년에는 공부방에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민들레 꿈 공부방’을 열었고, 이어서 ‘민들레 어린이 밥집’을 열었습니다. ‘민들레 책들레’라는 작은 어린이 도서관도 열었습니다. 어린이 밥집과 작은 도서관은 동네 아이들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학교 공부가 끝나고 오후 4시 반까지는 언제든지 간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4시 반 이후에는 집에서 저녁을 먹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2009년에는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를 열었습니다. 술에 취해 있지만 않으면 노숙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입니다. 어느새 회원 수가 2,400명이나 됩니다.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도록 하고, 새 양말을 줍니다. 낮잠도 잘 수 있고 샤워도 할 수 있고 빨래도 할 수 있고 컴퓨터도 이용할 수 있고 책도 볼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간단한 독후감을 발표하면 장려금 3천 원을 줍니다. 하루 평균 50~60 여명이 독후감을 발표합니다. 매월 인문학 강의도 엽니다.
2010년부터 민들레희망지원센터에서 격주로 월 2회 민들레진료소를 열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는 이들 가운데는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병으로 계속 약을 먹어야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민들레 치과 진료도 시작했습니다. 2011년에는 ‘민들레 가게’를 열었습니다. 노숙하는 사람들에게 옷을 선물합니다. 운동화와 속옷, 그리고 허리띠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리고 여름옷을 모아서 필리핀 가난한 아이들에게 보냅니다. 2012년에는 ‘필리핀 스콜라쉽’을 시작했습니다. 빠야따스 지역의 백여 명의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110명으로 늘었습니다. 2014년부터 필리핀 마닐라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민들레국수집과 장학사업과 공부방을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가정의 집을 수리하는 일에도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서영남 선생의 전 재산인 300만 원으로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제 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쓸데없는 짓 한다고도 말할 것입니다. 또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나느냐고 궁금해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정말 가난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자기가 먹은 것에 미치지 못하지만, 주머니 속의 돈을 놓고 가기도 했고, 우연히 밥을 먹으러 왔다가 자원봉사자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래저래 사람들의 발길이 닿으면서 밥그릇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가난한 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눈에는 그저 신기할 뿐이고,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참여하는 이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꿈은 예수처럼 낮아진 사람들 속에서,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는 내 자리에서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