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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동수 씨의 마음으로"
동수 씨가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헛기침하는 목소리는 벌써 떨립니다. 더구나 조금 전까지 내린 눈 때문에 몸까지 떨리는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침을 삼킵니다. “이렇게 좋은 집을 미천한 저에게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살겠습니다.” 순간 미천하다고 스스로 깎아내리는 동수 씨의 말에 몸이 움찔거렸습니다. 왜 미천하다고 자신을 표현했을까? 의도하지 않게 그냥 나온 말일까?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사를 하는 동수 씨의 얼굴이 추운 날씨 때문인지 더 작게 보였습니다.
우리 지역에 있는 대기업에서는 해마다 한두 가정을 선정해서 사랑의 집을 지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규정을 만들어 기금을 모으고 회사가 일정 부분을 지원해줘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조립식 집을 지어주는 것입니다. 이번 입주식에서 진행자가 보고하는 것을 들으니 건축비가 약 3,200만 원 정도가 들어가더군요. 적지 않은 돈이지만, 직원들이 꾸준히 마음을 담아서 돈을 모으고, 또 여기에 동참하는 이들이 있어서 이렇게 집이 완공되면 제법 분위기 있는 모습이 됩니다.
십 년 전에 우리 마을에 온 동수 씨는 그동안 마을 안에 버려지다시피 한 집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아들과 딸도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연락도 되지 않습니다. 아마 동수 씨가 그동안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보니 어느 틈에 자녀와 연락이 두절되고 서로 어디 있는지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동수 씨는 비록 혼자 살지만, 마을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늘 마다치 않고 최선을 다해 돕곤 했습니다. 일손이 필요한 농촌에서 동수 씨의 존재는 듬직했습니다.
마을 이장님은 이런 동수 씨를 위해서 사랑의 집 입주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선정되기까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지원하는 사람도 제법 됐지만, 집을 짓기 위해서는 땅이 있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모든 허가 절차는 똑같습니다. 집이 없는 동수 씨가 땅을 갖고 있을 리는 없지요. 아마 사랑의 집을 신청하는 대다수의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신청 절차가 수월하지 않자 이장님이 결단을 내렸습니다. 본인의 땅을 내주기로 말이지요. 그동안 농촌에서 살면서 농민들이 땅에 대해 갖는 애착(愛着)의 마음을 충분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장님의 결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 때문에 이장님은 감사패를 받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여러 절차를 거쳐서 동수 씨가 사랑의 집 입주 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집이 완공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 9월에 결정이 됐는데, 그동안 행정적 절차와 건축 기간까지 석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습니다. 마무리 공사까지 끝나자 12월 3일(수) 오전에 사랑의 집 입주 행사를 했습니다. 동수 씨가 입주하는 집은 사랑의 집 10호점입니다.
마을 부녀회가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동수 씨를 위해서 장도 보고, 떡도 만들고, 집들이 준비를 했습니다. 기업의 직원들도 입주 행사 절차를 위한 준비를 철저히 했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문제였습니다. 12월이 되자마자 급속히 추워지더니 눈이 제법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3일 오전까지도 눈이 내려서 나이 많은 마을 노인들은 미끄러운 길 때문에 입주식에 오지 못했습니다. 걱정됐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입주 행사 시간이 되자 눈도 멈추고 바람도 멎었습니다.
풍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의 농악대가 축하 곡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흥을 돋웁니다. 보고 있노라니 몸과 마음이 저절로 움직입니다. 돌아보면 모두 내 일처럼 열심입니다. 집 안에서는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밖에서는 분위기를 만들어갑니다. 지자체장인 시장님도 오고, 기업체 대표, 조립주택 시공사 사장, 마을 부녀회장, 새마을지도자 등 모두 모였습니다. 입주식 행사를 시작하자 돌아가면서 축하와 격려를 한마디씩 하고, 드디어 집주인으로 첫날을 맞는 동수 씨가 나서서 감사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마이크 앞에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고마운 인사를 드리는데, 동수 씨는 자신을 미천하다면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미천(微賤)은 사전 용어로 ‘신분이나 지위 따위가 하찮고 천하다’는 뜻이 있군요. 여러 생각, 무엇보다도 우리가 아직 동수 씨의 마음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십 년 동안 어쨌든 마을에서 함께 살았고, 이렇게 모두 동수 씨의 집을 마련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서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는데, 동수 씨는 자신을 미천하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언제 동수 씨에게 왜 그때 그렇게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어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겸손해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의상 그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설령 동수 씨가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말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동수 씨의 삶에 좀 더 가까이 가지 못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사랑의 집 입주식도 마치 동수 씨를 수혜자로만 여기고, 우리는 은연중 베푼다는 마음으로 임하는 것처럼 그런 모습을 들켜버린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주면 동수 씨가 좋아할 테고, 그 또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그런 마음도 함께 말이지요.
동수 씨에게 사랑의 집이 필요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몸이 쉴 집도 필요하지만, 마음이 쉴 집도 필요합니다. 행복한 집은 마음마저 쉴 수 있는 집이 아닐까요. 미천하다는 동수 씨가 미천함에서 나올 수 있으려면, 이 집이 특별히 선택받은 동수 씨의 몸만 머무르는 집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방과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는 걸 말할 때, 우리는 ‘역지사지’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사실 역지사지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역지사지가 인간다움의 특징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인간다움이라는 게 공부를 많이 했다든지, 사회적으로 출세했다든지, 또는 교육자나 종교인이라고 해서 당연하게 가능한 모습은 아니겠지요. 동수 씨를 보니 내 모습과 우리 사회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 발생도 처지를 바꾸어서 상대편을 이해하는 능력이 거의 마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다움이란 이 마비가 풀린 상태입니다. 정치나 경제, 사회적 가치에 사람의 모습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소중함으로 다른 것들이 변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동수 씨의 한 마디에 움찔거린 것도 그것입니다. 여태까지 사랑의 집에 수혜자인 동수 씨를 맞춰서 생각했는데, 인제 보니 동수 씨를 중심에 두고서 그가 단순히 선택받은 수혜자가 아니라 당당한 집 주인이라는 인식을 가졌어야 했습니다. 물론 많은 분의 마음이 훌륭했습니다. 이장님은 자기의 땅을 내놓았고, 기업의 담당자는 적지 않은 시간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응원하고, 행사 당일에는 손님 접대에 열심히 수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동수 씨는 한쪽에서 움츠려 있었습니다. 환한 시장님의 축하 말에, 자신감 있는 기업 대표의 격려에, 열심히 손뼉 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그리고 내리는 눈을 맞고 있으려니 수혜자로서 목소리도 떨리고 더욱 움츠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동수 씨의 처지를 알 턱이 없지요. 그저 좋아하려니 생각만 했으니까요. 이렇게 좋은 상황에도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데, 하물며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일이라면 상대의 마음은커녕 모든 것이 일방적이겠지요. 역지사지가 인간다움의 특징이 되기 위해서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모습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로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헤아려주는 모습 말이지요.
지난가을이 끝나갈 무렵, 아버지가 중한 수술을 받았습니다. 온종일 수술대 위에 계시다가 중환자실에서 몸을 어느 정도 회복한 후 병실로 옮겼습니다. 암 환자가 많은 큰 병원입니다. 병구완을 하는 사이사이 이곳저곳을 둘러봤습니다. 팔순도 훨씬 넘을 것 같은 할아버지가 몸도 가누기 힘들 텐데 뼈만 앙상한 아들의 손을 꼭 쥐고 천천히 걸어가는 것을 봤습니다. 다른 때도 쉽게 지나치지 못했을 테지만, 아버지도 저런 수술을 받고 힘겨워하고 있는지라 갑자기 가슴 속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픔이 마음에 가득 차면서 몸은 차분해집니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작은 것 하나도 진지하게 대해집니다. 어떤 분이 지나면서 요구르트 한 병을 주고 갑니다. 모두 눈빛이 따뜻합니다. 동병상련이라고 해야겠지요.
내 옆의 아픈 사람이 내 몸 같아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모습이 병원에만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있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후유증이 국론 분열로 갈 이유도 없고, 대한항공 비행기가 땅콩 매뉴얼 때문에 램프리턴 할 이유도 없습니다. 나이를 조금씩 먹다 보니 세상의 변화는 경제의 발전이나 과학의 발전, 또는 사회의 진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지식보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지혜를 갖지 않으면 진정한 세상의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공동선의 지혜는 마음에서 출발해 삶으로 이뤄집니다. 마음을 열고, 서로를 기억하는 데서 지혜는 충만해집니다. 잊지 않으니까 오늘 해야 할 일이 늘 새롭습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로란 노드그렌 교수 연구팀은, 5시간 동안 냉동실에 앉아 있으면 얼마나 괴로울지 예측하는 실험을 3그룹으로 나눠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얼음물이 담긴 양동이를 안은 채, 두 번째 그룹은 따뜻한 물을 받은 채 질문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그룹은 10분간 얼음물을 안고 있다가 10분간 온기를 쬐고 다른 질문에 응답한 후 냉동실 질문을 다시 받았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얼음물과 따뜻한 물 그룹 중에는 예측한 대로 얼음물 그룹이 냉동실 안의 고통에 더 공감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반응은 세 번째 그룹이었습니다. 이들은 10분 전까지 추위에 떨었지만, 그 고통을 더는 기억하지 못한 채 따뜻한 물 그룹과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늘 지금 내가 중심입니다. 병원에서 따뜻했던 눈빛이 어느 틈에 사회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도 귤 하나 더 먹으라고 내밀던 손이 껍질까지 다 가져가 버릴 수 있습니다. 병원의 아버지를 통해서, 마을공동체 안의 동수 씨를 통해서 역지사지, 동병상련, 이 모두 공동선의 지혜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2015년입니다. 저마다 꿈을 꾸면서 새로운 세상을 그립니다. 2015년을 맞는 저의 바람 중 하나는 동수 씨와 마을공동체가 서로의 처지를 잘 헤아리고 더 돈독해지는 것입니다. 나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동수 씨 마음으로 마을공동체 안에서 절대 미천하지 않고, 은연중에라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게 함께 살아가는 꿈을 꿉니다. 어디 우리 동수 씨뿐이겠습니까?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많은 동수 씨가 어떤 경우에도 미천하지 않도록 서로를 헤아리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를 꿈꿉니다. 어렵다고 지레 포기하지 말고 서로의 처지를 헤아리기 시작한다면 마음 아픈 대한민국의 문제들도 조금씩 해결이 될 것입니다. 공동선의 지혜는 어느 한쪽에만 자리 잡아야 할 것은 아닙니다. 이제라도 그동안 닦지 못했던 그 많은 눈물이 닦이는 2015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수 씨에게 한 마디. “동수 씨! 다음에는 어느 때라도 마이크 앞에 서면 그 흥얼거리던 노래부터 한 곡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