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뉴스를 보면서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를 간 우리 청년들 이야기였습니다. 워킹 홀리데이는 나라 간에 협정을 맺어 젊은이들로 하여금 여행 중인 나라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해주는 제도입니다.
제가 본 뉴스 화면에는 호주 퀸즐랜드의 한 농장에서 우리 청년들이 말없이 딸기를 따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이 농장에만 3백 명의 우리 청년들이 와 있다고 했습니다. 왜 이 농장에 이렇게 많이 와 있을까요?
딸기 농장주의 말을 들으니 자기들 입장에서는 워킹홀리데이 제도가 매우 필수적이라는 군요. 한국, 대만 등의 외국인이 없으면 농장의 과일을 딸 사람이 없답니다. 호주도 최근 30년 사이 젊은 층의 3분의 2가 농촌을 떠났고, 그래서 호주 정부는 정책적으로 워킹 홀리데이 제도를 통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청년들을 무제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온 이십여 만 명이 일자리 경쟁을 벌이고 있고, 그 결과, 호주의 농장 급여는 대부분 10년째 제자리이고 이 또한 천차만별이라고 합니다.
뉴스를 보면서 든 안타까운 생각은 왜 우리 청년들이 돈도 벌지 못하면서 저렇게 외국의 농촌에 가서 힘들게 고생하고 있느냐입니다. 외국을 다녀왔다는 스펙 쌓기와 어학연수 때문이라고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뉴스에서 우리 청년들끼리 일하고 있는 것을 보니, 어학연수는 힘들 것 같고 어렵게 간 나라에서 노동력 제공만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것은 그냥 제 생각이니까 잘 못 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이 많을 수 있겠지요. 저런 경험이 나중에 인생의 좋은 밑받침이 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제가 농촌에 있다 보니 우리 농촌 현실도 생각나고, 호주와 달리 그나마 일하러 오는 사람도 없는 농촌 모습이 더 안타까워서 뉴스에 대한 느낌이 조금은 부정적이었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 농촌이 가진 좋은 점이 청년들에게 다가가서 워킹 홀리데이 못지않은 경험을 호주의 농촌이 아닌 우리 농촌에서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사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워킹 홀리데이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지금 농촌에서 꿈꾸는 농촌교육, 특히 예술 교육을 위한 농촌공동체를 만드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농촌에서 무엇을 하나 시작한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지고, 또 부딪쳐 보면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문득 뉴스를 보면서 저런 청년들이 우리 농촌에도 간혹 온다면 농촌 교육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 워킹 홀리데이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저는 요즘 농촌 교육, 특히 예술과 문화에 대한 농촌 교육에 많은 생각을 하고 있고 또 몇몇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지난 십여 년간 학교 교육에 간접적으로 봉사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 교육의 기회가 균등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예술적인 부분에서 농촌의 현실은 더욱 그렇습니다. 예술이란 제도 교육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가르침을 위해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선생님이 있어야 하는데, 농촌에서는 이 모든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특히 학교의 울타리 안에 예술 교육을 전적으로 맡겼을 때, 농촌은 운이 좋지 않으면 모두 포기해야 합니다.
운이란 표현을 했는데, 그것은 학교 선생님 가운데 예술 교육을 전인적으로 할 수 있는 분이 있고 없고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물론 학교 교육도 요즘은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강사를 초빙해서 아이들의 바른 교육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농촌 학교는 도시와 너무도 다른 환경을 지니고 있다 보니 지속성이 없고, 특히 예술 분야는 어쩔 수 없이 단편적인 교육에 치우칠 때가 많습니다.
작년에 노래를 제법 하는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공부를 못한다고 성적으로만 분류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3년 넘게 여러 사람이 이 아이의 특성을 키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는데, 중학교에서는 공부 성적으로만 간단히 아이의 특성을 정리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을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교장 선생님도 난감한 표정입니다. 왜냐하면, 학교가 이 아이에게 노래를 가르칠 환경이 돼 있지 않은데, 당장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학생 수가 갈수록 줄어들어 모든 것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선생님 입장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그동안 여론의 반발로 무산됐던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을 재추진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 딸아이가 다니는 읍내의 여자중학교에서는 통폐합 당위성에 대한 일방적인(?) 교육청의 설명만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역 거점학교 육성이란 측면에서 이 모든 것을 꼭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지금 교육부는 1개 학교의 통폐합 때 재정 인센티브를 초등학교는 30억 원으로, 중·고등학교는 100억 원으로 늘린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게 상당히 효과가 있어서 농촌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심하게 흔듭니다.
문제는 농촌학교가 농촌 주민의 삶의 터전과 깊이 연관돼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통폐합해야 할 소규모 학교의 90%가 농촌에 있기 때문에 학교가 없어지면 지역 공동체가 무너지고 삶의 공간의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당연히 최근에 여당이 그렇게도 주창하는 농어촌 활성화 정책과도 배치되겠지요.
아무튼, 이런 상황 속에서 기회 균등한 농촌의 예술 교육 이야기는 사실 호소력이 약합니다. 농촌의 교육 상황은 어느 지역이든지 마치 학교 자체가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전투 현장과도 같다고 할까요? 학교도 선생님도 모두 꼼짝을 못합니다. 예술 교육은 살아남은 후의 이야기일 수 있지요.
그런데 바로 여기서 농촌의 아이들과 그래도 농촌에서 건강한 삶을 지켜가려는 이들을 보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중 하나라도 우리가 힘을 모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박수근처럼 백건우처럼 감동의 예술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그 길을 학교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 사는 우리가 한번 만들어 보자는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보니 농촌에도 예술가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예술 교육을 위한 공동체를 만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들도 한 분씩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선 미술을 시작으로 날줄을 놓고 음악으로 씨줄을 놓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얽혀지면서 모습이 만들어지겠지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습이 나타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그저 꿈꾸는 것으로 웃다가 끝날 수도 있겠지요. 가끔은 힘들 때마다 루쉰의 글을 생각합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갤러리도 그려지고, 파도 소리 들리는 무대도 보이고, 산들바람에 피아노 소리도 실려 가지 않을까요.
예술 교육 공동체의 형태는 우선 협동조합을 생각하고 있고, 교육 현장은 가까운 산기슭에 있는 창고를 개조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느 출판사가 책 창고로 사용하고 있어서 창고가 비워지면, 재미있는 미술 체험놀이부터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의 꿈을 전시하는 창고 갤러리입니다. 재능 있는 아이에게는 더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재능이 없어도 풍성한 삶의 안내자가 되는 갤러리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꿈을 전시할 수 있는 꿈 꾸는 갤러리.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전시 품목이 다양해지면 새로운 이름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그때는 우리 청년들 가운데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 그리고 풍성한 인생의 기반을 가꾸기 위해서 호주 대신 우리 농촌에서 땀 흘리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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