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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천북면의 제9회 온새미로 축제가 6월 8일(토) 천북면 신죽리 수목원에서 열렸습니다.
이상기후로 6월 초 날씨가 30도를 오르락거렸지만, 그래도 이날은 살랑거리는 바람 속에서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늑한 신죽리 수목원에서 농촌의 풍성함을 즐겼습니다.올해는 무엇보다 천북면 3개 학교(천북중학교, 천북초등학교, 낙동초등학교)에서 출전(?)한 아이들과 함께 백일장 대회를 연 것이 즐거웠습니다. 함께 모인 아이들 얼굴 속에서 건강한 농촌의 미래를 보는 일도 행복했습니다.
온새미로 축제는 2005년 들꽃마당의 작은 터에서 시작했습니다. 작은 잔치 자리에 해마다 점점 많은 분들이 오시고 해서 근처에 있는 신죽리 수목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어느덧 9회까지 왔습니다.
처음 시작은 마을의 각 가정에서 키운 예쁜 꽃들을 한군데 모아 함께 보자고 하면서 부터였습니다. 각 가정에서는 자기 것밖에 볼 수 없으므로 들꽃마당에 야생화가 피는 시기를 골라 각 가정의 화분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초청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한두 해가 지나면서 사람의 왕래가 잦아지다 보니 꽃 감상과 더불어 우리 지역을 소개하는 매개체로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까운 지역에 있는 도시민들을 초청해서 우리 지역의 꽃을 감상하고 농촌에서 즐길 수 있는 체험놀이도 하면서 우리 농민들이 생산한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고 나누고 판매를 하는 자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습니다.
처음부터 천대받는 풀, 보통 잡초라고 불리는 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에 마음이 갔고, 또 가만히 보니 잡초의 꽃들이 상당히 예쁘기 때문이었습니다. 잡초의 꽃은 대체로 작습니다. 그래서 눈에 잘 띄지 않고, 환경에 적응하면 번지는 속도가 빨라서 애물단지로 생각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그렇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잡초를 사진으로 확대해서 담아보면 그 모습이 뚜렷합니다. 어느 것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생명의 충만함을 담고 있고,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서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깨우침을 줍니다. 확대한 달개비(닭의장풀)의 멋진 사진을 본 농민이 오히려 묻습니다. ‘이게 무슨 꽃이냐?’고. 달개비라고 말해주면 잘 아는 이름에 멋쩍어하면서도 감탄을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달개비를 함부로 없애서는 안 되겠다는 말도 합니다.
이런 가치의 발견은 농민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합니다. 농촌과 농민이 하느님께서 주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한다면 지금 농촌이 겪는 위기를 이기는 새로운 길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과 들꽃 축제를 통해서 얻은 깨달음입니다.
맨 처음에는 들꽃 축제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제5회부터 ‘온새미로 축제’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우선은 들꽃 축제라는 이름을 사용하다 보니 우리 생각과는 달리 보기 좋고 근사한 꽃을 생각하고 오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자연에서 피는 모든 것을 들꽃이라고 여기며 그 속에 있는 농촌의 건강한 생명을 보여주고자 했는데, 요즘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멋진 야생화 전시회의 영향으로 이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온새미로는 지역에서 추천한 이름인데,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 등의 뜻을 가진 순우리말입니다. 우리 농촌의 가치를 표현하는데 이 말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축제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온새미로 축제는 소박한 농촌 한마당 잔치입니다. 복잡하지 않으면서 농촌의 재미를 전하는 놀이마당입니다. 농민 스스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농촌의 가치를 발견하고, 함께 참여한 이들은 늘 마음속을 맴돌던 돌아가고 싶은 고향의 정취를 누리는 자리입니다. 농촌이 주는 생명의 자리를 느끼는 것이지요.
사실 농사짓고 살아가는 것이 중노동이고 고통뿐이었다면 벌써 농촌은 끝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일은 힘들고 맨날 손해만 보는 것 같은데도 귀농을 하고 농촌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이들의 삶이 흙과 더불어 자연과 상생하고 유기적인 접촉으로 근원적인 생명감각을 포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온새미로 축제는 그런 판을 조금 보여준다고 할까요?
지금 곳곳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정책적으로 주도하는 농촌마을 만들기와 농촌 축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책적인 이런 사업은 많은 돈을 투자해서 투자가치를 최대한 이끌어내려는 경제 사업입니다. 성공의 기준은 마을이 얼마나 최신식 모습을 갖췄고 사람이 얼마나 오고 농업 경제 규모가 어떻게 커졌는지 등 종합개발사업의 완성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전래의 공동체성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을은 계속 뒤로 밀리기만 합니다. 하지만 평생 땅에만 매달려 농사짓고 살아온 대다수 농민들이 규모와 결과에 집착하는 경쟁력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지금 농촌은 본래 가지고 있던 건강함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노년의 허탈과 경제적 빈곤의 탄식만 모습을 키우고 있습니다. 진정한 농촌의 가치는 자연과 전통과 공동체의 터전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온새미로 축제는 자발적인 즐거움으로 시작했습니다. 눈여겨보지 않던 작은 꽃에게서 마음 모으는 법을 배웠습니다. 공동체의 터전에서 우리의 가치를 스스로 배우고 있습니다. 큰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잘 것 없는 축제라고 말을 하겠지만, 자연 속에서 작은 생명의 힘을 느끼는 사람들은 기쁘게 와서 함께 웃고, 함께 먹고, 함께 만드는 축제입니다.
농촌의 작은 축제를 위해 많은 이들이 큰 수고를 합니다. 물질적으로, 자원봉사로, 구성원으로 참가합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마음을 나누면서 소박하고 즐거운 축제를 만듭니다.
상업적이었거나, 정책적인 축제였다면 농촌에서 이렇게 십년 가까이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우리 마음을 모으고 농촌의 건강함을 나누기 위해서 이마의 땀을 닦고 팔을 걷었습니다.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국수를 일일이 다 말아내고, 쑥떡 개떡을 비롯해서 맛있는 떡을 만들기 위해 일찍부터 준비를 하고 주막의 문도 엽니다. 국수 값을 천 원이라도 받을까 했는데, 오신 손님들에게 국수 한 그릇 대접하면서 돈을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합니다.
축산농민들이 힘을 모은 축산사업단은 맛있는 돼지고기를 내놓고, 직접 만든 소세지와 햄도 맛보라며 아낌없이 내놓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저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합니다. 나이 든 농민들의 투박한 손을 보면 마음이 아립니다.문화 공연을 위해 오신 분들도 이런 농민들의 마음을 알아서 교통비 정도만 받습니다. 더운 날씨인데도 온 힘을 다해서 공연을 하고, 함께 웃는 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모두가 돌아간 뒤 축제장 잔디를 보니 사랑과 나눔과 감사가 크게 꽃피었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렇게 피어있을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잘 모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