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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마음을 만지다'이런저런글 2009. 5. 19. 11:30
'시(詩)가 마음을 만지다'
올 해는 봄바람이 시(詩)가 되어 찾아왔다. 그리고 한권의 책을 읽는 내내 봄바람은 내 마음을 만졌다.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지만 은근히 길게 늘어지면서.
때로 마음에 와 닿는 시를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조용히 즐기기도 했지만, 이렇게 흔들대는 마음을 시 앞에 끄집어 내놓고 하나하나 살펴보기는 처음이었다. 내 속에 담겨진 마음들은, 특히 상처 입은 마음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가라앉아 새로운 마음의 토양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만져주지 않은 상처는 결코 낫지 않는 법. 아프다고 말해야 하고 드러내서 싸매줘야 한다. 그런데 시낭송이라는 멋진 치유의 방법이 있다니.
시낭송을 하는 것은 마음속에 쌓여 있는 고통과 슬픔을 소멸시키는 방법이며, 마음을 비우고 청소하는 방법이라고 봄바람은 슬쩍 책장을 열어 스치듯 펼쳐준다. 오, 그래. 나의 모든 서러움과 분노들을 불러내어 시 한 줄 인생 한 줄 이야기하다 눈물 닦아주며 보낼 수 있다면, 그 가는 길에 소리로 맴도는 시의 여운이 자리를 깔아 밟는 걸음 서럽지 않게 해 줄 수 있다면 세상에 이런 멋진 방법이 어디에 있을까?
사실 인생을 살면서 때로 고통스럽고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만 스스로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지금 흘리는 눈물이 언젠가 반짝이는 진주가 되어 돌아오기를 기다릴 뿐이겠지. 인생의 반전을 기다리는가? 그러면 ‘끝나기 전에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미국 프로 야구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요기 베라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외로운 시간들을 축으로 삼아 무게중심을 잘 잡고 있으면 삶은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도. 그리고 내 안의 나와 더불어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법을 터득해 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 먼저 감탄을 배우면 좋겠다. 어쩌면 인간의 모든 우울은 감탄사를 잃어버린 데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가볍게 끝나는 감탄보다도 시가 흐르는 것처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감탄하라. 감탄의 능력이 회복될 때, 삶의 무거움은 부드럽게 변하리라. 그리고 시를 읽어보자. 감탄이 마냥 삶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것은 아닐진대, 마음에 울림을 주는 시 한 편을 목소리에 실어서 세상으로 내보내보자. 마음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별의 별 방법을 써도 인생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내 속에 갇힌 말들을 자유롭게 풀어내면 마음도 한결 자유로워질 것이다.
세상은 내가 소리 내어 말 안하면 나의 고통을 모른다. 눈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큰 소리로 나를 말해야 한다. 돌아보면 살아오면서 참 지지리도 못났던 것이 있다. 고통스럽고 서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내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해 그렇게 혼자 끙끙 앓은 것은 그렇더라도, 그것들을 남이 볼세라 마음 한 쪽에 묻어 두고 돌아선 일이다. 그리고 우스운 것은 돌아서서 끝난 것이 아니라 채 묻지 못한 불편한 마음의 실타래가 풀려서 나도 모르게 내가 가는 곳곳을 뒤따라 다닌 일이다. 이렇게 진작 소리 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의미 없는 단순한 소리라도 내뱉어 함께 하늘을 향해 보란 듯이 띄워 놓을 것을.
'詩가 마음을 만지다'는 최영아가 쓰고 쌤엔파커스에서 출간한 책이다. 문장 하나하나 보다도 전체적인 글 속에서 의미가 드러난다. 시를 통한 심리치유 에세이이기 때문이다.
읽다보면, 소리를 내어 시를 대하면서 마음속에 가두어둔 자신의 말들을 세상에 쏟아놓으라는 권유를 들을 수 있다. 목소리를 통해서 나오는 말들 속에는 무한한 생명력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깃털처럼 가벼운 인생은 없지만, 상처 입은 삶이 무거워 질 때 시낭송은 마음속에 층층이 쌓인 감정의 매듭들을 부드럽게 풀어주면서 먼저 내면의 자아와 화해하게 하고 세상과 희망을 공유하게 해준다. 왜 시낭송인가? 한 입 덥석 베어 문 사과 속에서 달큰한 향이 온 몸으로 배어들 듯이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시의 깊은 언어가 내 말이 되어서 온 몸에 퍼지기 때문이다.
시는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주는 효과가 크지만, 시를 더 폭넓게 즐기고 그 효용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시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그리고 시는 원래 누군가에 의해 읊어지기 위해 쓰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 속에는 리듬과 가락이 피처럼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관념에 머무를 수 있는 시를 누군가가 낭송할 때, 시는 그에게 가서 비로소 완결된 한 편의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그래서 남에게 들려주기 위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들려주기 위한 시낭송은 머릿속을 혼탁하게 떠돌던 잡념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밑으로 가만히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마음의 힘을 목소리에 실어준다.
마음의 힘이 낭랑한 목소리에 묻어나는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높일 줄 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일 줄 안다는 것은 지금 내 안에서 행복이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스스로를 속이며 숨죽여 울고 있는 자신을 무심코 누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 행여 고통스러운 하루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행복한 고통이고 고통스러운 행복이라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내 마음이 행복하지 않고 텅 비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 행복의 불꽃을 키워가는 사람만이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남에게 나눠줄 줄 안다. 필요 없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소중하기 때문에 나누어주는 것이다.
아, 시를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좋은가. 내 안에서 한때 웅크리고 있던 존재에게 멋진 말을 걸어 그를 깨워서 일어나게 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유쾌하지 않은가? 내가 이끌어내지 않는 한, 내 안의 나는 누구도 불러낼 수 없다. 오직 나만이 나에게 말을 할 수 있다.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언어들이 귀로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피부와 뼈, 세포에도 끊임없이 감응을 한다면 어찌 일어나지 않고 뒹굴고 있을 수 있으랴. 물오른 것처럼 얼굴은 해사해지고 있는데 말이다.
위대한 시인들이 있어서 고맙고, 나는 덕분에 소리를 내어서 삶을 일깨우고 노래한다. 신바람 나는 인생이 아니라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내 속의 말들이 시의 운율을 타고 나와 저렇게 날아다니고, 세상을 향해 당당히 말하는 내 마음은 이제 누구든지 안을 수 있음으로 족하다. 단 한 사람의 청중인 나를 향해 시를 읽어주는 것은 내 스스로 나를 깊숙한 곳까지 어루만져 주는 나의 노래이다. 시 한 편에 따뜻한 가슴이 더해진다. 이것을 누구에게 줄까?
다시 봄바람이 분다. 마지막 장을 덮어주면서 살랑살랑 리듬과 가락에 맞춰 내 마음에 들락거린다. 이 봄바람이 한 세월 몰고 가기 전에 누구라도 와서 늦봄 긴 햇살 자락을 깔고 앉아 나와 같이 자기를 닮은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좋겠다. 세월이 가면서 덧칠해진 희미한 이름을 부드럽게 닦아내며 읽어도 좋겠고, 무뎌진 가슴만 드러나고 냅다 커진 머리 부끄러워도 못다 한 말 오늘은 해야지 하면서 읽어도 좋겠다. 그렇게 저렇게 거리거리마다 낭랑하지 못해도 마음의 힘이 실린 목소리들이 인생을 구원하는 시를 읽는다면, 상처가 아물어진 사람들의 걸음 소리가 커질 테고, 세상에 대하여 관대해진 사람들의 노래 소리는 끊이지 않겠지. 그리고 시인들은 크게 말할 거야. ‘소리를 내어라, 삶을 노래하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