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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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목이런저런글 2024. 5. 16. 14:53
어제처럼 모두 일하러 나간 듯한적한 모습이 기억을 불러오는 시간 오래된 골목으로 들어간다 골목은 물길과 같아. 흐르다 보니 낯설지 않은 것처럼 모이다 보니 서로 기댄 틈이 드러났지. 얽히고설킨 전깃줄에 세월이 걸리고 끊어질 듯한 자리에 빨래가 아늑하다. 작은 이야기들은 꼼지락거리다 흩어지고. 불편한 것이 즐거웠던 곳 모퉁이 돌면 오랜 얼굴이 보이는 듯기다린 따뜻한 손이 마음을 보듬는다. 한 걸음 더 걷다가 막다름에 닿았다. 돌아서는 것이 어색하지 않네, 그때처럼. 조금 더 느린 걸음으로 새 길로 나온다. , , , - 2024. 05. 13. pm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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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관한 생각들꽃마당 2022. 8. 28. 23:58
초등학교 시절, 평상에서 여름 저녁 바람과 밥상을 같이 받다가, 바람결에 묻어온 치자꽃 향기에 먼저 배부른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름도 몰랐지만, 치자꽃향은 어린 시절 꿈같은 날의 상징이었습니다. 생각하면 평상 주위에 물고기 감싸 안은 산호초도 있었고, 갖가지 장미도 색색 어우러져 여름밤이 어둡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얀 치자꽃은 저녁 시간과 맞물려서인지 담백한 흑백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쥐똥나무꽃도 그렇군요. 속동마을에서 역시 저녁 무렵, 바람 타고 날아온 향이 마치 어릴 때 치자꽃향처럼 내 몸을 이끌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 향의 정체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리고 바닷가 언덕에 마치 울타리처럼 자리 잡은 쥐똥나무를 발견하고 그 하얀 꽃향기에 배가 불렀습니다. 치자꽃향과 쥐똥나무꽃향은 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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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의 시간들꽃마당 2021. 4. 16. 22:18
튤립은 중앙아시아에서 터키로 건너와 자태가 화사해졌다. 요즘은 튤립 하면 네덜란드가 유명하게 생각되지만... 튤립은 16세기 후반 유럽에서 이색적인 아름다움으로 관심을 모았는데,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갑자기 투기의 대상으로 치솟아 올랐다. 당시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 무역 등으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였다. 화사한 튤립 키우기는 네덜란드 상류층과 귀족 사이에 취미생활이 되었다. 그리고 튤립은 순식간에 뿌리마저 투기 대상이 되었다. 일확천금 귀족의 상징이 된 튤립은 신분 상승의 욕구를 부채질했고, 가격은 황소 천 마리를 팔아야 겨우 튤립 구근 40개 정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높아졌다. 17세기 금융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네덜란드는 투자를 통해 돈을 불리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사람들의 눈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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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처럼 살지 마라이런저런글 2012. 11. 28. 16:53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아버지, 술 한 잔 걸치신 날이면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어머니, 파스 냄새 물씬한 귀갓길에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이 악물고 공부해라 좋은 사무실 취직해라 악착같이 돈 벌어라 악하지도 못한 당신께서 악도 남지 않은 휘청이는 몸으로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울먹이는 밤 내 가슴에 슬픔의 칼이 돋아날 때 나도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요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고 어머니, 당신의 소망은 이미 죽었어요 아버지, 이젠 대학 나와도 내 손으로 당신이 꿈꾸는 밥을 벌 수도 없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그래요, 난 절대로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자식이 부모조차 존경할 수 없는 세상을 제 새끼에게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하는 세상을 난 결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