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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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림보다 더 빛남이런저런글 2020. 6. 20. 11:36
요즘 가끔 캠핑 장비 챙겨서 늦은 오후에 두어 시간 정도 산이나 바다를 갑니다. 주변이 여행지라서 조금 움직이면 이곳저곳에 자리 펼 곳이 많습니다. 엊그제는 종일 흐렸습니다. 비가 오기는 했는데, 감질나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내렸습니다. 그래도 흐린 날이어서 오후엔 상당히 어두웠습니다. 천수만 바닷가에 쉴 자리를 만드는데, 잠깐 하늘이 열리더니 일몰 빛이 바다를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시간, 갯벌이 드러난 바다가 물들었습니다. 아, 탄성이 저절로 났습니다. 금세 해는 지고 어두워졌지만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종일 흐렸던 것보다 짧게 빛났던 시간이 더 또렷했습니다. 우리 삶도, 지금 사회 분위기도 흐리고 힘들지만, 잠깐잠깐 빛나는 기쁨의 시간이 우리를 이끕니다. 힘을 내게 합니다. 오늘,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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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만 하겠니?농촌이야기 2015. 6. 10. 18:47
요즘 낙심천만이다. 농촌에 살면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한 적은 별로 없었다. 오래도록 함께 살 것만 같았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누구라도 주변에서 죽음을 맞는 일이야 당연한 인간사이니 낯선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분들이 마치 여행 가듯이 훌훌 떠나는 일은 처음이니 남은 사람들이 받는 충격이 크다. 돌아보니 나도 나이가 들었지만 지난 세월에 모두 연로해졌다. 연로해지니 힘이 없어지고, 그간 농사짓느라 쌓인 중노동의 흔적이 몸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마음이 아픈 것은 그래도 농사를 쉴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식의 부양을 받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다. 몸을 가누기 어려워도 농사를 지어야 근근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몸이 아파도 일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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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기억함이런저런글 2014. 10. 10. 21:16
가을이 깊었습니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저렇게 떨어진 나뭇잎은 이별을 준비하면서 얼마만큼 사연을 만들었을까요? 흙으로 돌아가는 잎들을 보면서 내 곁을 떠난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잊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이야기를 남기고 간 이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홍성 읍내에 나갔다가 주차장 한편에서 펄럭이는 노란 리본을 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새삼 마음에 새겼습니다. 내가 사는 땅에서 기억해야 하는 것. 먼저 떠난 어느 사람의 삶도 가볍지 않고 그 속에 내가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그러므로 가끔이라도 그들을 떠올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별을 기억하는 것이 서로 연결하는 시작입니다. 가시덤불 한 포기라도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다른 생명의 터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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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런저런글 2013. 10. 11. 00:36
미셸 투르니에의 '짧은 글 긴 침묵'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어젯밤은 잘 잤다. 나의 불행도 잠이 들었으니까. 아마도 불행은 침대 밑 깔개 위에서 웅크리고 밤을 지낸 것 같다. 나는 그보다 먼저 일어났다. 그래서 잠시 동안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을 맛보았다. 나는 세상의 첫 아침을 향하여 눈을 뜬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인생은 행복과 불행의 싸움이다. 그 싸움은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시작된다. 불행이 미처 깨어나기 전에, 그 불행을 밀어내고 행복하게 눈을 뜨면, 그 날은 하루 종일 행복으로 가득한 새로운 첫날이 된다." .................. 행복을 찾아내는 사람이 행복하다.행복은 멀리서 크게 있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자잘한 일상 속에 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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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물음이런저런글 2011. 3. 26. 13:46
현재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사태는 갈수록 점입가경입니다. 특히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1호기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고, 근방 농산물뿐만 아니라 도쿄에까지 방사선이 검출돼서 수돗물도 먹지 못하고 생수 사재기에 나섰다는 소식은 듣기에도 여간 안타깝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물론 상상을 초월한 지진과 쓰나미로 말미암아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애초에 원자력발전소는 그 이상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현실 속에서 세워졌기 때문에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마치 오래 전부터 인간이 준비해 온 일이 마침내 터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자 하는 기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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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농촌이야기 2011. 1. 8. 00:01
제가 살고 있는 보령시는 지난 2일 구제역이 발생한, 역시 제가 살고 있는 천북면 사호리 축산농가와 인근 500m 5농가의 소 172마리와 돼지 2만2880마리에 대해 어제 금요일(7일) 오후 2시를 기해 매몰 살·처분을 완료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 동네는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마자 안동 농장을 방문한 수의사가 우리 동네 한 축산 농가를 방문했다는 이유로 지역민들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예방 살처분으로 그 농가 돼지 2만 3천 마리가 매몰됐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들어서자마자 그 이웃인 또다른 대규모 농장에서 진짜 구제역이 발생해서 이번에는 예방 살처분이 아닌 구제역 방역 차원에서 가축 2만 3천 마리를 죽였습니다. 뉴스라든지 지역 공무원 이야기라든지 아무튼 그 상황을 들어보면 구제역에 걸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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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 큰물이런저런글 2009. 5. 25. 11:18
큰 산, 큰물 - 태산불사토양(太山不辭土壤) 태산은 흙과 돌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높음을 이루었고, -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큰 강이나 넓은 바다는 작은 시냇물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저토록 넉넉해진 것이다. 큰 산과 큰 바다 앞에서 사람은 흔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큰 산이나 큰 바다가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작은 것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깨달으면 큰 사람입니다. 자연이 그 누구보다도 큰 스승으로 다가오면 삶의 깊이는 그렇게 커집니다. 이 흙 저 흙, 이 물 저 물 가리지 말고 보태고 합쳐서 큰 산과 큰물을 만들어 가는 자연의 모습 앞에서 함께 만들어 가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배우면 이보다 더 큰 성공이 어디 있을까요? 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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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의 늑대이런저런글 2009. 3. 13. 22:43
한 늙은 인디언 추장이 자기 손자에게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고 있는 '큰 싸움'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싸움은 또한 나이 어린 손자의 마음속에도 일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추장은 궁금해 하는 손자에게 설명했습니다. “얘야, 우리 모두의 속에서 이 싸움이 일어나고 있단다. 두 늑대간의 싸움이란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서 그 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 동정,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인데 그가 가진 것들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 손자가 추장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추장은 간단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