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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9월 초 이런저런 뉴스를 보다가 권상연 윤지충 이름 앞에서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전주 여행을 가면 거의 방문하는 한옥마을. 그리고 한옥마을 갈 때마다 반드시 둘러보는 전동성당. 그곳에서 낯익은 두 분 이름을 따라 뉴스를 살폈습니다.
신해박해(1791년) 때 순교한 윤지충(32· 당시 나이), 권상연(40)의 유골과 신유박해(1801년) 때 순교한 윤지헌(37) 등 3인의 유골이 230년 만에 발견됐다는 것입니다. 올해 3월에 발견된 세 분의 유골은, 발굴 작업 중 봉분에서 발견된 백지사발 지석(誌石)에 적힌 인적사항 판독, 방사성탄소연대측정, 유전자 정보 일치 결과 등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감식 결과 유해에서는 참형의 흔적도 그대로 발견됐고, 어떤 뼈에서는 날카로운 도구로 절단했을 때 나타나는 ‘예기 손상’도 확인됐다고 합니다. 오래전 순교자 유해 발견은 놀라운 일입니다.
보령에서 살면서 더욱 더 좋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오천 갈매못이 바로 곁에 있는 것입니다. 바닷가 순교지인 갈매못에서 마지막까지 빛을 거두지 않는 일몰. 그리고 황석두 장주기 등 시간을 거슬러 가며 더욱 찬연한 이름. 그렇게 친근해진 이름의 힘은 자주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등대가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는지.
요즘은 코로나 19 때문에 갈매못에 가면 잠깐 머무르지만, 그래도 그곳에 있는 순교자의 치열한 삶의 흔적은 언제나 유효한 긴장을 하게 합니다. 갈대처럼 흔들릴 때마다 그들의 삶을 되새깁니다. 순교는 특별한 모습이지만, 순교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그 무게가 달라도 삶의 길에 잇대고자 하는 사람이 오늘도 곳곳에 있기에 제게도 본받음이 일상의 길로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2. 지나온 시간이 제법 고개 끄덕일 만큼 쌓이다 보니 사람의 삶이란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는 어떻게 살았고 어떤 모습을 남기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를 하기도 합니다. 확실히 삶에는 어둠도 있고 밝음도 있습니다. 어둠이라고 해서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밝음의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밝음과 어둠의 농도가 적절히 어우러진 삶의 모습을 바라지만,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다양한 삶 가운데 어떤 삶이 부러운 삶일까요? 순교자처럼 살아야 할 때가 있고, 예술가처럼 살아야 할 때가 있고, 농부처럼 살아야 할 때가 있고, 군인처럼 살아야 할 때가 있겠지요. 요즘은 어떨까요? 시장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소유의 힘인 돈에 연관한 삶이 우선순위에 쉽게 오를 수 있을 터인데, 최근 부동산 관련해서 수완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수천억 원이란 돈도 쉽게 오간다는 뉴스를 보면 열심히 모은 돈, 혹은 그 능력(?)에 부럽다는 방점을 찍어야 할까요?
돈에 관해서는 복음서에 나오는 부자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형제와 유산 다툼을 하다가 형제를 타일러 달라고 예수께 나온 사람에게 예수께서 들려주신 그 부자 이야기입니다.
어느 부자가 밭에서 소출을 많이 거두었습니다. 부자인 데다가 큰 부를 이루었으니 이보다 더 기분이 좋을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그 복잡한 심경이 이렇습니다. ‘내 소출을 모아들일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얼마나 소출이 많았는지 쌓아 둘 곳이 부족할 지경이었다지요. 쌓아둘 데가 없으면 쌓다가 남은 것은 가난한 사람에게라도 나눠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부자가 되는 것은 그 사람의 노력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무인도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부자가 될 수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도 챙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부자의 마음은 그런 쪽으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곳간 증축에 몰입하고 그곳에 넘쳐나는 소출을 쌓아 둘 작정이었습니다. 그 이후 하고 싶은 일은 단 하나, 넘치도록 쌓아두었으니 편하게 살면서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움을 누리자는 것뿐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의 반전은 바로 그 순간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고 하시면 그렇게 쌓아둔 곳간이 무슨 소용이겠냐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재물이 운명을 결정하는 삶이 부러운 것이 아님을 다시 생각합니다.
3. 돈을 열심히 모으며 사는 삶도 치열하게 사는 삶입니다. 단지 재물이 운명을 결정해서는 안 되는 것을 잘 새기고 산다면 말이지요.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 땅이 필요한가’에서 바흠은 해가 떠 있는 동안 원하는 땅을 괭이로 표기하고 출발지에 돌아오면 그 땅을 모두 갖게 해주겠다는 악마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숨이 가빠도 뛰고 또 뛰었습니다. 바흠은 해가 지기 전 출발지에 돌아왔지만 기진맥진해 곧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묻혔습니다. 그렇게 땅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그에게 필요한 땅은 정작 한 평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치열하게 산 결과가 한 평도 안 되는 땅에 묻혀버린다면 허망하겠지요. 그 허망한 삶을 뚫고 오래전 순교자의 길을 간 사람들은 결코 땅에 묻힌 채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230년이 지나서도 그 길은 보여줘야 할 길이니까요.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일상에서 순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줘야 할 테니까요. 이 힘든 세상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4. 도현이가 혼인예식을 치른다고 피로연에 초대했길래 얼굴 한 번 보려고 갔습니다. 오랜만에 본 도현이는 30대 나이가 돼서인지 생각보다(?) 어른스럽고, 신부의 해맑고 예쁜 모습도 보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옆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도현이 부모. 두 분을 보니 제가 더 고맙고 애틋한 마음이 넘쳐나서 손을 맞잡았습니다.
오랫동안 지켜봤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다른 사람은 모르는 어려움을 잘 감내하며 여기까지 온 두 분. 부모여서라기보다 그 이상 순교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세상의 부모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보지만, 그래도 도현이 부모의 삶의 각별했습니다. 도현이도 자기 길을 잘 걸어왔고, 동생인 도환이도 잘 살아왔습니다.
아주 어릴 때 처음 본 도환이는 무척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안경을 쓰고 작은 몸으로 시골길 구석구석 자전거를 씽씽 타고 다니던 모습이 선합니다. 도환이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도환이가 태어날 때부터 시력에 큰 장애가 있었고, 중학교 갈 무렵이면 시력을 상실 할 수 있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천진난만한 도환이 모습에서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갈 무렵이 되자 도환이는 정말 시력을 거의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부모의 애타는 마음은 하염없이 흩날리고 많은 검진과 치료 때문에 도시 병원을 수도 없이 들락거렸지만, 도환이 시력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도저히 일반 중학교 진학은 할 수 없어서 서울맹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맹학교에서 도환이는 점자도 처음부터 배워야 했기 때문에 공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중학생이라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는 두려움도 컸을 텐데 그 과정을 잘 견뎠습니다.
그런 와중에 도환이 부모는 마을에서 보증에 얽히면서 생각하지 못한 큰 빚을 감당해야 했고, 이 고통은 오랫동안 가족의 삶을 심하게 흔들었습니다. 농촌에서 논농사를 지으며 얻는 수익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마저 빚을 갚아야 했고, 그러면서 도환이와 도현이 공부를 시켜야 했습니다. 지금도 그 고통을 듣고 있을 때의 아픔이 생생합니다. 도현이도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을 것입니다. 장남으로서 부모의 고통을 지켜봐야 했고, 시력을 잃은 동생의 앞날도 형으로서 책임감을 느꼈을 테니까요.
도환이는 시력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맹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학교생활 중 간간이 사고가 났습니다. 오고 가다 넘어져서 다치고, 발을 헛디뎌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도환이 부모는 농사일 팽개치고 보령에서 서울로 급히 올라가야 했고, 한밤중에 자다가 올라갈 때도 있었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눈물로 온통 뒤범벅됐지만….
즐거운 일도 있었습니다. 보증 선 빚 때문에 경매에 넘어간 집은 문제가 여전해도 계속 살 수 있었습니다. 빚은 변함이 없어도 조금씩 숨 쉴 여유도 생겼습니다. 도현이는 사회복지를 공부하기 위해 천안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고, 도환이는 맹학교에서 학교 추천으로 미국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도환이는 미국에 다녀오면서 영어에 자신이 생겼나 봅니다. 엄마를 닮아서 긍정적인 성격을 지닌 도환이는 장애를 어려움보다도 다음 단계로 나가는 삶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공부하고 공주대학교 특수교육학과에 진학하면서 시각장애인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신의 적성을 잘 찾았습니다.
도환이가 대학교 졸업 후 임용고시를 치르면서 2차 면접과 수업 시연을 준비하는 과정에 함께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수업 시연을 연습하기 위해 도환이가 졸업한 낙동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낙동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장 선생님과 제가 잠시 면접관 역할을 하면서 도환이 수업 시연에 참견도 했습니다. 도환이는 영어 선생님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점자 컴퓨터를 가지고 자신 있게 강의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면서 격려했습니다. 무난히(?) 임용고시를 통과하고 지금은 서울에서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중학교 영어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벌써 관록이 붙었고, 모범 교사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도환이가 선생님으로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엄마는 이것저것 챙겨주느라고 아들 집에 가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습니다. 도현이는 이미 그전에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법 시간이 흐른 이야기입니다. 동생 때문에 정신없는(?) 부모님을 오히려 응원하면서 도현이는 혼자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고, 사회복지사의 돌봄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헌신합니다. 그리고 짝을 만나서 혼인을 했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끔 도현이 엄마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엊그제 천북면무소에서 도현이 아빠를 만났는데(도현이 아빠는 지금 마을 이장입니다), 아들에 대한 기쁨이 얼굴에서 묻어나오더군요. 돌아보면 몸 곳곳에 아이들을 위한 헌신으로 예기 손상이 큼직한데도 지난 세월은 꿈꾸듯이 갔습니다.
5. ‘저도 이렇게 살게 해주십시오.’ 기도할 때 일상에서 순교의 삶을 사는 이들은 큰 모범입니다. 230여 년 전에 살았던 성인들의 모습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을 배우듯이, 오늘 제 주변의 평범한 분들에게서 주어진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한 걸음씩 나가는 것을 배웁니다. 운명을 결정하는 고통을 받아들이되, 버려야 할 것은 부러움으로 뒤집어쓰고 있더라도 진정 가볍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허망함을 보는 눈이 커진다면 그것을 뚫고 갈 수 있는 용기도 갖기를 소망합니다. 부러운 인생을 대단치 않게 나누는 그 길을 함께 가고 싶습니다.
지난 10월, 한겨레신문에 실린 칼럼이 인상 깊었습니다. 요약하면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지구도 별 하나이기에 여기에 사는 우리는 모두 별빛처럼 당당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 존재는 먼지보다 작아서 바람이 불면 훅 날아가 버릴 하찮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주 먼지라는 것과 별빛처럼 빛나는 존재라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단지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인생이 우주 먼지답게, 때로 일희일비하며 사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것은 또 우리가 별빛처럼 빛나는 존재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적 먼지와 우주적 존재라는 것이 같다는 것을 칼럼에서 배웠습니다.
삶이 티끌처럼 하찮게 지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여겨진다면 그렇게 살면서도 별처럼 빛나는 이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들이 내 삶의 거울이고, 그들도 내게서 빛나는 모습을 찾아봅니다. 부러운 인생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23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다만, 흔들리지 않고 허망함을 버리는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제가 먼저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