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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까운 홍성에 이응노의 집이 복원되면서 전시된 그의 작품을 보려고 이웃과 가끔 다녀오면 예술이란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이며 살아가는 에너지를 제공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에너지가 되는 예술은 예술을 생각하는 사람이 만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립니다. 지나는 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곁에만 있어도 젖어 듭니다. 예술은 삶과 분리되지 않은 채 새롭게 살아가는 즐거움을 줍니다.
천수만 기슭 서산 부석면 창리에 ‘서해미술관’이 있습니다. 바닷가이면서 산속에 있는 듯한 미술관입니다. 오랜 이야기가 모여 있는 곳입니다. 옛날 작은 학교가 미술관이 되었으니까요. 이응노의 집처럼 가까운 곳에 자주 갈 수 있는 미술관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다른 사람은 좋다는데 나에게는 딱히 무엇이 좋은지 체감이 안 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좋은지 답이 있을 수는 없겠지요. 세상은 똑같은 감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예술적 경험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예술의 감각을 누리는 장소에 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제가 여러 사람과 틈틈이 가는 이유입니다. 좋은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 삶 속에 켜켜이 스며들면 삶이 다채롭습니다. 한 번씩 미술관에 가면 대수롭지 않던 풀포기도 흔들거리며 다가와 소통하는 여유를 줍니다.
바닷가 서해미술관은 예술적 경험을 향유하기가 어려운 농촌과 어촌이 어우러진 우리 지역의 소중한 곳입니다. 미술관이 그 자리에 있어서 미술관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둘 생깁니다. 미술관 속 시간의 흐름은 늘 새로운 변화를 주기 때문에 공부하는 공간으로, 아니면 쉼을 누리는 공간으로 삼는 것도 좋습니다. 바람 불면 곳곳에서 색이 스며들고 색에 물든 파도가 일렁입니다.
2. 미술관은 단순히 그림이나 조각을 전시하는 곳만은 아닙니다. 미술관이란 미술 박물관(Art Museum)의 줄임말입니다. 그러니까 미술관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장품입니다. 수집 기능 없이 전시만 하면 전시장이겠지요. 요즘 미술관은 전통적 미술관 역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미술관이 레저 및 관광 산업에서도 주요 성장 영역이 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미술 작품을 향유하는 일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상류계급의 전유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귀족들이 과시를 위해 수집했던 미술품이 시민의 것으로 환원되면서 자연스레 미술관이 형성되었다고 미술사학자들은 말합니다. 서민들 입장에서는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어디 예술 같은 타령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지요. 우리나라 미술관만 해도 모두를 위한 미술관을 표방하며 무료 전시를 운영하는 곳이 많습니다. 저도 리움미술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무료 전시회에 다녀올 때도 있습니다. 개방성과 확장성을 가진 미술관이 존재하는 시대입니다.
미술관 공간은 특별합니다. 무엇이든지 볼 수 있다는 인터넷 시대에도 미술관에 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작년 여름에 호암미술관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회에 간 적이 있는데, 김환기 그림 속 점묘의 추상을 현장에서 보니 인터넷이나 작품집으로 보던 것과 감동이 달랐습니다. 미술관이 놀라운 세계로 다가왔습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물러났다가 빙 돌다가 다시 오고, 미술관에 오는 이유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미술관 그 자체인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제대 위에 세로 3.5m 크기의 예수상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재해석해 앞면과 뒷면을 모두 그린 성화(聖畫)가 있습니다. 모두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의 작품입니다. 고개를 떨구지 않고 눈을 또렷하게 뜨고 있는 예수. 그래서 마치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 시선. 그곳에 가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습니다. 최후의 만찬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성당에 있는 문경 한지에 옻칠과 밀랍을 더 해 만든 한지 벽화는 바로 앞에 가서야 찬란하면서 창백한 쪽빛을 제대로 만날 수 있습니다.
3. 웅장한 미술관이 아니더라도 미술관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소담한 미술관이 지방에는 필요합니다. 요즘 공공의 공간에 조형물이 많이 만들어지고, 이 또한 여러 사람이 향유해야 할 예술인데, 조형물 상당수가 기득권을 가진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작품으로 비치고 있어서 비판을 받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서 열린 예술이 지방 여러 곳에서, 또 마을 속으로도, 그리고 생활과 소통하는 길모퉁이에도 그 모습이 또렷하도록 힘을 모으는 일이 필요합니다. 오늘 예술의 시대정신 가운데 하나가 실천적인 방향으로 확장하는 개방성이기 때문에 적절한 공간에서 제 역할을 하는 미술관이 필요합니다.
홍성의 이응노의 집과 서산의 서해미술관은 이런 점에서 적절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응노의 집이 세계적인 개인의 역량을 공적인 기능으로 기념한다고 하면, 서해미술관은 미술에 대한 한 예술가의 열정이 미술관 전체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예술에 대한 진실의 흔적이 펼쳐져 있다고 할까요? 위치가 서산 시내에서는 조금 멀고 바닷가 길로 홍성에서 안면도 가는 도중에 옆으로 슬쩍 빠지는 곳이지만, 차분한 여유로움이 물씬거려서 전시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서해미술관 다녀온 이들의 의견 중에는 특히 데이트 코스로 추천한다는 내용이 제법 있습니다. 괜히 설렙니다. 이응노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서해미술관 건물을 보면, 오래된 학교에 깃든 역사와 더불어 지난 시간 동안 사람들의 그 많은 이야기가 배어있는 듯합니다. 학교가 세워질 때는 배움의 열정과 즐거움만 있었던 것은 아닐 테지요. 제가 살고 있는 마을 학교도 올해로 문을 닫지만, 학교를 세울 때, 농사일과 함께 마을 사람과 어린 학생들이 틈틈이 운동장을 일구고 교실 주변을 다듬었던 힘든 수고를 많이 들었습니다. 좀 과한 상상일 수 있지만, 사실주의 화가로 농촌과 자연을 그린 쿠르베와 밀레의 그림을 떠 올립니다. 밀레가 그린 농촌의 고단한 일상과 그 안에 숨겨진 삶과 애환, 쿠르베의 현실에 대한 직시, 이 모든 것을 안고 있는 듯한 미술관 건물과 주변 자연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밀레가 이 풍경을 그렸다면 어떻게 그렸을까요.
4. 미술관에 오면 이런 생각이 들고, 그래서 다시 미술관에 오고 싶습니다. 오늘 보지 못한 밀레의 부드러운 붓 질감과 다른 화가들이 그렸을 섬세한 빛과 명암, 인상적인 색채들이 다음에는 보일 수 있겠지요. 사실 이곳에서 전시하거나 전시 중인 작가들의 작품 속에 이미 깃들어 있을 수 있으니 조금 더디게 걸으며 찬찬히 바라보는 것이 더 필요하겠고요.
올봄이 조금 지난 때부터 미술관에 와서 미술관 풍경을 사진에 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야 제가 사진에 담지 않아도 그 누가 와서 아름답게 찍을 수 있으니 아름다운 모습은 살짝 비켜서 제 눈에 비치는, 미술관 흔적과 느낌을 주로 찍습니다. 사진은 그야말로 사실주의의 완성판이기 때문에 보이는 것에서 상상을 끌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붓으로 덧칠해서 질감 표현을 할 수도 없으니, 프레임을 조금 비틀기도 하면서 미술관 느낌을 소소하게 담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봄날 미술관에 왔을 때, 첫 번째로 본 풍경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운동장에는 부드럽게 자목련이 활짝 피었고, 작은 카페에는 새색시라는 꽃말을 가진 청화쥐손이의 보랏빛 작은 꽃이 유리창 햇살을 받고 있었습니다. 운동장 플라타너스 위에 놓인 동그란 나무집에도 올라가 누워서 천장 창문으로 하늘을 보니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카메라는 늘 가지고 다니니까 미술관에 가면 자연스럽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립니다. 작은 배를 타고 하늘을 노 젓는 노란 토끼를 보면 같이 떠다니고 싶습니다. 화단 곁에 있는 동그란 가로등은 늘 그 자리에서 보름달이 되고, 엄마 따라온 아이를 마주하려면 초롱초롱한 눈부터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5. 홍성 이응노의 집에 가면 이응노의 마음을 담으려고 상상으로 들어갑니다. 이응노 화백이 군상 시리즈에 집중하던 시절, 그때 나는 젊었고 지금의 삶으로 방향을 약간 틀었던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군상을 통해 나와 연결이 됩니다. 얼마 전에 이응노의 집에 가니 커다란 미술관 통유리 한 장이 온통 금이 갔습니다. 보는 순간, 가슴에 울림이 왔습니다. 유리창 가까이 가는 것을 금지한 안전선 너머에서 렌즈를 당겨 사진을 찍었습니다. 물어보니 예초기로 풀을 깎다가 돌멩이를 튕겼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하는 루틴(정해진 대로 하는 방식)대로 움직이다가 만난 그 순간이 탄성으로 채워졌습니다. 어떻게 담을까 고민했던 이응노의 그해 마음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온통 금이 간 그 상황에서 무너져 내릴 듯한 이응노의 마음을 봤다면 무리일까요?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는 동베를린(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간첩단을 적발했다는 내용을 발표했는데, 그러나 정작 간첩과 간첩 미수죄로 기소된 23명 중 최종심(대법원)에서 간첩죄를 적용받은 피고인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응노 화백 등은 작품과는 무관하게 국가권력에 의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그의 영혼에 남았습니다. 1969년 이후 그는 이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회복할 수는 없었지만 절대 무너지지는 않았던 그의 마음. 그림 ‘군중’처럼 무수히 많은 움직임이 금이 간 그 자리마다 꿈틀거렸습니다. 그의 생가터에서 갈라졌던 그의 마음이 비틀거리며 다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응노의 집에 오면 상상의 문이 열립니다. 오지 않았으면 볼 수 없었을 그의 마음. 제게만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이 집에서 누린 그 충만함은 무척 소중합니다. 그날도 이응노의 집을 산책하고 싶은 갑작스러운 끌림이 있었으니까요.
6, 미술관을 산책하다 보면 지방에서 미술관은 어떻게 해야 지역의 호응을 얻는 좋은 미술관이 될 수 있을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미술관으로 자리 잡는 것은 미술관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이 필요하고 여러 사람의 발길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특색 있는 소장품과 작가의 활동, 그리고 창의적인 시민 교육도 있어야겠지요.
일본의 예를 보자면, 1887년에 도쿄미술학교를 설립하고 미술 분야에서 서구의 영향을 많이 흡수했습니다. 제국주의에 대한 열망이 서구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난 표상일 수 있습니다. 아무튼, 1960년대 이후 일본 기업가와 미술계는 다양한 소장품과 창의적인 작가 활동, 개성 있는 건축 등을 통해 미술관과 박물관의 수준을 한층 높였습니다. 지방에서도 미술관 건물들은 예술 체험을 하게 하려는 건축가의 의도를 잘 받아들였습니다. 후쿠오카 미술관 등 시간이 지나면서 토양을 잘 가꿔놓은 결실이 나타납니다. 일본을 여행하면 그 지역의 미술관을 방문하는 일이 중요 일정에 속한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상황이 같을 수는 없지만 우리도 미술관과 박물관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두도록 만드는 일이 우선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을 보면 좀 요원합니다. 우선 예술을 뒷받침할 지역 자본이 없고 필요한 인력 확보도 어렵습니다. 문화와 예술이 지역 경제 활동의 중요한 축이 된다는 생각을 갖는 지역 정치인을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지방에도 많은 사람이 해외여행을 통해 새로운 문화 예술 경험을 하고 의욕(?)에 찬 창의적인 생각도 하지만, 자기 자리로 돌아오면 다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미술관이 하나둘 자리 잡는 과정을 보면, 고군분투하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개인적으로는 지방의 미술관이 지방 사람들에게 예술 또는 문화에 참여하는 감수성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무척 높게 생각합니다. 서해미술관이나 이응노의 집을 통해 소소함을 넘어서는 지역의 예술적 가치를 누리고 우리 지역에 이런 미술관이 있다는 자부심은 이곳에서 사는 긍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광범위하고 궁극적인 예술의 사회치유 기능은 지방자치단체도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미술관은 참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또 미술관에 오면 예술 작품을 잘 이해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학습 욕구가 생깁니다. 이런 욕구들이 모여 지역공동체에 예술을 통한 공동선을 아우르는 선순환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미술관을 산책하고 예술이 주는 힘을 얻는 것은 삶의 즐거움을 키우는 일입니다. 바라기는 이런 일이 지역에서 조금씩이라도 커지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사례는 이미 세계 곳곳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미술관을 문화적 액세서리로 보지 않고 지역의 소중한 자산으로 생각한다면 문화와 예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더욱더 많아집니다. 서해미술관과 이응노의 집은 쉬지 않고 이런 풍요로움을 생산해서 우리 지역에 공급하는 중입니다. 미술관이 가까이 있어서 참으로 고마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