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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여행’ – 농촌에 대한 질문과 탐구농촌이야기 2024. 8. 10. 14:53
1. 무척 더워서 어떻게 할 수도 없었던 올여름이지만, 제가 사는 보령 농촌에 수도권 청년들이 제법 찾아왔습니다.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 일환이었습니다. 아웃 리치(out reach)라고도 하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뜻합니다. 종교적 관점에서는 ‘선교를 겸한 봉사활동‘이지만, 요즘은 보통 교회 청년 수련회 활동도 아웃 리치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지난 5월부터 청년들이 찾아와서 농촌 활동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제시한 것은 농촌에 대한 즐거운 이해를 갖는 활동이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농촌 여행을 권했습니다. 사실 여름이면 많은 교회 청년이 시간을 내서 농촌을 찾고, 땀 흘리며 봉사 활동을 하면서 신앙 증진의 기회로 삼습니다. 참 귀한 일이고,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더운 날 농촌 봉사 활동이 힘들기 때문에 다시 선뜻 하기 어려운 추억(?)으로만 남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젊은 날 추억은 그 자체로도 소중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저도 청년 시절에 농어촌에서, 또 때로는 먼 곳의 섬을 찾아가서 봉사 활동한 것을 지금도 즐겁게 기억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농촌도 급속히 변하고 있습니다. 농촌 활동을 받아 줄 농촌 인구가 고령화와 함께 줄어들고 있습니다. 농촌 소멸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들릴 정도입니다.
2.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농촌 소멸이란 ‘인구가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주민 공동체 기반이 붕괴하고 생활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구하지 못해 사실상 지역사회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수치적으로도 확인됩니다.
통계청의 인구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인구수는 2020년 5,183만 명에서 2022년 5,169만 명으로 0.2%가량 감소했으며, 2030년에는 5,130만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농촌 인구 역시 2022년 916만 명에서 2050년에는 845만여 명 수준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특히 농촌 지역의 경우 수도권과 대도시 인근 인구는 늘어나지만 비수도권의 군 지역은 인구 감소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실제 읍 지역의 인구는 2020년 511만 명에서 2022년 510만 명으로 1만 명이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같은 기간 1,172개 면 지역은 14만 명이나 감소했으며, 인구수가 2,000명이 되지 않는 면 지역도 2000년 168개소에서 2020년에는 전체의 30.1%인 353개소로 2배 이상 늘었습니다.
기대수명은 2022년 82.7세에서 2030년 85.5세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지만, 출생아 수는 2022년 25만 명에서 내년에는 22만 명 수준으로 감소할 전망입니다. 이에 내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 같은 농촌 인구의 감소는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킵니다. 인구 감소로 전국적으로 6만 6000호가량의 빈집이 생겼고, 104만 호가량이 30년 이상 노후화돼 농촌의 안전과 경관을 훼손하는 등 정주 여건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더불어 인구 감소에 따른 생활 서비스 수요가 감소하고 농촌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들이 폐·휴업하면서 농촌 주민들이 생활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겪는 지역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병원이 사라지고 식당·세탁소·미용실 등의 폐업이 이뤄지면서 주민들이 기본적인 진료와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3. 농촌의 고령화 심화는 단순히 일손 부족의 문제뿐만 아니라 노인회·부녀회·마을회와 같은 농촌의 다양한 공동체를 이끌어 갈 주체가 사라지고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농촌 인구 구조의 빠르면서 부정적인 변화는 결국 농촌 자체의 역량을 저하해 농촌 소멸 위기를 가속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정부도 그렇고 지자체도 계속해서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촌 소멸 대응 추진 전략’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모두 절박한 심정으로 전략을 내놓고 있지만, 전체 인구의 52%가 수도권에 몰려있는 현실에서 농촌의 미래는 막막합니다.
고령화되고, 소멸 위기에 몰린 농촌을 위한 봉사 활동은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활동과 더불어 필요한 것은 농촌에 사람이 오고, 지역에서 경제적인 소비가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여러 가지 훌륭한 정책이 제시되고 실행되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지만, 먼저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은 농촌에 사람이 오도록 하는 일입니다. 억지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래도 농촌에 정주하지 않지만, 농촌을 여행 하는 것은 해외여행 사례에서 보듯이 매력을 들춰내면 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해외 여행지도 상당수는 농어촌입니다. 자연과 풍광(風光)이 아름다워서 휴식을 취하러 갑니다. 우리 농어촌도 무척 아름답고 깊은 쉼을 줍니다. 우리 땅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감동 주는 모습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을 드러내고 누리도록 만드는 경험이 부족할 뿐입니다.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코타키나발루 지역 복음교단 기독교인들이 코로나19 확산 전까지 보령 농촌을 5년 이상 찾았습니다. 마을공동체 공부도 겸했지만, 말레이시아 사람들도 보령 농촌과 바다가 주는 매력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4. 농촌에서 소비는 유쾌한 소비여야 합니다. 유쾌한 소비를 하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생각나고, 다시 함께 와서 유쾌하게 소비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여기에는 마케팅도 필요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누리는 즐거움이 많아야 소비가 유쾌합니다. 지난 15년 넘게 수도권을 대상으로 보령 농촌 여행을 안내하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우리 마을에 무척 많은 즐거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농촌에서 사는 방식 그대로 농촌을 방문하는 방문자들과 이리저리 다니는 자체가 그들에게 즐겁고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농촌에서 30여 년 넘게 살면서 마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농촌의 즐거움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 같긴 합니다. 농촌의 모습 속에서 원래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마을 사람들이라고 충분히 알진 못하니까요.
틈틈이 보령 사람들과도 ‘처음 가는 보령’이라는 제목으로 보령 농촌 여행을 했고, 3년 전부터는 보령시 시민대학 강좌로 채택이 돼서 주기적으로 보령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농촌 여행을 체계적으로 잘 끌어내기 시작한 나라가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2023년 세계관광기구(UNWTO) 통계 기준 약 9,500만 명 방문으로 전 세계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여행은 프랑스 사람들이 더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일련의 조사를 보면, 프랑스인 중 60~70%가 6월부터 9월 사이에 여름휴가를 떠나는 데, 휴가자의 68%가 프랑스 내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젊은 층의 48%는 외국을 택하고 있고요.
프랑스는 1950년대에 유럽 지역에서 ‘녹색·농촌 관광’을 처음으로 들고나왔습니다. 지금부터 20년 전(2004년) 기준으로도 프랑스에서 농촌체험 관광업을 하는 농가는 1만 7,600여 곳에 달했습니다. 당시 전체 66만 농가의 2.6%에 해당하는 숫자였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1988년부터 법률 개정을 통해 농촌 관광 사업을 농업 활동의 일부로 인정해 세제 우대 조치와 저리융자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도 농촌의 당면 문제, 예컨대 국제농산물시장이 공급과잉 국면에 들어서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경영다각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었고, 그 결과 농업 활동과 연계된 관광 활동에 시동을 걸게 되었습니다. 도시민들이 농촌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 및 홍보를 꾸준히 전개하였고, 자연스레 농촌관광의 기준과 원칙이 세워지고, 매년 약 200억 유로의 관광 지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프랑스 전체의 관광 지출의 약 20%에 달한다고 합니다. 또한 이 규모는 프랑스 전체 농업 생산액의 절반에 이르며, 최소한 프랑스 국민 5명 중 1명이 일 년에 하루 이상을 농촌에서 보낸다는 수치입니다.
물론 프랑스 농촌 관광이 100% 성공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농촌 관광을 통한 지역별 이윤추구 사업은 대부분 실패 혹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결과만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농촌관광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사회화합과 교류 및 환경․문화자원의 보존을 위한 공익사업으로 분류하고 이에 맞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농촌 지역을 알리고 도시와 농촌 사이의 교류를 촉진하며, 시설투자가 부족한 농촌의 발전 기반을 조성하는 논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5. 우리 농촌이 프랑스와 환경은 다르지만, 농촌이 주는 원초적인 힘은 같다고 봅니다. 일본 농촌이 프랑스 농촌과 농업을 잘 벤치마킹해서 그린투어리즘(green tourism)으로 이룬 나름의 성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초부터 이런 방식을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책이 목적을 위한 성과주의로만 가다 보니,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인위적인 활동이 되면서 많은 문제만 쌓이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을 제안한 전문가들도 문제를 제대로 수습 못 하는 것은 그들에게 깊은 현장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벌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금도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요. 아쉬움을 넘어서서 저도 정책 전문가는 아니니까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농촌에서 살고, 또 15년 넘게 농촌 여행을 안내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농촌으로 사람들이 즐겁게 오는지 어느 정도 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즐거운 농촌 기억은 무척 중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앞으로의 농촌, 즉 소멸에서 벗어나려는 많은 노력의 예상치를 청년들이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청년들에게 농촌이 즐거워야 계속 농촌을 찾을 테니까요. 농촌의 즐거움을 찾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순서를 둔다면 먼저 농촌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농촌 봉사 활동도 계속 필요합니다. 여기서 농촌 봉사 활동 개념을 넓히면 어떨까요? 프랑스가 농촌 여행도 농업 활동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처럼 청년들 아웃리치가 즐거운 농촌 여행으로 이루어져도 충분한 농촌 봉사 활동이 되게끔 하자는 것입니다. 청년들의 즐거운 농촌 기억 속에 소멸을 벗어나려는 농촌의 미래가 있다면 참 좋은 일이지요.
6, 다행히(?) 이런 제 생각을 여러 청년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농촌 여행 계획을 짰습니다. 결과적으로 청년들도 즐거웠고 저도 즐거웠습니다. 우리 마을 경제에도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고요. 일단 모든 소비를 보령 농촌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생활하고 먹고 움직이는 것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보령에 와서 농촌 숙소를 예약하고, 마을의 마트를 이용하고, 식사 때마다 곳곳의 마을식당을 이용했습니다.
마을 곁에 있는 충청수영성 성벽을 거닐며 바다를 내려다보고, 갈매못 순교지에서 160여 년 전 많은 사람이 왜 그렇게 생명을 버리며 자유와 신앙으로 들어갔는지 오늘 나의 모습을 비춰봤습니다. 폐교를 앞둔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오랜만에 교실에서 공부(?)하며 놀아보고, 젖소농장 우유카페에서 우유 이야기 들으며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었습니다.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 수영을 하다가 밤에는 모래사장에서 캠프 등불을 밝혀놓고 청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쌈지촌 체험마을에서 처음으로 직접 콩을 갈아 두부도 만들고 다양한 재료로 소시지도 만들었습니다. 농협을 방문해서 농촌과 농민과 농협의 관계도 배우고, 일몰 빛으로 물든 자연 속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마셨습니다.
농촌에는 무엇이 있는지, 농촌에서 누리는 즐거움은 어떤 것이 있는지, 농촌은 우리 삶과 근원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 질문하고 탐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농촌은 여러 사람이 오가며 질문과 탐구의 시간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농촌의 미래는 좀 더디더라도 이런 질문과 탐구의 과정을 거쳐야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조금씩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 이 글을 쓰는 중에 마지막 아웃리치 팀이 왔습니다. 늦은 오후에 수목원 숲길을 안내하다가, 아무래도 더워서 시원한 실내에서 나흘간 일정을 논의했습니다. 근래 보기 드문 습도가 요 며칠 동안 그야말로 기세를 떨쳤는데, 다행히 엊그제부터는 습도가 내려앉아서 밤에는 조금씩 선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행입니다.
농촌에서 삶은 겉으로 보기에 일은 무척 힘들고 맨날 손해만 보는 것 같은데도 귀농하고 농촌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 흙과 더불어 자연과 상생하고 유기적인 접촉으로 근원적인 생명 감각을 포착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 힘을 약화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도 이 힘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자본이 생명의 근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농촌을 경제적인 논리로만 대하는 정책은 이제 방향을 수정해야 하고, 농촌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이라는 인식 전환을 해야 합니다.
농촌에서 당장 인구가 늘어날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도 요원합니다. 그렇지만, 농촌에서 삶을 충전하고 즐거움을 얻는 것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기반이 농촌에 자연스럽게 있습니다. 정책적으로 청년을 불러들이기보다 농촌이 가진 유기적인 관계 속으로 청년들이 먼저 즐겁게 놀러 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지금 필요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농촌은 목적의 공간이 아니라 생명을 누리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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