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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옆 마을에 비틀스 카페가 생겼습니다. 바닷가 바로 옆인데요. 비틀스는 저만의 애칭(?)으로 부르는 이름입니다. 요즘 제가 좋아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보니 우리 지역에 카페가 여러 군데 생겼습니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가 카페 공화국이라고도 하던데, 저는 농촌이나 어촌에도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많으면 좋다고 생각해서 튼실한 카페는 더 생겼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 지역에 카페가 생기는 것을 환영합니다. 그중에 최근 문을 연 비틀스 카페는 분위기와 함께 커피가 정말 마음에 듭니다.
비틀스 카페라고 했지만, 카페 본 이름은 ‘페퍼상사’이고요. 홍성 어사리 바닷가에 있습니다. 카페 창밖으로 바다 풍경을 보면 시골 어촌이라는 느낌이 물씬거리고, 여유작작한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마치 동유럽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 온 여행자 감성이 살아납니다.
농촌에서 커피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먼저 농촌에서 사는 일(농사를 포함해서)은 생명을 아우르는 즐거움을 수반한다고 여깁니다. 농사짓는 일부터 중노동이긴 한데, 그 일이 고통뿐이었다면 벌써 농업은 끝이 났을 것입니다. 농촌을 떠나지 않고, 또 귀농하려는 사람들도 있는 것은 흙과 더불어 자연과 상생하는 근원적인 생명 감각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근원적 감각을 누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 감각을 누리지 못하면 귀농이나 귀촌을 해도 견디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 감각에는 농촌에서 사는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즐거움은 삶의 여러 편린(片鱗)에서도 오는데, 작지만 풍성해지는 것 중 하나가 ‘커피’라는 생각입니다. 누구나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2. 커피와 이런저런 사이(?)가 된 것은 커피에 소통하는 나름의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농촌에서도 커피 한 잔에 말문이 트이고 편한 자리를 만듭니다. 여러 사람과 즐겁게 커피 마시자고 나선 것이 지금은 함께 지역문화를 일구는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커피만 소통의 기능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차(茶)도 그런 점에서 다양한 능력이 있고요. 또 그 외에도 여러 도구와 방식이 있겠지요. 커피에서도 그런 모습을 발견했기에 커피 이야기를 합니다.
전에도 커피 관련 글을 쓴 것 같은데, 천북면 학성리 바닷가 어부들 요청으로 그분들과 함께 커피 공부를 한 것은 참으로 유쾌합니다. 커피를 배운 어부들은 마을의 작은 섬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것에 착안해 ‘공룡커피클럽’을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이 커피클럽은 지금도 천북면 곳곳에서 틈나는 대로 직접 내린 커피를 나눠주는데, 다들 좋아합니다.
마을에 있는 신죽리수목원에도 커피 마실 공간이 있습니다. 신죽리수목원은 수목과 더불어 사계절이 아름답습니다. 때때로 도시에서 온 여행자들과 이곳에서 커피 한 잔 나누며 농촌의 좋은 자원을 소개하고 함께 여행하는 시간도 갖습니다. 커피 향기 따라서 미시적 마을 여행을 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미시적 마을 여행이란, 농촌 자체가 아름다운 볼거리라는 바탕에서 농촌의 모든 모습을 여행 대상으로 삼는 일입니다. 자연의 선물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는 셈이지요. 천북면은 바닷가 풍경도 무척이나 근사합니다.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섬도 있습니다. 옆 마을에 있는 바닷가 순교지에서는 영혼을 구원하는 숨결을 느낍니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교감을 합니다.
3. 아무튼, 바닷가에 문을 연 페퍼상사 카페를 비틀스 카페라고 이름하는 것은, 이름 속에 비틀스 노래가 들어 있어섭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비틀스는 약 8년간의 활동 기간 동안 총 13장의 음반을 냈는데, 그 중 음악적인 역사성, 대중과 평단의 찬사, 상업적 성공을 거둔 앨범으로 다섯 장 정도를 고를 수 있더군요. 다섯 장 앨범 가운데 하나가 8집 앨범인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입니다, 당시로서는 굉장한 혁신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페퍼상사 이름이 왔으며, 입구에 쓰인 카페 상호도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입니다, 8집 앨범 제목 그대로지요. 8집 앨범은 비틀스가 콘서트가 아닌 스튜디오 작업만으로 발표했는데, 팝 역사의 명곡으로 꼽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let it be’나 ‘Yesterday’ 등 비틀스의 노래를 참 좋아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팝 아티스트 순위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비틀스 시대는 전환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혹자는 비틀스가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경제의 번영 덕분이었다고도 말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산업화가 크게 진전되면서 미국의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였고, 대중 소비 사회가 본격적으로 문을 열면서 대중 문화 또한 큰 폭으로 확장하게 되는데, 그 정점에서 비틀스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말이지요. 비틀스의 음악은 그간의 대중음악의 인식을 넘어서서 현대 대중음악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바꿨다고 평가받습니다. 아무튼, 비틀스는 시대의 흐름 가운데 많은 전환의 중심에 섰지요.
오늘 우리 시대는 너무(?)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이제 비틀스가 등장하던 방식은 옛일이 되었습니다. 열광적인 공연이나 사건은 YouTube 곳곳에서 펼쳐지고, 환호성은 SNS 등에서 번져갑니다. 지금은 시대의 전환을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맞이하는데, 비틀스 시대는 전환이 계시처럼 다가왔습니다. 비틀스가 록그룹 밴드를 넘어서서 사회 현상 전환의 기점이 되자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으로도 유의미한 영향이 일어났습니다. 히피 운동이나 인종차별 완화 기여라든지, 또 반전주의 영향 등 이미 알고 있는 여러 일들입니다. 동유럽도 많은 영향을 받았지요. 프라하의 봄 당시 시민들이 ‘Hey Jude’를 시위대의 상징 곡으로 불렀고, 익히 알려진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말도 있습니다. “비틀스로 소통했고, 개혁했다.”고요.
4. 어사리 바닷가에 비틀스 카페인 페퍼상사가 문을 열면서 비틀스 노래를 더 듣게 되었고, 비틀스가 한 세기 동안 끼친 영향도 이리저리 찾아봤습니다. ‘소통’과 ‘전환’이라는 말은 음악과 더불어 커피에도 잘 어울립니다. 역사는 전환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커피가 중동 지역 음료에서 유럽의 고급 음료로 전환하는 과정도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요한 흐름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게 역사를 연결하는 많은 디딤돌이 형성되었습니다. 커피는 문화적으로도 자잘한 영향을 끼쳤는데, 베토벤이나 바흐의 커피 사랑은 잘 알려졌지요. 일설에 의하면, 베토벤은 커피를 마실 때 커피 원두를 신중하게 60개만 세어서 추출했다고 하는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현재 커피 추출에 사용하는 커피양과 얼추 비슷하다고 합니다.
비틀스의 음악에 대한 호불호는 있겠지만, 20세기 중반 중요한 전환의 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비틀스의 모습과 음악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카페에서 맛있게 내린 커피 한 잔의 즐거움은 저에게 큰 선물입니다. 왜 이렇게 조용한 어촌 한구석에 카페를 열었는지는 모릅니다. 간혹 물어보고 싶기도 하지만, 조만간 알게 될 거라는 생각과 굳이 알지 않아도 이 즐거움을 누리는 데는 조금도 지장이 없다고 여기기에 그냥 덮어둡니다. 당연히 마을 여행을 오는 이들과도 오는데, 바닷가에서 마시는 커피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합니다. 영국에서 공부하고 온 한 분은 카페 구석구석 사진을 찍더니 영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내면서 이후, 그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비틀스 음악이 있는 이곳에 분명히 올 거라고 말합니다.
5. 비틀스 모습과 특히 맛있는 커피는 이 카페를 외면할 수 없게 합니다. 커피야 말할 것 없지만, 작은 마을에 비틀스와 관련한 카페의 등장이 좋은 것은 비틀스가 주는 전환이라는 의미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지요. 그 당시 노래들은 대부분 사랑 얘기 정도였는데, 비틀스는 빗소리나 동물의 울음소리를 섞어 엉뚱하고 재미있는 음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아름다운 가사나 사회를 향한 진지한 내용의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다가갔고요.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노래가 아니라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과 마음을 직접 노래로 만들어 불렀고, 평화, 사랑, 자유 모든 것이 노래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비틀스가 큰 인기를 얻었던 이유가 있었지요.
오늘 우리 사회를 다원화 사회라고 하지만,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거나 한쪽을 강요당하는 데서 벗어나는 것은 아직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종교도 자유로운 영혼의 갈급보다 견고한 틀을 유지하기 위한 힘을 과시할 때가 많습니다. 정치는 때때로 선동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쓸어가려고 합니다.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전환을 이루기 어려운 양식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변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농촌은 더욱더 그러한데, 마을에 생긴 카페들도 새롭다기보다 거의 비슷한 커피에 비슷한 이미지입니다. 내부 장식을 다르게 꾸민다고 해도 오랫동안 가져온 생각이 곳곳에 스며있습니다. 조금 지나면 재미가 줄어듭니다. 새롭게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미술사에서 사과에 관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위대한 사과 세 개가 있다고요. 첫째는 아담과 이브의 사과, 둘째는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 셋째는 세잔의 사과라고 합니다. 요즘은 여기에 스티브 잡스의 애플을 추가한다는 그런 말도 들립니다만…. 미술사가들은 미술사에서 세잔이 그린 사과 그림의 의미가 참 크다고 합니다. 세잔은 한 시점으로만 그림을 그리던 시절에 다양한 시점이라는 시각을 제공했고요. 화면 내의 구조적인 조형성에 집중했습니다. 조형성만으로도 그림이 될 수 있다는 단서를 제공했지요. 그리고 소재의 근본 형태 부각을 통해 사실적 그림에서 해방되는 길로 안내했습니다. 그의 시대는 19세기를 지나서 20세기로 향한 전환의 시기였습니다.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세잔은 인상주의풍의 그림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전환하면서 현대 미술의 문도 열어주었습니다. 비틀스도 그렇게 현대 대중음악으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역사에는 전환점이 있고, 전환점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페퍼상사 카페를 통해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6. 지역문화는 지역 안에서 공동체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활동의 소산이자 과정입니다. 지역사회에서 재생산되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결실을 이룹니다. 지역문화도 시대와 사회적 조건에 따라 어떤 양식을 만들고 활동을 하는 과정이 영향을 받습니다. 사회적 조건이 정체되면 지역문화도 정체됩니다. 문화의 활동, 즉 문화의 생산과 수용이 정체되면 공동체 삶의 방식은 새로운 전환점에 설 수가 없습니다. 늘 하던 방식만이 여전히 주류를 이룹니다. 변화의 갈망은 수그러듭니다.
문화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권리일까요? 헌법 조항에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권리가 명확히 제시돼 있지는 않지만,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제34조)고 명기된 것을 보면, ‘인간다운 생활’에 문화예술 향유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문화와 예술은 자연적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는 아닐지 모르지만,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생활하는 데는 필수 요소입니다. 자신이 예술과 멀게 생활한다고 생각해도 사회 안에서 문화를 멀리해 생활할 수 없고 예술은 문화의 기반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문화와 예술 활동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회적 조건이 정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고, 바른 정치 활동 중 하나입니다. 또 공동체 활동의 방향이어야 하고요. 전환적인 행위가 늘 필요합니다. 좋은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노력(?)하는 행위도 그래서 조금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페퍼상사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7. 어사리 바닷가 비틀스 카페는 어느 틈에 전환의 한 지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한적한 어촌 한구석에서 커피 한 잔과 비틀스의 노래를 통해서 일상의 문화, 혹은 예술(?)이 흘러가도록 돕고 있는 것이지요. 마을 사람들이 들어가서 우리 마을에도 이런 곳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문득 낯익은 음악 같다면서 제목이 무엇일지 궁금해하며 찬찬히 듣는다면, 커피가 맛있다면서 어떤 커피일지 눈여겨본다면…, 모두 작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 앞에 서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촌은 이런 작은 행위들이 필요합니다. 도시처럼 문화예술 향유지수가 크지 않더라도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며드는 작은 전환이 차근차근 조금씩 더 큰 전환으로 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농촌에서 마시는 커피는 더 맛있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마을에 살면서 마을에서 누릴 수 있는 감각을 공유하는 데 작은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작은 지역은 소멸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말도 듣습니다. 소멸이라는 말이 과연 맞는 말인가 의아하지만, 설령 소멸이 다가온다 한들 그 또한 비켜 갈 수 없는 것이라면 덤덤히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그럼에도 사람이 사는 곳은 즐거워야 하고,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언제라도 시간이 나시면 오세요. 음악을 듣고 커피 한 잔을 같이 마시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