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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에 오니 택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보냈을까?”
보낸 사람 이름을 보니 ‘김금성’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제야 생각났습니다. 어느 땐가 갑자기 무척 좋은 두부와 달걀을 생산해서 보내주는 곳이 있다며, 제 아내 앞으로 달걀 두부 정기구독(?) 신청을 했다고 해맑게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지난달부터 달걀 꾸러미와 두부가 택배로 오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 선물이 온 것입니다. 두부와 달걀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데, 마음이 아리면서 눈갓이 축축해집니다.
꿈만 같습니다. 십여 일 전만 해도 웃으면서 커피 한 잔 나누고, 몸이 아파 병원에 간다고 할 때도 건강을 위해 기도할 테니 잘 다녀오라고 했는데, 갑자기 장례를 치르고 집에 왔으니 말이지요. 그 이름으로 이렇게 선물이 올 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네요.
들꽃마당 교회에서는 권사(勸師)의 직책을 갖고 있지만, 그런 걸 떠나서 제게는 늘 친구였습니다. 태어난 해가 같아서 친근하고, 저보다 농촌에 조금 더 일찍 와서 농사지어가면서 모르는 것도 잘 가르쳐준 다정한 이였습니다. 이렇게 30여 년이 넘도록 마을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이런저런 마음을 나눠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잘 키웠네요. 신랑에게 홀딱 빠져서 강화도에서 보령으로 시집오고, 딸도 낳고 아들도 낳고…. 아이들은 제 길을 잘 찾아서 선생님도 하고, 넓은 밭을 일구는 농부도 하면서 도란도란 가족의 사랑을 나누고 살았습니다. 가족여행도 틈틈이 다니곤 했는데, 어디에서 맛있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져와 집에 넣어주고 가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종종 여행의 맛을 누렸고요.
남편과 아들과 고구마 농사를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고구마 맛에 대한 자부심은 저도 충만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2만 7천여 평 넘게 고구마 농사를 넓혔는데, 부드러운 능선 타고 펼쳐진 고구마밭 풍경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소문을 들은 사진가들이 모여 모습 하나하나를 사진에 담아가곤 합니다. 소소한 마음 씀씀이와 말 한마디를 통해서도 사람들에게 즐거운 기운을 넣어줬습니다. 말의 힘이, 몸짓의 힘이, 타고난 마음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돌아보니 그게 참 고맙습니다.
2. 이번에 심근염(myocarditis)이란 병명을 처음 알았습니다. 심근염은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심장 근육에 급성 또는 만성으로 염증 세포가 침윤(浸潤)한 상태를 말한다고 합니다. 며칠 열이 나고 오한 때문에 독감 유행 따라가나 싶어 동네 의원에 여러 번 갔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함께 모여 점심을 먹기로 한 날, 보이지 않아서 전화하니 천안 단국대학교병원에 진료받으러 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나누었습니다.
병명이 급성 심근염으로 나왔고, 분당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겨 정밀한 치료를 받으면서 이제 조금씩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오히려 급속하게 상태가 나빠지고 말았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홍성추모공원에 유해를 모셨습니다. 급작스레 맞이한 이별 앞에서 아이들과 남편이 슬픔을 담담하게(?) 껴안으며 엄마와 아내를 보내는 모습은 김금성이라는 이름이 깊은 사랑으로 피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딸 은현이에게 엄마의 마지막 선물을 이야기했습니다. 먹먹한 마음을 주고받았습니다. 은현이는 엄마의 선물을 계속 보내드리겠다고 말합니다. 은현이가 고른 영정사진 모습을 다시 봤습니다. 활짝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오히려 우리를 위로합니다. 소풍을 마치고 잘 도착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보낸 소풍을 즐겁게 마쳤노라고. 천상병 시인의 노래처럼 그렇게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소풍을 마치고 떠난 자리에 못다 한 이야기들이 쌓입니다.
3. 이 글을 쓰는 중에 전화가 왔습니다. 한 번이 아닌 세 번이나…. 박종월 할머니입니다. “하소연하고 싶어 전화했어요.”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요즘 할머니 건강이 좋지 않아서 가끔 천안에 있는 딸에게 최근 병원 진료 내용을 물어보곤 하던 참입니다. 말인즉슨 설날을 앞두고 엊그제 고기를 한 근씩 두 덩이를 사가지고와서 냉동실에 넣어놨는데, 아침에 보니 한 덩이만 있더란 겁니다. 누가 가져갔는지 짐작이 된다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한참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사실 이런 전화가 처음이 아니기에 이것저것 물어보고 혹시 주방에서 고기 한 덩이를 미처 챙겨 넣지 못한 것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다시 찾아보면 어떻겠냐면서…. 단호한 어조로 분명히 두 덩이를 넣었다고 말합니다. 전화 받는 제가 난감해졌습니다. 사라진 고기를 찾기 위해 주변 탐문수사(?)를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이 생겼습니다. 일단 고기 행방을 알아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기도한다고 답이 나올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기에 할머니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달라고 부탁(?) 기도를 드렸습니다.
얼마 후, 세 번째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고, 당황스러움도 묻어나옵니다. 고기를 찾았답니다. 순간 제 마음도 환해졌네요. 어떻게 찾았느냐고 물었더니, 마을회관에 모인 할머니들이 그런 경우는 냉동실에서 두 덩이 고기가 달라붙어 있을 수 있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냉동실 고기를 꺼내 두었더니 이게 처음 사 올 때처럼 한 덩이에서 두 덩이로 나뉘어졌다는군요. 누군가는 괜히 억울한 일을 겪을 뻔했습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잘 정리가 되니 고마웠습니다. 웃으면서 맛있게 드시고 건강히 지내시라고 설날 덕담도 나누었습니다. 마을 할머니들의 경험과 지혜도 대단합니다.
4. 작년 봄에 세상을 떠나신 박종월 할머니 남편 유태종 어른이 생각났습니다. 폐암 투병으로 힘들어하시면서도 60년 넘은 세월 한 몸으로 살았던 사랑하는 아내가 혼자 남아 혹여나 어려움 앞에 서면 어쩔까 싶어 안타까워했던 어른. 제가 30년 전 마을에 올 때, 언덕배기에서 기품 있게 기다리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잔병치레가 잦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지 못했던 질병이 아내를 남겨두고 이별을 앞당겼습니다. 차분하면서 생각을 잘 정리하고,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였던 분이었습니다. 제가 의지했던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이셨네요.
장례를 치르면서 차마 누르지 못한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날, 양지바른 선산 언덕에 고이 모시고 내려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이 땅에서 소풍을 마치고 돌아간 하늘이 무척 맑고 푸르러서 허리 숙여 고마운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의 흔적을 사진에 담아 마을 수목원에서 간단한 사진전도 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세상에서 저와 놀다가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다시 돌아간 분이 여럿입니다. 보고 싶습니다. 다들 잘 계시지요?
5. 소풍을 마치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간 분들이 생각나면,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리며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노래합니다. 28살, 젊은 그때 만든 노래입니다. 일찍부터 천상병 시인의 시가 좋았습니다. 시인의 삶을 알게 되니 더욱더 좋았습니다. 그가 윤이상, 이응노 등과 같이 겪었던 동백림사건의 고통은 참 마음이 아픕니다. 20대 후반은 제가 가야 할 길의 전환점이었고, 그때 시인의 시를 마음에 품고 작곡한 노래,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가끔 부르는 노래가 '귀천'입니다. 귀천은 천상병 시인이 1970년에 발표했습니다. 시인도 1993년에 이 땅에서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귀천에는 그의 죽음에 대한 능동적이고 낙천적인 태도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그의 ‘행복’이란 시는 읽을수록 마음에 행복을 줍니다. 막걸리와 하나님 빽으로만 살았던 분.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이다
…(중략)…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천상병, '행복'>
이렇게 노래를 평생 불렀으니 이 땅에서 그의 삶은 아름다운 소풍을 누리는 삶이었습니다.
6. 천상병 시인의 노래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 빽으로 행복하게 살다가 구름 손짓 따라 하늘로 돌아간 이들. 40여 년을 사랑하며 살았고, 60여 년을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소풍을 마치고 떠난 이들의 이름은 여전히 바람에 살랑이며, 그 자리에 잇대어 있는 우리 마음에 활짝 피어납니다. 유태종 어른이 걱정하지 않아도 박종월 할머니는 생각보다 씩씩합니다. 자녀들의 집으로 가지 않고 남편이 있던 자리에서 그 역시 소풍의 시간을 누리고 있습니다. 유태종 어르신이 떠난 후로 박종월 할머니의 전화는 반갑습니다. 여전히 아름다운 곳에서 소풍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지금 소풍을 누리고 있습니다. 평범하게 함께하는 것이 사랑인 것을 가르쳐준 그들을 따라 새벽빛 지나 노을빛 맞으며 손에 손을 잡는 시간을 보냅니다. 이렇게 머무는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떠나야 할 시간이 오겠지요. 그 시간이 아름다워지려면 소풍을 잘 즐겨야겠습니다. 먹구름이 일 때도, 차가운 눈바람이 휘감을 때도 웅크려지면 다시 곧추세우고 길 위에서 한 발 내딛기를 멈추지 않아야겠습니다. 무슨 힘으로 사느냐고 묻는다면 저 또한 하나님 빽으로 산다고 말하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 허튼소리는 아니지요.
사랑합니다. 소풍을 마치고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 이들. 그리운 이름, 그리운 모습. 세계에서 제일 행복했던 이들에게 인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