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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니 쓸쓸하게 새로워지네이런저런글 2023. 12. 12. 13:04
1. 용산에서 익산시까지 가는 기찻길을 장항선이라고 합니다. 어느 땐가 서천 장항역이 종착지였던 적도 있었지요(그래서 이름이 여전히 장항선이지만). 아직도 무궁화호가 힘을 쓰는(?) 선로입니다. 천천히 가기는 해도 기차를 타는 진득한 맛이 있습니다. 현재 장항선 역 중에서 가장 운치 있는 역은 아마 홍성에 있는 광천역이지 않을까요. 건물 형태라든지 주변 자연스러움은 하행선으로 광천 다음역인 보령 청소역이 좋지만, 청소역은 너무(?) 고즈넉해져서 적당한 움직임이 있는 광천역이 더 운치 있게 보입니다. 청소역은 기차표도 팔지 않습니다.
광천역은 1923년 12월 1일 문을 열었습니다. 꼭 백 년 전입니다. 백 년 동안 별일이 다 있었겠지요. 저도 그 백 년 중 삼십 년 넘게 광천역을 이용했습니다. 예전에 완행열차인 비둘기호가 있을 때, 홍성역에서 서울 쪽으로 출발하자마자 기차가 선로에 내려앉아서 오가던 상행선 하행선 승객들이 군소리 없이 서로 바꿔 타고 갈 길을 간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광천역부터 청소역까지 길은 장항선 내에서 유일하게 구불구불한 선로를 볼 수 있는 멋진 구간입니다. 이 멋진 길을 볼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철길을 옮기는 직선화 공사가 시작되었으니까요.2. 요즘은 광천역에서 조금 천천히 움직입니다. 익숙한 모습들이 조용하면서 새롭게 보입니다. 홀로 있는 나무도, 움직이는 사람들도 새롭고 조용합니다. 기차만 저 혼자 요란합니다. 기차마저 떠나면 더 조용해집니다. 밤이 오면 일찍 침묵합니다. 일부러 승강장 불빛 아래 머물다가 발을 옮깁니다. 모든 것이 쓸쓸하게 새롭습니다. 광천역 바로 앞에서 광천 오일장이 열리는데, 예전에 그렇게 많았다던 사람들은 찾기 어렵고 빈 곳이 듬성듬성 드러나 안쓰러움만 큽니다.
광천역이 있는 광천읍은 홍성군과 보령시 사이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합니다. 홍성군에 속하지만, 예전에는 홍성과 보령보다 더 큰 규모의 경제 활동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부자들이 많이 살아 ‘광천 가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네요. 지금이야 홍성읍과 보령권역에 밀려나 있지만 기백(?)은 그래도 살아있는 듯합니다.
서해의 등대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오서산이 감싸는 광천은 소리꾼 장사익 선생 고향이기도 합니다. 마흔다섯 나이에 노래를 시작한 선생은 초창기엔 광천에서 가끔 공연도 해서, 그때 귀 기울여 노래를 듣던 생각이 납니다. 마라톤 이봉주 선수도 광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며 마라토너의 꿈을 키웠지요. 광천읍을 보면 마치 인생의 희로애락을 보는 듯합니다. 잘 나가던 때는 그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의 영화를 가졌지만, 세월이 가면서 쇠퇴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촌로의 모습으로 비칩니다. 인근 도청 소재지인 내포 지역 영향 등 이렇게 저렇게 함께 살던 사람들 수도 줄고 고령화가 부쩍 진행되면서 광천은 점점 더 조용합니다.
3. 요즘 광천역과 청소역 철길 직선화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습니다. 공사 현장이 눈에 띄는 곳이어서 그곳을 지날 때마다 체감합니다. 기차 시간이 더 빨라진다는 것은 좋은 것 같습니다. 근래 한 이 년여 동안 매주 서울로 기차 타고 공부하러 다니다 보니 장항선에서 머무는 왕복 다섯 시간은 좀 긴 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익숙해져서인지 아이패드 하나 가지고 글도 읽고 음악도 듣고 늘 변하는 차창 밖 풍경을 보면, 무궁화호 기차 타는 것이 마치 친밀한 여행처럼 느껴집니다. 오래된 친밀함이라고 할까요?
무궁화호를 타고 충남을 벗어나면 가끔 KTX가 지나는 것도 봅니다. 고속열차는 다른 세계 같습니다. KTX 탈 일이 없다 보니(타고 싶어도 장항선에서는 타지 못하지만) 빠르게 간다는 것이 체감이 안 됩니다. 철길 직선화 사업이 끝나면 빠르게 움직일 테지요. 그때가 돼도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광천에서 청소역까지 한 구간은 지금 곡선 길을 살렸으면 좋겠는데, 어림도 없을 거라서 남은 시간 동안 이렇게 멋진 구간을 어떻게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을까 궁리 중입니다.
지방의 선로가 곧게 펴질수록 지방에서 서울로 딸려 가는 것이 많아집니다. 교육이니 의료니 이미 많은 것들이 서울권역 영향에 깊이 들어가 있고, 그나마 간신히 자리 잡고 있던 것들도 슬금슬금 자리 뜰 채비를 합니다. 지금 충남과 서울을 더 빠른 길로 잇는 여러 계획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게 과연 좋은 것인지, 무너지는 것을 더욱더 부채질 하는 일인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답은 모두가 이미 알고 있지만요.
4. 제가 사는 곳은 보령시 천북면인데 홍성군과 접경에 있습니다. 그래서 광천역까지 자동차로 10분이 채 안 걸립니다. 오랫동안 같은 생활권이지요. 광천읍의 정취가 같이 어울려 있습니다. 그래도 행정구역은 보령이라서 살다 보니 보령의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보령시는 정부의 행정적인 분류에 따르면 인구 소멸 위험 지역입니다. 광천읍도 역시 그렇습니다. 소멸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이긴 합니다. 소멸 대신 사용할 적당한 단어는 어떤 게 있을까요? 지금 전국에서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곳들이 시간이 지나면 먼지처럼 지도(地圖)에서 사라지는 그런 형편에 처하는 것은 아닐 테고, 아마도 소멸이라는 단어는 인구 위기 앞에서 선 지역을 상징하는, 또는 그런 위험을 잔뜩 내포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표현하는 단어쯤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상황을 잘 표현하는 대체 단어는 없을까요?
천북면은 보령의 가장 북쪽이고 홍성 남쪽과 맞대고 있어서 어느 쪽에서 봐도 변두리 분위가 납니다. 지방도 중심 지역이 있고 변두리 지역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경계선에 접해 있는 지역은 환영받기 어렵습니다. 역사의 기록도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고요. 1994년 대한민국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도농복합시에 관한 규정이 생기고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천북면은 그때 생활권인 홍성군과 행정 지역인 보령시 중 어느 쪽에 속할 것인지 주민 투표를 했고, 그 결과 계속 보령시에 남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투표를 했다는 것 자체가 운명(?)적으로 경계 지역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30여 년 시간이 지나는 동안 지역 특성도 순화되고 보령이라는 공동체의 부분으로 살아가면서 세월 따라 모습들은 늙어갔습니다.
5. 지방 소도시에서도 작은 지역인 천북면을 모르는 분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래도 요즘 천북면은 나름대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본래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자연환경을 갖고 있어서 태생적으로 아름다운 지역입니다. 그동안 아름다운 모습보다 경제 소득 때문에 늘어난 축산업이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가 천북면을 대표했습니다. 가축 분뇨로 인한 악취가 가장 큰 문제였고, 지금도 상당 부분 가축으로 인한 악취는 천북면의 많은 어려움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농어촌 경관을 이용한 카페나 태곳(太古)적 역사의 흔적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고, 또 농어촌 자연의 정취를 찾는 여행자들과 일찍 생성된 바닷가 굴구이 단지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천북면은 이제 서해 지방의 좋은 여행지 가운데 한 곳이 되었습니다.
바닷가 작은 섬에 중생대 백악기쯤 생성된 것으로 보이는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고, 그 자리에 우람한 공룡조형물이 설치되면서 아이를 데리고 오는 가족 단위 여행자들이 늘었고, 면 중심지에 자리 잡은 멋진 보리밭 동산과 인근 유기농 우유 농장 카페에서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해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천북면은 얼핏 보기에 생동감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이라고 해서 그 일환으로 커뮤니티센터 건물을 크게 세우기도 했고요. 그런데 허전합니다. 옛날 바닷가 마을들의 총애를 받던 면 중심지 상가는 텅텅 비었고,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나이가 많은 노인들입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여행자들과 젊은 사람들의 방문은 이어지는데, 인구는 감소하고 중심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거리는 텅텅 비면서 빈 점포들의 황량함이 당연한 듯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찾아오는 이들 때문에 관계(생활) 인구가 늘어나서 그나마 좋다고 해야 할까요.
관계 인구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봅니다. 일본 시마네현 출신 로컬 저널리스트 다나카 데루미가 쓴 ‘인구의 진화–지역소멸을 극복하는 관계인구 만들기’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인구감소 지역에서 주민 의식이 줄어들고 포기감이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마음'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구감소는 곳곳에 영향을 미쳐서 일상적인 활동은 위축이 되고 그러면서 낙담이 쌓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이제까지는 지역을 건강하게 만들려면 지역 ‘정주’ 인구를 늘리거나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교류’ 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많았다. 그런데 일본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지역끼리 인구 유입만 경쟁하면 결국 어떤 곳이 늘면 어떤 곳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너무 소모적이고 무의미하다. 꼭 그 지역에 살지 않더라도 지역을 응원하며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면 지역은 건강해질 수 있다. 이렇게 지역에 다양하게 참여하는 사람들이 바로 ‘관계 인구’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런 개념을 점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데, 지역사회 공동체의 건강함을 어떻게 더불어 유지할 수 있는지가 숙제일 것 같습니다.
6. 서울은 어떨까요?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얼마 전에 사진기를 들고 동대문역 근처 골목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지난여름부터 서울 골목을 거닐면서 이런저런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고, 이번 겨울에도 사진 촬영을 계속할 계획이어서 동대문역 근처에 온 김에 주변 골목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일단 연말연시 분위기인지 우선 알록달록한 조명과 성탄절 장식품이 한없이 펼쳐져서 보기에 무척 화려하고 흥이 났습니다. 농촌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색다른 감흥으로 다가왔습니다. 골목 안으로 좀 더 들어가서 옛날에는 마을이었을(지금도 그렇겠지만) 오래된 주택들과 허름한 상가를 보며 몇 장 더 사진을 찍었습니다.
화려한 자락이 끝나는 골목에는 쓸쓸함이 묻어 있습니다. 정지용의 시 향수( 鄕愁)가 벽화처럼 골목 안 담벼락에 걸쳐 있고, 향수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가게 문 앞에서 새우깡에 소주 한잔 걸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간단히 말하기 어려운 옛 생각을 떠오르게 합니다. 생동감이 넘치는 동대문 주변은 앞으로도 계속 전성기 같은데, 한 걸음 들어간 골목에는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이들 뒷모습부터 쓸쓸함이 깃들고 있음을 봅니다. 지난여름 사직동 골목에서 본 느낌이 다가옵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느끼는 애틋함은 어느 한 곳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저도 늙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는 마을에 온 지 삼십 년이 지났는데, 그 시간만큼 몸도 변하고 세상도 변했습니다. 그간 잘 지탱했던 마을 학교인 낙동초등학교 폐교도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십오 년 가까이 아이들을 차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했던 것은 마을 아이들이 마을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이 없어졌습니다. 학교가 문을 활짝 열어도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광천읍이 조용해지고, 천북면이 허전해진 것도 이런 연유(緣由)이기도 할 테지요. 마을에 학교가 있어야 하는 상상의 힘을 키웠지만 낡은 장식품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상상의 힘을 키우던 그 과정은 늘 생각해도 즐거움입니다. 낡은 장식품도 버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고요.
사실 그냥 지켜보는 것도 순리일 것입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그렇게도 지긋지긋하던 풀들이 먼저 힘을 잃고 드러눕듯이, 또 바람이 부드러워지면 풀들이 다시 일어나듯이 순리대로 지켜보면서 하나하나 멈추고 비워진 그 자리에 그리움을 쌓다가, 때가 되면 내가 있던 자리나 그 곁에서 다른 이들이 또 새롭게 지켜보면 되겠지요. 새로움을 순리로 받아들일 때 지금 변하는 것들이 어색하지 않고 다정히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 지역에서, 또 마을에서 함께 사니 쓸쓸하고 새로워지네요. 기차가 혼자 요란한 것도 새롭게 보이고, 아이들이 없어진 것도 순리로 받아들이려니 그 과정과 현실이 새롭습니다. 소멸이라는 단어 속에 새롭게 솟아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요. 애틋함이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을의 노인 한 분이 몸이 불편하기도 해서 운전면허를 반납하고 그간 애지중지 타고 다니던 자동차도 처분했습니다. 농촌은 교통이 좀 불편하고, 더군다나 안쪽 마을은 시내버스도 들어가지 않아서 자동차가 없으면 외출이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지나다가 집에 들러서 병원에 가거나 식품을 구입하는 일 등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그저 웃더니 지낼만하다고 말합니다. 신경 쓸 일이 하나 없어져서 편한 마음도 보입니다. 사실 차가 없으니, 읍내에 한 번 가려고 해도 시간이 하세월입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더 어려웠다며 담담히 적응하고 있습니다. 새롭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니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저도 새롭게 가야 할 길로 다가옵니다.
서울에 가기 위해 기차표를 끊었습니다. 여전히 기차는 혼자 요란하고 승강장 불빛 아래는 잠깐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한적합니다. 홀로 선 나무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무심합니다. 선로가 직선화되고 광천역사가 지금보다 더 우람하게 들어서면 이 모습은 사라질까요? 쓸쓸함도 남고 새로워지는 것도 괜찮습니다. 기차 시간은 조금 더 빨라질 테니까요. 새해에도 쓸쓸함과 벗하고 그러면서 새로워지는 삶을 살아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