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 저는 나름대로 집중해야 할 또 하나의 일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음을 먼저 밝힙니다. 그 일은 제가 사는 보령시 주민들과 특히 예술에 대한 교감을 나누기 위해 준비하고 작업하고 또 여러 생각을 듣는 과정입니다. 작년 말부터 코로나 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 동안 계획하고 홍보하고, 드디어 4월을 맞이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그 전 단계였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요즘 전국 지자체에서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을 보령시에서도 진행하고 있는데, 저도 그 일에 참여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재생사업의 과정에서 계획한 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일환으로 먼저 예술 활동을 통해서 이런저런 일의 교감을 키우는 중입니다.
2. 어떻게 보령시 농촌에서 살다 보니, 마을 만들기(요즘 행정 용어상으로)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지역 도시재생사업의 한 축에도 조금씩 관여하고 있습니다.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호불호는 여기서 말할 바가 아닌 것 같고, 다만 그 목적의 취지에는 동감하고 있어서 가능한 여러 사람과 생각을 나누며 실천적으로 좀 더 행복한 지역 공동체를 꿈꾸고 있습니다.
원래 도시의 중심이었다가 이제는 낙후된 원도심의 재생을 위해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일으키는 기반을 저는 문화예술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 전국 어느 지방 도시든지 새롭게 형성되는 신도심에는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기존의 중추 역할을 했던 원도심은 별로 눈여겨보지 않는 상황입니다. 한 도시의 역사와 전통이 깃들어 있고, 오랜 세월 지역의 든든한 받침 역할을 했던 공간은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고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도시도 사람의 몸과 같아서 한쪽이 부실하면 다른 쪽도 결국은 영향을 받게 되고 균형이 부실해지면 삶의 공간 전체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균형 있는 발전이 필요한데, 사실 이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인위적인 정책과 방법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서 아쉬움만 남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문화와 예술은 먼저 마음을 소통시키는 기반이 된다고 봅니다.
3. 아무튼,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미술을 통해 마음을 교환하는 시범 전시회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지난 4월 3일(월)부터 12일(월)까지 보령의 전통시장 가운데 가장 조용하다고(?) 알려진 현대시장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시장이 조용하다면 시장의 기능이 멈춰있다는 것이겠지요. 이번 전시회는 단순히 그림만 감상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림을 그려보고 다른 사람의 그림도 감상하면서 마음에 드는 것은 교환하는 전시회입니다. 보령과 같은 소도시에서 이런 자리는 특별합니다. 처음 해보는 경험이니까요.
전시회는 이런 방식입니다. 이름은 ‘텐바이텐 전시회’라고 했습니다. 보통 유화를 그리는 캔버스 1호는 가로 22.7cm 세로 15.8cm 정도인데, 이번 전시회에서 준비한 캔버스는 가로세로 10cm보다 조금 더 큰 크기여서 부르기 쉽게 ‘텐바이텐 전시회’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리고 전시회에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지역 작가 5명과 충남 지역 대학교수 2명, 그리고 코로나 19 때문에 오지는 못했지만, 일본 작가 3명이 10여 점씩 작품을 기증했습니다. 100여 점의 작품이 기본으로 전시된 것이지요. 여기에 사진 부분으로 제가 참여해서 함께 전시했습니다.
4. 위에서 잠깐 설명했지만, 구체적인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시회에 온 관람객들은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이 있으면 본인이 직접 그린 작품과 아무런 조건 없이 교환합니다. 그리고 작가들이 작품을 만드는 예술적 행위를 이해하고 집에 작품 한 점을 소유하는 즐거움을 체험합니다. 또 작가의 작품만이 아니라 전시회에서 본 시민의 작품과도 교환을 계속하고, 이런 모습 자체가 전체 작품이 되어서 10일간 연결해 보는 것입니다. 즉 구체적인 예술 행위에 참여해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행위를 통해서 지금 우리가 하는 도시재생의 문화적 기반을 닦고 서로 소통하면서 계속 살아야 할 도시에 활력을 넣자는 바람이 전시회의 목적입니다.
전시회장에 작품을 만들 캔버스와 물감과 붓도 넉넉히 준비를 해둬서 주민들이 전시회에 오면 멋진 화가로 변신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주민들은 혼자 심취해서 그리기도 하고, 작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리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좋아서 교환하지 않고 가져가는 이들도 있고,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매일 전시회에 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옆에서 잠깐 지켜보는 것으로도 그런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다들 알게 모르게 표현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그동안 마음에 담긴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낙후되었다고 여겨지는 시장 공간에서, 그리고 요즘처럼 코로나 19로 위축된 상황에서 붓을 통해 내 이야기를 그려내는 일이 전시회에서 나를 재생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도시재생이 바르게 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우리 속에 담긴 여러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우리가 가야 할 많은 길을 펼쳐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지금 진행하고 있는 방식은 같은 길을 만들고 있지 않은지 염려가 됩니다.5. 올 초에 일간 신문에서 책을 한 권 소개받았습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유제프 차프스키 지음, 류재화 옮김 /밤의책(2021). 부제는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입니다. 요약을 하면,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소련이 번갈아 가며 폴란드를 침공하는 와중에 폴란드 장교로서 소련군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 화가이자 작가인 유제프 차프스키가 오로지 기억에만 의지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위하여"를 강의한 강의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느 순간에 끌려나가 처형될지도 모를 절박함으로 가득 찬 그랴조베츠 포로수용소. 그리고 영하 40도의 강추위 속에서 수용소에 갇힌 400여 명의 폴란드 장교와 군인들은 공포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서로 전공을 살려 강의를 했고, 그 강의를 경청했습니다. 군사학, 책의 역사, 건축 역사, 남아메리카 등…. 그렇게 차프스키는 프랑스와 폴란드 화가에 대한 강의와 프루스트에 관한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1940~1941년 겨울 그랴조베츠 포로수용소 식당으로 쓰던 어느 수도원의 차가운 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차프스키는 어떠한 프루스트에 관한 기록물이나 그의 책 한 권 없이 오로지 기억에 의존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위하여” 강의를 준비하고 강의록을 작성하여 듣는 이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천재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아가서 그것은 끔찍한 현실에서 빠져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나가고자 하는 바람이 간절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당시 강의를 기획했던 몇몇 이는 자신들이 모르는 곳으로 보내져 슬픈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삶의 영혼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그들의 모습은 지금도 또렷이 그려집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79명이었다고 합니다.
책의 ‘서문’ 중 한 부분입니다. “이 같은 각고의 지성적 노력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우리의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던 '정신'의 세계를 생각하고 그것에 반응 할 수 있었다. 그 큰 옛 수도원의 식당에서 보낸 시간은 온통 장밋빛이었다. 이 기교한 '교외수업'은, 영영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느끼던 우리에게 다시금 세상 사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6. 황량하다시피 한 시장 한쪽 귀퉁이, 모든 것이 쓰레기 더미로 어지럽혀진 예전 쌀가게를 대충 치우고 부랴부랴 작품을 비출 조명 몇 개를 단 채 전시를 시작한 공간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작은 캔버스만을 바라보며 붓을 조심조심 놀리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유제프 차프스키의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가 떠올랐습니다. 너무 극적인 비약인가요?
극적인 비약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위축되고 소멸하는 환경에 맞서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겠다고 일어서는 모습에서, 공포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서로 전공을 살려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영하 40도의 환경을 온통 장밋빛 시간으로 바꾼 오래전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을 뿐입니다.
도시재생이란 일이 지금까지는 당연한 듯 물리적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현실의 간섭을 받았지만, 이 일이 지속적이고 생동감이 넘치기 위해서는 상상을 동반한 소통이 우선돼야 하고 현실에 가로막혀 주춤거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소통되지 않고서는 현실 앞에서 길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옛 수도원에 있지는 않지만, 세상 사는 기쁨을 찾아가는 것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도시재생의 결과물이 수도원의 위엄만 자랑하는 것이 되지 않고, 그 안의 시간이 장밋빛으로 물들어서 함께 하는 사람들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7. 작은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는 것은 우리가 각자 이야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 그림을 경청하면서 또 다른 내가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프랑스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도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결국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물론 고흐 생전에는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지요. 겨우 1903년 이후에야 사람들은 고흐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오늘은 대다수 사람이 고흐의 그림을 통해 울림 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은 듣고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해야 하고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현대시장에서 열린 텐바이텐 전시회는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이야기 전시회이기도 합니다. 이야기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로 그림을 택하고 찬찬히 붓을 들어 한 번 한 번 칠할 때마다 내 이야기의 농도를 진하게 만들어 전합니다.
8. 신약성경 사도행전 5장에는 예수의 제자들이 유대교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앞에서 재판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는 예수가 하늘로 올라간 후 제자들만 남아서 예수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할 때였습니다. 제자들과 유대교의 초기 관계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원후 70년경에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정복되면서 율법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기 시작한 유대교와 율법을 따르지 않는 기독교인들의 사이에 금이 갔습니다. 박해가 시작되었고 당시 산헤드린 재판정에서 제자들은 위협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제사장은 복음을 공개적으로 사람들에게 전하는 예수의 제자들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겁박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대표 격인 베드로는 ‘너희 말을 듣지 않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말을 하겠고, 너희가 십자가에 달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 일의 증인으로 살아가겠다.’고 담담히 말합니다. 시국이 무척 엄중한 가운데서도 제자들은 힘의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증인으로서 자신들이 이야기할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참담하고 위태로운 현실 앞에서도 제자들은 순교를 각오하며 부활의 이야기를 계속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2000년 동안 흘러왔고 그 흐름은 많은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9. 마을 만들기도, 도시재생도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산헤드린 재판정에 선 제자들처럼, 그랴조베츠 수용소에 갇힌 폴란드 장교들처럼 비장하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가 대면한 상황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우리의 꿈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그려서 서로 교환하고, 그렇게 흐름을 이어갑니다. 얼마나 이어갈지 알 수 없지만, 우리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 부닥친 이들이 절대 위축되지 않고,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나가고자 하는 바람을 크게 키운 것처럼 우리도 그 길을 배우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전시회지만 이 시간을 기억하고, 계속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그 마당이 굳건할수록 그 위에 자리 잡은 이야기들도 모습을 잘 드러낼 수 있겠지요. 이것은 도시재생 목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우리 삶이 즐거움을 누리는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함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전시회 기간 목련이 지고 벚꽃이 졌습니다. 짧은 기간 꽃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푸른 잎, 탄탄한 줄기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꽃비를 맞으며 나눈 우리 이야기 속에도 가야 할 길이 여러 갈래로 피어납니다.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쓰면서 더욱더 함께 이야기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