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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특히 집중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피아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입니다. 이게 뭐냐면 뜻을 함께하는 보령 사람들이 조금씩 마음을 모아 재래시장 한복판에 피아노를 설치하려고 합니다. 재래시장 한복판의 피아노라니 좀 생뚱맞긴 합니다. 시장 사람들도 무슨 짓이냐고 한마디씩 던집니다. 그래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즐거움에 뜻을 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뜻을 함께한다는 것은 마음을 모은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모은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을 강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방향을 정하고 희망을 나눈다는 의미이지요.
제가 사는 보령은 요즘 도시 재생에 관련한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건 지금 전국적인 일이니까 어쨌든 따라가야 하는 일처럼 되었습니다. 더구나 저도 이 일에 조금 관여하고 있다 보니 신경이 쓰이긴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관 주도로 하다 보니 창의적이거나 융통성이 많아 보이진 않습니다. 시간도 제법 걸리고 세운 계획도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그런 수준(?)입니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 공무원들도 무척 힘들 것 같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 공무원들이 생각 이상으로 책임을 갖고 일을 합니다. 다만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여러 가지를 융합해서 생기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판단은 미진합니다.
2. 어느 날, 몇 사람이 모여서 마을 공부를 하는 중 재래시장을 살린다는 것이 무엇일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엇이라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안한 것이 피아노를 두는 일이었습니다. 가만히 있기보다 무엇이라도 두드리고 움직이고 자극을 줘야 파동도 일어나고 생동감도 커지지 않겠느냐는 마음이었습니다. 갑자기 이야기가 재미있어졌습니다.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바로 실천하자고 결정을 했습니다.
피아노 가격이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지만, 중고 피아노를 구입하기로 했고 그 금액은 80만원으로 정했습니다. 조금 비싸도 이 가격에 가져오면 되지 않을까 단순한 생각도 곁들어졌고요. 보령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계획을 알리면서 1계좌에 5,000원, 한 사람이 10계좌를 넘을 수 없다는 결연한(?) 원칙까지 정했습니다. 바라기는 두세 계좌 정도가 가장 좋다고 여겼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참여하는 데 의의를 두었으니까요.
다음 날, 황선만 님이 취지문을 썼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령시 내 현대상가 앞에 있는 재래시장인 <현대시장>에 생동감을 담아보고자 기획했습니다. 보령시 도시재생 사업의 성공을 기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모두가 NO라고 할 때 YES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발상을,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용기 있는 실험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정말로 태풍을 몰아올 수도 있겠지요. 아니, 그렇게 거창한 꿈이 아니어도 됩니다. 다양한 문화가 발아하고 주목받는 세상 속에서 우리들만의 문화의 꽃을 한 번 피워보는 것이지요. 그 옛날에는 일과 놀이와 쉼이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지요. 우리 삶터 가까이에 그런 풍경 한 번 만들어봅시다. 함께 새로운 문화 마당을 꾸며봅시다. 큰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시민들의 힘으로 걸어가 보고자 합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 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함께 그 길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봅시다.”
그리고 실천계획도 덧붙였습니다.
“현대시장 ‘피아노 프로젝트’는 기부형 크라우드 펀딩(모금)으로 한다. 시민 모금을 통해 마련한 피아노는 현대시장 입구에 반영구적으로 놓고 누구든지 다양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피아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가능한 지속하게 한다. 우선 시민 모금 목표액은 130만원(중고 피아노 구입비 80만원과 유지관리 및 운용비 50만원)이다. 참여 방법은 지정된 계좌에 입금(1계좌 5,000원으로 최대 10계좌까지 입금할 수 있고, 그 이상은 안 됨)방식으로 하고 모금 기간은 5월 15일부터 6월 15일까지 한다. 참여자에게는 작은 국화화분 선물과 21일(금) 오프닝 공연에 초대한다. 아울러 피아노 한편에 붙여둘 기증자 명부에 이름을 게시한다.”
3. 아마 공동선에 이 글이 실릴 때쯤은 이런 계획이 다 이루어졌겠지요. 6월 초 상황으로는 현재 80여명이 참여하고 있고, 금액은 180여만 원 정도 모였습니다. 마감일까지 더 늘어날 테고 잘 진행되리라고 믿습니다. 참여하는 분들도 재미있다는 반응입니다. 보령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고, 이렇게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일을 만든다는 것이 신선하다고 합니다. 생각지 못한 책임감이 다가왔습니다. 물론 즐거운 책임감이지요.
피아노를 가져다 놓고 시작을 알리는 연주회는 6월 21일(금) 점심시간에 하기로 했습니다. 연주할 연주자도 섭외를 했습니다. 앞으로 젊은 음악가들이 피아노가 놓인 재래시장 마당을 열린 연주장으로 활용하도록 도울 계획입니다. 피아노는 '종합피아노' 사에서 하얀색 피아노를 내놓았습니다. 애초에 생각한(?) 대로 가격에 상관없이 흔쾌히 피아노를 주고 앞으로 관리까지 맡기로 했습니다. 진행되는 과정을 보니 마치 동화를 쓰는 듯합니다. 고마울 뿐입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시장 입구에 피아노를 두는 것은 관 주도로 우리 삶터를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그 일을 시작하자는 실천입니다. 아무나 두드릴 수 있는 피아노로 보령 원도심의 무뎌진 감각을 일으켜 흔들어보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것을 소소하지만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몇십억 몇백억 돈이 아니라, 마음을 내놓은 보령 사람들의 즐거움이 잠자고 있던 보령의 가치를 일으켜 세우기 때문입니다.
4. 전국적으로도 그렇지만 보령시 도시재생 움직임도 흐름을 타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느린 듯한 분위기도 생깁니다만 결국, 우리 삶터를 살리는 일은 기다리기보다 스스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백 마디 말도 좋지만, 한 번 마음을 모아 보여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피아노가 놓일 장소 주변에 식당이 네다섯 군데 있습니다. 작은 점심값으로 음악을 들으며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수록 시장이 살아난다고 상인들이 느끼면 음악가들도 살아나고 여행자들도 밥을 같이 먹으러 오겠지요.
그동안 개발 논리에 익숙해져서 도시재생을 개발 이익에 손댈 기회로 여기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자체별로 원도심과 근대역사문화 거리 등을 근간으로 개발과 그에 따른 부동산 가치에 대한 논쟁이 한창인 것도 도시재생이 수익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사실 이런 생각이 도시재생의 한계라는 것은 알 사람은 압니다. 하지만 원래 목적대로 지역주민의 삶을 고민하고 공동체 활성화와 지역 활력에 도시재생의 초점을 맞춘다면 지역 개발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갖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새로움은 없는 데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도시를 어떻게 재구성하든 우선시 되어야 할 것 중 하나가 지역공동체의 신뢰와 연대하는 문화입니다. 신뢰로 형성된 공동체가 아니고서는 재생의 길은 험난합니다. 그러므로 당장 도시재생 사업에 부딪히기보다 먼저 도시재생에 대한 작은 상상을 펼치고, 그 위에 차근차근 정책적 구상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상상을 펼치기 위해서 이미 가지고 있는 문화의 힘을 드러내야 하고 문화가 이끄는 대로 길을 가야 합니다. 문화는 정체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소통의 언어입니다. 소통하는 언어는 상상을 생활로 구현하게 합니다.
5. 시장 입구에 설치하는 피아노는 소통의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오래된 도심 여행을 했는데, 구도심의 위축은 상황도 심각하지만, 위축이 이어지는 악순환 때문인지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소통도 순탄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마디 대화 속에도 같은 단어가 다른 뜻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고요. 일단 마음을 열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열까? 그것을 위해 생뚱맞지만 일단 피아노 소리라도 내보자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일이 이어지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참 궁금합니다.
아무튼, 언어의 소통은 생각의 소통과 맞닿아 있습니다. 같은 것이지요. 최근 보령에 사는 이종주 님이 자신의 건물을 청년들이 무상으로 활용하게끔 허락했습니다. 임대료도 제법 받을 수 있지만, 소통하자는 취지에 공감해서 결정한 것입니다. 마침 보령에 자리 잡은 한국중부발전에서 지역 청년을 위한 청년창업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과 결합해서 청년들이 창업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수제 맥주 공부를 계속해온 청년들이 있어서 보령 수제 맥주 가게를 창업(?)하도록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일반 맥주와 달리 보령시 주변 마을에서 재배하는 농산물을 이용해서 몇 가지 수제 맥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공부한 결과를 적용한 것입니다. 뽕나무를 키우는 마을과 의논하면서 뽕잎을 이용한 뽕 맥주도 만들었고, 소설가 이문구 선생을 기리는 관촌에일 맥주도 만들었습니다. 관촌은 갈머리라고도 하는데 이문구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 이름입니다. 관촌수필로 잘 알려졌지요. 또 머드 축제로 유명한 보령의 머드 브랜드를 이용해서 흑맥주를 머드엘일로 탄생시키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계속 공부해 온 공력이 맥주의 질을 무척 높이고 있습니다.
임대 공간 때문에 창업을 망설이고 있던 청년들에게 기회를 준 것은 같이 소통하고자 하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을 같이 여행하면서 마음을 나누고 즐거움을 나누다 보니 이런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여행이 소통의 언어를 만든 것이지요.
6. 결과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결과를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니까요. 피아노를 가져다 놓고 이상한 소리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겠습니다. 청년 창업을 도우면서 수제 맥주 간판을 달고 맥주 마시다 끝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것은 막연히 시간이 지나서 온 것은 아니고 여러 사람이 때로는 엉뚱한 꿈을 꾸고 거기에 동조한 사람이 생기고, 그러다가 누군가 자리를 만들고 응원하고 그렇게 온 것입니다. 마음 모으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마음을 내준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이지요. 마음을 내주는 자리가 우리를 유쾌하게 만드는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피아노가 놓일 자리에 현수막을 어떻게 붙일까 논의했습니다. 재래시장 마당이니까 재래시장 이름도 들어가야겠고, 시민들이 한 분 두 분 참여해서 일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이런 뜻도 들어가야 해서 현수막 문구가 무척 중요했습니다. 이런 제안도 있었습니다. “갈매기 날아가는 보령시장에서 도깨비불 피아노와 같이 놀아보세.” 문구가 생동감이 있어서 흥취가 납니다. 현수막 붙이고, 참여자들에게 초청 문자도 보내고, 주변 식당에는 음식을 좀 더 준비할 수 있도록 요청도 하고 좀 더 집중할 일이 계속 생깁니다. 음악가들과 소통도 더욱 필요하고요.
저도 그날 피아노 치면서 노래 한 곡이라도 해야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아쉬움이 남을 것 같습니다. 클래식 연주가 끝나면 막간을 이용해서 뽕짝 연주라도 할까 합니다. 흘러간 노래 가운데 몇 곡을 고르고 있습니다. 클래식이 조금은 어색한 시장 상인들에게 드리려고요. 이런 일은 모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고요. 재미있으면 사람을 더 불러야겠지요. 모르는 사람은 알게 하고, 새로운 생각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나누게 하면서 그렇게 마음을 모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희망의 자리가 더 커질 테니까요. 응원이 필요합니다. 미리 고마운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