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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즐거운 마을살이 기반농촌이야기 2017. 7. 15. 22:38
1. 프롤로그
마을 만들기의 중요한 요소로 많은 것들이 그동안 제시되었다. 행정의 예산과 관심 및 지원, 주민의 의지와 학습 자세, 전문가의 경험과 역량 등 기본적인 것도 이미 보편화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진취적인 역동성이 부족하면 마을 만들기는 여러 문제 앞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진취적인 역동성을 끄집어내는 일은 마을 만들기, 혹은 마을살이에 있어서 늘 고민거리이다. 그래서 패러다임 바꾸기 등이 동원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착된 패러다임 바꾸기는 또 하나의 패러다임을 쌓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마을이 본래 가지고 있는 모습과 자원들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마을의 변화와 삶의 질을 높이는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마을에 있어야 할 것을 확보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은 학교라도 살아남도록 해야 하고,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토대를 늘 만지고 보수해야 한다. 인위적 노력은 힘들어서 어렵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기반은 문화의 힘이다.
마을에서 문화란 거창한 것 같고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마을의 감성을 드러내고, 그 감성에 연결된 각각의 고리를 통해 마을 스스로 가지고 있는 가치를 누리는 일이 작은 의미에서 마을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본래 문화란 인간이 사회를 통해, 또는 자연과 집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형성한 다양한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뜻한다. 마을 문화는 마을에서 이뤄지는 상호작용과 지적·예술적 활동을 통해 형성한 문화적 결과이다.
요즘 마을에는 문화가 사라졌다고 한다. 사실 마을이 예전에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긴 하지만, 그러나 사람 사는 곳에 어찌 문화가 없을까? 이런 생각에는 미디어의 영향으로 도시적인 것만을 문화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을 테고, 인구 감소로 말미암아 마을공동체가 위축되니 공동문화의 생산이 없어지는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 마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습 자체가 훌륭한 문화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면, 어렵지 않게 농촌에서 즐거운 마을살이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유・무형의 문화유산 콘텐츠가 있는 마을 문화는 문화산업으로 나갈 수 있다. 많은 문화의 유형이 있지만, 특별히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공동체 콘텐츠와 자연유산 콘텐츠에 관한 것이다. 마을에서 공동체와 자연유산은 늘 현재형이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준다. 새로운 길 중에는 문화 활동을 통해 경제적 활용의 결과를 얻는 것도 중요하다.
충남 보령시 남포면 제석2리와 천북면 신죽리는 각각 가지고 있는 작은 문화의 힘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서 마을을 즐겁게 하고, 미약하지만 이런 문화 활동을 자연스럽게 경제적 활동의 방편으로도 삼고 있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쉽게 지나쳐버리는 마을의 모습이 사실은 진취적 역동성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2. 보령시 천북면 신죽리
1) 축제가 된 들꽃 사랑
충남 보령시 천북면 신죽리는 마을에 있는 들꽃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들꽃을 통해 농촌의 매력을 살리려고 노력한 일이 무척 유쾌한 일이 되었다. 마을의 산야에 많이 있는 노루귀, 매발톱, 제비꽃, 돌단풍, 금낭화, 할미꽃, 노루오줌, 꿩의 다리 등. 그리고 잡풀로 여겨 누구 하나 쳐다보지도 않던 논둑의 개불알풀까지 새롭게 각인시켜서 함께 하는 구성원이 되었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도 정성껏 가꾸던 꽃들을 모아서 함께 들꽃축제를 열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가정마다 키운 꽃들이 너무 예뻐서 한군데 모아 함께 감상하자고 하면서부터였다. 마을의 각 가정은 저마다 화분에 예쁜 꽃들을 잘 키우고 있었다. 전체를 둘러보니 제법 꽃의 개체 수가 많았다. 각 가정에서는 자기 것밖에 볼 수 없지만, 한군데에 모으면 함께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마을의 교회 마당에 야생화가 피는 시기를 골라 각 가정의 화분을 모아서 사람들을 초청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이렇게 한두 해를 거치면서 사람의 왕래가 잦아지다 보니 꽃 감상과 더불어 천북면과 신죽리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소개하는 매개체로써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충남 일원과 가까운 지역에 있는 도시민들을 초청해서 신죽리의 꽃을 감상하고 마을에서 즐길 수 있는 체험 놀이도 하면서 마을 농민들이 생산한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고 나누고 판매를 하는 자리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누구나 쉽게 생각하는 들꽃이었고, 개중에는 잡초라고 생각해서 관심을 두기는커녕 오히려 귀찮아했던 것들도 있었지만 이름표를 붙여서 한군데 모아두니 그 아름다움은 어느 야생화 전시장 못지않은 감동을 주었다.
처음 들꽃축제를 하면서 특별히 천대받는 풀, 보통 잡초라고 불리는 꽃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우선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본받고 싶었고, 또 가만히 보니 잡초의 꽃들이 상당히 예쁘기 때문이었다. 잡초의 꽃은 상당수가 작다. 그래서 눈에 잘 띄지 않고, 환경에 적응만 하면 번지는 속도가 빨라서 애물단지로 생각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그렇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잡초를 한자로 풀면 잡스러운 풀이 된다. 원하지 않은 장소에 난 잘못된 풀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제성 있는 작물의 이해와 상반되는 잡초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풀에 대한 인간 중심주의적인 정의이다.
이런 인간 중심주의적 정의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농촌의 몰락을 불러왔다. 그렇지만 잡초를 사진으로 확대해서 담아보면 그 모습이 뚜렷하다. 어느 것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생명의 충만함을 담고 있고,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서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는 깨우침을 준다. 달개비(닭의장풀)의 멋진 사진을 본 마을 사람이 오히려 묻는다. ‘이게 무슨 꽃이냐?’고. 달개비라고 말해주면 잘 아는 이름에 멋쩍어하면서도 감탄을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달개비를 함부로 없애서는 안 되겠다는 말도 한다. 이런 가치의 발견은 마을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들꽃축제는 제5회부터 ‘온새미로 축제’로 이름을 바꿨다. 우선은 들꽃축제라는 이름을 사용하다 보니 생각과는 달리 보기 좋고 근사한 꽃만을 생각하고 온 방문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자연에서 꽃이 피는 모든 것을 들꽃이라고 여기면서 그 속에 있는 마을의 건강한 생명을 보여주고자 했는데,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야생화 전시회의 영향으로 이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신죽리 마을이 2년 연속 보령시의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에 선정되면서 더불어 이름도 바꾸게 되었다. 온새미로는 마을에서 논의 끝에 바꾼 이름인데, ‘자연 그대로, 또는 생김새 그대로’ 등의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이 말에는 마을의 가치를 그대로 보여주려는 마음이 담겨있다. 한 마을의 작은 들꽃 사랑은 이제 보령시의 지역축제가 되었고, 대략 2,500만 원 이상 되는 축제 예산은 지역민의 참여와 지역 내의 기관에서 후원해 주는 후원금으로 충당된다. 축제에 참여하는 이들을 통한 농산물 판매는 마을에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가을철 농산물 판매에도 축제의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2) 꽃놀이와 어우러진 마을의 가치 보존
천북면 신죽리는 보령시 농촌기술센터의 지원 아래, EM농업으로 생산한 배추를 EM절임배추로 만들어 전국으로 판매를 하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마을 축제와 어우러져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계속 우수한 판매 실적으로 판매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고, 보령시 관내 농민들의 절임배추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함께 꽃을 모으고, 축제하고, 공동체 가치를 깨달으면서 천북면은 본격적인 음악회도 하게 되었다. 공연장에 600여 명 이상이 모여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환호를 하고, 대중음악을 통해서도 즐거움을 나누었다. 핸드드립 커피를 배운 사람들은 입구에서 정성껏 커피를 내려서 나눠주고, 부녀회는 떡과 과일도 준비해서 나눈다.
작은 들꽃 한 송이에서 시작된 문화적 감성은 마을에 있는 작은 학교에 대해서도 마음을 나누게 했다. 교육 당국의 지역 초등학교의 통폐합 방침에 대해서 초등학교 스쿨버스 기사를 자원해서 아이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자꾸 줄어들고 없어지는 농촌의 현실에 지역공동체의 기반이 되는 학교마저 없어지면 문제는 무척 심각해진다. 학교에 관한 이야기는 KBS에서 2부작 TV 다큐멘터리와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해서 전국에 방송한 바 있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면서 만들어진 전교생합창단은 이후로 농촌학교만이 할 수 있는 공동체 교육형태가 되었고, 피아노를 비롯한 바이올린 등의 음악 교육 등 아이들 하나하나가 진지한 교육의 대상이 되는 학교가 되었다.
농촌 현실에선 농촌학교의 폐교를 끝까지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마을에 수십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있고, 이 아이들은 생명의 충만함을 담고 있다. 우리는 서로 연결돼서 함께 살아간다는 깨우침을 작은 들꽃을 통해서 얻었기 때문에 연결 상태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함께 하는 교육을 위해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학교가 언제까지 존속될지 지금은 모르지만 설령 학교가 나중에 폐교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땐 오히려 지나온 시간들을 감사 할 수 있으리라 여기고 있다. 천북면 신죽리는 오늘도 작은 들꽃 한 송이에 연결된 감성을 키우고 그 가치를 누리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
3. 보령시 남포면 제석2리
1) 우리동네예술단
충남 보령시 남포면 제석2리 마을. 듣기에 전혀 생소할 수 있는 이 마을에는 70대 주민들로 이루어진 극단이 있다. 이름하여 ‘우리동네예술단’. 제석리 마을은 그동안 보령시에서 ‘서각’으로 잘 알려진 마을이다. 마을 내에 서각체험교실이 있어서 마을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와서 배우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 제석리 마을의 우리동네예술단은 보령시 연극 단체와 때로는 연대해서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동네예술단이 주로 공연하는 것은 마을의 전설을 토대로 한 ‘경순왕의 깃발’이다.
내용은 이렇다. 옛날에 이 마을에서 어렵게 살던 어부가 바다에 갔다가 물결에 떠내려온 함을 주웠는데, 그 안에 신라의 제56대이자 마지막 왕인 경순왕(927∼935)을 기리는 깃발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 깃발을 고이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꿈에 경순왕이 나타나서 복을 내렸다. 그날 이후로 어부는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게 되었고, 그것이 궁금한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서 이유를 물었다. 어부의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경순왕의 사당을 지어 함께 모시자고 말했다. 어부는 욕심 부리지 않고 그 말에 순순히 동의했고, 마을 사람들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십시일반 힘을 모아 경순왕 경모전을 지었다. 그랬더니 마을 전체가 복을 누리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내용인데,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을 각색하고 그것을 연극으로 만들었다. 연출자가 제일 고생한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대사를 외우도록 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공연은 온갖 정성을 들여 감동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조명도 농촌 자연을 토대로 빛을 적절하게 구사해서 어느 곳에 내놔도 자랑할 만 했다.
그런데 왜 신라와 동떨어진 백제의 땅 보령에서 경순왕에 대한 연극을 했을까? 동해의 경주와 서해의 보령은 동서로 떨어져 있지만, 의외로 보령에는 신라와 연결된 곳들이 제법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성주사지이다. 이곳은 신라 말 구산선문 중 하나였다. 보령에 경순왕과 연관된 대표적인 곳으로 왕대사라는 절이 있다. 경순왕이 보령에 와서 머물렀다고 해서 생긴 절이다.
제석리 사람들은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런 전설을 각색하고 연극으로 만들었다. 본래 연극은 인간의 삶의 근원적 경험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제석리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연극을 통해 함께 나누는 삶을 이야기했다. 혼자 누리는 복보다 함께 누리는 복이 더 좋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함께 사는 삶에 참 인색하다. 도무지 나눌 줄을 모른다. 경북 봉화에서 농사지으며 자연에 순응한 삶을 살았던 전우익 선생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고 말했다.
마을 연극은 공동체 연극이다. 공동체 연극은 구성원들이 문화예술 행위로 자신의 일상을 표현하고 삶에 대한 탐구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연극을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다른 구성원과 공유할 수 있게 해서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농촌에서 공동체 연극은 문화로부터 소외되었던 농민들이 연극에 참여하여 문화의 주체가 됨으로써 그들의 견해가 폭넓게 공유되는 현장이 된다.
그리고 마을 연극은 전통적인 연극과는 다른, 새로운 참여 방식들을 발전시킨다. 우선 공연자와 관객이 통합되어 집단적인 경험을 공유하는 잔치의 소통 방식을 보여준다. 제석리 마을 연극에서도 관객과 배우가 아주 잘 아는 사이여서 연극을 보면서 던지는 관객들의 추임새도 마치 훈련받은 모습처럼 자연스럽다. 그래서 재미가 배가된다.
“우리가 이렇게 연극을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연극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라운 일이여유. 저 사람이 저렇게 잘할 줄은 몰랐어유. 대단허유.” 마을 사람들의 말 속에 연극을 하는 충분한 이유가 들어 있다. 즐거운 체험이 집단적 문화예술 행위가 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2) 마을의 변화를 이끄는 즐거움
원래 농촌은 공동체의 상호 작용을 통해 서로의 행위를 이해하고,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며, 이를 통해 문화를 창출하고 재생산할 기회를 만들었다. 그런 문화의 힘이 지치지 않고 농사를 짓게 하고, 마을을 지탱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모습들이 산업화에 밀리고 자본에 끌려가고 있다. 마을이 해체되고 있고, 고령화는 마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한다. 그래서 제석리 마을 연극은 나이에 굴하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며 우리 농촌이 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과 같다.
연극을 통한 상상력은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대안적 현실로 만들어 준다. 도피적 상상은 현실을 피폐하게 만들지만, 공동체를 염두에 둔 상상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며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다. 상상력은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힘이고, 인간의 삶을 바꾸려는 노력과 상통한다. 그래서 연극을 비롯한 예술은 아주 오래전부터 공동체의 집단의식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다른 세상을 이해하게 해 주는 도구였다. 제석리 마을은 상상력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정지완 제석리 서각예술제추진위원장은 “지역의 작은 축제지만 문화예술을 매개로 마을의 정체성을 살리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지역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한다. 지역의 삶에 대한 의문과 문제의식은 삶의 실체를 더욱더 냉정하게 들여다보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관심은 올바르게 변화시키려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마을연극은 그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좋은 도구이다. 제석리 마을 사람들은 연극 연습을 하면서 표현력이 더 좋아진 것 같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연극 연습을 하느라고 자주 모이면서 마을에 대한 논의도 꽤 했다. 그렇게 관심이 쏠린 시간이 새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시간과 연결됐다.
농촌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불통 요소도 많다.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 모였는데 마을 회의에서는 긍정보다 습관적으로 부정이 많은 경우도 본다. 부정의 논리가 명확한 것도 아니다. 잘 아는 것 같은데도 어긋나는 것은 오랫동안 같이 살아서일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소통하는 연습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막걸리 한 잔 나눠 마시는 유익함 못지않게 마을 연극 같은 집단적 문화예술 행위는 필요하다고 본다. 예술 행위로 이어지는 공동체 의식은 똑같은 것을 반복해도 늘 새로움을 가져다주는 유익함이 있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불통을 소통으로 바꾼다.
소통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제석리 마을 사람들은 해가 갈수록 늙는다기보다 연륜이 더 쌓인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마을 전체가 즐거운 한마당 잔치가 된다. 제석리는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가기 전 마을이니, 누구라도 마을을 둘러보고 바다로 가서 큰마음을 얻던지, 바다를 둘러보고 넓어진 마음으로 마을에 와서 즐거움을 듬뿍 담아도 좋다.
4. 에필로그
마을에서 모든 것은 한 부분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마을 한 귀퉁이의 들꽃도 잡초가 아니라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모든 구성원은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나눌 수 있다. 별 볼 일 없게 보여도 함께 농촌의 감흥을 두드리고, 나아가서 농촌에 깃들어 있는 문화를 끄집어내 는 일을 한다면 마을은 본래의 건강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을은 처음부터 자생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마을은 자본의 힘으로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힘을 느끼며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함께 삶을 나누는 공동체의 터전으로 나타난다. 지금은 전환의 시대이다. 농촌의 위기는 새로운 생명 시대로 나가는 기회이다. 마을의 가치를 키워내는 데는 미래를 예측하는 즐거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은 공룡도 뛰어놀게 한다. 보령시 천북면 마을 바닷가에서 최근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공룡 발자국화석이 발견됐다. 충남에서 공룡 발자국화석이 최초로 발견된 이 지역은, 한반도의 공룡시대인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층이 해안을 따라 분포된 지역이다. 1억 년 전의 공룡이 바닷가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사진을 촬영하고 사진에 상상력을 집어넣어서 재미있는 공룡 마을 사진전도 열었다. 1억 년 전의 공룡이 말을 걸어온다는 상상 속에서, 사진을 보는 사람들 또한 공룡에 대한 상상을 최대한 할 수 있도록 사진 작업을 한 것이다. 1억 년 전의 공룡도 마을의 구성원이 될 수 있고 마을을 유쾌하게 할 수 있다면, 지금 함께 하는 모든 구성원의 가치는 그야말로 말할 나위가 없다. 마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오래된 미래’라는 말도 마을에는 썩 잘 어울린다.
그동안 정부나 지자체가 진행한 마을 사업들은 다 나름의 목적과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목적을 기계적으로 쫓는 일이 잦다 보니 마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즐거움과 문화는 장식물처럼 취급당했다. 즐거움이 없는 마을 만들기는 개인주의를 부추기며 공동체를 해체하는 주범이 되었다. 그 결과, 마을의 상상력의 보고인 이야기와 노래, 그리고 그 땅을 딛고 산 이들의 숨결과 역사가 스며있는 먹을거리와 삶의 터전에 대한 애틋한 마음들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문화는 기억을 공유하게 한다. 기억이 함께 공유되지 않는 행복이란 무너질 수 있는 불안을 늘 느끼고 있다. 마을 입구마다 있었던 마을 나무는 공동체의 기억을 듬뿍 안고 있다가 틈만 나면 마을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일을 감당했다. 하지만, 길을 넓히면서 나무들은 뽑혀 나갔고 기억도 뿔뿔이 흩어졌다. 마을 만들기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공유하는 기억과 행복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 되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즐거운 기억이 필요하다. 수익사업도 필요하지만, 마을의 본래의 모습을 기억하도록 돕고,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문화적 전환이 절실히 요청된다. 문화는 즐거운 마을살이의 기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