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천북은
배롱나무꽃이 떨어지면 코스모스가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코스모스꽃이 피면 세상도 색색 물들어 가고
하늘 보며 애탔던 농부들의 마음도 영글어 갑니다.
천북에 살면서
무리 지어 피는 꽃들 앞에서는
시간을 잠시 멈추고 찬찬하게 걸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얼핏 보고 지나치는 것에 익숙해진 삶을
그렇게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작은 꽃 하나하나 바라보면
숨도 찬찬하게 쉴 수 있습니다.
가만히 코스모스를 보고 있노라니
코스모스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보는 대로 보이는 눈과
보이는 대로 보는 눈
지금 어떤 눈을 가졌는지...
나는 코스모스를 내가 보는 대로 보고 있는지
아니면 코스모스가 내게 보여주는 대로 보고 있는지...
코스모스란 그리스어의 코스모스(kosmos)에서 유래하였다는데
무슨 말인지 잠시 생각하다가
가도 가도 끊이지 않는 코스모스 길을 보면서
조금씩 알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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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고 많은 꽃 무더기 속에서
여전히 생명 충천해서 홀로 서 있는 나.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요?
어떤 이들은 백여 년 전에 선교사들에 의해서 들어왔다고도 합니다만...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살랑거리며 춤춘다고 해서
우리말로는 '살사리꽃'이라고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살사리꽃'을 '코스모스의 잘못'이라고 말하지만
많은 이들은 좋은 우리말이라면서 개의치 않더군요.
가을은 정말 정신 차리지 않으면 금방 가버립니다.
더구나 올해처럼 헷갈리는 가을 속에서는
가을바람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아쉬움 속에서 뒤척일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하고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동안이라도 가을을 누려보면 어떨까요?
울긋불긋 단풍에만 취하려고 하지 말고
평범하게 보여도 질리지 않는
코스모스 꽃밭 속으로 들어와
그대도 한 송이 코스모스로 서서 지나는 바람결에 하늘하늘 거려 보시죠.
코스모스는 꽃이 다른 화려한 가을꽃들에 비해서 평범하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앨빈 토플러의 '비(非)시장적 영역의 중요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가을을 꾸미는데 이미 코스모스는 빠져서는 안 될 영역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리 지어 피지만,
그 하나하나가 자태를 숨기지 않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보는 이들에게도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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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같은 그대가 부르는
가을 노래를
오늘은 조그맣게 앉아서 들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