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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밥 먹는 모습을 재미있게, 즐겁게 지켜봤습니다. 질서 있게 줄을 서고, 예의를 갖추고 밥을 타서 자기 자리로 가는 모습부터 보기가 좋았습니다. 아이들 밥 먹는 모습에서 왜 이리도 행복함을 느끼는지요. 문득 평화의 진정한 모습은 아이들이 편안하게 밥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밥은 하늘이라고 한다지요. 왜 밥을 하늘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아마도 밥 속에 하늘의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누구에게라도 온몸을 주어서 생명의 씨앗이 되고자 하는 마음과, 나 아닌 네 속으로 모두 들어가게 하는 그 마음 말이지요. 함께 나누는 밥상이야말로 생명의 가치를 회복시키는 일상적인 모습인 것 같습니다. 김지하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중략)’
밥 한 톨 속에 들어 있는 하늘의 마음. 그 마음은 농부의 마음과도 연결되겠지요. 그 마음은 늘 애틋하면서도 안타까움이 넘쳐나는 마음입니다. 올해는 벼농사가 풍년이라고 좋아했는데, 벼멸구의 습격으로 농부의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던 벼멸구가 지난 몇 년간은 조용하더니 올해는 유난히 극성을 부렸습니다.
벼멸구는 우리나라에서는 월동하지 않고 중국에서 저기압을 타고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번식하는 날아오는 해충(비래해충)입니다. 벼멸구는 볏대 아랫부분의 즙액을 빨아 먹어 벼를 쓰러지게 하고, 벼를 말라죽게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논 한 번 보고 하늘 한 번 쳐다보는 농부의 마음은 단지 내 수확물에 대한 염려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돈으로만 따진다면 이미 접어야 할 벼농사이니까요.
사실 벼멸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쩌면 서로가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농부의 마음이 더 안타까운 것은, 희망을 잃어가는 농촌의 모습이 벼멸구에게 진액까지 내줘서 말라가는 벼의 모습에 비치기 때문입니다. 쌀 한 톨에도 희망을 담는 애틋한 농부의 마음이 더는 말라가도록 무관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늘이 가물면 모든 생명이 힘을 잃습니다. 농부의 마음이 가물면 생명의 밥도 불편해집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사는 한은 가끔이라도 하늘의 마음과 농부의 마음을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쌀이 흔해져서 밥의 소중함이 옅어진다고 하지만 그래도 밥을 굶는 이들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뉴스를 통해서도 전해집니다. 지난여름 TV 뉴스(2013. 7. 4 sbs)에서 학기 중에는 학교 급식을 받지만, 방학만 되면 밥 굶는 아이들이 서울에만 5만 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숫자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서울에만 5만 명이라니! 물론 서울에 인구가 집중돼 있지만 전국의 아이들까지 따진다면 그 수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생각을 했습니다.
밥을 못 먹는 아이들이 이 땅에 있는데 어른들은 거리낌 없이 밥을 잘 먹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 밥에 대한 책임을 갖는 사회가 진정 건강한 사회일 것입니다. 한동안 모든 아이에 대한 무상급식이 과잉복지이고 세금을 늘리는 정책이라는 논쟁이 많았습니다. 아직도 그 논쟁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밥 하나를 놓고도 선택적 복지의 타당성은 여전히 주창되고 있습니다.
밥은 하늘이고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이라고 노래하는데, 밥의 선택이 아이들 몸과 마음에 상처로 남고 이 땅에서 하늘의 마음은 없어진다면, 그래서 그렇게 아이들이 자란다면 앞으로는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찾기 어려운 사회가 되지 않을는지요.
뒷사람도 배려하면서 밥을 담고, 자기 자리와 옆자리를 함께 존중하며 온몸으로 즐겁게 밥을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능력껏 먹고 사는 사회가 아니라, 이렇게 함께 먹고 사는 사회를 그려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을 서로 나눠 먹는 세상이 된다면 행복도 단순해질 것입니다. 능력이 사회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모습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확신합니다. 천재 한 사람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리는 구조보다는 피라미드 밑바닥처럼 보편적인 사람들이 어울려 서로 먹여 살리는 그런 사회가 희망이 있습니다. 스스로에게도 당부합니다. 그런 세상을 이루는 밥알 한 톨이 되라고.
<*여기서부터는 3년 전에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바로 윗줄에서 앞을 보고 있는 수현이의 모습입니다.>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밥을 먹는 모습을 보다 보니, 밥은 하늘이라는 뜻이 조금씩 더 깨달아지는 것 같습니다. 밥은 일 학년이나 육 학년이나 가리지 않고 자기의 모든 것을 내놓습니다. 밥을 받아든 아이들의 눈은 반짝거리고, 입은 먹느라고 바쁘고 말하느라고 바빠집니다. 같이 밥을 먹음으로 마음이 열리고 세상이 열립니다. 이렇게 열린 마음이 밥상 위에 가득해집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합니다.
밥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작은 농촌학교이지만 이런 학교들이 함께 공존해야 이 땅 구석구석이 건강해지고, 먹을거리가 건강해지고, 우리가 살아야 할 앞날이 건강해진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벼멸구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가도 밥알 하나하나 잘근잘근 씹는 아이들을 보면, 농부는 다시 용기를 낼 것입니다. 마른 벼를 조심해서 한쪽으로 거두고 줄어든 수확이지만, 그래도 즐겁게 추수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풍성하게 밥을 먹고 농부의 마음은 하늘에 닿고 하늘은 세상을 향해 더욱 푸르러지겠지요.
아이들 밥이 차별받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에 있는 아이들은 누구라도 밥을 나눠 먹을 수 있고, 이 아이들이 자라서 누구에게라도 밥을 나눠줄 수 있는 풍성한 세상을 이끌어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밥이 어디서 시작하는지를 잘 알아서 그 땀방울과 애틋한 마음을 존중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일상에서 누리는 행복이 가장 큰 행복으로 모두에게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밥을 먹고 나가는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씩씩합니다. 어느새 운동장이 한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