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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게으름보다 부지런함에 늘 높은 점수를 줍니다.
우리 사회 뿐이겠습니까? 이것은 역사 전반에 걸쳐서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게으름이 긍정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게으름의 폐해는 곳곳에서 드러나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지런함도 늘 긍정적일 수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정부 출범 초반에 정부 요직에 임명됐던 사람들의 부지런함이 국회 청문회를 통해
그들의 개인적 성취 차원을 넘어서 탐욕의 수준으로까지 번지는 것으로 드러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과 측은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것은 이 사회가 공직 임명자들의 모습에 대해 수긍을 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정작 당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부지런한 능력과 업적만을 내세울 때 절정에 달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의 욕심에 기반을 둔 부지런함은,욕망을 쫓느라고 몸과 마음이 망가져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겸손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돌아보면 사람은 그 누구라도 자신이 이룩한 업적이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사회적 구조나 행운에 기인한 것이 많음을 알아야 할 텐데,
스스로의 부지런함으로 인해 자신의 힘으로 업적을 쌓아올린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작은 지역사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사회적 관계는 욕망의 성취가 아니라 함께 정한 질서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부지런함과 개인의 업적도 이 질서를 기반으로 할 때 인정을 받습니다.
독일의 어느 장군이 군대 장교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는 군요.그 분류를 보면, 지도자 감으로는 머리 좋고 게으른 사람이 제일 낫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명석함과 침착함 때문입니다.
머리 좋고 부지런한 사람은 그저 참모를 맡기는 정도면 된답니다.
피해야 할 유형은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부지런을 피우고 수선을 떨어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그럼 머리 나쁘고 게으른 사람은 어떠냐고요?
오히려 기계적이고 틀에 박힌 일을 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에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사람보다 낫답니다.
게으르게 살더라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공존하는 것이 좋은 세상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옛날부터 현인들이 그렇게도 말한 '지혜'일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