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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무대'(라디오 드라마) - '그 남자의 귀향'이런저런글 2011. 11. 30. 00:36
뜻밖에 이런 방송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해 주신 분의 이야기로는 들꽃마당 이야기가 라디오 드라마로 전파를 탔다는군요.
KBS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KBS 무대' 드라마>를 통해서요.
방송은 지난 11월 19일 나갔고, 다시 듣기로 청취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KBS 사이트에 로그인한 후 'AOD 듣기'를 눌러야 합니다.)
대본을 쓰신 작가분께서 허락해 주셔서 링크했다고 전해주네요.
제목은 '그 남자의 귀향'이며, 내용은 여러 부분 극화되었으나
전반적인 면에서는 들꽃마당 활동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제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들어보니 상당히 비슷한 상황이긴 합니다. 드라마의 극적인 부분들만 뺀다면요...ㅎㅎ
낙동초등학교, 스쿨버스기사 자원봉사, 학교살리기, 피아노선생님, 보령교육청, 보령 바다, 배추 등등...
혹시 듣기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를 링크를 클릭하셔서 들으시면 되고요....
들으실 때 대본 보기가 지원되므로 대본을 같이 보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대본만 훑으셔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흥미롭습니다...^^
http://www.kbs.co.kr/radio/radio_drama/stage/aod/1758050_10059.html
(*위의 KBS 사이트를 클릭하고 로그인한 후 'AOD듣기'를 눌러야 합니다.)
**사이트 연결이 안 되는 군요. 대본입니다.
KBS무대
그 남자의 귀향(歸鄕)
극본 : 허은경
연출 : 이상여
- 등장인물 -
진국(35세, 남) : 전직 실업팀 축구코치. 팀의 구조조정으로 실직하고 낙향, 낙동초등학교 통학버스기사로 일한다.
허세끼 있고 소심하다.
대준(40세, 남) : 낙동초등학교 운영위원장. 대기업에 다니다 이혼하고 귀농,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냉철하고 합리적이며 쿨하다.
연정(30세, 여) : 스무살에 미혼모가 되어 홀로 봄이를 키우며 들꽃마을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한다.
강단있고 솔직하다.
이장(65세, 남) : 진국의 아버지. 들꽃마을 이장. 투박하고 인정많고 오지랖 넓다. 마을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교장(50세, 여) : 낙동초등학교 교장. 우유부단하고 의존적이며 정치적.
봄이(10세, 여) : 연정의 딸. 붙임성 있다.
민호(11세, 남) : 대준의 아들. 까칠하다.
아이1(남), 아이2(여), 아이3(남), 남자(30대, 남), 남자1(40대, 남), 여자(30대, 여), 여자1(30대, 여)
M 시그널 & 타이틀
E 학교, 애들 떠드는 소리, 수업 시작종 울리면 조용해지고
대준 : 학교가 문을 닫아요? 아니, 왜요?
교장 : 최근 다섯가구가 우리마을을 떠나면서 전교생 숫자가 45명으로 줄었어요.
내년 초에 6학년 네명이 졸업하게 되면, 폐교조치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대준 : 신입생들 입학하잖습니까?
교장 : 마을 통털어 입학 예정자가 세명인데, 그 중 두명이 읍내 초등학교로 가려고 해요.
대준 : 허! 그럼, 내년도 입학생이 단 한명뿐이란 겁니까?
교장 : (한숨) 그렇죠. 한명.
대준 : 마을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교장 : 2, 3년 사이 급격히 쇠락한 것 같아요.
대준 : 이런 상황에 통학버스 운행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교장 : 아이를 읍내로 전학보내려는 학부모들이 있거든요. 그걸 막는 게 급선무예요.
학부모 70% 이상이 폐교조치를 반대하면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대준 : 그렇게 간신히 학교 명맥 유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교장 : 마을에 하나 남은 학교예요. 주민들에겐 학교 이상의 의미가 있죠.
대준 : 전 뭐... 토박이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교장 : 귀농하신지 꽤 되셨잖아요?
대준 : 5년쯤 됐네요. 민호 1학년 겨울에 왔으니까.
교장 : 민호... 많이 밝아졌죠?
대준 : 그때 비하면 좋아졌죠. 까칠해서 그렇지...
교장 : 저희가 특별히 신경을 많이 썼거든요.
대준 : 예, 압니다... 뭐, 어쨌든 현재로선 통학버스가, 학교를 살릴 유일한 대안이다 이 말씀이죠?
교장 : 그렇습니다. 민호아버님.
대준 : 버스 임대료에, 다달이 운행비, 기사 인건비까지 만만치 않을텐데...
교장 : 운영위원회 예산만으로 부족하다면 제 봉급이라도 어떻게...
대준 : (짜증나고) 그러실 거 없구요, 쿨하게, 제가 총대를 매겠습니다.
교장 : 감사합니다.
대준 : 근데... 버스 운전할 사람은 있습니까?
교장 : 글쎄요, 아직 거기까진...
대준 : 버스 운전하려면 1종 면허가 있어야 하는데, 마을에 기껏해야 경운기 몰아본 노인들밖에 없잖습니까.
교장 : 그러게 말예요. 난감하네요.
대준 : 이장님께 부탁해보면 안될까요? 마당발이시니까.
교장 : 아! 그래야겠네요.
대준 : 확실한 사람으로 뽑아주십쇼.
어린애들을 맡기는 건데, 기본적으로 성실해야겠고, 성품, 인격, 언행, 책임감, 두루두루 고려해달라구요.
아! 기왕이면 젊은 분으로... 사례는 봉급이 아니라 수고비라는 점 확실히 못 박아두시구요. 또 뭐가 있지?
M 브릿지
E 로또복권 확인하는 소리
진국 : 아으 또 꽝이네... 분명히 어제 꿈에 돼지를 봤는데, 그럼 그게 돼지가 아니라 개였나? 정감독은 왜 연락이 없어?
E 문 열고
이장 : 뭐하고 있는겨?
진국 : (화들짝) 노크 좀 하시라니깐!
이장 : 어디봐. 이번엔 또 몇장이나 해 먹은겨?
진국 : 다섯장밖에 안돼요.
이장 : 니눔이 그동안 로또 복권에 쳐들인 돈만 긁어모아도, 송아지 한 마리는 샀을 거여.
진국 : 유일한 취미생활예요. 모른척 하세요.
이장 : 너 여기 내려온지 얼마나 됐냐?
진국 : 아직 한달도 안됐어요 아버지...
이장 : 팀에서 금새 다시 부른다고 하드만, 왜 소식이 없어? 스카웃인지 뭔지 될 거라고 큰소리 뻥뻥 쳤잖여?
진국 : 닦달하지 마세요. 저도 답답해요.
이장 : 한달동안 연락 없으면 물건너 간 거여...
진국 : 아직 시즌이 아니라 그래요.
이장 : 시즌이고 뭐고! 지금 당장 낙동 초등학교에 가봐. 교장 선상님이 너 좀 보자고 하더라.
진국 : 왜요? 거기 졸업한 지가 언젠데...
이장 : 빠스 운전사 구한대. 아침저녁 어린애들 실어나르는 빠스 말이여.
진국 : 아, 싫어요 아버지! 제가 그걸 왜 합니까?
이장 : 공짜로 하라는 게 아녀. 수고비 준대!
진국 : 제가 지금 수고비 받자고 그거 하게 생겼어요? 저요, 프로 축구팀 코치예요. 몸이 재산이라구요...
이장 : 넌 어째 맨날 니 생각만 허냐. 명색이 이장 아들이람서, 마을을 위해서 암것두 허는 것도 없구,
학교가 없어진다 만다 허는 이 중차대한 시점에, 학교를 위해서 뭣을 하고 있냐고!
진국 : 학교 없어진다고 하늘이 무너져요?
이장 : 학교가 없으면 마을은 죽는 거여! 빠스운행하라고 자기 재산을 척척 내놓는 사람도 있구만!
진국 : 누구야? 이런 촌구석에서 돈자랑하는 인간이?
이장 : (등짝 때리며) 에라이 이눔아...! 좀 보고 배워!
진국 : 아 왜 때려요! 하면 될 거 아녜요! 하면! 에이!!!
M 브릿지
E 버스 운전하는, 트롯트 음악 크게 틀어놓은
진국 : (따라부르다가) 이거이거 장난 아니구만. 네비게이션엔 뜨지도 않는 집들을 구석구석 찾아다녀야 하니... 에혀!
민호 : 짜증내지 마세요. 그리구, 음악이 너무 시끄러워요. 꺼주세요.
진국 : 하! 짜식이... (소리 낮추는) 됐냐?
민호 : 직진해서 전봇대 앞에 내려주세요.
진국 : 니가 마지막이야?
민호 : 한명 더 있어요. 봄아!
봄이 : (애교스럽게) 아저씨 죄송해요! 집이 멀어서. 헤헤.
민호 : 전 저기서 내릴게요.
E 버스 서는, 문 열고
민호 : 봄아 잘가!
진국 : 야! 나한텐 인사 안해? 저 짜식이...!
E 문 닫고, 버스 움직이는
진국 : 쟤 이름이 뭐냐?
봄이 : 배민호요. 서울서 살다와서 좀 까칠해요.
진국 : 그럼, 쟤가 배사장 아들이란 말야? 젠장... 어린녀석 눈치보게 생겼네.
봄이 : 아저씨, 저는 피아노학원에 내려주세요.
진국 : 피아노 학원? 이 동네에 그런 게 있었어?
봄이 : 그냥... 엄마가 집에서 하는 거예요. 쬐끄만 간판 달려있는데...
진국 : 못본 것 같은데? 학원 잘 돼? 애들 많어?
봄이 : 모르겠어요.
진국 : 힘들텐데... 학교도 문을 닫는다고 하는 마당에...
봄이 : 우리학교 정말 없어져요?
진국 : 왜? 없어지면 큰일 나?
봄이 : 네! 큰일 나요! 전요, 학교 없어져도 계속 다닐 거에요.
진국 : 읍내학교도 좋잖아? 시설도 좋구 애들도 많구.
봄이 : 싫어요! 안 갈 거예요. 절대로 안가요!
진국 : 걱정 마. 학교 살리자고 버스도 운행하는 거 아니겠냐.
봄이 : 아저씨가 도와주세요.
진국 : 내가 뭔 힘이 있냐. 돈 많은 배사장이 알아서 할텐데.
봄이 : (풀죽어) 네... 어, 저기 우리 엄마다! 아저씨! 잠깐만 세워주세요.
E 차 세우는, 창문 여는
봄이 : 엄마! 어디가!
연정 : 어! 봄아!
봄이 : 아저씨! 우리 엄마 태워주시면 안되요?
진국 : 그러지 뭐. (차문 열고) 타세요 어머님.
연정 : (타고 / 앉는)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짐이 좀 있었는데...
진국 : 편하게 이용하십쇼. 내 차는 아니지만.
E 차 출발하는
봄이 : 시장 봤어? 뭐뭐 샀어?
연정 : 집에 가서 봐... 우리 봄이가 마지막 손님인가 보죠?
진국 : 코스 짜다보니 그렇게 됐슴다. 멀미하는 애들이 있어서 경운기 수준으로 천천히 몰았더니 한시간이나 걸렸네요.
연정 : 농촌 애들이 멀미를 잘 해요. 차를 탈 기회가 잘 없거든요.
진국 : 봄이가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네요. 어린애 걸음으로 왕복 두시간은 족히 걸렸을텐데.
연정 : 늘 조마조마했어요. 세상이 워낙 무섭잖아요. 이제라도 통학버스가 생겨서 얼마나 감사한지... 정말 감사합니다.
진국 : 저한테 감사하실 건 없는데...
연정 : 아녜요! 정말 감사해요. 축구 코치로 스카웃 되는 것도 마다하시구 모교를 위해 헌신하기로 하셨다던데...
진국 : 제, 제가요?
연정 : 부녀회에서 들었어요.
진국 : 아이 뭐... 당연히 할 일이죠. 모교의 위기 앞에서 어떻게 팔짱 끼고만 있겠습니까.
연정 : 사실 읍내학교로 전학보낼까... 생각도 했었어요. 좀 멀긴 해도 읍내학교는 통학버스를 태워주니까.
진국 : 그건 안되죠!!! 우리 마을 아이들을 왜 읍내로 보냅니까.
낙동 초등학교는 우리 마을의 미랩니다.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연정 : 우리 봄이, 잘 좀 부탁드려요.
진국 : 그래야죠. 봄이가 붙임성 하난 끝내주네요.
연정 : 남자 어른들을 좋아해요. 아빠 없이 자라서 그런지
진국 : 아, 네...
연정 : 괜한 소릴 했네요... 시간 괜찮으시면 집에서 저녁 같이 드세요.
부녀회에서 게장 담갔다고 이렇게 많이 주시더라구요.
진국 : 이야... 저 게장 엄청 좋아하는데. 주시면 감사히 먹겠슴다. 흐흣.
M 브릿지
E 왁자지껄 잔치 분위기
대준 : 자, 자, 촬영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들 드세요! 이장님, 제 술한잔 받으십쇼.
(따르며) 인터뷰 잘하시던데요?
이장 : (마시고) 밤새도록 연습했지.
대준 : 어쩐지 말씀이 청산유수시더라...
이장 : 쳇! 실컷 인터뷰 해봤자 다 짤리더구만.
대준 : 이번엔 힘 좀 써보겠습니다. PD가 제 대학후배거든요.
이장 : 그럼, 배사장네 된장 고추장 소개하는 김에 우리 마을 특산물들도 같이 소개해주면 안 돼? 좀 같이 먹고 살어!
대준 : 부탁이야 해보겠지만, PD도 시간과 예산에 제약이 있거든요.
이장 : 배사장은 방송국 편이야, 우리 마을 편이야? 혼자만 그렇게 잘나가 버리면 뭔 재미여?
대준 : 저도 나름대로 기여하려고 애 많이 씁니다?
낙동 초등학교 운영위원장 맡아서 물심 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는 거, 모르세요?
이장 : 알지! 아는데!! 우리 고추밭하고 웅이네 배추밭, 짤리지 않게 말 좀 잘 해줘.
대준 : 실은 제가 이번에 일을 좀 벌였거든요.
이장 : 또 뭔 일?
대준 : 절임배추 주문판매를 시작했어요. 그거 홍보 좀 부탁했더니 칼같이 자르더라구요.
다른 데 부탁을 해봐야겠어요. 이게 홍보가 잘 돼서 서울에 판로만 뚫리면 대박인데 말예요.
이장 : 그러다 재벌 되겠구만. 재벌.
대준 : 재벌이라뇨... 먹고 살자고 하는겁니다.
이장 : 재혼 안 해? 홀애비로 늙어갈 셈여?
대준 : 해야죠. 근데... (나직이) 봄이 엄만 안 보이시네?
이장 : 어, 피아노 학원에서 어딜 좀 간다고 하더라고.
대준 : 어딜요? 민호는 그런 말 없던데?
이장 : 궁금하면 전화해봐? 전화번호 몰라?
대준 : 놔두십쇼. 티비 카메라에 얼굴 비치기 싫었나부죠 뭐.
이장 : 거 참 알다가도 모르겠구만. 하고 많은 여자들 중에 왜 하필 봄이 엄마여? 배사장 정도면 처녀장가도 얼마든지...
대준 : (발끈) 봄이 엄마가 어때서요?
이장 : 아, 미혼모에다가...
대준 : 어릴때 잠깐 실수한 건데요... 저도 한번 실패해본 놈이구요.
이장 : 하긴, 혼자 애 데리고 사느라 고생을 해서 그렇지, 자세히 뜯어보면 미인이지. 미인.
대준 : 저, 이거... (부시럭) 저희집 된장 고추장하고 벌꿀입니다. 올해 양봉이 잘 돼서 넉넉히 담았어요. 봄이네 좀...
이장 : 아, 직접 갖다줘! 어린애들도 아니구!
대준 : 제가 좀 바빠서요. 서울에 며칠 다녀오려구요... 도와주십쇼 이장님.
M 브릿지
E 부시럭 보따리 푸는
연정 : (놀라며) 뭘 이렇게 많이... 저번에 주신 것도 아직 있는데...
이장 : 냉장고에 뒀다가 두고두고 먹어. 배사장네 장맛 하난 제대로여. 벌꿀도 좋구.
그러니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대박이 나는 거 아니겄어?
연정 : 부담스러워요. 이걸 어떻게 다 갚으라구...
이장 : 아, 왜 갚을 생각부터 혀? 맛나게 먹으면 그만이지.
연정 : 전 불편해요.
이장 : 거 참... 알다가도 모르겄네... 내가 사람 볼 줄 아는데, 배사장, 크게 될 사람여. 팔자고칠 기회라고!
살면서 이런 기회, 또 올 거 같아?
연정 : 알아요. 능력있고 성격도 시원시원하시고... 좋은 일도 많이 하시고..
이장 : 그런데, 뭐가 그렇게 불편하고 부담스러워?
연정 : 제가 많이 부족해서요. 갑작스럽기도 하구...
이장 : 그동안 숱허게 눈치를 줬을 거 아녀?
연정 : 마음이 가질 않아서 그래요.
이장 : 마, 마음?
연정 : 아무리... 제 처지가 이렇지만, 감정까지 포기하고 사는 건 아니거든요.
굶어 죽을만큼 아니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그게 아니라면 전 봄이 하나로 충분해요. 이장님.
이장 : 허허... 참 !
연정 : 아직 철이 덜 들었나봐요.
이장 : 젊은 게 죄다. 젊은 게 죄여... 으이그...
연정 : 저기... 이장님.
이장 : 왜!
연정 : 코치님은 언제까지 여기 계실 거래요?
이장 : 몰러... 곧 스카웃 된다고 하더니만, 감감 무소식이네.
연정 : 소속팀에서 다시 부를거라 하던데... 그건....?
이장 : 물건너 갔지 싶어. 진국이네 팀 소속돼있던 회사가 어려워져서 팀을 해체시키면서 쟈가 저렇게 돼 버린 거거든...
근데, 위에선 조만간 재결성 할거라고, 아무데도 가지 말라고 해서 철썩같이 믿고 기다린 거란 말여.
다른 놈들 다 배신때리고 다른 팀 찾아갔지만 말여.
결국 생판 다른 선수들 코치들로 팀 다시 꾸리고, 우리 진국이만 낙동강 오리알 된 거여.
연정 : 어떡해... 너무했다.
이장 : 세상이 그려. 의리 지키고 사는 놈들만 뒤통수를 맞지. 그러니, 젊은 게 죄라고 하잖여.
연정 : (은근히 좋아서) 그럼, 당분간은 마을 안 떠나시겠네요?
이장 : 왜? 떠났으면 좋겠어?
연정 : 아, 아뇨...
M 브릿지
E 버스 운전하는
진국 : 다음 내릴 사람? 박철웅!
애들 : 웅이 없어요. 민이두...
진국 : 왜?
민호 : 집이 망해서 대전으로 이사갔대요.
진국 : 망하다니? 왜 망해?
민호 : 농사가 망해서 빚을 엄청 졌대요. 그래서 가족들이 모두 대전에 있는 할아버지댁에 갔대요.
진국 : 가뜩이나 애들도 없는데 또 두명이 줄었으면 토탈 몇 명 남은 거냐?
민호 : 마흔 세명이요.
진국 : 거 참 걱정이네... 애들을 어디서 데려올 수도 없구...
E 다가와서 부시럭 건네는
봄이 : 아저씨 이거요. (부시럭) 우리 엄마가 아저씨 갖다 드리래요.
진국 : (부시럭) 웬 떡이냐?
봄이 : 어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제사였거든요.
진국 : 고마워. 백설기 좋아하는데... (마음의 소리) 가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제사?
그럼, 부모도 없이, 스무살에 혼자 봄이 낳아서 여태 혼자 키웠단 말야?
어쩐지... 이쁜 얼굴에 그늘이 느껴지더라니.
아이1 : 아저씨! 우리 놀러가면 안되요?
진국 : 집에 안가고 어딜?
아이1 : 보령 앞바다요. 여기서 가까워요.
진국 : 거기 가서 뭐하게?
아이1 : 축구 가르쳐주세요!
진국 : 미안하지만, 아저씬 프로야. 프로는 몸이 재산이거든.
내가 지금 스카웃을 기다리고 있는 마당에, 공차다 발목이라도 삐끗하면, 니들이 책임질거야?
애들 : 책임질게요! 가르쳐주세요!
진국 : 잔말말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
애들 : 에이...
진국 : 어? 저게 누구야?
E 클락션 빵 울리는, 차 세우고 문 여는
진국 : 안녕하세요? 봄이 어머님! 어디 가십니까?
연정 : 바람 쐬러 나왔어요. 답답해서...
진국 : 그래요? ...바람 하면 바닷 바람인데... 같이 가시겠어요?
연정 : 어딜요?
진국 : 애들하고 바닷가 놀러가려던 참이거든요.
연정 : (설레며) 와... 좋겠다.
진국 : 얼른 타십쇼. 얘들아! 봄이 어머니시다. 인사드려!
M 브릿지
E 서류 넘기는 소리
교장 : 학부모 간담회 결과예요.
통학버스를 운행한지 한달만에 70%이상의 학부모님께서 통폐합 반대입장을 표명하셨어요.
읍내 초등학교로 가려던 입학예정자들도 모두 우리 학교로 오기로 했구요.
대준 : 그럼, 당분간 문닫을 걱정은 안해도 되는 겁니까?
교장 : 네. 이게 다... 통학버스 지원해주신 덕분이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대준 : 그런데 말입니다...
교장 : 네?
대준 : 듣자 하니, 통학버스 운행방식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던데요.
교장 : 문제... 라뇨?
대준 : 귀가길에 애들 태워서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거요.
교장 : 그건 아이들도 좋아하고 학부모들도 반기는 부분입니다만...
대준 : 우리 민호처럼 내성적인 아이는 불편해 해요.
교장 : 아... 그렇군요...
대준 : 놀러다니다,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을 지죠? 막말로, 기름값은 뭐 하늘에서 떨어집니까?
심지어, 길가던 마을 주민들도 손만 들면 공짜로 태워준다면서요?
교장 : 덕분에 주민들이 우리 학교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대준 : (O.L) 주민들이야 좋겠지요.
하지만 애들 입장에선 시간낭비에다 불편함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점, 고려해주셨음 합니다.
교장 : 아이들은 마을 주민들과 가족처럼 지내는데요...
대준 : 우리 민호는 아직도 낯을 가려요. 어렵답니다.
교장 : 예. 알겠습니다.
대준 : 내 이런 말까진 안하려고 했는데요, 애들하고 놀러갈 때, 봄이 엄마를 데리고 다닌답니다.
교장 : 봄이 엄마요?
대준 : 신경 좀 써 주십쇼. 애들 앞에서 뭐하는 짓입니까?
교장 : (당황) 아...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준 : 이래서, 처음부터 제대로 된 사람을 뽑으라고 했잖습니까. 실망임다!
M 브릿지
E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진국 : 월광 소나타, 모차르트꺼 맞지? (마우스 클릭하는) 토탈 40곡에 2만원이라... 괜찮구만.
E 휴대폰 단축키 누르는, 받는
연정(F) : 네, 코치님.
진국 : 이야, 딱 아시네? 제 번호 저장해뒀나부죠?
연정(F) : 네... 근데 무슨 일로...
진국 : 제가 인터넷에서 피아노 연주곡을 몇곡 다운 받았거든요. 아이들 가르치는데 참고가 되실까 해서 보내드리려구요.
연정(F) : 정말요? 어떤 거요?
진국 : 클래식부터 뉴에이지까지 다양하게 40곡쯤 됩니다.
연정(F) : 우와!!! 신난다!!! 완전 좋아요! 완전!!!
진국 : (귀엽다는듯) 허허. 애처럼 좋아하시네. 그렇게 좋으세요?
연정(F) : 그럼요... 제가 음악 듣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데.
진국 : 좋으시다니까 엄청 뿌듯해지는데요? 그럼 제 휴대폰으로 메일주소 좀 찍어주십쇼. 당장 보내드리겠습니다.
E 문 여는
이장 : 뭐하냐? 뭘 보내드려?
진국 : 아! 노크 좀 하시라니까!!! 그럼, 문자 기다리겠슴다! (휴대폰 끄는)
이장 : 너, 학교 빠스에 봄이 엄마 태워서 놀러다닌다는데, 정말이냐?
진국 : 뭐요? 아니 어떤 놈이 말을 그따위로 퍼뜨려요?
이장 : 교장선생이 그러더라. 소문 쫙 났대.
진국 : 애들이 하도 졸라서, 애들하고 몇 번 간 적은 있어요. 왜요?
이장 : (딱 때리며) 에라이 눈치 없는 놈아.
진국 : 아, 왜 그러세요?
이장 : 그쪽으론 눈길도 주지 말어!
진국 : 왜요? 아버지도 미혼모에 대한 편견 있으신 거예요?
이장 : 임자가 따로 있으니까 하는 소리야. 배사장!
진국 : 뭐... 뭐라구요?
E 문자 오는 소리
이장 : 뭐냐? 어디 봐. (문자 확인하는) 제 메일주소는... 봄이 엄마?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진국 : 뭐 좀 물어보길래 가르쳐주려구요.
이장 : 알아서 처신해. 애들 데리고 여기저기 놀러다니는 것도 관두구.
진국 : 그게 어때서요? 좋다고 할땐 언제고, 웬 말들이 그렇게 많대요?
이장 : 억울해 말어. 어디든, 돈 대는 놈이 장땡인거여. 돈이 법이고, 돈이 말을 하는 세상이라고 안 허냐?
진국 : 젠장! 내가 이러니 로또를 사지.
이장 : 너... 봄이네한테 마음이 있긴 있는 거야?
진국 : 있으면요? 있다고 하면 어쩌실건데요?
이장 : (등짝 때리며) 애시당초 접어! 눈길도 주지 말라고!
M 브릿지
E 운동장, 호각소리, 애들 뛰어오는 소리
진국 : 동작봐라, 동작봐라! 얌마, 니들이 축구 하고 싶다고 졸라대서 축구반 만든 거잖아.
그럼 열심히 뛰어야지 이게 뭐냐?
아이1 : 왜 맨날 달리기만 해요? 공차고 싶어요.
진국 : 원래, 처음엔 기초체력부터 훈련하는 거야... 다음주부턴 본격적으로 공 다루는 법을 배워볼거다.
세면실 가서 씻고, 네시까지 통학버스 앞으로 와라. 해산!
E 애들 와!! 하며 뛰어가고 / 타월로 옷 탁탁 터는
E 걸어오는 구두 소리
연정 : 수업 끝나셨어요?
진국 : 아, 네...
연정 :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죠? 만장일치로 축구부 개설을 원했다던데...
진국 : 저보다도, 피아노반 맡게 되신 거, 축하합니다.
연정 : 이장님이 마음 써주신 덕분예요.
진국 : 들었슴다. 학원이 많이 어려우시다구요.
연정 : 네. 떠난 아이들, 그만둔 아이들이 제법 있어서...
진국 : 죄송함다. 아무런 도움이 못돼서...
연정 : 코치님이 왜 죄송해요? 제가 오히려 미안하죠.
진국 : 저도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슴다. 전부다 물건너 갔거든요.
짜식들... 술한잔 먹고 공수표 남발하더니 다들 오리발이네요.
연정 : 너무 실망 마세요, 축구반 맡아주신 덕분에 읍내 전학가기로 했던 아이들이 마음을 바꿨대잖아요.
진국 : 그거야 뭐... 배사장님이 방과후 수업 지원해준 덕분이죠. 돈 없이 굴러가는 게 있던가요? 돈이 장땡입니다.
연정 : 말씀이 어째 까칠하시네요.
진국 : 제가, 쿨하지 못해서요. 누구처럼.
연정 : 저한테 뭐, 언짢으신 거라도 있으세요?
진국 : 저기요, 우리 그냥 이웃으로 지냅시다. 괜히 불편하게 만들지 마시구.
연정 : 이유가 뭐죠?
진국 : 그런 그쪽은, 저한테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연정 : 몰라서 그러세요?
진국 : 네, 모릅니다. 알 필요도 없구요. 보다시피... 희망이 없는 놈이거든요.
연정 : 비겁하시네요...
진국 : 비... 비겁...하다구요?
연정 : 뭐가 두려우신 거죠?
저도 이렇게 겁 없이 당당하게 사는데, 코치님 같은 분이 뭐가 두려워서 진심을 숨기시는 거죠?
진국 : 전 숨긴 거 없슴다? 그쪽이 저한테 숨긴 게 있으시겠죠? 아닙니까?
M 브릿지
E 다방 소음. 찻잔 내려놓는
대준 : 저도 이런 결정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곧 우리 민호 졸업할텐데,
아이들 교육도 그렇고 새출발 하기엔 서울이 낫겠다 싶어 욕먹을 각오하고 결심한 겁니다.
연정 : 그렇겠죠. 기반이 서울에 있으시니까... 사업하시려면 아무래도 서울에 계시는 게 편하실테니까.
대준 : 봄이도 곧 중학교 고등학교 보내셔야 할 거 아닙니까.
연정 : 농촌에도 좋은 학교들 많아요.
대준 : 다른 ... 이유가 있습니까? 민호가 피아노 배우면서 힘들게 하던가요?
연정 : 아뇨... 민호 착해요. 원생들 중에 제일 똑똑하구요.
대준 : 민호까지 관두게 되면 당장 피아노학원 문을 닫아야 한다면서요.
연정 : 신경쓰지 마세요. 제 문젠 제가 알아서 해요.
대준 : 집세며 피아노 임대료며 밀린 거 다 어쩌실 겁니까. 먹고 살 길이 막연할텐데 왜 고집 부리세요. 누굴 위해서요.
연정 : 더한 상황도 많이 겪어봤습니다. 찾아 보면 살 길은 있어요.
대준 : 하하 참...! 고집도 어지간하시네...
연정 : 정 안되면 남의 집살이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대준 : 혹시, 조진국씨 때문입니까?
연정 : 네에?
대준 : 그 친구랑 가깝게 지내신다던데, 몇 살이라도 어린 놈이 좋은 겁니까?
마흔 살보다는 서른 다섯 살이 낫다. 이거예요?
아님, 그 친구는 총각이라 괜찮고, 전 한번 갔다 온 놈이라 꺼려지시는 겁니까? 그런 당신은...
연정 : 그래요! 스무살에 사고쳐서 이러고 살아요.
대준 : 그... 그게 아니라... 저,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 있슴다.
봄이한테 좋은 아빠 되려구 서울에 있는 재혼 아버지 학교에 등록했어요.
연정 : 그러실 거 없어요. 지금도 충분히 훌륭하세요.
대준 : 막말로, 이 동네,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봄이 대학 보내고 시집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연정 : 그건 제 문제예요. 걱정 안해주셔도 됩니다. 지금까지도 제 힘으로 살아왔구요.
대준 : (한숨) 제가... 그렇게 싫으세요?
연정 : 싫다고 한 적 없습니다.
대준 : 그럼 뭡니까? 뭐냐구요!
연정 : 자존심이요! 저도 자존심 있거든요. 그리구요... 전 돈보다도, 제가 정말 원하는 걸 선택하고 싶어요.
제가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어딘지 알거든요. 제가 행복해야 우리 봄이도 행복할수 있구요. 그뿐예요.
M 브릿지
E 버스 운전하는
진국 : 다음 내릴 사람 누구야?
봄이 : 저요.
진국 : 봄이 넌 마지막이잖아?
봄이 : 이사 갔어요. 슈퍼 집으로.
진국 : 피아노 학원은?
봄이 : 안해요. 문 닫았어요. 울 엄마 읍내 김치공장에 나가요.
진국 : 김치공장? (마음의 소리) 배사장하곤 어떻게 된 거지?
봄이 : (부시럭) 이거... 엄마가 아저씨 드리라구...
진국 : 그게 뭐야?
봄이 : 쵸코렛이요. 아저씨 월급도 안받고 버스운전하시잖아요.
진국 : 쳇... 니네 엄만 내가 좋아하는 걸 아주 귀신같이 아는구나.
봄이 : 다 왔어요, 저 슈퍼마켓 앞에 세워주세요.
E 차 세우고, 문 여는
진국 : 봄아.
봄이 : 네?
진국 : 엄마한테, 쪼코렛 잘먹겠다고, 고맙다고 전해드려.
봄이 : 아저씨가 직접 문자로 보내주세요. 안녕히계세요...
E 버스 출발하고
진국 : 다음 누구냐?
아이1 : 아저씨... 우리 학교 없어져요?
진국 : 넌 왜 나만 보면 학교 없어지냐고 물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어?
아이1 : 어른들이 그랬어요. 40명밖에 안남아서 없어질거라고. 민호 형도 아버지랑 서울로 가버리구...
진국 : 없어지면 없어지라 그래! 세상은 넓고 학교는 많다 이거야!
아이2 : 안돼요! 안된단 말이예요!
진국 : 에이 씨!!!! 야! 걱정마 ! 아저씨가!!! 학교 지킬 거야. 걱정말라구!
아이3 : 아저씨, 정말이죠? 거짓말 아니죠?
진국 : 그래! 정말이야. 사실이야!
아이3 : 아저씨, 축구하러 가면 안되요?
진국 : 또 어딜? 학교에서 축구 실컷했잖아!
아이3 : 보령 앞바다에 가요. 이제 민호 아버지도 없잖아요! 놀러가요!
진국 : 짜식들... 그래! 가자! 까짓거, 기름값 좀 나오면 어때!
M 브릿지
E 똑똑 문 두드리고, 여는,
대준 : 오랜만입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진국 : (걸어가 소파에 앉는) 사무실이 꽤 크네요.
대준 : (명함주는) 제 명함입니다. 받으시구요.
진국 : 대호 식품이라... 와... 대단하네요.
대준 : 아직 구멍가겝니다. 정신없어요... 이장님 잘 계시죠?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왔는데.
진국 : 아버지보다도... 교장 선생님이 많이 서운해하시던데...
대준 : 서운해... 하다뇨?
진국 : 뒤통수 맞았다 이거죠. 오죽하면 절 붙잡고...
대준 : 흣... 깔끔하신 분인 줄 알았더니 웬 집착?
진국 : 말씀이 좀...
대준 : 찾아오신 이유가 뭐죠?
진국 : 통학버스 운행문제랑 축구부 운영 때문에요. 시작만 해놓고 갑자기 지원을 끊으시니까 많이 힘드네요.
대준 : 그건 이미 교장 선생님과 끝낸 얘깁니다.
민호도 전학을 했구, 주민등록을 이쪽으로 옮긴 이상, 계속 지원할 이유가 없어요.
진국 : 그렇지만 5년을 몸담았던 학굔데...
대준 : 전 그냥 사업가지, 자선 사업가는 아니거든요.
진국 : 아, 예... 저 그럼 버스 운행비만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대준 : 저도 힘듭니다. 무리해서 시작했더니 은행이자만 월 기백만원씩 나가는 상황예요. 좀 봐 주십쇼.
진국 : 배사장님.
대준 : 축구부 유니폼하고 축구화는 제가 공약을 했던 거니까, 공약 이행 차원에서 지원하겠습니다.
진국 : 감사합니다.
대준 : 아! 그 학교 동창회 있잖습니까. 졸업생 중에 잘나가는 사람들 꽤 있을텐데, 그쪽에다 요청을 해보시죠.
그래봤자 내년봄까지만 버티면 되는 거니까.
진국 : 아니, 학교가 문을 닫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대준 : 현실이 그렇잖아요?
진국 : 참... 냉정하시네요. 성공하려면 그렇게 살아야 되는건데...
대준 : 말씀 다 끝나셨으면 이만 일어나시죠? 제가 좀 바빠서...
M 브릿지
E 경운기 모는 소리
이장 : 아 똑바로 중심잡고 가. 어째 경운기 모는 솜씨가 빠스운전보담도 못허냐.
진국 : (경운기 멈추고) 에이! 못해먹겠네. 맨날 야단만 치시구.
이장 : 아 내가 언제 야단쳤어!
진국 : 저도 노력하고 있잖아요. 귀농한 셈 치고, 여기서 다시 시작하려구요!
이장 : 누가 뭐라고 했냐? 어디서 화풀이여 화풀이가.
진국 : 아버진 제가 배사장처럼 되길 원하시겠지만, 전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합니까. 이렇게 생겨먹은 걸!!!
이장 : 배사장 얘긴 꺼내지도 마. 우리 마을이 제 2의 고향이라고 그렇게 떠들어대더니만...
진국 : 언제는 우리 마을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 귀인이라고 하시더니...
이장 : 아 배사장 덕을 보긴 봤지! 학교에 도움을 많이 줬으니까.
그래도 서울 감서 빠스는 남겨뒀으니 불행 중 다행이지 뭐여.
진국 : 1년 있다 돌려줘야 해요. 다달이 운행비도 장난 아니구요, 제 수고비는 누구한테 받아요.
이장 : 봉사헌다... 생각하고 허는 데까진 해봐라.
진국 : 방과후 수업도 그래요. 축구부 지원하겠다고 큰소리 뻥뻥 쳐놓고... 맨땅에 헤딩하게 생겼다구요.
이장 : 마을 발전기금도 바닥났어. 경기가 이 모양이니...
진국 : 봄이 엄마까지 배신 때렸나봐요. 나쁜놈.
이장 : 그건 니가 잘못알고 있다. 봄이네가 거절했다더라. 고것이 약해보여도 은근히 깡이 있어. 고것이...
진국 : 왜 그랬대요?
이장 : 몰러. 사람 겉을 알지 속은 모른다더니... 이 나이까지 살아도 사람 맘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진국 : 전 이제 어떡하죠 아버지.
이장 : 뭘 어떡해!
진국 : 이대로 가다간 학교 문 닫는 건 시간문젠데, 돈한푼 안나오는 버스운전, 축구부 계속 하라구요?
이장 : 당연히 계속해야지!
진국 : 아버지!!!
이장 : 아, 몸 건강하겠다, 하루 세끼 양식 있겠다, 젊은눔이 뭐가 답답해?
진국 : 이 마을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이장 : 이눔아. 기적이 있다고 하잖여.
저번에 티비에 나갔던 게 반응이 좋아서, 우리마을 배추가 500원 받던 거 1000원에 팔리고 있어!
나한텐 이런 게 기적이고 로또여.
진국 : 아버지두 참...
이장 : 공연히 실망해쌓고 포기하고 기운 빼쌓지 마라. 농사꾼들은 해마다 실망한다.
해마다 땅에 배신 당하고 하늘에 배신 당하고,
그래도 또 해 바뀌면 그 땅에 뭐라도 심어먹겠다고 씨 뿌리고 거름 준다.
다들 그러고 살어. 학교 문을 닫을 때 닫더라도 목숨 붙어있는 한, 시작한 건 끝까지 하고 보는 거여.
그게 사람이여.
M 브릿지
E 밤벌레 우는 소리, 저벅 저벅 걸어가는 소리
진국 : 견적은 선배님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십쇼.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안녕히... (뚝 끊기는) 여보세요? 아... 진짜... 더러워서 못해먹겠구만.
E 휴대폰 전화번호 검색하는,
진국 : 38회 졸업생 대표가... 아! 여깄다. (전화거는, '결번이오니' 싸인) 뭐야...! 결번이 수두룩하잖아? 에으 지겨워...
(부시럭) 내가 이러니 술을 안마실 수가 있나 (맥주 따는 / 마시고) 카!!! 맥주가 쓰다 써!!!
E 걸어오는 소리
연정 : 어머, 여기서 뭐하세요?
진국 : 뭐하긴요...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한잔 마시고 있네요.
연정 : 저도 한모금 주시면 안되요?
진국 : 싫은데요?
연정 : 왜요?
진국 : 왜요는 일본 요가 왜요구... 그냥 싫어요.
연정 : 뭐야... 애같이... 이리줘요. 마셔야겠어요.
진국 : 어어어?
연정 : (꿀꺽꿀꺽) 카!!! 맛있다! 맥주가 달다!
진국 : 입대고 마시면 어떡해요? 간접키스잖아요!
연정 : 그럼 어때요? 내가 뭐 에이즈 환잔가?
진국 : 바보! 굴러들어온 복을 왜 차... 바보같이...
연정 : 그래요, 나 바보예요. 바보라서 행복해요. 됐어요?
진국 : 말을 말아야지...
연정 : 기운내요. 나같은 사람도 신나게 사는구만.
진국 : 뭐가 신나요? 신날 일이 뭐가 있다구...
연정 : 꼭 신날 일이 있어야 신나요? 내 맘이 신나면 신나는 거지.
진국 : 그러니까... 어떻게 맘이 신이 날 수가 있냐구요.
연정 : 바닥에 좀 더 있어보면 알게 돼요.
신은 공평해서, 나한테 의지할 게 아무것도 없으면, 날 강하게 만들어 주거든요.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거죠. 물론, 절실히 찾아야 얻을 수 있겠지만.
진국 :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연정 : 몰라도 돼요. 술이나 마셔요.
진국 : 어쭈? 이제보니 주당이셔? (휴대폰 울리는 소리 / 받고) 조진국임다! 어? 교장선생님? ...그래요?
M 브릿지
E 고기 지글지글 굽는 소리
남자 : 거, 허리띠들 끌러놓고, 양껏 드십쇼.
교장선생님께서 우리 낙동 초등학교 축구부 자모회의 결성을 맞아서! 한턱 쏘신답니다.
일동 : (웅성웅성) 웬일이야? / 그러게... 무슨 일이지?
남자 : 무슨 일인가... 하면 말입니다. 읍내 학교 학부모들한테 문의가 들어온다는 겁니다.
여자 : (OFF) 무슨 문의요?
남자 : 우리 낙동초등학교에 축구부가 있다는 게 소문이 났대요.
그래서 자기 아들도 들어오고 싶어한다고, 축구부에만 좀 들 수 있게, 받아주면 안되겠냐...
이런 전화들을 한다는 거예요!
여자 : (OFF) 그건 안되죠!!! 학교는 읍내학교에 다니면서, 축구부에만 든다는 게 말이 되요? 전학 오라고 해요!
남자 : 아, 당근이죠! 교장 선생님도 아주 단호하게!!
그렇겐 안된다고, 축구부 하고 싶으면 학교를 이쪽으로 옮기라고. 했답니다.
남자1 : 근데, 우리학교에 축구부가 있는게 어떻게 소문이 났대요?
남자 : 그게 다... 우리 조진국 코치님께서 물심양면으로 애쓰신 결과지요.
애들 빠스에 태워서 여기저기 다님서 축구지도를 해주셨잖아요. 그게 입소문이 난 거지요 입소문이.
여자 : (OFF) 게다가, 우리 조진국 코치님은 프로축구선수에다 코치로 활약하신 분이잖아요.
그러니... 축구 좋아하는 애들은 배우고 싶어 환장을 하는 거지... 환장을 ! 하하하
남자 : 그럼, 이 자리를 빌어 우리 조진국 코치님께 한말씀 들어보겠습니다. 코치님, 나오시죠.
진국 : 아니... 제... 제가 무슨 얘길...
남자 : 축구부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해보세요.
진국 : 아니 뭐... 한두가지라야 말이죠.
여자 : (OFF) 그럼 딱 세가지만 말씀해보세요!
일동 : (웃음)
진국 : 실은, 내년 봄에 도내 초등학교 축구시합이 있어요.
아직 미흡하긴 하지만 출전을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홍보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학교가 작으니까요.
남자 : 그래요??? 그럼 출전을 합시다! 해요!!
진국 : 만약 출전을 하게 되면 합숙하면서 훈련을 제대로 받아야 하거든요.
그러자면 훈련경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요. 문제는 돈인거죠. 돈...
남자 : 아, 돈이야 십시일반! 만들면 되지요! 일단 자모회에서 얼마씩 갹출을 하구요,
마을 유지들, 졸업생들한테 부탁해서 축구부 지원기금을 마련하는 겁니다.
여자 : 그래요! 우리가 땡빚을 내서라도 애들 도와줘야지요.
남자1 : 집집마다 배추 농사로 재미들 보셨죠? 꼬불쳐둔 거, 다 토해냅시다.
애들이 잘 되면 내년 농사도 하늘이 돕겠지요.
일동 : (웅성웅성) 맞아요..
여자 : (OFF) 홍보도 해야 되요 홍보. 지역신문사 있잖아요? 거기 누구 아는 사람 없어요?
남자1 : 교장 선생님한테 부탁해보면 되겠네요. 가끔 지역신문에 기고도 하시던데.
여자 : 에이... 교장 선생님은 맨날 말만 번드르르르... 하고 실제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던데...
남자1 : 그런 말씀 마세요! 오늘 고기 샀잖아요!
일동 : (웃음) 킥킥킥
남자 : 알겠습니다. 이왕 시작했으니, 제대로 한번 해봅시다.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 애들을 위한 겁니다.
애들을 위한 건 우릴 위한 거고, 우리 마을을 위한 거 아니겠습니까?
여자 : (OFF) 맞아요! 우리 마을을 위한 건 우리 나라를 위한 거고!
일동 : (박수) 옳소!!
M 브릿지
E 피아노 연주곡 틀어놓고 버스 청소하는
진국 : (따라 부르며 흥얼거리는) 캬... 내가 다운받은 거지만 차암 좋다...
가만, 이눔 자식들. 등받이에 발자국 좀 찍지 말라니까!
(박박 문지르는) 이게 뭐야? 조진국 바보축구? 에이 짜식들!
E 버스에 올라타는 발자국 소리
교장 : 안녕하세요?
진국 : 어? 여긴 웬일이십니까?
교장 : 수고가 많으시죠?
진국 : 아... 예... 그렇지요 뭐.
교장 : 그동안 보수도 없이 애쓰시는 거 알면서 제대로 인사도 못드렸어요.
진국 : 아닙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뭘.
교장 : 그나마 지금까지 학교가 살아있는 거, 코치님 덕분이예요.
진국 : 에이! 무슨 말씀을요! 근데 여긴 웬일로...?
교장 : 어제 지역신문에 기사 난 거 보셨어요?
진국 : 아, 예... 미니학교가 프로출신 축구코치를 영입해서 축구부를 육성하고 있다구... 아하하하 낯뜨거워서 원...
교장 : 기사 때문인지 문의전화가 부쩍 많아요.
진국 : 애들이 워낙 축구를 좋아하니까요.
교장 : 실은 오늘... 선생님들, 자모회 학부형들과 함께 보령 교육청을 방문하려고 해요.
진국 : 거긴 왜요?
교장 : 우리 학교를 축구부 특수학교로 육성하고자 한다는 건의를 해보려구요.
진국 : 축구부 특수학교요?
교장 : 내년 봄 도내 초등부 축구대회 출전계획도 말씀드리구요. 그러니 폐교조치를 재검토해달라고 부탁해보는 거죠.
진국 : 아... 그렇군요...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교장 : (반가워)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진국 : 되든 안되든 같이 하자구요. 망해도 같이 망하면 좀 덜 아프잖아요. 아! 애들도 데리고 가죠?
교장 : 그럴까요? 그래요. 다 같이 가요. 같이요.
M 브릿지
E 통학버스 시동 거는
진국 : 선생님들 다 타셨죠?
일동 : 네!
진국 : 학생도 빠짐없이 다 탔지?
애들 : 네!
진국 : 학부모님들도 다 타셨죠?
일동 : 네!
이장 : 나도 탔다! 이장이 빠지면 되겠냐!
일동 : (웃음)
진국 : 자! 그럼 출발합니다. 가시죠!
E 차 출발하는 소리
M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