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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사태는 갈수록 점입가경입니다.
특히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1호기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고,
근방 농산물뿐만 아니라 도쿄에까지 방사선이 검출돼서 수돗물도 먹지 못하고
생수 사재기에 나섰다는 소식은 듣기에도 여간 안타깝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물론 상상을 초월한 지진과 쓰나미로 말미암아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애초에 원자력발전소는 그 이상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현실 속에서 세워졌기 때문에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마치 오래 전부터 인간이 준비해 온 일이 마침내 터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자 하는 기반 위에 세워졌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빛과 공기와 물이 필수적이었다면,
이제는 전기로 표현되는 에너지가 없는 세상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인구수도 늘어났지만
편리함과 진보를 통해서 얻는 삶의 질 변환을 위해서는
전기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갈수록 늘어나는 전기 수량 확보를 위해서는
가장 효율적이라고 하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까지 표현할 정도입니다.
지금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태는
인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각 나라들,
특히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이제라도 원자력을 대체할 수단을 찾기에 골몰합니다.
그러나 겉모습과 다르게 그 충격의 내면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위험하다는 것 앞에서 조금이라도 우회할 방도를 찾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길을 갈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그 스스로가 한계에 이를 때까지 참으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삶의 질 변화는 인간이 갖는 탐욕과 관계를 뗄 수가 없습니다.
탐욕에는 거기에 합당한 변명이 있습니다. 그 변명 앞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또 다른 변명이 더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욕심은 죄를, 그리고 죄는 죽음을 낳는다는 하나님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죽음을 낳는 삶의 질의 변화는 오직 비극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비극 앞에 놓여있습니다.
목마른 세상입니다.
마셔도 마셔도 갈증은 해갈되지 않습니다.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통해서 이 지구 안에서는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지구는 인간이 욕심 부리면서 살아가기에 쉬운 곳이 아닙니다.
이제는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근본을 찾아가야 합니다.
구원을 얻는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삶의 새로운 변화는 어디서 시작이 돼야 하는 지를 물어봐야 합니다.
어쩌면 물음 속에 답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