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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구의 1/3을 차지한다는 인도와 중국이
화학비료 사용으로 토양의 악화와 그로인한 식량 생산 감소로 어려움이 크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해결은 정치권의 정치적인 판단으로 요원한 실정입니다.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래 미국의 식량지원에 의지했던 인도는
1967년 멕시코에서 밀 종자를 수입해와 기적 같은 식량자족 꿈을 실현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과다한 화학비료를 사용했고,
토양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인도의 쌀 생산성은 파키스탄·스리랑카·방글라데시보다 떨어졌고,
2009년도 통계를 보면 식량 가격이 그전보다 19%나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우려 속에서도
이제는 정치적인 문제로 화학비료 사용 개선을 시도하지 못합니다.
토양이 나빠져도 특히 정부 보조금이 적용되는 요소비료가 없이는
작물 생산을 못한다는 농민들의 표를 잃을 것이란 정치적인 우려 때문입니다.
‘13억(?) 인민’을 먹여 살려야 하는 중국도
토양 오염과 급격한 도시화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국내의 모든 농작물을 기본적으로 화학비료를 사용해 재배하고 있으며,
이를 사용하지 않으면 생산량이 매우 적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이로 인한 심한 토질 악화가 매우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 상황을 그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게 중국의 고민입니다.
먹는 문제에 이상이 생기면 체제 유지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농업은 정치적 행위가 되었습니다.
어떤 나라는 체제 안정을 위해 한계가 분명한 농업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고,
또 다른 나라는 농촌의 붕괴를 표의 붕괴로 보고 표가 되지 않는 농촌을 관심 밖에 둡니다.
인간 생존의 가장 근본인 농업을 무너뜨리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삶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건강하지 못한 삶의 방식이 정치적인 이유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비극입니다.
오늘 우리 농업의 딜레마는 농민들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친환경농업에 대한 정부의 권장은 늘 정부의 또 다른 기업농 육성책이 되고 있습니다.
건강한 농업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농업의 산업화가 초점일 뿐입니다.
정치는 경제와의 연대 속에서 철저히 농업을 종속으로만 끌고 갑니다.
이런저런 정치적인 행위로
농업이 삶의 바탕이 되지 못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구제역 사태는 정치와 경제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톡톡히 그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농업과의 진실한 연대가 정치구호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틀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삶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