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뉴질랜드·호주·인도네시아를 순방(3월 2일~8일)하는 가운데,
특히 뉴질랜드를 방문하면서 장태평 농림수산부 장관에게 양복을 벗고
작업복 차림으로 농업 현장에 임하라고 말한 것이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덕분에 여러 우스갯소리도 이곳저곳에서 나와서 실없이 웃기도 했습니다.
이번 대통령의 해외순방은
호주, 뉴질랜드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본격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뉴질랜드는 농업 보조금 철폐 등을 통해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핵심 수출산업으로 농업을 키운 나라입니다.
현재 뉴질랜드는 대외수출에 있어서 농업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농업은 뉴질랜드 경제의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 그러니까
우리 농업은 오히려 경제 발전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여기는 현실 속에서
뉴질랜드의 모습은 오히려 경이롭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농업담당 장관에게
양복을 벗고 작업복 차림으로 농업을 개혁시키라는 지시에는 그런 부러움(?)이 있었겠지요.
나아가서 경제 성장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는 당연히
농업도 경쟁력 부분에 있어서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은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근본부터 다른 뉴질랜드 농업과 우리 농업이지만 어쨌든 농업은 농업이니까요.
당장 정부는 내년부터
농업 보조금 제도를 전면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한다는군요.
개별 농가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는 대신 인프라 투자를 활성화해
농업의 대형·조직화를 꾀하겠다는 것입니다.
보조금 제도를 생산성과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전면 개편하면서
내년도 예산 책정 때부터 바로 시행할 계획이라고 기자회견에서 장관은 힘주어 말합니다.
농업정책이 농민 보호보다는 경쟁력 강화 쪽으로 급하게 이동하는데 따른
부작용이 무척이나 우려되지만, 대통령 말 한마디에 농업을 담당하는 장관이
작업복을 입고 일하겠다는 현실에서는 그깟 부작용쯤이야 그리 문제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현재 388개(투입 예산 8조8000억원)에 달하는
농업 보조금(어떤 이들은 눈 먼 돈이라고 말도 하지만) 제도 가운데
쌀 직불금 제도 등을 제외한 상당수가 축소·폐지되거나 다른 형태로 바뀔 전망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우리 농업 환경이 상당부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알다시피 우리 정부가 모델로 삼으려고 하는 뉴질랜드나 네덜란드는 기업농 중심 국가입니다.
즉 일정부분 정부 보조금 없이도 농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 등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농업 보조 실태는 기업투자 방식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은 이미 상식에 속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고령화와 함께 영세농 중심이기 때문에
정부 지원금이 이렇게 대통령 말 한마디로 농민들에 대한 직접 보조보다는
농업 기반시설 조성 등으로 흘러가면 죽어도 기업농으로 갈 수 없는
다수의 농민들은 자연스럽게 소득이 줄어들면서 빈곤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사실 대통령 말 한 마디로 농촌이 휘둘러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부유한 농가도 있지만,
이미 농민들의 실상은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동안 정부 보조금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실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 산업동력화에 농촌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쏟아 넣고 나서
힘없이 무너져가는 농촌을 그나마 유지시켜 온 것이
정부 지원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는 모범 농가를 선정해서 수치를 들어가며
농업의 경쟁력을 이야기하지만, 모래 위에 그림 그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참으로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농촌과 농업일 것입니다.
아마도 농촌이 완전 해체되고 농민들이 없어지고 나서야 이해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농촌이 없어져도 먹을 것은
모조리 수입하면 되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괜찮을 것입니다.
또 앞으로 소농은 사라지고 기업농회사들이 기업 이익에 따라
농산물 가격을 이리저리 조절해도 먹고 사는데 상관없다면
우리 농업 기반이 무너져도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농업이 갖는 가치를 단지 경제적 이해도로만 받아드리려고 한다면 말입니다.
아니, 먹고 사는데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리 하면 말입니다.
*뉴질랜드 농업에 대한 부연 설명*
뉴질랜드는 원래 농업이 산업의 주력인 국가입니다.
현재 세계 시장점유율 38%의 양고기, 점유율 5%의 쇠고기 등
낙농제품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출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농업이 흔들리면 국가 경제가 흔들리는 나라이죠.
무엇이든지 덩치가 크면 조그마한 충격에도 후유증이 큰 법(?)입니다.
뉴질랜드도 1984년까지만 해도 농업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농업 자체가 세계적인 흐름에 민감해지다 보니까
뉴질랜드 농업도 국가적 차원에서 자생력을 더욱 갖춰야 했습니다.
농업이 경쟁력이 있어야 뉴질랜드가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조세특혜와 직접보조금을 폐지하는 정책을 단행했는데
뉴질랜드 농민들도 상당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미 농민단체가 우리와는 다른 경제의 중추로서 기업가의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뉴질랜드라는 나라가 파산한 농민들을 충분히 안아줄 수 있는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 줄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이죠.
그리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농민들에게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도록 노력했습니다.
이점이 우리와는 너무도 다릅니다.
과연 우리나라가 농민들을 보호할 만한 장치를 갖춘 나라인지는
농민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농업 보조금의 상당액이
농업투자금 보다도 생계형입니다. 우리 농민들이 거의 노인이기 때문입니다.
뉴질랜드는 농업개혁을 통해서 농업인구의 연령대가 낮아져 높은 효율성을 갖췄습니다.
이점이 강한 농업국가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앞으로 농업투자를 통해서 젊은 귀농인을 양성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정착되기 까지는 얼마나 많이 시간이 걸려야 할 지 모릅니다.
지금 이렇게 산업화와 도시화에 전념하면서 농촌을 희생양으로 삼고자 하는
상황 속에서는 아마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농업 개혁은 맞는 말입니다.
미래 산업이라는 인식과 함께 지속적으로 농업 개혁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농민에게만 변화를 요구해서는 요원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