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라, 풍년으로 가득찬 세상을 담아서!"
*2008년부터는 기쁘게도 마을 주민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서 추수감사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름도 시원하게 '풍년맞이 한마당 큰 축제'입니다.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모여서 하나가 되고, 기쁨을 나누면 더욱 더 큰 세상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세계가 흔들흔들 거리고
대한민국도 흔들흔들 거리던 한 해의 늦은 날에
충청도하고 보령에서도 더 귀퉁이 농촌인 천북면 신죽리에서
근심 걱정 잊어버리고 흙 묻은 손 털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한쪽에선 풍년맞이 한마당에
꿈같이 흘러간 세월을 바리바리 깔고 앉아서
본격적으로 구경 채비를 합니다.
오늘은 농촌 방식대로 하는 우리의 운동회(?) 날입니다.
첫 번째 경기는 '두부 만들기'.
마을별 선수들이 열심히 맷돌을 돌리면서 콩을 집어 넣습니다.
텔레비젼에서 보던 역동적인 경기는 아니어도
손에 힘을 주고 내가 잘하는 것을 힘있게 돌립니다.
맷돌도 아무나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래 봬도 마을에서 뽑혀온 선수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재미있는 것입니다.
콧소리 곡조를 붙이면서
올 한 해 힘들었던 것들도 모조리 돌려버립니다.
배추 한 포기 300원도 받지 못해서 멍들었던 마음도
사료 값 폭등으로 머리끝이 닳아졌던 시간들도
이렇게 돌리고 돌려서 이제는 보듬고 어루만져줍니다.
두 번째 경기는 '송편 빚기'.
반죽덩어리를 끄집어 내서 같이 한 마음으로 주물럭거립니다.
옛날 시집와서 갖은 잔소리 다 들어가며 빚던 송편.
그때는 빚다가도 친정 생각에 고물대신 한시름을 넣기도 했었던 송편.
그래도 오늘은 일등을 해 볼 생각에 한시가 급한 송편.
이리 저리 만지다보니 고왔던 손도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송편 주름처럼 같이 늙어 갑니다.
그래도 오늘은 대표 선수.
손 아래서 수줍어하던
송편이 금메달이 되어 빛나기 시작합니다.
아, 옛날이여!
송편 빚기가 세월 빚기가 되었습니다.
하나 하나 빚어서 쌓아두니 내가 살아 온 날들이
그 위에 앉아 있습니다.
치열한 경기 현장에 관중들도 몰입(?)을 합니다.
등 떠밀리면서도 하는 것을 가만히 보노라니
내가 선수로 나갈 것을 하는 마음들이 머리 위로 모락 모락 피어납니다.
여기는 번외(?)경기입니다.
은근슬쩍 자리 잡고 앉아서 풍년을 마음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어려웠어도 오늘은
소주 한 잔에 햇살 한 웅큼을 안주 삼아
넉넉함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지 겨루어 봅니다.
뭐니뭐니해도 윷놀이가 최고입니다.
잡아당기고, 미끄러지고...
던지는 손보다도 급한 마음이 벌써 앞질러 땅에 떨어집니다.
탄성과 탄식이 교차하는 찰라의 미학.
윷판에만 서면
늘 승부사가 되고,
다른 사람은 아무리 개판이더라도
내가 던지면 던지는 작작 모가 나올 것 같은
그래서 늘 두근거리는 세상.
이세상의 부모 마음 다같은 마음
아들 딸이 잘되라고 행복하라고
마음으로 빌어주는 박영감인데
노랭이라 비웃으며 욕하지마라
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부라보(부라보) 부라보(부라보)
아빠의 인생!!
윷을 던지는 데도
직구가 있고, 슬라이더가 있고, 커브가 있습니다.
그 기술을 터득하지 못한 자
정녕 윷판이 넓다고 하지 못하리라.
실용 윷판입니다.
먹다 남은 소주병이 우리 편이고
굴러다니다 멈춘 귤이 우리 편입니다.
저 귤이 한 바퀴 돌아 시원스럽게 까진 날, 웃음소리가 터질 것이고,
남은 소주가 비워지면 승리의 노래가 우렁찰 것입니다.
따라가지 못할 것보다도
하기 싫은 것 억지로 하기보다도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땅에서
한 가닥 뽑아 두 가닥 만들고,
두 가닥 뽑아 세 가닥 이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일상의 축제입니다.
'용구쇠(용마루) 엮기'
자리를 잡고 앉으니, 왕년에 힘깨나 쓰던 생각이 간절해 집니다.
추억과 그리움이 서로 겹치면서 한올 한올 엮어집니다.
그리움이 크면 클수록 용구쇠도 커집니다.
훈수는 장기나 바둑에서만 있는 줄 알았더니 추억이 묻어나는 곳에서도
힘을 발휘합니다.
거창한 폐막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승부는 승부.
결과를 발표하고 시상을 합니다.
스스로 한마당을 만들고, 마당의 주인공이 되어서 즐겁게 놀았습니다.
가버린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들에게는
정성으로 담은 선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용구쇠 부문 시상'
"귀하는 풍년맞이 한마당 큰 축제 용구쇠 엮기 부분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였기에 온 마을 사람들의 뜻을 모아
상장과 상품을 드립니다.
내년에도 건강하셔서 계속 선수로 출전해 주십시오."
오너라, 2009년아.
흔들흔들 거리는 세상을 열어 젖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즐거운 날을 가득 담아
풍년 노래 부르면서 오너라.
생명이 어디에서 건강하게 되는지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며
우리가 가야 할 길 어디에 있는지 일러주며
차고 넘치는 축제처럼 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