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기라곤 가끔 흥에 겨워 장단 맞추느라고 젓가락 정도 들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아직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닌 분도 있습니다)이 모처럼 마음을 굳게 먹고 광천읍 내 작은 오케스트라단의 신입생 모집에 응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곳곳에서 여러 악기를 배우는 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이니까 악기회사와 음악가의 상업적 바탕도 깔려있지만(이 부분에서 비판도 있긴 합니다), 그래도 예전엔 어렵게만 생각했던 악기를 농촌에서도 이렇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무료는 아니고, 매달 악기를 배우는 일정한 비용을 냅니다.
처음엔 읍내의 한 교회가 작은 오케스트라를 만든다고 해서 학생들만 대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일반인도 모두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에 재미가 생겼습니다. 오, 이런 농촌에서 오케스트라라니…. 그런데 피아노를 전공한 아내가, 이런 기회가 참 좋다면서 나이 든 분들도 참여해보면 어떻겠냐고 말을 꺼내기 무섭게 한 사람씩 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연로한 농부들은 처음엔 어림도 없는 소릴 한다며 남의 이야기 듣듯이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꽹과리나 징도 아니고,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등이라니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악기를 배워야 할 당위성(?) 이를테면, 앞으로 치매 예방에 최고라느니, 소질이 있어 보인다(?)는 둥 여러 이야기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마음을 흔들었던 것은, 내가 잘하지는 못해도 인생 한 번 살면서 이런 악기도 배워보며 나도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말이었습니다. 농부의 손이면 무엇이든지 진지하게 대할 수 있으므로 악기를 배우는 진도가 빠르지 않아도 찬찬히 스스로 즐거움은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신청자가 생겼습니다.
매주 일요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목표는 물론 작은 오케스트라 연주입니다. 첫 연주곡이 어떤 곡일지 지금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제 몇 주가 지났습니다. 일요일 저녁이면 같이 모여서 악기를 배우러 갑니다. 악기를 임대도 해서 집에서도 연습하긴 합니다만, 아직은 악기를 제대로 잡는 것도 버거워서 선생님 가르침만 바라고 있습니다. 망설임과 두려움은 쉽게 떠나질 않습니다. 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은 늘 붙어있고요. 연주가 가능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1년? 2년? 어쩌면 영영 그런 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지레 맘먹기도 합니다. 그래도 꿈이 생겼습니다. 예전엔 이맘때면 농사짓고 수확의 꿈만 있었지만, 이젠 악기를 바라보면서 그날의 멋진 꿈을 갖습니다.
올해 일흔한 살이 된 할아버지는 클라리넷을 선택했습니다. 바이올린을 선택한 이도 있고, 색소폰을 선택한 이도 있습니다. 첼로며, 플루트며 다양한 악기들이 각자의 손에 들려졌습니다. 악기는 참 다양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아름답고 감동적인 소리를 냅니다. 작년에 전주시에서 있었던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갔는데, 연주 중 자신의 소리를 내는 트라이앵글에 감동했습니다. 우습게만 생각했던 작은 녀석이 그 틈새에서 자기의 소리를 내며 곡의 완성에 일조하는 것이었습니다. 팀파니도 훌륭하지만, 트라이앵글도 훌륭했습니다. 하나하나가 자기 소리를 낼 때 모든 악기는 훌륭합니다.
자기 소리를 내면서 서로 어우러지는 사회는 살기 좋은 사회입니다. 어우러지는 사회는 서로를 인정하고 보완해주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단지 악기만이 아닐 것입니다.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으로 방향을 잡는 연습도 같이한다면 이미 좋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것이겠지요. 이런 배움은 이미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El Sistema)를 통해 세상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시스템이자 관련 재단의 이름입니다. 수십만 명의 청소년들이 거쳐 간 엘 시스테마의 시작은 1975년 11명의 빈민가 아이들로 구성된 소규모 오케스트라였습니다. 경제학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빈민가의 한 차고에서 ‘총 대신 바이올린을! 마약 대신 클라리넷을!’이란 구호를 내걸고 거리의 아이들 손에 악기를 쥐여 주면서 음악을 통한 사회 변화를 시도한 게 엘 시스테마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아브레우는 아이들의 문화적 차별과 소외를 해결하는 한편, 이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으로 ‘오케스트라’를 활용했습니다. 그는 오케스트라가 지닌 정체성, 즉 다양한 악기들이 모여 일체감 높은 하모니를 이룬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참으로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엘 시스테마는 교육 방식부터 달랐습니다. 보통 클래식 악기의 교육방법은 도레미파솔라시도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연주를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방법은 악기에 숙달되기 전에 베토벤이나 차이콥스키의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으며, 때로 교육과정을 지루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엘 시스테마는 새로운 교육방식을 만들어냈습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무조건 연주를 시킨 것입니다. 엘 시스테마는 “음악은 즐겁게 한다.”, “연주하면서 음악을 배운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아이들이 최단 기간 내에 베토벤을 연주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기술 하나하나를 숙달하는 것보다 전체를 먼저 맛보도록 해주는 것이 엘 시스테마의 원칙입니다. 전체를 맛본 후에 다시 기술 하나하나를 좀 더 완전하게 다듬어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엘 시스테마를 통해 악기를 배우고 단원들과 멜로디 하나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이전과 다르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악기를 부드럽게 소리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배웠고, 그것을 성취해냈을 때의 기쁨을 통해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또 서로 고음과 저음, 소리의 강약을 맞춰가면서 자연스레 사회구성원으로서의 협동과 배려를 익혔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난생처음 예술이 주는 긍정의 에너지를 삶의 영양분으로 흡수했습니다. 이런 일은 오케스트라 조직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총소리와 비명으로 채워지던 빈민가에 아름다운 선율이 섞였고, 그 낯설지만 뭉클한 변화는 베네수엘라 전역은 물론이고 어느새 전 세계에 엘 시스테마 바람을 불게 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남미 대표 산유국으로, 석유 자본으로 중남미 좌파 국가들을 호령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4월부터 유가는 점점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베네수엘라의 경제도 휘청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유가 하락과 더불어 잘못된 정책도 베네수엘라 경제 몰락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잘못된 가격 통제 정책으로 기업의 민간분야 투자의욕을 떨어트렸고, 석유 자본을 생산시설이나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경제가 곤두박질치면서 극심한 빈곤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의 말은 차치하고서라도 베네수엘라의 모습은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일으키는 핵심 동력은 지도자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나라도 그런 현실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민중의 힘이 핵심 동력입니다. 결국, 바른 정책도 깨어 있는 민중의 요구 때문에 실행됩니다. 지금 비록 베네수엘라의 모습은 안타깝지만,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엘 시스테마를 정착시킨 그 힘으로 다시 일어서리라고 믿습니다. 엘 시스테마를 통해서 우리는, 함께 연주하며 자기 앞에 놓인 불행과 싸워나간다면 누구에게나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2월 10일)은 낙동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낙동초등학교는 제가 꼬박 11년째 스쿨버스 등·하교 차량운행을 자원봉사하고 있는 학교입니다. 지난 2010년 폐교됐어야 할 학교가 오늘도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갈수록 열악한 농촌의 환경으로 학교가 언제까지 존속할지 알지 못하지만, 현재 아이들이 이렇게 있다는 것은 내일의 희망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졸업식 순서에 전교생 합창단 공연과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었습니다. 합창단과 마찬가지로 오케스트라도 낙동초등학교 모든 아이가 단원입니다. 졸업식에서 아이들은 열정적으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OST인 ‘He's a Pirate’를 연주했습니다. 졸업식에 참석한 학부모들과 지역민들은 감동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는 농촌학교인 낙동초등학교의 폐교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시작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전교생이 합창단원이 되었고,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었습니다. 낙동초등학교 동문회는 매년 입학하는 1학년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선물했습니다. 아이들은 지역의 열정적인 선생님들을 통해 피아노를 배우고,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음악의 힘을 키웠습니다. 낙동초등학교가 음악을 통해 배운 것은 건강한 공동체 역할이었습니다. 합창은 각각 맡은 파트가 있고, 오케스트라도 각자 연주할 악기가 있습니다. 악기가 크든 작든 맡은 역할을 잘할 때,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살아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작은 북도 열심히 치고, 플루트도 열심히 불었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은 버겁긴 합니다. 그래도 놀면서(?) 하나하나 배워가니 조금씩 따라갑니다. 고학년이 되면 바이올린이나 다른 악기들이 제법 손에서 익숙해집니다. 악기 연주 향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습이니까 나름대로 악기를 붙들고 있습니다. 졸업식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니 아이들이 못내 자랑스러웠습니다.
오늘 농촌학교가 언제까지 존속할지 알지 못하지만, 희망의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학교는 곧 지역의 중심이고, 우리가 사는 지역은 희망이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희망의 시작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입니다. 상상의 에너지는 모든 사람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상상하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서로에게 힘이 됩니다. 농촌의 희망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흔 살이 넘은 할아버지가 클라리넷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할머니들이 작은 오케스트라 문턱을 수줍게 넘은 까닭이기도 합니다.
바라기는 1년 후 낙동초등학교 졸업식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 손녀들이 아주 간단한 동요 한 곡이라도 연주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연습을 위해서 자주 만나야겠고,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더욱 튼실해지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음악으로 세상이 조금씩 아름답게 변화한다면 참 좋겠습니다. 음악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함께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하면 더 좋겠고요.
아직 악기 잡는 법도 채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멋진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마을이 오케스트라처럼 각자의 역할을 잘 연주하기를 기대합니다. 요즘 전국적으로 마을 만들기에 열심입니다. 제가 사는 보령시는 그런 일을 더욱 잘하기 위해서 민간위탁단체로 만세보령공동체네트워크라는 법인을 만들었습니다. 마을 만들기를 위해 여러 사람이 모이고 각자의 생각을 냅니다. 이것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함께 모여 나눈 생각을 정리하고 실천에 옮기는 일은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와도 같습니다. 일체감 높은 하모니를 이뤄야 한다는 점에서 엘 시스테마 활동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주하면서 음악을 배우는 것처럼, 살면서 공동체의 즐거움을 나눠야 합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협동과 배려가 있어야겠지요. 아무리 작은 것도 자기 역할이 있고, 전체 소리를 아름답게 내는 데 충분히 일조를 합니다.
이번 일요일에 오케스트라단은 어떤 것을 배울까요? 행여 지난주에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나 않았을는지요. 그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이에 처음 악기를 잡았는데 다 기억하고 있다면 천재지요. 어쨌든 연습에 참여하는 연습이 필요하고, 했던 것을 또 해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나이 들어서 여기까지 온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기에. 그렇게 희망이 피어나고 작은 오케스트라는 아이들의 소리와 어울려 새로운 노래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응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