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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에게 자부심이 필요합니다농촌이야기 2008. 9. 24. 11:14
농민에게 자부심이 필요합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가을 농번기입니다.
초가을 자락이 아침저녁으로 제법 펼쳐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따가운 햇살 아래서 농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흙과 섞인 땀을 쉼 없이 쏟아냅니다. 부지런한 손놀림은 이렇게 열심히 심고 가꾼 만큼 수익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지만, 과연 올 가을은 어떻게 될지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농촌의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지만, 요즘 더욱 위축되고 있는 농촌의 현실은 피부에 민감하게 와 닿습니다. 최근의 통계를 보더라도 농가 인구는 급속도로 감소해서 전체 인구 대비 7.3%(2005년 기준, 343만 명) 수준이고, 그나마 7년 뒤에는 5.3%(260만 명)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그 이후야 더 말할 것이 없겠지요. 또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3%에 머물러 제조업(28.4%)이나 서비스업(67.8%) 우대 사회에서 농업은 노골적으로 천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식량주권’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들이 식량위기를 내세워 곡물 수출을 규제하기 시작하고, 또 느슨한 농업 정책을 폈던 나라들도 황급히 농업 현장을 늘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인간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 조건으로 농업의 힘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이 농민들의 자부심이고, 농민들의 자부심은 국가의 근본이 됩니다. 문제는 이 자부심이 당당하게 농민들을 먹고 살게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부심을 잃은 농민, 스스로를 비하하는 농민에게서 어떻게 건강한 먹거리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정부가 모든 곳에서 그렇게도 실용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용의 실질적인 시작은 농촌이라는 것을 간과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는 시장성과 경제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늘 그랬듯이 시장성과 경제성의 결과는 언제나 예측 불안으로 농민들뿐만 아니라 경제적 힘이 약한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짓누릅니다.
국제 곡물값 폭등으로 30개국 21억명이 식량위기를 겪는 소용돌이 속에 국내 곡물 자급률은 27.7%(2006년 기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쌀을 빼면 자급률은 5%로 뚝 떨어집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세 번째로 낮은 수준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농업 농촌발전 기본 계획’을 세우면서 2015년 곡물 자급률 목표치를 25%로 제시했습니다. 2006년 수준보다 더 후퇴한 목표치입니다. 그런데 국제 곡물 가격은 예상치를 훌쩍 뛰어 넘어 가파른 상승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과 호주는 쌀 재배지를 줄이고 있습니다. 쌀 공급량이 30% 줄면 쌀 가격은 146% 오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만만히 봤던 쌀이 이제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경제만 성장하면 이 모든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될까요? 먹을 것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오늘날 한국경제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대외의존형 수출중심 경제로 굳어졌으므로 이제 수출산업에 걸림돌이 되는 후진국형 농업은 더 이상 옹호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지요. 그러면서 식품은 저렴한 해외농산물을 사먹으면 되고, 그 대신 국내의 농경지는 좀 더 경제효율성이 높은 산업 활동을 위해서 전용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최근 정부의 연구기관이 내놓은 '새만금 토지이용 기본구상 조정(안)'을 보면, 농업용지 비중을 30%로 대폭 줄이고, 산업 관광 레저 등 비농업 용지를 70%로 늘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번 조정안은 지난해 농업용지 72%, 비농업 용지 28%로 개발하려던 계획을 크게 바꾼 것입니다. 이것은 새만금을 정책적으로 ‘동북아의 두바이’로 만들겠다는 발상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충분히 예견되었던 일입니다. 정책결정자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지식인들, 심지어는 농업관계 전문가들마저도 오로지 경제 효율성의 관점에서 농업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먹거리 나눔에 대한 기독교 운동도 있지만, 대다수 기독교인도 이런 관점에서 예외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 조건인 곡물이 자본화 되면서 인류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농업이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지구상에서 사람답게 살면서 지속가능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삶의 방식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식량이 무기가 되어서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시장성과 경제성으로만 대응하던 농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농업의 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습니다. 특정 농민의 특정 성공사례가 그 길도 아니고, 농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 하는 것도 그 길이 아닙니다. 농업을 단지 산업의 한 형태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진실로 건강한 세상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가야 합니다. 우선은 고령화되고 감소되는 농촌이지만 그래도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업에 임하도록 만들어 줘야 합니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공감대를 이루는 정책이 지속가능하게 나와야 합니다.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를 격리시키고 나아가서 소비자를 식량 생산으로부터 무력화시키는 체제가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맞설 줄 알아야 합니다. 농민들에게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식량주권 확보를 위한 국가의 실용주의가 제대로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농민들의 살아있는 자부심은 나라의 실질적인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