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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2 17:58


1. 먼저 초고령화에 접어든 농촌의 두 마을 이야기를 합니다. 두 마을 다 제가 살거나 가까운 지역이어서 이름을 그대로 밝히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편의상 A 마을과 B 마을로 해둡니다. 


2. A 마을은 산속에 있는 마을입니다. 오래된 마을이기도 하지만, 고령화가 무척 빠르고 인구는 갈수록 줄어드는 곳입니다. 그런데 십여 년 전부터 귀촌하는 가정이 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원주민 가정과 비교하면 귀촌한 가정도 꽤 됩니다. 아무래도 귀촌한 분들이 더 젊고 활기찹니다. A 마을은 오래도록 석탄광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연로한 분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 석탄광산 광부로 일을 했습니다. 80년대 후반 이후 석탄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그 후로 농업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석탄광산 지역은 석탄 산업 영향으로 한때 호황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경제 활동이 어려운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광산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광해관리공단의 지원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지역경제 사업에 공모도 해서 마을발전기금도 받았습니다. 여기서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마을발전기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귀촌한 이들의 아이디어도 빌렸습니다. 사업 목적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은행가 출신 귀촌인의 권유에 따라 마을법인 이름으로 시내에 있는 아파트 한 채를 샀습니다. 그리고 임대를 통해 월세를 마을의 고정적인 수입으로 만들었습니다. 


고정적인 마을 수입이 생기면서 마을 발전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논의를 했습니다. 뽕나무밭도 가꾸기 시작했고, 체험 활동으로 누에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볼거리를 갖추자 사람들이 제법 마을을 찾아오고, 마을의 희망에 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차츰 마을 가꾸기 사업도 여러 마을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낙후된 광산지역 발전기금 대상 지역이 되었습니다. 발전기금은 액수도 꽤 커서 어떻게 사용할지 마을 회의를 자주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을 주민을 위한 공동건물을 짓기로 했습니다. 2층은 요양시설을 갖추고, 1층은 아담한 마을 카페와 회의 장소, 그리고 숙박시설과 식당을 갖추는 계획입니다. 


요양시설은 고령화된 마을 주민의 현실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멀리 있는 요양원은 다시 마을로 돌아오기 힘든 장소입니다. 노인들의 고민은 마을에서 생을 마칠 수 있느냐입니다. 거동이 어려워 요양원에 들어가면 삶의 터전과는 영영 이별이어서 안타까움이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운영위원회는 오래전부터 마을 주민 가운데 그래도 젊은이들에게 권유해서 노인요양사 자격을 따도록 했고, 발전기금 성격에 이런 내용이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태어나고 시집오고, 자식을 키웠던 마을에서 서로 의지하고 돌보다가 생을 마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감동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발전기금과 시내에 사놓은 마을 소유 아파트에 대해 조금씩 분란이 일었습니다. 나이 많은 분들과 마을 사업에서 소외감(?)을 느낀 이들이 발언권을 넓혀가면서 마을 사업보다 개인적인 이익 배분에 중점을 두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의견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강해졌습니다.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을 발전은 앞으로도 요원하니 요양시설을 비롯한 마을 사업은 중단하고, 돈이 생기는 대로 각 가정에 나눠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을 운영위원회도 갈등이 생겼습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생기는 이익은 우리가 아닌 나중에 마을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의 몫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자 여파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운영위원장은 그런 게 아니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라고 열심히 말하지만, 말을 할수록 기운만 빠졌습니다. 


3. B 마을 이야기입니다. B 마을은 평범한 농촌 마을이고, 역시 빠른 고령화에 인구도 계속 줄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가축분뇨공동자원화시설이 들어왔습니다. 분개한 마을 사람들은 공사현장으로 투입되는 덤프트럭을 막아섰습니다. 날씨는 싸늘했지만, 농로(農路)를 점거하며 기세를 올렸습니다. 


정부가 정한 가축분뇨공동자원화시설 허가 조건 중 가장 기본은 주민설명회 및 주민공람을 거친 후 환경영향평가를 완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라’는 것이 환경부의 ‘가축분뇨공공처리시설의 설치 및 운영관리 지침’의 중요한 기본원칙이라는데, 어찌 된 일인지 마을 사람들 대다수는 주민설명회는커녕 의견 수렴의 수 자도 듣지 못했습니다. 물론 지자체에서는 충분한 과정을 거쳤고 법적으로 문제없이 인허가를 내줬다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자체의 그런 설명을 들은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는 것입니다. 


마을에서 보기에 지자체가 일하는 태도는 주민을 고려하는 모습보다 맡겨진 일을 밀어붙이기 일쑤입니다. 직접 이해당사자인 주민과 민원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허가의 선결 조건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일이 진행되는 상황은 일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리고 말이 좋아 민원 발생이 최소화될 수 있는 장소를 선정하라는 것이지, 이 말의 실체는 힘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을 택해서 무리가 가더라도 사업을 완수하라는 말입니다. 기가 막힙니다.




가축분뇨공동자원화시설 건축을 담당한 건축회사의 덤프트럭들이 육중한 모습으로 농로를 따라 건축 현장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마을에서는 할아버지는 물론 할머니들까지도 집에 있는 농사용 경운기와 트랙터를 가지고 농로에서 대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늙고 수가 적은 마을 사람들은 아무래도 힘에서 달립니다. 현장에 나온 경찰들은 할머니들에게 은근히 위압적인 말투로 불법 운운하기 시작했고, 평생 농촌에서 일만 했지 경찰과 맞서보지 못한 마을 주민들은 살짝 기가 꺾였습니다.


그래서 나름 합법적 방법으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농로는 원래 농사를 짓기 위한 길이고, 농기계들이 다니는 길입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차례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덤프트럭 앞에서 경운기와 트랙터를 몰고 농로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교대로 급한 농산물을 수확하고 키우는 짐승들에게 밥을 주고 오기도 하면서 며칠을 농로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들 체력이 떨어지고, 관절이 아프기 시작하고 허리도 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투쟁도 몸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더구나 덤프트럭들은 이제 마을 길을 택하지 않고 아예 이웃 마을 경계선을 따라 현장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은 장장 7시간에 걸친 회의를 하면서 농로의 투쟁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평생을 걸쳐 살아온 땅이 이렇게 위협을 받는 현실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몸은 견디기 어렵고, 농사는 밀리고 마음도 떨려서 힘들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가축분뇨공동자원화시설 회사에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반대 의견을 충분히 이해하고, 주민들 우려에 어긋나지 않게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해서 시설을 세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발전에 조금이라도 일익을 담당하겠다면서 상당한 액수의 마을 발전기금을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마을 주민 일부는 애초에 마을 발전기금을 받고 가축분뇨공동자원화시설을 허용하자고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고령화된 주민들이 무슨 수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세워지는 시설을 막을 수 있겠느냐고도 했습니다. 상당수를 차지한 강경파(?) 주민들은 그런 의견을 무시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직감했습니다. 결국, 가축분뇨공동자원화시설 회사는 마을에 발전기금을 내놨고, 시설은 세워지고 가축분뇨차량들은 마을 안길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을 발전기금은 회의를 거쳐 마을 각 가정으로 배분되었습니다. 그때는 이 대목에서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가축분뇨공동자원화시설 회사의 약속도 다 지켜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4. 처음엔 이런 사례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괜찮다고(?) 여겨집니다. 저도 나이가 들면서 개인적인 욕심이 생기나 봅니다. 지자체의 마을 만들기에 관여하면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마을에서 건강한 공동체 삶을 어떻게 꾸려갈까? 공부하면서 답은 현실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동체'의 사전적 의미는 '공통의 생활공간에서 상호작용하며, 유대감을 공유하는 집단'을 뜻합니다. 농촌 마을 공동체는 마을이라는 생활공간에서 비교적 오랜 시간 상호작용하며 유대감을 공유한 집단입니다. 또 마을에는 소수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과, 다수의 현상 유지자들이 약간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 농촌공동체의 가장 큰 고민은 초고령화와 경제소득 빈곤입니다. 이런 고민이 악순환으로 가는 것은 선순환할 만한 동기부여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상당수 농촌 마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상호작용하며 유대감을 공유하는 일은 구성원의 수평적 관계와 수직적 관계가 잘 어우러질 때 건강하게 나타납니다. 함께 늙어가는 동년배가 있고,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 젊은 세대가 있을 때 안심하고 유대감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세대는 없고 고령층만 있을 때는 현재에 집착하고, 발전이라는 단어보다 당장 나눌 수 있는 혜택이 더 중요합니다. 예전처럼 자식과 함께 산다든지 또는 마을에 젊은 사람이 있어서 내 삶이 연결되는 의미를 갖는다면 공동체 유대감의 폭이 클 텐데, 마주하는 현실은 단절과 포기의 그림자가 큽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하는 마을 사업의 근간은 마을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인데, 참여의 질이 마을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꼭 농촌만의 모습은 아닙니다. 소도시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최근 제가 사는 지역의 도심권 시장상인들의 의식을 조사한 데이터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소도시도 고령화 현상과 현재에 집착하는 모습이 또렷했습니다. 상가를 임대하는 젊은 상인들은 변화에 도전적인 데 반해, 상가를 소유한 고령층은 변화에 대한 반응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시장상인 상당수가 고령층이라는데 있습니다. 

지자체마다 시장의 변화와 원도심((原都心) 재생사업을 이끌기 위해 적지 않은 예산 투입과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농촌에서 마을대학이 열리듯이 도심지에서는 도시재생대학이 주민 참여 사업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담당자들의 많은 수고가 한 눈에 보이지만, 변하지 않는 고령층 위주의 프로그램 결과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이 큽니다.


5. 어떻게 할까요? 고령화와 더불어 마을 발전, 혹은 마을 미래를 고민하는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6.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도 분명한 현실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처음에 마을 발전기금이라는 성격의 돈이 마을 회의를 통해서 간단하게 각 가정으로 배분될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강했는데, 어쨌든 마을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그렇게라도 소득이 생기는 것을 반기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 또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해보면 대체로 마을 발전을 위한 개인의 인내에 수긍합니다. 그런데 집단 회의를 하면, 손해를 보거나 소외를 당한다는 느낌이 강한 가 봅니다. 오늘 초고령화에 접어든 농촌 공동체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참여할 시간이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한 여러 일의 의미가 삭감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농촌 마을 공동체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꼭 농촌 마을이 아니어도 이런 현상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을 발전, 마을의 미래가 한 마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발전과 연결된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고령화된 공동체는 국가와 정부와 사회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정부와 지자체에서 마을 만들기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마을 만들기가 깨끗한 마을, 경제 소득을 이루는 마을, 귀농인과 귀촌인이 정착할 수 있는 마을 등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 많은 사람에게도 국가와 정부가 나를 챙겨주고 있어서 마을에서 함께 사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7. 농업의 가치가 올라가고, 극심한 젊은 실업자 대책의 빛이 농촌에서부터 비친다면 농촌 마을도 원래 갖고 있던 생활공동체 마을, 생태공동체 마을의 모습을 회복할 것입니다. 미래가 있다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오늘을 막장으로 생각할 이유도 없습니다. 지금도 막대한 농촌개발 사업비가 투입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국가가 돈이 없어서 농촌이 피폐해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해야 할 시기를 자꾸 보내고 있습니다. 당장에 답은 없어도 함께 살기 위한 고민이 커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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