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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00:03


1. 드디어 시내에서 신입생 한 명이 오기로 했다. 지난 일 년 동안 농촌학교의 장점을 설명하면서 건강한 농촌학교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 아름다운 투자라고 여러 사람에게 설명했는데, 그중 엄마 한 분이 동의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이 학교 보내는 일로 남편과 다툼도 있었고, 같이 아이를 보내기로 했던 엄마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면서 포기했다. 마음이 흔들리는 속에서도 일본에서 공부할 때 지켜봤던 일본의 교육 환경도 떠올리고, 그간 낙동초등학교를 방문하면서 농촌학교의 단점보다 장점을 더 크게 그리면서 아이를 보내는 결단을 했다. 25km 거리지만, 시내 1,300명 학교의 일원보다 농촌 28명 학교의 일원이 아이에게 더 좋은 일이라고 여겼다.


나도 책임감이 커졌다. 지난 12년 동안 만난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새로운 신입생도 그렇게 자라기를 바라고 있다. 학교는 이번에 7명이 졸업하고 8명이 입학하니 1명이 더 늘어난다. 1명의 자리가 크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8년 전에 통폐합됐을 학교가 여기까지 온 것은 1명의 가치 때문이다. 1명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했고, 정성을 쏟아부었다. 처음에는 단지 학교 존폐 문제의 일이었지만, 농촌에서 이뤄지는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학교공동체와 마을공동체의 내일을 위한 일로 받아들였다. 어디엔가 있을 한 명의 아이를 찾아가는 일은 언제나 영화처럼 극적이다. 현실과 어울리지 않아도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2. 2차 세계대전 전쟁 영화 중 하나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면, 주인공 존 밀러가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하사관 호버스에게, 그들이 기필코 구해서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 라이언이 그럴 가치가 있는 인물이기를 바라는 대화 장면이 나온다. 라이언을 구하는 임무 수행 중 아끼는 부하를 잃고 나서 임무에 대해 느끼는 회의와 의문, 그러나 그들이 구할 사람의 가치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가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군인의 마음에 담겨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내용은 이렇다. 2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격전지 중 하나였던 노르망디에서 상륙작전이 성공한 직후 미국 대통령은 한 가지 보고를 받게 된다. 전쟁에 참전한 한 집안의 4형제 중 3명이 전사하고 제임스 프란시스 라이언이라는 이름의 막내만 살아 있다는 보고다. 마지막 남은 아들 한 명만이라도 어머니의 품에 돌려보내야 한다는 대통령의 결정이 내려지자, 최전선에 있는 그를 구하기 위한 소수의 특수부대가 꾸려진다. 존 밀러는 그 임무의 책임자다. 전쟁터에서 라이언에게 가는 길목은 늘 위험하고 안타까운 사상자까지 난다. 우여곡절 끝에 라이언을 찾지만, 라이언은 동료들을 두고 돌아갈 수 없다며 오히려 전선에 남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존 밀러는 라이언에게 ‘가서 잘 살아… 값지게’라는 말을 남기며 마지막 전투를 치른다. 


뜬금없이 전쟁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간혹 밀러의 마음이 다가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전투하는 군인이 아니라 농촌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농촌의 모습이 그렇게 절박하다고 느끼는 것은 너무 심한 표현일까. 밀러는 위험을 무릅쓰고 라이언을 구하기에 온 힘을 다하지만, 나는 위험이라기보다 긴장을 조금 하면서 농촌학교 신입생 구하기에 마음을 모으고 있다. 다만, 이런 일이 조금이라도 그럴 가치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3. 사실 아이들이 없다. 서울시교육청 자료를 보면, 서울지역도 사립초등학교 39곳 중 4곳이 정원미달을 겪었다. 사립초등학교 경쟁력 약화도 있지만, 학령인구 감소가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된다. 교육부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2008학년도 전국 초등학교 신입생 수는 53만4816명이었으나 2017년 45만8353명으로 약 10년 새 7만6000명가량 감소했다. 신입생이 14.3%나 줄어든 것이다. 이로 인해 2016학년도에는 총 48곳의 학교가 문을 닫기도 했다. 1982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폐교한 초·중·고등학교를 집계하면 3726개교에 달한다.


이런 일은 초등학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대학교까지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다. 아이들로 먹고사는 사설 교육단체 통계를 보더라도 2018년 기준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수는 약 57만여 명, 2학년 학생 수는 52만여 명이다. 특히 1학년 학생 수가 45만 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대학교도 감당하기 어려운 정원 미달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 같은 점을 고려해 2015년에 대학구조개혁평가를 도입했고, 초중고 학교에 대해서도 지난 2015년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기본으로 한 '적정 규모 학교 육성 권고기준'을 마련해 전국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낸 상태다. 향후 오랫동안 학령인구 감소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전문가들은 기존의 학교 통폐합 방식을 넘어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할 때라고 지적하고 있다.


4.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은 줄어든 학생 수 때문에 학교를 통합하거나 학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가치가 학교로 인해 살아나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는 자기가 자란 마을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런 시스템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학제 편성과 과목 구성을 해야 한다. 저출산(低出産)만을 염두에 둔 급한 교육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관계와 다양성을 고려한 교육이면 좋겠다. 앞날에 대해 기대가 없이 불확실성에 끌려가는 교육은 이제 전환을 해야 한다. 그동안 입학 적령기 자녀를 둔 부모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교육에 대한 생각이 대동소이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불안감은 현실에 순응하도록 만들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들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새로운 교육에 대해 길라잡이처럼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지시가 하달되는 현장은 모두 꼼짝 못 하게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갈까? 역사를 보면 사회를 변화시키는 인간의 삶은 반드시 전환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 전환점이 가까이 있는지, 아직 가야 할 시간이 많은지 모르지만, 그 전환의 시작이 지금이면 좋겠다. 




5. 전환의 시작이라면 농촌 마을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다. 농촌에 아이들이 없는 것은 아이들 부모가 농촌에서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농촌에서 생활할 수 없을까? 전 세계 농촌이 다 그런가. 여러 나라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는 않다. 당당하고 행복한 농부의 삶을 보여주며 자랑스럽게 농사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나라도 있다. 자식은 당연하게 농업학교에 다닌다. 정부와 사회가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도록 돌보기 때문이다. EU(유럽연합)는 농가에 직접 지급하는 직불금이 농정예산의 70%를 넘는다. EU 농정의 핵심기조와 추구가치는 ‘돈 버는 농업’보다 ‘사람 사는 농촌’에 무게를 두고 있다. 본디 농업은 국가 기반이고, 안정적인 국가 기반은 농촌에 사람이 살아야 든든해지기 때문이다.


마을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려면, 대기업 사람만큼은 아니라도 농사지어 생계를 유지하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헌법과 법률, 조례로 보장하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마침 올해 지방선거 때 31년 만에 헌법을 바꾼다는 것이 대통령의 공약이다. 이번 개헌 때 반드시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헌법 조항이 개헌 헌법에 명시되어야 한다. 농민의 생존권은 국가의 미래를 담보하는 일이다.




6.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기 어렵다면 굳이 농민이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살길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런데 국민의 생명 창고인 농촌을 농민이 등지고 떠나면 농업은 어떻게 될까? 전업농이나 기업농으로 기계 농사를 지어서 식량 문제가 해결될까? 우리는 그런 문제를 이웃 일본의 농촌에서 보아왔다. 돈이 되는 농사만 짓는 기업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지 못한다. 사람은 돈이 되는 것을 떠나서 모든 것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다. 돈이 안 되는 농사도 농민의 몫이다. 자본을 추구하는 농업은 바로 우리 몸을 무너뜨린다. 농민과 농촌의 문제는 건강하게 살려고 하는 우리의 문제다. 그래서 농촌 마을에 농민이 살아야 한다. 그리고 농민과 상생하는 여러 사람이 같이 살아야 한다.


오늘 농민이 농촌 마을에 살기 위해서 국가가 지원하는 기본 소득이 필요하다. 농민이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정예화된 독일 농민들조차도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지 못한다. 오늘 세계 농업이 그렇다. 그래서 농촌을 지켜야 하는 독일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국가에서 농가 소득의 60%가 넘는 직불금을 지급한다. 그만큼 독일 농민은 책임감을 느끼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한다. 우리나라 직불금은 4%대에 불과하다. 


7. 2016년 우리 농가의 가구당 총소득은 37,197천 원이다. 도시근로자 가구당 평균소득 59,1480천 원의 62.8%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농가소득 가운데 순수한 농업소득은 27.1%에 불과한 10,068천 원이다. 2015년보다 10.6% 줄었다. 농업 총수입 31,279천 원에서 재료비, 노무비, 경비 등 농업경영비 21,211천원을 뺀 수치다. 농업소득률이 32.2%밖에 안 된다. 이렇게 소득은 줄어드는데 지출은 거꾸로 늘어나고 있다. 2016년 농가의 가계지출은 평균 31,049천 원으로 전년보다 1.4% 증가했다. 벌어들이는 총소득에서 약 83%의 돈은 고스란히 빠져나간다. 농민이 건강해야 국가도 국민도 건강하다는 말이 무색하다.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자는 것은 농민을 특별히 우대하려는 게 아니다. 농업이나 농촌 지역에 특혜를 주려는 게 아니다. 함께 살아가자는 것이다. 마을에 사람이 들어오도록 하자는 것이다. 전환의 시작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제는 젊은 사람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들어와야 한다. 국민의 2%가 농민이지만 60%가 농촌에 사는 독일의 농업 직불금 제도는, 국토의 균형 발전과 지역의 분권 자치를 위한 합리적 정책의 기반이다.




8. 기본소득 확보는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축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마을에 신뢰, 규범, 협동, 연대 등 마을공동체를 두텁게 할 수 있는 장치가 구축돼야 한다. 그동안 이런 일은 훈련도 별로 돼 있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알아서 하든지 말든지 해야 했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다. 국토는 무너지고, 먹을거리는 불신하고, 마을은 살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농촌 마을공동체 회복은 더 늦춰서는 안 된다. 농촌 마을에 사람이 사는 일은 결국 도시를 살리는 일이고, 국가를 살리는 일이다. 


농촌공동체가 유지되고 농업의 기능이 살아나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모든 것을 상품 가치로 평가하는 시장주의의 허점이 우리 현실에서 크나큰 손실로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주의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농산물 역시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에 불과하다. 농산물도 시장경제 부분이며 비교우위에 따른 이익을 기대해야 한다. 그러나 시장주의는 농업이 지닌 다원적 가치를 철저하게 부정한다. 예를 들어 논농사의 경우 쌀의 가치만 인정한다면 상품화되지 않는 생태보전, 산소공급, 홍수조절기능 등의 기능은 가치평가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쌀 생산을 포기하는 순간 논이 수행한 이 기능이 사라지고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본다. 쌀을 수입하면서 논의 다원적 기능을 함께 수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촌 마을의 진정한 가치는 논농사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다원적 기능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9. 농촌학교 1학년 구하기는 마을을 구하는 일이고, 나라를 구하는 일이다. 오늘은 마치 전쟁터를 누비며 라이언 일병을 찾듯이 1학년을 찾아 헤맸지만, 앞으로 마을공동체 안에서 1학년 아이들이 자생(?)하기를 바란다. 농촌 마을에서 즐겁게 살 수 있는 소득을 얻을 수 있고, 아이들을 위한 농촌학교는 새로운 교육의 무대가 되기를 바란다. 단지 학생 수 때문에 교육이 망가지지 않고, 오히려 농촌학교는 몸으로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고, 서로 도와야 할 마음을 키우며, 엄마가 생각하는 교육의 실천 현장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가치 있는 일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기대가 담겨 있어야 한다. 때로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멈추고 싶을 때도 있지만, 사라지지 않은 작은 희망이 우리를 이끌어야 한다. 작은 기대가 모이면 세상은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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