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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 14:53


요즘 제가 하는 일 가운데 중요한 일을 꼽으라면, 농촌 여행안내와 지역민들에게 커피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농촌 여행은 보령시 천북면을 중심으로 유쾌한 농촌의 감흥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일이고, 커피를 통해서는 농촌의 여유와 쉼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지난번 글에도 썼는데, 커피와 깊은 사이가 된 것은 커피가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기능이 크다는 것을 나름대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상에서 커피가 워낙 보편화 되다 보니, 농촌에서도 커피 한 잔에 말문이 트이고 편한 자리가 됩니다. 더구나 여행하면서 누리는 커피의 즐거움은 참 큽니다. 


그동안 몇 분과 보령커피라는 지역 브랜드를 알리기에 힘쓰면서 누구든지 보령에 와서 즐거운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키웠습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공방을 만들어서 커피를 나누고, 아름다운 보령, 아니 우리나라 곳곳의 농촌과 어촌의 따뜻함을 커피에 담았습니다. 커피와 함께 하는 농촌 여행을 위해서 간략한 보령 여행 지도도 만들었습니다.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설레는 바람이 있고, 그리고 마음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여행 지도입니다. 



서해안고속도로 대천 나들목 인근 보령커피 로스팅 공장에서 커피 볶는 즐거움을 가득 담고, 보령의 북쪽 천북면에서 최고의 유기농 우유를 커피에 섞어서 아름다운 신죽리수목원 숲길에서 커피를 마십니다. 전통옹기공장에서는 스스로 옹기장이가 될 수 있고, 천수만 공룡의 섬에서는 원시시대 자연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술 향기 가득한 갤러리를 방문하면서 보령과 깊은 교감에 빠져드는 일정이 여행 지도에 들어있습니다. 



지난여름부터 새로운 커피 제자(?)를 받았습니다. 함께 커피를 나누기 시작한 이들은 천수만 바닷가 마을인 학성리 어부들입니다. 천수만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서해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도 몸으로 느끼는 이들이 커피 향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어부들이 이렇게도 커피를 사랑할 줄은 몰랐습니다. 매주 월요일 저녁은 그물을 내려놓고 함께 모여서 다양한 커피를 배우고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데, 그들 스스로 보여주는 열정은 제게 큰 기쁨입니다. 커피 원두를 싣고 학성리로 가는 ‘커피 로드’는 참으로 설레는 길입니다.



보령시 천북면에 있는 학성리는 멋진 바닷가입니다. 특히 학성리 바다의 맨삽지 섬은 충남에서는 처음으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곳입니다. 이 섬에는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30cm 내외의 원형 공룡 발자국 10여 개가 보행렬을 이루면서 분포돼 있습니다. 또 맨삽지 섬은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한 성층이 바닷물의 침식 때문에 겹겹이 층을 이룬 절벽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1억 년 전의 지층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맨삽지 섬은 어느 때나 들어갈 수 있는 섬은 아닙니다. 썰물 때는 걸어서 갈 수 있지만, 밀물 때는 섬 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섬에 들어가면 오래된 바위들이 마치 공룡 시대 상징처럼 모습을 드러냅니다. 공룡 시대가 언제였느냐는 왈가왈부가 지금도 있지만, 그러나 섬에 들어간 사람들 마음속에는 공룡 놀이터가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왜소해질 수밖에 없는 삶 속에서 상상으로나마 거대한 공룡이 되어 몸집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것은 어쩌면 오늘 우리의 꿈인지도 모릅니다. 바위에 새겨있는 공룡의 발자국에서 도저히 가질 수 없는 힘을 느끼기도 합니다. 공룡은 어디로 갔을까요? 지구의 역사를 이야기하기보다 바닷가 한 모퉁이에서 그때 공룡의 발아래에서 쓸려간 썰물을 오늘 밀물로 만납니다. 1억 년 전 시간이 파도를 타고 지나갑니다. 맨삽지 섬은 여전히 공룡의 섬입니다.



어부들은 커피를 배우면서 학성공룡커피클럽을 만들었습니다. 공룡커피클럽. 아마, 공룡의 섬에서 커피를 마신다면 누구나 클럽 회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공룡커피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학성리 어부의 커피입니다. 이 커피가 독특한 것은 어부가 채취한 바다 내음이 적절하게 커피 향과 어우러지기 때문입니다. 바닷가를 거닐던 공룡의 자유로움이 스며있는 커피입니다. 학성리에 오면 누구라도 공룡커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공룡커피를 마시도록 돕기 위해 커피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공룡이 거닐던 자리를 따라가며 마시는 커피, 학성리 공룡커피입니다.


어부들은 커피 공부 수강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게 줍니다. 어떤 날은 그날 잡은 주꾸미로, 우럭으로, 어떤 날은 오래 끓인 오리 백숙으로, 어떤 날은 정성껏 수확한 헛개나무로…. 참 다양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저 스스로 누리는 즐거움으로 이미 많은 수강료를 받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남은 수강료를 돌려드려야 할 판입니다. 그래서 어부들과 커피를 배우고 나누는 시간은 참 유쾌합니다. 커피의 가장 큰 장점은 서로 마음을 열도록 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냥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가을, 보령 곳곳에서 여러 축제가 열렸습니다. 어부들은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일도 바빴지만, 이왕 배운 커피니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축제장마다 공룡커피 나눔을 했습니다. 수목원 축제장에서, 대천해수욕장 광장에서, 중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정말 많은 사람이 찾아와 커피를 마셨습니다. 하루에 수백 잔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응원하며 지치지 않고 커피를 내렸습니다. 좋은 일이 덤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커피를 내리면서 커피를 더 사랑하게 됐고, 또 커피를 내리는 숙련된 솜씨를 갖게 된 것입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커피 내리는 어부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멋졌습니다.



이제 공룡커피클럽은 새로운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조금씩 준비를 해서 공룡의 섬인 맨삽지에 작은 카페를 여는 일입니다. 날마다 고기를 잡으러 가야 하는 어부들이어서 상업적인 카페는 어렵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학성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어느 때라도 커피를 내려줄 수 있는 작은 공간은 꼭 만들고 싶습니다. 각자 커피 가방도 준비했습니다. 카페가 문을 열면, 커피 내리는 동안 몽글몽글 올라가는 수증기 사이로 1억 년 전 시간이 다시 찾아오고 발자국 따라 공룡이 지나갈 것 같습니다. 어쩌면 공룡도 커피 향기에 멈칫거릴지 모르겠습니다.


공룡커피클럽 일원인 학성리 이장님은 그래서 마을 가꾸기에 더욱 열심입니다. 마을 가꾸기 사업 교육을 받으러 곳곳에 다니기도 하고, 겨울 지나고 봄이 오면 재미나는 숭어 축제를 벌일 생각도 합니다. 어부들이 배를 타고 협력하여 숭어 떼를 몰아서 잡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잊지 못할 광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봄 숭어가 그렇게 맛있다는군요. 봄바람 속에 축제가 열리면 어부들이 내려 준 공룡커피도 당연히 사람들 손에 들려 있겠지요. 벌써 제 마음은 들썩 거립니다.



사실 커피를 배운 어부들의 나이가 젊지는 않습니다. 손주를 둔 할머니도 있고요. 그래도 모두 마을에서는 청년회 소속입니다. 요즘 말로 웃픈(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 현실입니다. 제가 농촌과 어촌에서 커피를 가르치는 이유 중 하나는 어려움이 점점 더 현실이 되는 농어촌에서 조그마한 즐거움이라도 서로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여겨서입니다. 오늘 우리 농어촌이 여전히 행복의 터전이라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만드는 작은 즐거움은 미래를 여는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나이에 상관없이 진짜 청년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경제가 작은 즐거움도 쉽지 않을 정도로 어렵다고 합니다.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지요. 더구나 탄핵 정국을 유발한 정치 상황은 실망과 안타까움을 키우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경제는 늘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무딘 신경이지만 우리 사회에 갖은 모순과 갈등이 돌출되고 환경오염, 먹을거리 문제, 비정규직 문제, 아이들의 교육 문제, 이런저런 양극화도 계속 커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농촌학교에서 스쿨버스 운전을 오랫동안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교육의 위기도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교육도 성장 일변도의 도구가 되면서, 갈수록 비교와 경쟁에서 상대되지 않는 농촌학교의 문제는 단지 농촌에 아이들이 없다는 것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해지자고 힘을 기울이는 경제 성장이 오히려 삶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현실은 우리 스스로가 행복의 길을 막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좋은 삶이란 거창한 구조물을 건축하거나 뛰어난 문화재를 남기거나 하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의 이웃과 함께 일하고, 서로 돕고 보살피는 가운데서 생을 즐기는 데 있다. (‘여럿이 함께’ 2007. 프레시안북)” 어떻게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울리는 것은 왜일까요? 너무 쉬워서,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동안 건너뛰고 있어서 일까요? 아니면, 내가 좋은 이웃이 되기 어려워서였을까요?



공동체 파괴와 생태적 파국 앞에서 우리 사회는 오히려 경제 성장의 논리에 더 편승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작지만 희망의 걸음을 딛는 이들입니다. 루쉰의 말처럼,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고 믿으니까요. 그래요. 행복하게 사는 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믿습니다. 학성리 어부들은 커피를 통해 나눔을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이유를 만듭니다. 성장 논리에 거슬리는 농촌과 어촌의 현실에서 어부의 커피는 그래서 미래를 만드는 작은 즐거움입니다. 


겨울은 어부들이 휴식을 취하는 계절입니다. 커피 내리기는 더욱 좋은 시간입니다. 어떻습니까? 학성리 공룡의 섬에서 공룡커피 한 잔 하고 보령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요. 꼭 보령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계신 곳에서 커피 한잔하면서 마음만은 바닷가 어부들과 연결된다면 함께 꿈을 나누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일행이 될 수 있습니다. 나누는 일도 함께하면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면 어떻게 행복을 만들어야 하는지도 알 수 있겠지요. 



학성공룡커피클럽이 커피를 내리는 시간만이라도 맛있는 커피를 상상하며 그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행복은 관계에서 나옵니다. 기계와 같은 삶을 강요받는 사람들 속에 행복은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경제 성장에서 행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알고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서로 보살피는 즐거움을 알 때 행복은 삶의 기반이 됩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함께 모여 탁자와 의자를 배치하고 커피 도구를 하나씩 올려놓으면서 물을 끓입니다. 옆에서는 커피 원두를 갈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커피 향이 공간에 가득 찹니다. 가장 작은 행위로 가장 큰 선물을 주는 시간입니다.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이 창문 너머로 보입니다. 밀물이 물러가면서 공룡의 섬에 길이 열립니다. 길이 점점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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